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is – The Man Who – Independiente/Sony, 1999 트래비스는 나랑 인연이 없다면 없는 밴드다. 1997년 그들의 데뷔 앨범 [Good Feeling]이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을 업고 국내 매니아들 사이에 인기를 얻었을 때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작년에 발표된 2집 [The Man Who]가 영국에서 난리였을 때조차 데뷔 앨범만 못하다는 친구의 말에 그제서야 데뷔 앨범을 샀을 정도였다. 내가 듣기에 데뷔 앨범은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로큰롤 앨범이었다. 잘 만든 로큰롤 앨범이긴 했지만. 금년 3월에 열린 브릿 어워드에서 트래비스가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밴드’를 석권하면서 트래비스라는 존재는 점차 내게 무게감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들이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최근 몇 년간 브릿팝 팬들에게 스코틀랜드는 마치 1990년대 초 시애틀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 않았던가. 하지만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의 감성을 기대했던 내게 트래비스는 너무 평범해 오히려 낯설 정도인 센티멘탈한 록 발라드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데뷔 앨범이 오아시스와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을 독특하게 혼합한 음악이었다면, 2집은 누가 들어도 단번에 라디오헤드를 연상할 정도로 이들 음악을 닮았다. 하지만 라디오헤드의 섬세함을 갖추었으되 병적인 카리스마는 보이지 않으며, 버브의 멜랑콜리를 가졌으되 깊이는 없다. 이 앨범의 프로듀서는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와 마이크 헤지스(Mike Hedges)가 맡고 있는데, 이들이 각각 라디오헤드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의 음반을 제작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자면 앨범의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비교를 한 김에 하나만 더 해 보자.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인 벨 앤 세바스찬이 독특한 캐릭터와 유머, 독설 등으로 매니아들의 호기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면, 트래비스는 옆집 오빠 같은 친근함과 감성적인 보컬, 사랑을 갈구하는 가사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지만 영국에서만 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할 정도로 신드롬을 몰고 왔다는 사실을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앨범의 전체적인 인상은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을 만날 때의 그것이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무엇을 집어낼 수는 없으니, 이는 표절이나 인용의 차원이 아니라 전반적인 감성 자체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수록곡의 절반이 싱글로 커트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는 말을 실감케 하듯 딱히 대표곡을 고르기 힘들 정도로 고른 수준의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Writing to Reach You”는 출렁거리는 멜로디와 잔잔한 코러스가 인상적이며,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하는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는 셔플 리듬 위에 펼쳐지는 현악기들의 유려한 편곡과 보컬의 호소력 있는 음색이 돋보이는 곡이다. “Driftwood”는 수록곡 중 가장 모던한 곡으로 오션 칼라 씬(Ocean Colour Scene)의 풋풋함이 느껴지며, 기타의 느린 아르페지오 반주가 변주·확대되는 “As You Are”는 처연한 보컬과 점차 고조되는 곡 구성으로 인해 비장미마저 느끼게 한다(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를 드라마틱하게 확장한 듯하다). 새로울 것 없는 재료와 감성인 점을 감안한다면 앨범의 완성도는 놀라울 정도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앨범 배후에 혹시 트래비스의 손과 목소리를 빌린 다른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그는 1997년에 버브의 이름을 빌려 [Urban Hymns]를, 또 1995년에는 오아시스의 이름으로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발표한 그가 아닌지. 그리고 이 앨범을 듣는 사람들은 ‘트래비스’를 듣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트래비스의 ‘곡’을 듣는 것이 아닌지. 20000428 | 장호연 ravel52@nownuri.net 6/10 수록곡 1. Writing to Reach You 2. The Fear 3. As You Are 4. Driftwood 5. The Last Laugh of the Laughter 6. Turn 7.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8. Luv 9. She’s So Strange 10. Slide Show 수록곡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관련 사이트 트래비스 공식 사이트 http://www.travisonline.com 바이오, 디스코그래피, 리뷰, 인터뷰 외에 오디오, 비디오 자료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