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고 라운드 – 메리 고 라운드 – 카바레, 2000 첨단을 슬쩍 피하는, 성인들을 위한 동요 메리 고 라운드의 음악은 ‘심심한’ 음악이다. ‘전기 기타가 있는 4인조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으로는 가장 심심하고 ‘재미없는’ 음악일 것이다. 일단 템포가 느리다. 그렇다고 이른바 ‘슬로코어(slo-core)’처럼 기타 이펙트를 동원하여 노이즈로 후려대는 일도 거의 없다(플랜저로 생각되는 이펙트 사운드가 귀에 들어올 즈음이면 열한 번째 트랙 “복화술”을 지나게 된다). 업템포의 곡이 몇 개(“랄랄라”, “톰”, “로치”) 있지만 나머지는 보통 이하고 템포가 느릴수록 트랙의 연주 시간도 길어진다. ‘신나는’ 음악을 기대한다면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코드 진행은 통기타만 조금 쳐본 사람이라도 쉽게 예측할 수 있고, 그 위에서 기타와 키보드의 라인이 밋밋하게 전개된다. 음색도 ‘구닥다리’풍이다. 특히 키보드 소리는 요즘 뜨고 있다는 ‘트로트 메들리’를 연상시킬 때마저 있다. 조금 뒤에서 은은하게 울려나오면 더 좋았을 거라고 바라게 되지만 믹싱을 맡은 이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베이스와 드럼은 ‘그게 있었던가’라고 되묻게 된다(물론 다시 들어보면 이 음반에서 베이스와 드럼은 탄탄하게 음악을 지탱해 주고 있다). 교대로(혹은 함께) 보컬을 맡은 김민규와 이영우는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목소리 그대로 노래한다. 멜로디 라인은 음폭도 크지 않고 박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하지도 않다. 게다가 히트를 염두에 둔 곡이라면 있기 마련인 따라 부르기 좋은 훅(hook, 업계 용어로는 ‘싸비’)도 별로 없다. 마치 동요 같다. 성인들을 위한 동요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1732”, “주사위”, “스노우맨” 등 세 박자의 곡이 많다는 점이 동요 같다는 느낌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음악을 듣는 요령은 사운드에 마음먹고 몰입하는 게 아니라, 적당한 볼륨으로 틀어놓고 ‘배경음악’처럼 이생각 저생각 하면서 몸과 사운드 사이에 소통하는 것이다. 공간은 도시의 주택가의 방이 좋겠고, 시간대는 뉘엿뉘엿 지는 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울 때가 어울릴 듯하다. 그럴 때 묘한 감정이 밀려올 수 있다. 저자들이 “질식한 오후의 휴식 / 정지된 화면의 소음”(“울어도 좋습니까”)라고 표현한 감정이. 처지가 백수라면 더 제격이겠다. 곧 정신 없이 바쁘게 일해야 할 처지라면 혼동스러울 것 같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예전 같으면) 포크 팝(folk pop), (요즘이라면) 챔버 팝(chamber pop)이라고 부를 것 같다. 소속 레이블의 홍보 문구는 “영국의 B모 밴드나 미국의 가수 A모씨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던가 이 밴드의 성향이 포크 팝이라고 어떤 배경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B모 밴드도 그렇지만, 내가 듣기에는 김창기와 장필순이 고등학교때 만나서 만든 데모 테이프 같다. 이 말을 ‘엉성하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대중 음악의 보통 팬들일 것이고, 풋풋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디 음악의 컬트 팬일 것이다. 인디 음악이란 ‘주류와 맞서 싸우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주류를 슬쩍 피하는 음악’에 가깝다. 캬바레 레이블은 이런 태도에 가장 충실한 레이블인 것만은 분명하다. 20000715 | 신현준 homey@orgio.net 6/10 수록곡 1. 산책 2. 1732 3. 주사위 4. 아침그늘 5. 울어도 좋습니까 6. 랄랄라 7. Tom 8. 체리필드 9. 오늘의 운세 10. 로치 11. 복화술 12. 취중세계 13. 달빛 14. 스노우맨 관련 사이트 카바레 레이블의 홈페이지 http://www.cava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