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727010918-kimcg김창기 – 하강의 미학 – 모닝힐, 2000

 

 

한편의 모노드라마 같은 서정의 세계

김창기는 30대 중후반의 정신과 의사다. ‘가수’는 부업이고 솔로 앨범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서 30대 후반의 나이대의 사람이 아직 음악을 하고 있다면 세상살이에 적당히 타협(혹은 타락)하여 돈되는 일을 하고 있던가, 장인정신(혹은 직업정신)에 입각하여 무언가(돈 안되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추구하던가 둘 중 하나일텐데, 김창기는 어느 쪽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아는 이야기겠지만 김창기는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혜화동”, “널 사랑하겠어”같은 ‘히트곡'(혹은 ‘컬트곡’)을 만들고 불렀던 인물이다. “기다려줘”(김광석), “사랑의 썰물”(임지훈) 등을 다른 가수에게 준 작곡가이기도 하다. ‘포크 록 보컬 그룹’ 동물원에서 활동할 때의 이야기다. 수줍은 소년 같은 그는 그때도 ‘프로페셔널’ 같지 않았다. 한 가지만 빼고. 그건 다름 아니라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데 가장 중요한 ‘작사·작곡’의 재능이다.

그의 작사의 비범함은 일상에서 느끼는 평범한 감정을 어렵지 않은 언어로 표현하는 데 있다. 한국 대중가요의 가사의 특징이 ‘서사(敍事) 없는 서정(敍情)’이라면 김창기는 서사와 서정 모두에 강하고 두 가지가 분리되지도 않는다. 이번 음반에서도 그의 재능은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심정을 노래한 “아이야 일어나”, 형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형과 나”에서 빛을 발한다. 고(故) 김광석의 의문사(?)를 다룬 “나에게 남겨진 너의 의미”도 충격적 사건과 지루한 일상을 대조시키고 융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작곡은? 그가 만든 멜로디는 (수직적으로는) 음정의 상승과 하강이 심하고 (수평적으로는) 당김음(syncopation)을 잘 구사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이 점도 이제는 참신하지 않을까? 하지만 타이틀곡 “하강의 미학”, “나의 미친 사랑을”,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이 곡은 [우리노래 전시회 4]라는 음반에 수록된 오래된 곡이다)에서의 멜로디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언젠가 들어본 듯 친숙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느낌 말이다. 우연찮게도 이 곡들은 서사보다는 서정에 치우친 곡들인데, 그러면서도 값싼 감정과잉에 빠지지 않으면서 단아함을 유지하고 있다.

단아함은 음반에 담긴 사운드의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두 곡을 제외하면 템포는 느리고, 리듬은 절제되어 있고, 멜로디는 부드럽다. 음반의 음악적 컨셉트를 이끄는 악기는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다. 그 결과 음반은 마치 한편의 모노드라마의 실내악같이 만들어졌다. 조금 더 투박하고 허전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그건 음반의 프로듀스를 직접 하지 않는 이상 불가항력인가보다. 본인도 “단순하게 가자, 어디 빠진 거처럼 만들자고 했어요… 완성하고 보니 더 텅 비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한겨레], 2000.6.7)라고 말했다. 이 점은 “나의 삶은 아주 깔끔히 보장되고”라는 가사의 한 토막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겠지만 왠지 무관하지도 않아 보인다. ‘깔끔한 보장’없이 구질구질하게 사는 사람들이 공감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보장마저도 내면의 복잡한 심사와 (대인) 관계의 힘겨움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아련함, 돌아갈 수 없음, 아무 것도 아님, 다시 제자리. 20000630 | 신현준 homey@orgio.net

7/10

수록곡
1. 형과 나
2. 넌 아름다워
3. 나에게 남겨진 너의 의미
4. 상처
5.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6. 이 순간처럼
7. 아이야 일어나
8. 저문 길을 걸으며(내 자신을 속이고)
9. 본디오 빌라도의 시간
10. 나의 미친 사랑을
11. 미녀와 야수
12. 하강의 미학

관련 사이트
김창기 홈페이지
http://changgi.morninghil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