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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2000 – 해바라기 프로덕션/신나라, 2000

 

 

이 글을 읽는 사람은 해바라기라는 이름을 들으면 속으로 ‘퇴물’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걸 왜 쓰느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굳이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음반이 나오기 전 라디오와 TV의 공개방송에서 ‘신곡’으로 소개했던 “그런 날은 없어”라는 곡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들어보니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왠지 “Heart Of Gold” 시절의 닐 영(Neil Young)같은 느낌도 있었다. ‘닐 영’이라는 이름이 어쿠스틱 기타로 출발한 대중음악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맞는 말인가?)라고 가정할 때, ‘혹시나’하는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세 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그런 날은 없어”는 기타 줄의 해머링(hammering)으로 만들어내는 리듬이 술취한 듯 휘청거리며 부르는 보컬과 어우러진 곡이다. 노래 뒷부분에는 드럼 소리와 색소폰 소리도 ‘오래 쉬었던 베테랑치고는 그래도 새로운 시도를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날은 없어”를 제외하고는 ‘그런 곡은 없다’. 나머지는 “모두가 사랑이에요”,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같은 라디오 방송용 사랑노래나 “사랑으로”같은 콘서트 합창용 국민가요의 연장이다. 게다가 예전보다 무뎌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대만의 향기”나 “애인”같은 곡은 듣다보면 ‘트로트 아냐’라는 말까지 나온다(트로트가 뭐 어떻다는 말은 아니다. 트로트의 절절함이야 무엇에든 꿀리겠는가).

대부분의 곡을 분해해보면 언젠가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듯한 멜로디, 점4분음표와 8분음표가 계속되는 베이스 라인, 볼륨을 최소화시킨 스네어 드럼, 챙챙챙챙거리며 1마디에 8개의 박자를 맞추는 하이햇 드럼, 리버브와 에코우 가득한 사운드다. ’80년대 가요’에 대해 특별한 노스탤지어가 없는 젊은 사람이라면 오래 듣기 힘들다. 보사노바의 나른한 리듬에 블루 노트의 알딸딸한 느낌이 섞인 “널 위해”가 잠시 귀를 끌지만 어쨌든 이건 해바라기 스타일의 곡은 아니다.

앨범의 후반부로 접어들어가면 ‘쓰리 핑거 주법’의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는 “사랑 기다리며(明)”나 모처럼 업템포의 경쾌한 곡 “지나가는 바람”이 상대적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마지막 트랙인 “울고 싶으면”은 청자의 감정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동명의 연주곡(노래방 버전?)을 듣다보면 서있던 자리에 그냥 주저앉고 싶어진다. 마지막 트랙을 듣고 있으면 ‘노래방 영상’이 떠오른다. ‘노래와는 무관하게’ 서양 여자가 해변을 거니는 장면, 일본 여자가 고궁에서 볼에 손가락을 누르는 장면, 팽글팽글 돌아가는 조명 등등…

그러고 보니 도대체 해바라기의 음반에서 새로움을 기대했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 날은 없어”마저도 따지고 보면 그들의 숨어있는 명곡 “너”의 연장 아닌가. 어느 누가 새로움을 기대하면서 해바라기의 음반을 사서 듣겠는가. ‘계속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게 중요하다, 대중가수로서 더 많은 청중을 위한 배려겠지’라고 생각하는 (나같은? 아직도!) 사람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20000530 | 신현준 homey@orgio.net

5/10

수록곡
1. 그대만의 향기
2. 이렇게 좋은 날(동해로 가자)
3. 그런 날은 없어
4. 애인
5. 널 위해
6. 사랑 기다리며(明)
7. 우리들의 사랑은
8. 지나가는 바람
9. 울고 싶으면
10. 울고 싶으면(연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