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ead O’ Connor – Faith And Courage – Atlantic, 2000 성녀로 돌아온 시니어드 오코너 그녀는 여전히 대머리였다. 지난 1994년 [Universal Mother] 이후 6년만에 5집 [Faith and Courage]를 들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그녀는 여전히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그 큰 두 눈에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하고 무표정하게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간 무얼 하고 있었을까? TV 쇼 프로그램에 나와 교황의 사진을 찢고 그래미상 수상을 거부하며 가는 곳마다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그녀가 1997년 베스트앨범을 내고 이젠 두 아이의 어머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조용하게 지내려나 싶더니 다시 심기일전, 머리를 깎고 쇼 비즈니스계로 뛰어들었다. 이제 무슨 화제를 불러오려나. 미국의 저명한 레즈비언 잡지 최근호의 인터뷰를 통해 ‘커밍아웃’한 일 말고는 아직은 조용한 편이다. 이젠 스스로 자중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녀의 지난 모습을 잠시 돌이켜 보자. 마돈나가 한창 때던 1987년 그녀는 데뷔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를 발표하면서 아일랜드 특유의 신비스런 분위기에 죽음, 고통, 억압과 시기의 감정들을 노래하였다. 독특한 외모와 특유의 가늘게 떨리면서도 순간 폭발하는 목소리로 당시 예쁜 이미지로만 포장되던 여성 팝 가수의 전형을 파괴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그녀였다. 1990년 2집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의 “Nothing Compares 2U”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그녀는 동시에 그 이후 갖가지 돌발행동으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외부에서의 이런 시끄러움은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실, 실연, 인종차별을 노래하면서 자신의 감정에 빠져 있다가도 곧 냉정해지거나 감상적이었다가 공격적이 되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1992년 [Am I Not Your Girl]에서는 스탠다드 팝의 고전들을 다시 부르면서 잠시 숨을 고른 후 1994년 [Universal Mother]를 통해 ‘모성’으로의 새로운 방향전환을 시도했다. 그 후 6년여의 세월은 그녀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사실 공백기간 중간인 1997년에 발표된 EP [Gospel Oak]에 변화의 조짐들이 엿보였다. 여기서 그녀는 내면의 외침이나 분노의 표출에서 멀어져가고 자기 내면에 안주하며 우리에게 편안한 자장가(?)를 들려주었다. 세월의 힘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평화롭게 만들었을까?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모성의 힘을 넘어선 그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 아틀랜틱 레코드로 옮겨와 만든 첫 앨범이자 그녀의 통산 다섯 번째 앨범인 [Faith and Courage]에서는 그 정체를 드러내 보여준다. 작년 그녀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라틴 Tridentine 교회(이 교회는 로마 카톨릭의 한 분파이다)의 신부로 서품받았다. 아울러 예전 교황의 사진을 찢어버린 사건에 대해서도 사죄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에서 그녀의 태도는 고백적이고 정말 교화된 듯한 모습이다(앨범 커버에서 그녀의 고개 숙인 모습은 왠지 다소곳해 보인다). 타이틀곡 “No Man’s Woman”은 흥겨운 록 비트의 찬송가(?)이다. 여기서 그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남자에게 구속받는 건 피곤하고 두려운 것이라도 한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 두렵지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있어서 그 남자는 영혼(spirit)이라 고백하고 있다. 시니어드 오코너는 더 이상 범인(man)의 여자가 아니다. 이제 신(God)의 여인이 되어버렸다. 전통적인 아일랜드 휘슬을 가미시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The Lamb’s Book of Life”에서 신부(priest)로서의 그녀의 신에 대한 찬양은 고조된다. “Everything in this world would be okay, if people just believed enough in God to pray.” 그리고 그 동안 자신의 행동에 대한 참회 또한 잊지 않았다. “I know I have done many things to give you a reason not to listen to me… Words can’t express how sorry I am if I ever caused pain to everybody.” 이외에도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토로한 “Daddy, I’m Fine”, 진정한 자아의 발견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는 “The Healing Room”, 사랑하는 이를 향한 헌신을 노래한 “Till I Whisper U something” 등 이전 앨범들에서 들려줬던 분노와 갈망, 사회 비판적인 의식은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4집 [Universal Mother]에서 보여줬던 모성이라는 새로운 여성성으로서의 자기 찾음이 이번 앨범을 통해 종교에 의지한 그녀의 여성성으로 정착되는 듯하다. 이미 전작들에서 보여졌던 아일랜드 전통 음악에서 펑크, 힙합까지 아우르는 그녀의 폭넓은 장르 소화력은 이번 앨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더욱이 이번 앨범에서는 앰비언트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힙합 그룹 퓨지스(Fugees)의 위클레프 진(Wyclef Jean), 유리드믹스(Eurythmics)의 데이빗 스튜어트(Dave Stewart), 덥 사운드의 두 대가인 애드리언 셔우드(Adrian Sherwood)와 스킵 맥도날드(Skip McDonald) 등 유명 프로듀서들이 대거 참여하여 각양각색의 곡을 선사한다. 멜로딕한 팝 발라드 “Dancing Lesson”, 실험적인 앰비언트가 가미된 “The Healing Room”과 “Hold Back the Night”에서부터 아일랜드 전통 민요를 편곡한 “Kyrie Eleison”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팝 앨범이다. 그러나 과거 그녀의 가시돋힌 곡이나 교황의 사진을 찢어버리던 도도한 모습을 기대하던 분들은 이전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이제 성녀로 돌아온 그녀의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범 뒷면 커버를 보면 전면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모습과는 달리 여전히 무덤덤하게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다. 그녀는 그렇게 쉽게 단정지어 버릴 수 없는 가수이다. 그녀가 찾고자 하는 여성으로서의 진정한 자기모습은 끝없이 지속될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20000629 | 김승익 holy3j@hotmail.com 6/10 수록곡 1. The Healing Room 2. No Man’s Woman 3. Jealous 4. Dancing Lessons 5. Daddy I’m Fine 6. ‘Til I Whisper U Something 7. Hold Back the Night 8. What Doesn’t Belong to Me 9. The State I’m In 10. The Lamb’s Book of Life 11. If U Ever 12. Emma’s Song 13. Kyrie Eleison 관련 사이트 시니어드 오코너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sinead-ocon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