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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새벽 – 보옴이 오면 – Pastel Music, 2006

 

 

봄이 와도.

지난 2005년에 나온 2개의 EP 합본 [Submarine Sickness/Waveless]를 들은 사람이라면, 이번 앨범의 방향을 어느 정도 짐작했을 것이다. 이번 앨범 [보옴이 오면](2007)은 푸른새벽이라는 컬트적 이미지를 만들어주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첫 번째 앨범과 다르다. 훅이 있지만 많이 비어있던 소박한 앨범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막 20대가 된 듯한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는 지친 한숨으로 변했다. 다락방에서 울리는 듯한 우울한 소리는 막차가 지나간 지하철역에서 울리는 적막한 소리로 변했다. 또 음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소박한 기타는 차가운 전자음으로 변했다.

루핑되는 드럼 위의 피아노, 멀리서 들리는 패드. 그동안의 푸른새벽을 아는 사람이 앨범의 첫 곡 “Intro”를 듣게 되면 놀랄 것이다. 지난 EP [Waveless]의 첫 번째 곡 “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크게 놀라진 않겠지만. 앨범의 첫 번째 곡으로 보여준 것처럼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지난 앨범들에 비해 일렉트로닉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변화는 지난번 EP 합본에서 보여준 변화보다 성공적이다. 특히 로파이한 질감의 드럼으로 시작되는 “사랑”을 들어보면 이들의 변화가 성공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첫 번째 앨범에서 들려준 텅 빈 느낌은 효과적이었으나 취향에 따라 ‘파는 앨범 같지 않다’ 혹은 ‘지루하다’라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앨범은 지난 앨범들에 비해 보다 폭 넓게 어필할 수 있는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을 들으면 알 수 있듯 원숙함도 이번 앨범이 지난 앨범들과 다른 점이다. 황량하고 드라마틱한 이 곡은, 송라이팅도 훌륭하지만 보컬에서 그동안과는 다른 원숙함이 느껴진다. 그간 푸른새벽에서 한희정의 보컬은 단조로운 곡을 따라 보컬 또한 다소 단조롭게 들리곤 했다. 하지만 이 곡에서는 절제를 잃지 않으며 변화를 주는 보컬 덕분에 곡이 더 드라마틱하게 들린다. 제목은 다소 부담스럽지만 스트링과 브러쉬 드럼 때문에 고풍스럽게까지도 들리는 “우리의 대화는 섬과 섬 사이의 심해처럼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로 이루어지고 있었다”까지 듣게 되면, 그동안 푸른새벽에 대해 가졌던 안 좋은 의심(모 에디터의 말을 인용하자면 ‘여성 보컬의 개인적인 매력에 의존하려 한다는 혐의’)을 하던 사람도 밴드의 실력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앨범에서 원숙함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위에 언급한 “Intro”는 재미있지만 평소에 전자음악 좀 들어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전자음악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작업한 것 같은 느낌을 받기 쉽다. “사랑”의 경우는 드럼이 튄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셀프 프로듀싱을 탓하고 싶은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종종 들려주던 포스트록 실험을 보다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하루”는 “별의 목소리 #1, #2″에 비해 완성도가 올라간 듯하지만 아직도 약간은 진부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점들은 [보옴이 오면]이 푸른새벽의 마지막 앨범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면 더욱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이다.

[보옴이 오면]은 원숙한 느낌을 주지만 전체적으로 밴드의 지금까지의 시도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앨범은 아니다. 마지막 앨범으로서 분위기는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조금 더 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푸른새벽이란 밴드로는 더 못 만나더라도 솔로나 다른 프로젝트 등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20070318 | 고두익 drgothick@gmail.com

7/10

* 팬들을 위해 부클릿 뒤에 싸인을 남긴 것은 좋은데, 부클릿 안쪽에 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록곡
1. Intro
2. Undo
3. 사랑
4. 하루
5. 우리의 대화는 섬과 섬 사이의 심해처럼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6. 이별
7. 딩
8. Tabula Rasa
9. 오후가 지나는 거리
10. 명원
11. 보옴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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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우리의 대화는 섬과 섬 사이의 심해처럼 알 수 없는 짧은 단어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관련 사이트
푸른새벽 공식 사이트
http://www.bluedawn.er.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