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ous Artists – Storytellers – Interscope, 2000 자선 컴필레이션 음반의 결정판 시작은 의외로 데이빗 보위(David Bowie)다. 1983년도 작 [Let’s Dance]의 수록곡 “China Girl”이 낯선 피아노 인트로로 앨범의 문을 연다. 그러나 낯설음은 잠시, 1분도 지나지 않아 데이빗 보위만의 아우라를 드러낸다. 마치 이 앨범의 성격을 시작부터 보여주는 것 같다. 기존의 곡에 대한 낯선 접근으로 시작하지만 익숙한 결말로 이어지는… 그것은 새로운 실험을 하기엔 부담이 큰 메이저 채널 및 음반회사의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스티비 닉스(Stevie Nicks)와, 크리시 하인드(Chrisse Hynde)의 프리텐더스(The Pretenders)의 음들은 노가수의 내공이 깃든 인생의 결들을 음산하게 전해준다. MTV와 함께 어깨를 겨루는 유일한(?) 음악채널인 VH1이 성장한 요인은 10대 위주의 MTV와는 달리 그 윗세대를 겨냥한 타겟층과 [Diva’s Live], [storytellers] 같은 간판 프로그램의 공이 컸다. 국내에 먼저 알려진 [Diva’s Live]는 미국 공립학교에 재학 중인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음악교육 사업을 지원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공익적 프로그램이지만, 최근 ‘우먼파워’로 불리는 트렌드를 촉진시킨 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런 VH1이 의욕적으로 다시 내놓은 아이템이 바로 [storytellers]다. MTV의 [mtv Unplugged]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컨트리나 포크, 블루스 등 소외되어 왔던 백인 취향의 음악들을 주로 다룬다는 점이나 왕년에 잘나가던 스타들을 모신다는 점, 반드시 어쿠스틱 공연만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 등의 차별화에, ‘City of Hope’라는 소아종양, 후천성 면역결핍증 치료기금 마련 단체의 지원이라는 공익성도 놓치지 않고 있다. VH1의 목적이 무엇이든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선도 할 수 있다면 굳이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Storytellers’는 ‘Every Song Has A Story’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앨범 부클릿엔 곡마다 사연이 함께 실려 있다. 백인 취향이라는 말이 무섭게 카운팅 크로우즈(Counting Crows)와 데이브 매튜스(Dave Matthews)가 이어진다. 늘 느끼는 거지만 루츠 록(Roots Rock)은 그 음악성에 비해 국내에서 터무니없이 소외 받아온 장르이다. 어쿠스틱 라이브를 표방하는 이 앨범에서 이들의 음악이 빛을 발하는 건 예정된 사실이다. 애덤 듀리츠(Adam Durits)의 걸쭉한 보컬이 우리나라 록팬들에게 호소하지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늘 의문이다. 이어지는 쥬얼(Jewel)과 리사 롭(Lisa Loeb). 성별에 대한 적절한 배려이면서 앨범 감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리사 롭이 자신의 밴드 없이 혼자 노래하는 ‘Stay’는 영화 [Reality Bites]의 수록곡이지만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다른 느낌을 준다. 존 포퍼(John Popper)? 유일하게 낯선 이름이다 했더니 너무나 낯익은 하모니카 음색이 들린다. 아! 블루스 트래블러(Blues Traveler)였구나. 리 오스카의 편안함이나, 스티비 원더의 그루브와는 다른 원초적인 느낌의 하모니카는 깊은 정서적 반향을 준다. 이어, 안 그래도 높은 이 앨범의 평균 연령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의 “Mexico”가 흐른다. 자칫 특징없이 지나치기 쉽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당기는 매력이 있다. 음, 역시 노장은 아름답다. 셰릴 크로우(Sheryl Crow), 유리드믹스(Eurythmics), 나탈리 머천트(Natalie Merchant)는 우먼파워라는 최근 트렌드의 수혜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원류를 보여주는 듯한 앨범의 하이라이트이다. 셰릴 크로우의 “Strong Enough”는 스티비 닉스의 저음과 어울려 일반적인 화음과는 다른 조화로움을 느끼게 하는 곡이며, 데이브 스튜어트(Dave Stewart)의 어쿠스틱 기타에 덮인 애니 레녹스(Annie Lennox)의 보컬로 듣는 어쿠스틱 버전의 “Here Comes The Rain Again”은 앨범의 백미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나탈리 머천트의 “Carnival”도 앨범에 수록된 곡과 달리 거친 느낌을 준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선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것을 하나의 트렌드나 상업적 전략으로 바라보는 의심도 있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이런 자선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3.6초마다 한 생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현실 속에서 헝거사이트(www.hungersite.com: 사이트에 들른 사람이 다운로드버튼을 누를 때마다 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은 무료로 1과 1/4컵의 곡식을 받게 되며, 그 비용은 광고를 본 대가로 광고회사가 지급한다고 한다) 같은 사이트가 주는 변화의 가능성을 폄하하긴 힘들다. 비록 이런 일들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늦추거나 가로막는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인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 앨범도 막바지에 이른다. 존 맬런캠프(John Mellencamp)의 “Jack & Diane”은 Moe Z.M.D의 랩이 더해져 서던 랩(?)이라 부를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미국 시장에서의 지명도에 비한다면 의외의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의 “Just a Memory”와 ‘국민’ 밴드 비지스(Bee Gees)의 “How Deep Is Your Love”는 앨범의 전체적인 느낌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끝내준다. 전체적으로 무난하면서도 오래오래 곁에 두고 있을 만한 따뜻한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상업적인 컨셉의 컴필레이션 음반이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사줄 만하지 않을까. 물론 필자처럼 은밀히 구린 음악들을 들으며 추억에 젖는 사람이 아니라면 피할 수도 있는 앨범이다. 20000713 | 박정용 jypark@email.lycos.co.kr 7/10 수록곡 1. China Girl – David Bowie 2. Edge Of Seventeen – Stevie Nicks 3. Back On The Chain Gang – The Pretenders 4. Rain King – Counting Crows 5. Crash – Dave Matthews (featuring Tim Reynolds) 6. Who Will Save Your Soul – Jewel 7. Stay – Lisa Loeb 8. Regarding Steven – John Popper 9. Mexico – James Taylor 10. Strong Enough – Sheryl Crow (featuring Stevie Nicks) 11. Here Comes The Rain Again – Eurythmics 12. Carnival – Natalie Merchant 13. Jack & Diane – John Mellencamp 14. Just A Memory – Elvis Costello 15. How Deep Is Your Love – Bee Ge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