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iott Smith – Figure 8 – Dreamworks, 2000 처음 들었을 때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곡이 있는 반면(이런 것을 귀에 ‘쏙’ 들어온다고 표현하던가), 몇 번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그 분위기에 익숙해져 버리는 곡이 있다. 엘리엇 스미스는 후자의 경우로, 여린 목소리가 애절하게 소름을 만들지만, 한 곡 떼어놓으면 그렇게 도드라지지 못한, 앨범 전체와 공조할 때만 매료되는 통일성과 연계성을 지닌 음악이다. 힛마이저(Heatmiser)라는 밴드를 거쳐 인디 음악이라는 터널을 지나 화제의 두 영화 [Good Will Hunting]과 [American Beauty] 사운드트랙 참여 후 2000년, 음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마침내 엘리엇 스미스의 5번째 솔로 정규앨범이 라이센스 되었다. 그러나 전작 [either/or]나 [XO]와 같은 아련한 느낌의 편린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봐도, 부서질 듯한 목소리와 감성이 주도적으로 지배하고 있지 못한, 앞서 이야기한 통일성과 연계성을 허울처럼 벗어던진, 화려하고 청명한 음악만이 있을 뿐이다. 앨범은 60여분 가까운 시간으로 보너스 트랙 (아메리칸 뷰티 주제곡인) “Because”를 포함하여 모두 열 일곱 곡을 담고 있다. 그리고 싱글 발매를 염두에 두었는지 곡마다 다양한 색깔과 분위기를 지닌 완전함과 독립성을 보여준다. 이전 음반과 공통점을 찾는다면 여전히 유리 같은 엘리엇 스미스의 목소리 정도일까. 그러나 명쾌하게 쓰인 악기들은 과거에는 느끼지 못한 풍부한 질감을 재현해 준다. 여전히 하모니를 이루는 음색이 좌우로 들리고 어쿠스틱 기타는 기타줄 소리를 내며 술렁이지만, 더 이상 낙오자 정서를 찾을 수 없다. 이제 그는 메인스트림에 올라선 것이다. 단순하게, 앨범 평가에 발전과 퇴보와 정체의 틀을 적용해본다면 이번 앨범은 발전과 정체 사이에 어중간히 서있다. 이것을 변화라고 부를지 아니면 변질이라고 할지는 감상자의 몫이다. 어쨌든 친구의 집을 전전하며 홈레코딩으로 만들어진 전작이 자의든 타의든 로-파이 음악의 이정표가 되었지만, [XO]부터 시작된 메이저 드림웍스와의 동거는 애비로드 스튜디오까지 대여해주면서 레코딩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환경과 조건에 타협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새 앨범은 화려해지고 다양해졌다. 더 이상 “Between The Bars”와 같이 ‘처량’한 곡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번 앨범에도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I Better Be Quiet Now”를, 그러나 ‘당차게’ 부른다. 트로트의 왕자도 놀랄 만한 ‘꺾기’가 선보이는 “Somebody That I Used To Know”, 일렉트릭 기타가 은밀히 쓰인 “LA” 그리고 첫 번째 싱글 곡이었던 “Son Of Sam”은 포크라는 카테고리를 거부하는 힘과 긴장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의 정수는 “Everything Means Nothing To Me”에 있다. 피아노 솔로로 시작하여 한음 한음이 덧붙여지고, 순간적인 급상승과 음향의 고조는 (다소 계획적인) 파장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데 그동안 엘리엇 스미스는 주술에 걸린 듯 ‘everything means…’를 반복할 뿐이다. 이는 감상자에게 환각과 최면, 몽환을 짧고 굵게 전달하는데 엘리엇 스미스의 새로운 사운드라 칭할 만하다. 이 곡으로 엘리엇 스미스는 비틀즈 사운드의 재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마지막 곡 “Bye”에서 다시 한번 유약하게 강조된다. 이제 엘리엇 스미스는 로-파이, 인디 팝, 포크, 리리시즘 따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드디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된 것일까? 그러나 그 과정마저 노출되어 어색함을 보여주는 이번 앨범은 제목처럼 8가지 상(象)을 제시하는 데 머무를 뿐이다. 이를 통하여 느껴지는 부족함은 어디에서 찾을까. 아마도 다음 앨범이라면 보다 확실하게 변모한 음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다음 앨범을 기다리게 되는데, 이는 [Figure 8]의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변화와 도약의 전초라고 생각하자. 20000526 | 신주희 zoohere@hanmail.net 6/10 수록곡 1. Son Of Sam 2. Somebody That I Used To Know 3. Junk Bond Trader 4. Everything Reminds Me Of Her 5. Everything Means Nothing To Me 6. LA 7. In The Lost And Found 8. Stupidity Tries 9. Easy Way Out 10. Wouldn’t Mama Be Proud? 11. Color Bars 12. Happiness 13. Pretty Mary K 14. I Better Be Quiet Now 15. Can’t Make A Sound 16. Bye 17. Because 관련 글 엘리엇 스미스와 빌리 브랙 뉴욕 공연 후기 vol.2/no.8 [20000416] 벨 앤 세바스찬 vs 엘리엇 스미쓰 – vol.1/no.6 [19991101] 관련 영상 “Son Of Sam” 관련 사이트 엘리엇 스미스 홈페이지 http://www.elliottsmith.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