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 Masterpiece – 신세계, 2000 ‘복각’이 한자어로 ‘復刻’이 맞나? 그렇다면 ‘새겨진 걸 복구한다’는 뜻일 것이다. 좀 구체적으로는 오래된 마스터테이프를 ‘리마스터링(remastering)’하여 컴팩트 디스크로 재발매한다는 뜻이다. 한대수의 복각 음반이 ‘또’ 나왔다. 작년에 2집을 복각한데 이어 이번에는 1집 [멀고 먼 길]과 3집 [무한대]가 더블 CD로 발매되었다. 두 음반 사이의 시간의 간격도 꽤 크다. 1집이 1974년, 3집이 1989년에 나왔으니까 15년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이번 발매된 디스크는 ‘판매금지’라는 불행한 기록을 지워버리면서 시간의 간격을 봉합하는 듯하다. 이 ‘걸작’은 하드 커버 장정을 한 문고본 같이 생겼고, 내용물도 한대수 본인과 지인들의 글 및 사진이 풍성하게, 그렇지만 화려한 치장 없이 담겨 있다. 자기가 자기 작품을 ‘걸작’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말고는 각자의 몫이지만. 음악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멀고 먼 길]에 대해 별도의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목구멍에 가래가 그득이 담긴 듯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물 좀 주소”나 듣는 이를 어디론가 인도하는 듯한 “행복의 나라로”를 ‘싱얼롱’으로 불러보았던 사람에게는 별다른 말이 필요 없을 듯하다. 통기타의 ‘쓰리 핑거 주법’과 물 흐르는 듯한 노래소리가 ‘싸한’ 기분을 던지는 “하룻밤”, 걸쭉하게 술을 마시고 밤거리에서 휘청대는 “하루 아침” 같은 곡은 당대의 보편적 취향에 부합함과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는 힘마저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히피라고 생각한다”는 본인의 주장처럼 그의 유토피아주의(혹은 ‘나그네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곡인 “인상”이나 “바람과 나”는 ‘컬트’의 대상일 것이다. 이런 고전들은 당대에 들었던 이에게는 ‘어떤 아우라’를, 그걸 뒤늦게 섬기려는 사람에게는 ‘어떤 강박감’을 던져준다. 어쨌든 한대수의 매력은 ‘미국화된 경상도 사투리’의 보컬과 ‘마구잡이 주법’으로 연주하는 기타 소리다. 코드 잡고 아르페지오나 스트로킹으로 후리는 상투적 통기타 소리 말고 나름대로 멜로디로 연주하는 ‘기타 교재에 없는’ 주법 말이다. 세션이 누군지는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1974년의 음반이 ‘군사정권의 탄압’이라는 정치사와 밀접하다면, 1989년의 음반은 부인과의 이별이라는 (그의) 개인사와 밀접해 보인다. 직접적으로 그의 경험을 노래한 “One Day”와 “나 혼자”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음반이 혼돈스럽고 가라앉은 분위기다(두 곡은 같은 곡의 상이한 가사 버전이다). 이 곡들 말고도 영어 가사와 한글 가사가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는 것도 혼돈스러움을 더한다. 록 밴드 포맷의 세션으로 참여한 인물들(손무현, 김민기 등)의 연주는 음반의 속지를 쓴 인물 같은 ‘특정한 취향’에는 부합할지 몰라도 ‘한대수의 음악’과는 어색하게 어울려 있다. 예전 곡을 새롭게 레코딩한 “하루 아침”과 “고무신”은 1집과 2집에 실렸던 오리지널 레코딩보다 정제된 맛이 덜하고, “마지막 꿈”, “Till That Day”, “과부타령” 등 1970년대에 만들어 놓은 곡들과 나머지 새로 만든 곡들 사이의 편차도 적절하게 조정되지 않아 보인다. 마지막 트랙인 “무한대”의 실험적 연주와 보너스로 실린 세 개의 신곡(당시로서는)이 아쉬움을 달래주기는 하지만. 많은 이에게 한대수는 전설이다. 그런 한대수가 이제 가끔씩 우리들의 ‘일상’에 등장한다. 몇 년 전부터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나온 적도 있고, 양희은의 콘서트도 함께 했다. 이번 음반에 이어 4, 5, 6집도 발매될 예정이고, 올 여름 속초에서 열리는 ‘제 1회 대한민국 록 페스티벌’에도 나온다고 한다. 만약 그가 밥 딜런(Bob Dylan)처럼 ‘가만히 있어도 그냥 들어오는 저작권료를 어떻게 관리할까 고민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일상으로의 출몰은 반갑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은 그동안 부당하게 억압받고 무시당한 아티스트에게는 결례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든다.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들 중 ‘부당하게 억압받고 무시당하며’ 살아오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사람들 모두에게 ‘한대수 재평가’가 힘과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만드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조금 헷갈린다. 그냥 통기타 치면서 노래나 불러보자. “껃 꺼덥는 바람…” 아직도 그때의 자유의 공기가 조금은 느껴진다. 이러기도 쉬운 건 아니다. 20000610 | 신현준 homey@orgio.net 7/10 수록곡 Disc 1 1. 물 좀 주소 2. 하룻밤 3. 바람과 나 4. 잘가세 5. 옥의 슬픔 6. 행복의 나라 7. 인상 8. 사랑인지? 9. 하루아침 Disc 2 1. 하루아침 2. ONE DAY 3. 마지막 꿈 4. 나 혼자 5. 또 가야지 6. `TILL THAT DAY 7. 과부타령 8. IF YOU WANT ME TO 9. 고무신 10. 무한대 11. NO RELIGION 12. SPARE PARTS 13. AIDS SONG 14. 희망가 관련 사이트 한대수 공식 홈페이지 – 행복의 나라 http://hahndaesoo.co.kr/ 한대수의 소개, 가사, 사진, 음악, 한대수가 직접 쓴 글이 있다. 온라인으로 음반을 구매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