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804125052-gilberto

Joao Gilberto – Joao Voz E Violao – Universal/Verve, 2000

 

 

보사노바의 대가가 표현하는 무개성의 개성

스탄 게츠(Stan Getz),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과 더불어 보사노바의 살아있는 전설 호아오 질베르토(Joao Gilberto)의 근 10년만의 새 앨범은 여느 노장의 화려한 복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화려한 게스트도 없이, 완연한 변화도 아닌 귀환으로, 첨단의 악기도 거부한 채 오직 자신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만의 조화로 완성된, 넉넉한 여유와 응축된 공력의 산물인 것이다. 때문에 모든 것을 초월한 무(無), 그 자체로 구현되어 지엽적인 기준이나 평가를 떠나 장인의 존재만으로도 숙연해진다.

1964년,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공식적인 명반’ [Getz/Gilberto]는 호아오 질베르토를 단숨에 보사노바의 상징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비록 호아오 질베르토가 게츠나 조빔만큼 능동적인 송라이터는 아니지만 유연하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는 어떤 연주가의 음악에서도 적확한 자리를 찾는다. 때문에 이미 세상을 떠난 게츠와 조빔의 빈자리를 메우는 동시에 후대와의 연결 고리를 유지하는 아이콘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질베르토는 보사노바와의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었던 바, 이는 곧 “생산은 주체를 위한 대상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대상을 위한 주체를 만들기도 한다”라는 마르크스의 <강요>와도 같이 음악의 대상에서 주체로 전환하여 보사노바를 재정의하게 되었고 그의 기준으로 보사노바를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막연히 연상되는 브라질의 음악들, 삼바나 보사노바가 갖고 있는 열대야에서의 끊임없이 소비되는 육체의 향연과 흥겨움을 잃지 않는 즉흥성, 출렁거리는 리듬감은 다시 질베르토의 음악을 바탕으로 정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레게와 더불어 여름 음악이라는 구속은 여타 다른 장르보다 심한 오용과 남용이 일구어낸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호아오 질베르토의 목소리는 넘실거리기보다는 나긋나긋하기 그지없으며, 미묘한 음의 변화와 그것을 표현하는 세밀한 음색의 낙차를 통해 음률 이전에 청각적 포만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음색의 한정된 공간에서의 이동은 정열적이기보다는 소심하고, 번잡스럽기보다는 외롭고 쓸쓸하다. 이번 앨범은 여타 악기를 배제하고 순수한 기타 사운드만을 동반함으로써 이런 이미지를 최대화하였고, 이를 두고 데릭 스미스(Derrick Smith)는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의 전형적인 결합’이라 평가하고 있다.

이번 음악을 동양적으로 표현하자면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의 이미지와 부합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모난 것을 둥글게 만들며 어떤 틀에서도 자신을 맞춘다. 인위적이기보다는 순리적인 자연스러움의 미덕이다. 마찬가지로 질베르토는 무개성의 개성으로 모든 것을 포용한다. 바탕에 깔리는 기타 선율은 음의 고저와 클라이맥스를 무시한 채 다소곳하면서도 분주히 음표를 찍고, 그 위로 유연히 흐르는 목소리는 악기와의 암묵적 경계를 허물면서 뒤엉키고 넘나들며 물 흐르듯 막힘 없이 이어진다. 때문에 지리하고 단조로운 루프의 연속처럼 들릴 수도 있다. 조심스럽게 졸음이 밀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음악은 졸음조차도 한 자락으로 거둬들인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한마디, “쉿…”

아티스트를 분류해 본다면,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경우와 초지일관 한 음악만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질베르토는 전형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일생 동안 한 음악을 하면서 단출한 악기만으로 자신의 것을 확연히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가 과연 얼마나 될까? 때문에 겉으로 어떤 수식이나 광고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에는 오래된 연륜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리고 음표의 조작으로 이루어진 인공적인 음악들 속에서 자연과 흡사한 소리를 듣게 될 땐, 비로소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사람을 지워가는 것,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는 것을. 20000730 | 신주희 zoohere@hanmail.net

8/10

수록곡
1. Desde Que O Samba Samba
2. Voce Vai Ver
3. Eclipse
4. Nao Vou Pra Casa
5. Desafinado
6. Eu Vim Da Bahia
7. Coracao Vagabundo
8. Da Cor Do Pecado
9. Segredo
10. Chega de Saudade

관련 사이트
All About Jazz의 Derrick Smith 아티클 전문
http://www.allaboutjazz.com/articles/arti0700_08.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