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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디오시(DJ DOC) – The Life… DOC Blues 5% – Free Style/새한 DMR, 2000

 

 

‘씨발아 집어쳐라 닥쳐라 / 좆까라 가라 저리 꺼져라'(“L.I.E”)
‘새가 날아든다 왠갖 짭새가 날아든다 / 새중에 넌 씨방새 날지 못하는 새 짭새 / […] 좆같은 짭새와 꼰대가 문제'(“포조리”)
‘있는 놈은 항상 있지 / 없는 놈은 항상 없지'(“부익부 빈익빈”)

난리다. ‘통쾌하다’는 쾌재도 있고, ‘또냐?’는 뜨악한 눈길도 있고, ‘저속하다’는 근엄한 반응도 있고, ‘이런 썅!’하는 당사자들의 반발도 있다. 음반사에서 미리 ’18세 미만 청취 불가’의 빨간 딱지를 음반에 붙여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한국 영상물 등급 위원회에서는 ‘연소자 이용 불가 음반’으로 낙인을 찍었으며, “포조리”란 수록곡에 불쾌해한 경찰이 대책 회의 끝에 ‘명예훼손 혐의로 DJ DOC와 음반사를 고소하네 마네’ 한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DJ DOC는 사고뭉치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1994년 “슈퍼맨의 비애”로 데뷔한 후 1995년 “머피의 법칙”, 1996년 “여름 이야기”까지 DJ DOC의 이미지는 재미있고 무난한 음악, 까불거리는 캐릭터의 댄스 그룹 정도. 하이 톤으로 불러제끼는 김창렬의 보컬과 이하늘의 랩, 그리고 웃기는 가사가 인상적인 이들의 노래는 남녀노소까지는 아니어도 10대, 20대, 30대의 넓은 수용자 층을 포괄했다. 수용의 폭이나 양상으로 보아 쿨(Cool)과 비슷했다고 하면 섭섭해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1997년, 싱글 음반 “삐걱삐걱”과 연이어 내놓은 정규 4집부터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명 ‘관광버스 춤’을 추게 만든 “DOC와 춤을”과 “해변으로 가요”, “뱃놀이” 같은 ‘온고지신 트랙’의 히트는 예상했던 바였지만, 정치인들의 행태를 풍자한 “삐걱삐걱”은 뜻밖이란 반응이 적지 않았다. “삐걱삐걱”은 정치인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 정서를 긁어주어 속 시원하다는 평을 들었다. 가벼운 세태 비판이나 사회적인 소재를 다룬 노래들이야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지만(DJ DOC도 “성수대교”란 곡을 발표한 바 있다), “삐걱삐걱”(과 “모르겠어” 등)에서 이들이 보여준 풍자의 강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 해 겨울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의 로고송으로 쓰인 “DOC와 춤을”의 경우도 평범한 댄스곡 같지만 재미있으면서도 따뜻한 시각의 노랫말이 돋보이는 트랙이었다. 이 무렵부터 DJ DOC에 대한 인상은 ‘인기 댄스 그룹 가운데 하나’에서 ‘유쾌한 악동 랩 댄스 그룹’으로 변했다.

그로부터 3년 만인 2000년 5월, DJ DOC는 드디어 다섯 번째 정규 앨범 [The Life… DOC Blues 5%]를 내놓았다. 3년이란 긴 공백기가 말해주듯(이들은 1년에 1장 이상의 음반을 내놓아야 하는 댄스 가요계에서 인기 정상의 위치가 아니었던가), 5집이 발매되기까지 이들의 시련은 적지 않았다. 공백기 동안 이들은 음주운전, 뺑소니, 폭행 같은 혐의로 경찰로부터 구속 영장을 청구받았었다. 한창 잘 나갈 땐 주변에 구름처럼 모여들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배신을 때리며 사라지고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도 일어났다고 한다. 작년부터 곧 나올 거라던 5집도 언제 발매할지 기약 없는 상태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번 음반에 날카롭게 날 선 구석이 있는 데에는 그런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

DJ DOC의 5집에 관한 기대치는 어땠을까. 그들의 오랜 팬들은 5집을 학수고대했을 테고, 4집으로 그들을 새롭게 보게 된 이들은 신보가 어떤 꼴로 나올지 궁금했을 듯하고, 음반 비즈니스 관계자들은 (장기적으로 그리고 시기적으로) 불황에 ‘삐걱이는’ 음반 산업에 윤활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예상했을 듯싶다. 음반 발매 후 언론은 몇몇 수록곡이 과격한 욕설과 경찰 및 언론 등에 대한 비판으로 파문을 일으키자 이를 잽싸게 이슈화하여 지면을 키우기에 바쁘다. 도대체 음악이 어떻기에?

주류 가요 기획사에서 뛰쳐나와 ‘Free Style’에서 제작한 5집은 DJ DOC의 음악적 지향점이 비교적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전체적인 인상을 얘기하자면, 리드 보컬 김창렬은 비중이 낮아진 반면, 리더인 래퍼 이하늘과 래퍼 정재용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자작곡의 비중이 월등히 높아졌고, 힙합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까만 흑백 톤에 노란색 앨범 제목을 담고 있는 5집의 재킷도 그렇고.

물론 양적으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담겨있다. 음반에는 힙합 외에, R&B, 디스코, 댄스, 발라드 등이 골고루 포진되어 있고, 각 트랙 내에 여러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 대중적인 교감을 염두에 둔 R&B와 발라드, 댄스 음악도 적지는 않다. 예컨대, 첫 뮤직 비디오로 제작해 밀고 있는 “Run To U”는 마카로니 웨스턴에 나올 법한 리드미컬한 비트와 베이스가 인상적인 댄스 넘버이고, 금요일 밤을 춤추며 불태워보자고 선동하는 남궁연 작곡의 “Boogie Night”은 몸을 흔들기에 적당한 훵키한 디스코이며, 정연준이 만든 “기다리고 있어”는 전형적인 R&B 발라드이고, 불륜을 다루었다는 “아무도 모르게”는 정연준이 작곡에 참여한 곡으로 산타나(Santana)를 연상시키는 라틴 풍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발라드이다.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은 정평이 난 세션진의 참여로 뒷받침되었다(기타의 한상원, Sam Lee, 정연준, 이희성, 베이스의 신현권, 정재일, 드럼의 남궁연, 키보드의 정원영).

하지만 이 음반의 본령은 역시 힙합 넘버들에 있다. “비.愛”처럼 라틴적인 맛이 가미된 서정적인 힙합 사운드도 있지만, 앨범의 첫 곡부터가 심상치 않다. 그간의 사정을 읊으면서 다짐과 출사표를 던지는 “Intro(와신상담)”는 랩에서 권유하는 대로 양팔을 들어 좌우로 흔들며 몸을 들썩이면 좋을 듯한 중간 템포의 곡. ‘우린 패밀리도 아닌 패거리도 아닌 / 제법 놀 줄 아는 날라리 / 언행일치 안 되는 헛소리 개소리따윈 하지 않겠어 / 말로만 MC 자기만 MC / MIC만 잡으면 아무나 MC’라는 일침과 ‘Who’s the best MC / DOC’라는 뻐기기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문제의 두 곡. [2000 대한민국]에 클린 버전으로 실렸던 “L.I.E”는 물컹거리고 싸구려스러운 로-파이적 사운드에 욕설이 난무한다. 사건을 과장하고 오도하는 ‘작문’에 능한 기자들, 사전 심의제 폐지 이후에도 계속되는 검열 장치를 공격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도대체 누가 누굴 검열한단 말인가 / 아직도 니네 일제시대인 줄 아시나 / […] / 사전 심의 제도 여전히 분명히 존재하는 검열 제도 / 이름만 바뀐 청소년 보호법’. 이 대목에서 래퍼들 씹기가 빠질 수 없겠지. ‘너넨 삐리삐리 좆삐리 / 좆삐리 삐리 껍데기 데기 / 언행일치 안 되는 헛소리’.

그리고는 인트로격인 “Nuclear Lunch The Detected”에 이어, 본곡이자 올해의 싱글감인 “포조리”가 나온다. 박명화(창)와 류지영(가야금)이 “새타령”을 차용해 연주한 ‘새가 날아든다 왠갖 짭새가 날아든다 / 새중에 넌 씨방새 날지 못하는 새 짭새’의 짧은 17초짜리 인트로는 시쳇말로 죽인다. 경찰에 대한 이 곡의 신랄한 조롱과 재치 있는 라임은 랩/힙합의 참맛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조롱당하고 씹힌 당사자들은 유감이겠지만, 또 부정부패와 눈치 보기와 무능으로 요약되는 경찰(일부?)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일부?)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무전유죄 유전무죄 / 돈 없고 빽 없는 내가 죄’ 등의 진술에 고개를 가로저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전제에 동의한다면, 하긴 어디 경찰만의 문제이겠는가). 이외에도 금권 사회 풍조를 얘기한 “부익부 빈익빈”, 옷 로비 사건을 풍자한 “알쏭달쏭” 등의 노래가 음반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모든 문제작들이 그렇듯, DJ DOC의 5집은 찬사와 비난의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그런 논란은 상업적으로 ‘기획’될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런 의도로 야기된 얘깃거리 논란거리는 실제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럼 DJ DOC는? 여러 정황으로 봐서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진위야 어찌 되었든 DJ DOC의 5집은 상업성과 음악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절충적 방법론의 결과이다. 힙합적인 접근법을 앨범 전체에 걸쳐 전면화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의 양아치스런 거침없음은 이제 일정 경지에 올랐음을 5집은 말해주는 듯하다. 20000529 | 이용우 djpink@hanmail.net

8/10

수록곡
1. Intro (와신상담)
2. 비.愛 (acoustic)
3. L.I.E.
4. Nuclear Lunch The Detected
5. 포조리
6. Boogie Night
7. Run To U
8. 기다리고 있어
9. 아무도 모르게
10. 사랑을 아직도 난
11. Someday
12. D.O.C Blues
13. 부익부 빈익빈
14. 알쏭달쏭
15. Analog
16. Alive
17. 비.愛 (original)

관련 사이트
인터넷 방송국 ‘EyepopTV’ DJ DOC 페이지
http://djdoc.eyepoptv.com
5집에 관한 설명, 사진, 셀프 카메라, 동영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