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독맨션 – Debut EP – Tubeamp/2000 물론 지금이야 한물 갔다지만 7,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학가요제’의 인기와 그 위상이란 실로 엄청났었다. 가수가 되기 위해 대학을 가는 웃지 못할 일이 실제로 벌어졌고, 입상만 한다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이한철 역시 그런 대학가요제 출신이고 게다가 대상 수상자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의 앞으로의 행보는 정해진 듯 보였다.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자라는 감투를 적절히 이용한 기획사와 방송사 간의 협력(?)에 의한 신데렐라 스토리… 그리고 가끔씩 아침 토크쇼에 나와서 수다를 떨어주는 그저 그런 연예인. 하지만 이한철은 조금 달랐다. 대상 수상곡이었던 “껍질을 깨고”부터가 당시 주류를 이루던 그룹 사운드나 한창 떠오르던 랩 댄스 형식을 벗어나서 홀로 기타를 들고 로큰롤을 노래한 곡이었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1, 2집은 비록 시장에서는 참패를 했지만 실제로는 만만찮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고, 얼마 전 지퍼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음반 역시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음반이었다. 지금 소개하는 불독맨션은 바로 이한철이 새로 결성한 밴드다. 얼핏 보면 꽤 심각한 뜻이 있을 것 같지만 본인은 그냥 ‘불독이 사는 맨션’ 정도의 뜻이라고 한다. 지퍼 시절 음반에 밴드버전으로 실린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에서 같이 연주했던 서창석(기타), 이한주(베이스), 조정범(드럼)과 함께 만든 ‘밴드’가 바로 불독맨션이다. 사실 이한철은 단 한번도 밴드 활동을 한 적이 없다. 계속 솔로 활동을 해왔었고 지퍼 또한 밴드가 아닌 듀오였으니까. 그렇다면 밴드로서 그의 음악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결과물은 훵키한 사운드이다. “Fever”와 “괜찮아!”는 이런 훵키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곡이다. 밴드의 음악적 색깔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곡이기도 한 “Fever”는 키보드 세션으로 참가한 이규호의 연주로 사운드가 더욱 다채롭고 유려하다. “아침에 문득”은 보사노바 리듬을 따온 라틴 풍의 노래로 얼핏 보면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앨범을 풍성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한철이 직접 연주한 카주(Kazoo) 소리도 매력적이다. “99”는 이한철의 마음을 표현한 가사가 인상적인 느린 템포의 발라드 넘버이고, “피터팬”은 현재 이한철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델리 스파이스의 분위기와 이한철 고유의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모던 록 풍의 흥겹고 신나는 곡이다. 보너스 트랙으로는 첫 곡 “Fever”가 지퍼의 다른 멤버였던 장기영(DJ ‘Tama’)에 의해 리믹스되어 있다. 아무래도 신인 밴드라 할 수 있는 불독맨션이 매체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요인은 이한철이 새로 결성한 그룹이라는 프리미엄에 있다. 보통 ‘이한철과 불독맨션’이라는 말로 밴드가 소개되어지는 것을 봐도 그렇다. 물론 홍보효과를 노린 의도적 장치겠지만, 언젠가 그 꼬리표가 떼어지는 순간 진정한 밴드로서 거듭날 것이다. 이한철 개인으로 보자면 이 앨범은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한 뮤지션으로서의, 또 리아나 이규호 등 음반에 참여한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과감히 접고 다시 시작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의 새로운 시작에 좋은 결실이 있길 바란다. (한편 이 앨범은 튜브앰프(Tubeamp)라는 레이블에서 발매되었다. 한 통신사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이한철의 팬클럽인 진공관 앰프의 이름이자 이들이 만든 독자적인 레이블 이름이라고 한다.) 20000615 | 구세준 magneticfields@hanmail.net 7/10 수록곡 1. Fever 2. 괜찮아! 3. 피터팬 4. 99 5. 아침에 문득 6. Fever (dj`tama`-Vocal Dud Club Mix) 관련 사이트 불독맨션 홈페이지 http://www.bulldogmans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