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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스 아티스트 – 도시락 특공대 2: Behind Story – 도시락/도레미, 2000

 

 

[도시락 특공대 2]라는 음반은 ‘잡지’ 같다. 하긴 여러 뮤지션의 이름으로 된 컴필레이션 음반은 모두 잡지 같다고 할 수 있다. 한 뮤지션의 정규 앨범을 단행본 같다고 한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음반은 좀 ‘유별난’ 잡지다. 보도자료에 쓰여진 홍보 문구에 의하면 “미술과 문학, 그리고 대중음악의 기적적 만남”이다. 이렇게 촌티 풀풀 나면서도 이보다 멋지기는 힘든 문구의 주인공은 ‘황신혜 밴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김형태다. 도시락 레이블이란 알다시피 김형태의 ‘사업체’다.

CD를 집어들면 손가락 사이로 부피감이 느껴진다. 보통 CD처럼 유리 케이스(jewel case)를 사용하지 않았고, 책처럼 두꺼운 표지로 덮여 있다. 표지 안에는 CD의 부클릿(booklet)보다 질과 양 모두에서 풍성한 책자가 들어 있다. 시화집이다. 서체와 크기가 일정한 폰트로 인쇄된 보통 시집보다 더 시집답다. 이제하, 정현종, 황지우, 최승호, 김기택, 장경린, 이윤학 등의 시인과, 소설가 박상륭 등 비범한 인물들의 문학작품이 각기 다른 형태로 정성스레 인쇄되어 있고, 김홍주, 안창홍, 민경숙, 김명숙, 전금자, 김지원, 박형진, 이동기의 그림이 각 문학작품과 나란히 포진해 있다. 도시락이란 (일본말로) ‘벤또’가 아니라 圖·詩·樂, 그러니까 미술과 시와 음악의 만남이다. 멀티미디어 예술이라고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 상품은 ‘음반 매장’에서 판매하므로 음악 이야기를 주변적으로 다루면 안 될 듯하다. ‘파격’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두 대가 한대수와 김창완은 이번에도 또 파격이다. 한대수의 “미치게 해”는 중간의 자메이카풍 랩만으로도 충격적이고, 김창완의 “모자와 스파게티”는 “어머니와 고등어”의 펑크(혹은 하드코어) 버전 같다. 이상은은 미발표곡 “Actually, Finally”를 선(禪)적으로 노래하고, 황신혜 밴드는 “말”이라는 노래를 뜻밖에도 ‘통기타 가수처럼’ 노래한다. 왠지 도시락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신대철과 성기완은 시타(sitar: 인도의 현악기) 연주와 ‘변태적인’ 블루스를 각각 들려준다. 이제 이들은 실력있는 중견 음악인이 된 듯하다. 시인 이제하와 위승희는 음반 레코딩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선함을 주고, ‘소리꾼’ 장사익은 이전에 발표한 곡 “삼식이”를 새로운 편곡으로 들려준다.

처음과 마지막의 구성도 이색적이다. 주인공은 각각 원일과 강태환이다. 원일은 한국의 타악기 연주라는 그의 과업을 ‘테크노 음향과의 결합’ 쪽으로 방향 잡고 있고, 한국에서 ‘프리 재즈’와 동의어인 강태환은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비범함에는 틀림없는 연주를 들려준다. 이 트랙들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본다면 ‘순수한 우리 것이 아닌 한국적인 것’의 추구가 최근 대중음악의 전위들의 화두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조금 더 일관된 ‘레이블 사운드’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이질적인 음악의 넓은 스펙트럼에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루룩 다 읽어내리는 사람 있나? 디스크 장에 꽂아놓고 틈나는 대로 꺼내 들으면 좋을 음반이다. 시화집을 보고 함께 들으면 mp3나 테이프 녹음으로 들을 때는 도저히 느끼기 힘든 아우라(aura)를 경험하게 된다. 홍보문구 중 “수지타산도 안 맞습니다”라는 문구에서마저도. 20000428 | 신현준 homey@orgio.net

6/10

수록곡
1. 유위자연 – 원일
2. 장독 곁에서 – 이제하
3. Actually, Finally (original version) – 이상은
4. 미치게 해 – 한대수
5. 모자와 스파게티 – 김창완
6. 라니(sitar 연주곡) – 신대철(시나위)
7. 삼식이 – 장사익
8. 사랑학 ‘개’론 – 위승희
9. 말 – 황신혜 밴드
10. 좋아 미쳐 블루스 – 성기완
11. Improvisation (Live In Japan) – 강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