피와꽃, 퓨어디지틀사일런스 – Barcode for Lunch, 즐거운 한때 우리는 외계 혹성을 방문했다 – Balloon & Needle, 2000 ‘비주류’ 인디 혹은 ‘전위’ 인디의 작은 발걸음 스팽글(Spangle)이라는 이름의 라이브 클럽이 있다. 신촌 로터리와 홍대 앞이라는 휘황찬란한 장소들 사이의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클럽이다. 출입구는 삐걱거리고, 공기는 탁하고, 음향 장비는 열악하고, 화장실은 지저분하다. ‘비즈니스’ 개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말하자면 이곳은 ‘홍대 앞 클럽 씬’에서도 비주류에 속한다. 음악적 아이덴터티는 나른하고 느리고 내성적이고 수줍고 ‘식물적’이다. 한마디로 ‘울트라 쿨(ultra cool)’한 곳이라서 ‘신이 나서 연주하는 밴드’도 ‘환호하는 청중’도 찾아보기 힘들다. 호기심 많은 일반인이 찾았다가는 지루하고 졸리다는 느낌만을 받고 돌아간다. 따라서 퓨어디지틀사일런스라는 길고 어려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홍대 앞 클럽’을 들락거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이한 유형에 속할 것이다. 퓨어디지틀사일런스(이하 PDS로 약함)의 음반을 들을 때 스팽글의 분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본인들이 스팽글을 최적의 연주 공간으로 생각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들의 음악은 클럽의 분위기처럼 그늘지고 내성적이다. 이번 음반은 이들의 자매 밴드인 ‘피와 꽃’과의 합동 음반(Split EP)이다. PDS는 1997년 강아지 레이블을 통해 앨범 [Circumfluence]를 발표했지만, 이 앨범도 ‘신인 밴드의 정규 데뷔’라기보다는 기념 음반 같은 것이었다. 그간의 음악 활동을 문자 그대로 ‘기록(record)’하는 레코드 같다고나 할까. 이번 음반은 그때의 정규 데뷔 음반보다 더욱 ‘로파이’적인, 즉 스튜디오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모두 ‘집에서’ 녹음한 작업물이다. 두 밴드가 앨범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는데, 전반부의 피와 꽃은 ‘록 음악’의 요소가 조금은 남아 있는 반면, 후반부의 PDS는 전혀 ‘록’적이지 않다. 피와 꽃의 네 곡은 모두 언뜻 들으면 똑같은 곡으로 들릴 정도로 나른한 기타 사운드와 조용한 드럼,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보컬의 반복이다. PDS의 사운드는 전작과 많이 다르지 않다. PDS의 미학은 기타 이펙트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음의 질감을 표현해 내는 것이다. 피와 꽃이 일요일 아침의 늦잠과도 같은 나른함의 일상적 정서에 침잠해 있다면, PDS는 일상을 초월하여 ‘절대 정신’의 추상 세계로 나아간다. 영미 평단에서 즐겨 쓰는 표현을 빌자면 피와 꽃은 ‘대양적(oceanic)’이고 PDS는 ‘우주적(cosmic)’이다. 어쩌면 PDS의 음악은 마크 로드코(Mark Rothko)의 [Blue, Green, And Brown]과 같은 색면 추상회화의 정신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로드코의 그림에서 ‘색’ 그 자체, 어떤 것도 재현하거나 의미하지 않는 절대 추상의 표현이 PDS의 ‘음색’과 상통한다고 말하는 것이 나만의 지나친 상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앨범은 분명 ‘대중적’이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대중 음악의 극소수 ‘전위들’에게만 수용될 수 있는 음악이다. 슬로우코어(slo-core: 극단적으로 느리게 가는 인디 음악의 한 장르)나 포스트록(postrock) 같은 영미의 새로운 조류들 자체가 한국에서는 어차피 ‘매니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이들의 음악이 별로 새로울 것 없다는 불평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진지한 추구가 소중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시장'(비록 구입이 가능한 곳은 인터넷과 홍대 앞의 한 레코드 가게뿐이지만)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창작과 수용의 다양함을 보증하는 문화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사소한 이야기지만, 자유롭지 않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창작과 레코딩을 계속해 온 홍철기의 노력은 인디 씬의 ‘게으른’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공(空) CD 윗면에 페인트를 칠해 만든 디스크, 프린터와 종이 및 OHP 용지를 이용하여 ‘수작업’으로 만든 앞뒷면 커버도… 20000729 | 이정엽 fsol1@hananet.net 7/10 수록곡 피와 꽃 [barcode for Lunch] 1. Savior Song 2. Cold Farm 3. Peng 300 4. Scene 퓨어디지털사일런스 [즐거운 한때 우리는 외계 혹성을 방문했다] 6. 1 7. 2 8. 3-1,2,3 9. 4-1,2 관련 사이트 레이블 공식 홈페이지 http://www.balloonnneed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