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코너는 한국 대중음악 저널리즘과 비평, 연구의 거리를 줄여 각 분야의 생산적 관계를 도모하는 동시에, 음악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길 원하는 독자들에게 다양한 연구 저작들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 [weiv]

 

일반적으로 논문을 읽는 사람은 연구자와 부지런한 학생일 것 같은데, 관심이 있어도 접근이 어려웠던 분들께 이 연재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거나 재미있게 다가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내가 독자의 입장이라면 흥미를 가질 주제라 생각해 덥석 시작한다고는 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논문’이라는 것을 쉽게 풀어 쓰는게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 (게다가 남의 논문이기에 더더욱!) 그럼에도, 이 연재의 목표는 대중음악과 관련된 논문을 최대한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아이돌의 인기를 견인하는 큰 두 축인 리얼리티 쇼와 팬픽에 관한 논문으로 첫 회를 시작하려 한다. 이 주제를 소개하는 이유는 팬들마저 “팬픽으로도 논문을 쓸 수 있단 말인가?!”와 같은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팬픽의 특성상 팬덤 안에서조차 터부시 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팬픽의 내용보다는 아이돌을 생산-소비하는 팬덤에 관심이 있고, 같은 팬이라 하더라도 관심사에 따라 ‘누구는 알고 누구는 전혀 모르는’ 일이 일어나는 지점이므로, 팬픽은 아이돌 산업의 수면 밑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보는 편이다. 한편 드러내놓고 팬픽을 즐긴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과 달리, 리얼리티 쇼는 평범한 시청자들이 아이돌 팬이 되는 ‘입덕 계기’가 되기도 하고, 웬만한 아이돌 그룹이라면 한 번 이상 촬영한 경험도 있기 때문에 아이돌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점일 것이다.

 

1. 「아이돌 리얼리티 쇼를 통한 아이돌 그룹의 정체성 표상 방식」, 김수정·김수아, 『한국방송학보』, 제27권 제2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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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쇼에 관한 이 글은 2PM이 출연하는 M.net [와일드 바니]와 [2NE1 TV]를 텍스트 삼아 각 그룹의 젠더 정체성에 관해 프로그램이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논문에 따르면, 일반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평범한’ 모습을 보여 시청자와의 ‘친밀감’을 형성하려 한다면, 아이돌 리얼리티 쇼는 타 아이돌과의 차별점을 보여야 하며, 그 해법을 ‘캐릭터’의 창출에서 찾는다. [와일드 바니]는 제목부터 ‘짐승돌’과 ‘바니(토끼)’를 더해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는데, 프로그램 안의 미션과 자막에서도 기존 성적 위계를 뒤집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보인다. 동성애 코드와 복장 도착의 요소를 여성 관찰자 시선으로 보여주고, 출연진들의 수치심은 제작진이라는 권력을 가진 여성에 의해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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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바니]가 제작진의 적극적인 개입과 제작 현장 공개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했다면, [2NE1 TV]는 트루먼쇼와 같은 형식을 띤다. 2NE1 음악의 가사나 복장의 주된 소구 대상은 여성이며, 다재다능하며 당당한 ‘알파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카메라를 숙소와 차 안 등 멤버들의 동선에 따라 설치해놓고 관찰하며,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교차 편집이나 카메라와 대화하는 식의 ‘말 걸기’ 등을 시도해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2NE1 TV]는 무대와 휴식 공간, 이동하는 자동차 내부가 주요 무대이며 멤버들의 눈물이나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과 실천 등 일상의 요소들을 강조해 친밀감을 형성한다. 카메라는 무대 밖에서 눈물짓는 여린 소녀의 모습을 내비치고, 힘든 연습을 즐기는 태도를 보여주며 이 걸그룹에게 알파걸 이미지를 ‘다시’ 만든다. 한편 2PM은 미션을 통해 ‘일탈’과 ‘모자란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시한 짐승돌의 이미지를 견고하게 구축한다. 이처럼 기존 아이돌과의 차별된 모습(2PM)과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과 닮은 모습(2NE1)으로 각각의 그룹이 젠더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미디어 산업 내부에서 복잡화되는 성 정체성이 시청자에게 어필한다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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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할 지점도 있다. 논문에서는 [와일드 바니]를 주요 텍스트로 삼았지만, 2PM의 캐릭터 형성이나 정체성은 그전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MBC every1의 [아이돌 군단의 떴다! 그녀 시즌 3]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다. 또한 ‘캐릭터’가 금세 생긴 멤버는 방송에서 비중이 높아지며, 그렇지 않은 멤버는 분량이 줄어드는 등, 타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뿐만 아니라 동일한 그룹 내에서도 멤버 간의 차이가 생기는 것에 대해서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 더해서, 논문의 주장대로 그룹의 인기에 기여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복잡한 ‘성 정체성’에 기인한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수용자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꼼꼼한 텍스트 분석과 성적 정체성에 따라 각각의 프로그램을 분석한 시각은 이 논문의 장점이다.

 

2. 「온라인 팬픽에 관한 스토리 리텔링 연구」, 한혜원, 『인문콘텐츠』, 제27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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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을 스토리 리텔링의 예시로 분석한 이 논문은 팬픽을 ‘집합적 서사’로 정의하여 팬픽이 생산-소비-비평의 긴밀한 연계 구조가 있음을 밝히려 한다. 기존 인쇄문화와 달리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팬픽은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기 쉬운 구조에 있으며, 다른 팬들이 그에 대해 ‘다시’ 감상을 남기는 유기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스토리텔링은 서사(narrative)가 확장된 개념으로, 텍스트의 생성과 소비,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가리킨다. 스토리 리텔링은 ‘다시 말하기’로, 이야기를 소비한 수용자가 자신이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을 가리키며,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원본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 스토리 리텔링은 책, 이미지, 문자, 동영상 등 매체를 넘나들며 ‘다시 이야기’되기도 하는데, 이때 수용자의 기억(remember)과 이해(understand), 그리고 이를 연결해주는 컨텍스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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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의 경우는 아이돌 자체와 아이돌이 생산한 모든 것이 소재가 되며(기억), 그 소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신의 ‘이해’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방신기는 팬덤 규모가 매우 크고 팬픽이 다수 생산된 경우다. 이 논문에서는 동방신기의 5대 팬픽을 정리하는데, 그 중 4개의 팬픽을 쓴 ‘매니쉬’라는 필명 작가의 팬픽을 개연성, 관습성, 허구성으로 각각 분류하였다. 이 팬픽들의 모티브, 소재, 커플링은 모두 다른데, 팬픽 작가가 기존 문학의 작가와 달리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며 다작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리텔링’ 방식을 차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익숙한 장면 등을 차용해 수용자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매니쉬 본인이 팬픽 안에서 특정 대사를 통해 ‘드라마 같은’ 상황이 전개되는 부분을 지적한다. 이 논문은 팬픽이, 개체가 모여 통합체가 되는 ‘집합적 서사’의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면서 생산-소비-비평의 삼원 구조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논문 역시 생각할 지점이 있다. 이른바 ‘동방신기 5대 팬픽’은 몇 개의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정의하는 사람에 따라 매번 변하는데, 논문 안에서 예로 든 팬카페 운영자가 그 선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도 다소 의문이 든다. 팬픽의 관습성을 분석한 부분도 좀 더 자세했다면 이 하위문화를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 리텔링’이라는 개념을 팬픽에 적용한 것은 분명히 새로운 시도이며, 여러 컨텍스트 분석을 기반으로 관습성이 팬픽의 생산과 수용을 용이하게 한다는 결론은 아이돌 팬덤의 하위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 양인화 peachandcreams@gmail.com

 
note. 양인화는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음악과 음악 외적인 현상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