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위클리 웨이브는 십일(11), 언해피 서킷, 할로우 잰, 투하트의 새 앨범에 관한 코멘트다. | [weiv]
 

 

 

십일(11) | 11 | 2014.03.06
십일

미묘: 자잘한 질감이 흐르며 시작하는 첫 곡 “디어 메이”는 보컬과 함께 건반이 손을 떼는 순간 거의 온전히 노래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음반 소개에서 손쉽게 연상되는 필드레코딩-실험음악과 노래의 조합 같은 것은 사실 그 존재감이 강하지만은 않다. 이 음반의 편성과 곡 전개는 사실, 각 곡의 예쁜 멜로디가 환기하는 슈게이저-포스트록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정통적인 악기와 신스 뒤의 공간으로 존재하던 구체음들이 조심스러운 조력자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은, 노래를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생생하다. 결국 서로 다른 정체성의 사운드들이 노래의 형태 주위에 일리 있는 비율로 늘어서 있는 것이다. 수수한 보컬이 애매한 정도로 기교를 넣고 있는 것 또한 리얼한 매력을 준다. 8/10
블럭: 앨범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부분은 구성된 소리들, 그러니까 저마다 다른 악기, 목소리, 그 외의 다양한 실제 소리들 모두가 모난 구석이나 부자연스러움 없이 잘 엮여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성스레 가져온 발자국 소리나 빗방울 소리 등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그 비중에 있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대신 하나의 곡마다 추상적인 감정이나 상황들이 구체화되는 과정, 그리고 그걸 풀어내는 악기와 보컬의 멜로디는 그 자체로도 큰 감상 지점이 된다. 7/10
최성욱: 듣는 동안 이이언의 몇몇 곡들이 생각났다. 그와 비교하자면 십일(11)의 음악은 좀 더 노이지하고 앰비언트의 색채감이 짙다. 멜로디의 자연스러운 흐름보다는 사운드의 질감과 변화에 좀 더 많은 촉수를 뻗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청아한 목소리의 톤이 노래의 정서를 일관되게 잡아매고 있고, 음성을 강조할 때에는 전자음을 단아하고 간결하게 정렬시켜 놓는다. 좋은 솜씨다. 8/10

 

 

언해피 서킷 | Just Waiting for A Happy Ending | 3단레코드, 2014.03.14
언해피 서킷

블럭: 구체적으로나 직접적으로 턴테이블리즘을 표현하지는 않고, 표면적으로 전자음악의 모습을 많이 따라가는 편이다. LP가 주는 화이트 노이즈 대신 직접적으로 노이즈를 깔아놓은 뒤, 손으로 넣는 기교 대신 테이프스탑 등의 이펙트를 통해 다양한 효과를 가미하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미묘한 교차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소리들의 극대화된 왜곡, 통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곡 구조는 전자음악만이 지닐 수 있는 묘미를 전달하는 동시에 하나의 일관된 분위기를 조성한다. 시종일관 느린 BPM 속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트려놓은 킥과 스네어를 포함한 사운드 소스들, 그리고 익숙한 듯 불편한 소음들은 듣는 입장에서 자연스레 곡의 의도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이름마저 ‘불행한 전기회로(unhappy circuit)’라니, 감정과 이성, 인간과 기계 사이에 놓인 아이러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8/10
임승균: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글리치? 인스트루멘틀 힙합? 턴테이블리즘? 어쩌면 IDM?)는 잘 모르겠지만, 기존에(최소한, 국내에서) 시도되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벡터를 향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깔려 있는 노이즈 위로 디스토션이 걸려 잔뜩 왜곡된 비트가 종종 분절된 채 올려지고, 여기에 주로 건반 악기를 사용한 미니멀한 멜로디와 사운드 소스가 얹혀 우울함보다는 불편함에 가까운 ‘언해피’함을 전방위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로서의 측면에서도 그렇거니와, 앨범 전체적으로 일관된 사운드적 방향성을 긴장의 흩어짐 없이 끌고 간다는 측면에서도 좋은 작품. 8/10

 

 

할로우잰 | Day Off | 도프엔터테인먼트, 2014.03.10
할로우 잰

한명륜: 불교에서 사후세계 망자의 여행기간이 7의 배수로 간다는 점도 있지만, 이러한 주제의식이 표면에 그치지는 않는다. 가장 혁혁한 공은 기타에 돌리고 싶다. 아르페지오든 얼터네이트 스트로크든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장면들을 제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거친 사운드의 바람 속에서, 임환택의 보컬은 때로 지옥도(“Day 5: The Ugly Dancing of the Tramp Clown”)를 그리거나 혹은 윤회(“Day 6: Return to Universe”)를 상징하기도 한다. 좀 더 자세한 논의가 필요할 부분이겠지만, 무속이나 불교의 삶과 죽음을 보는 방식이 한국 익스트림 음악의 소중한 자산임을 알려주는 사례라 여겨진다. 8/10
이재훈: 결론만 말하자면 반갑다. 햇수로 8년 만인 이들의 새 앨범은 정말 반갑다. ‘죽음’을 콘셉트로 한 앨범은 기존 그들의 음악보다도 우울함이 배가되었고, 가사에서는 보컬 임환택의 언급(http://rowley.tistory.com/310)에서 알 수 있듯 주제에 대한 많은 고민이 드러난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그것은 앨범의 피로함에서 기인한다. 흐느끼듯 진행되는 단조로운 스크리밍 보컬과 두드러지는 포스트록적인 접근은 일종의 장르적 클리셰가 되어 이 피로감에 일조한다. 이들이 소위 ‘음악적 컨벤션’이라고 할 만한 부분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6/10

 

 

투하트 | 1st Mini Album | SM&울림, 2014.03.10
투하트

최성욱: 전반부의 세 곡은 훵키 버전의 샤이니, 인피니트를 연상케 하는 데 반해, 후반부 세 곡은 템포를 늦추고 좀 더 편안한 팝 음악을 들려준다. 힘을 뺀 후반부의 곡들에 좀 더 귀가 쏠리는데, 적당한 속도의 곡에서 보컬의 리드미컬함과 그루브가 좀 더 빛을 발한다. 어떤날의 곡을 재해석한 “출발”도 나쁘지 않다. 7/10
한명륜: 귀를 사로잡는 곡은 “Delicious”다. 과장된 쪼갬 없이 선 굵은 코드 스트로크로 만들어내는 기타의 호방한 리듬감이 일품이다. 중간중간의 조성 변화가 긴장감을 자아내지만, 청자가 낯설어하거나 헤맬 여지를 두지 않고 코러스로 돌아오는 과단성 있는 곡 구성력이 돋보인다. 다만 개별 요소와 전체 흐름이 조화를 이룬 것은 이 한 곡에 머무른다는 점이 아쉽다. “미로(迷路)”는 데이브 웨클 등과 함께한 기타 명인 오즈 노이(Oz Noy)가 참여했다는데, 쓰임새로 봐서는 ‘스펙’ 이상의 크레딧이라 보기 어렵다. 사족이지만, 그래도 이런 아쉬움을 충분히 상쇄할 만큼 “Delicious”는 맛깔스럽다.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