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반에 대해서는, 사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그다지 할 말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두리반에서 공연을 한 아티스트도 아니고, 두리반에서 생활했던 상근 활동가도 아니며, 자기가 살거나 일하던 터전이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 본 경험도 없으며, 이 모든 것이 아니라고 해서 두리반 자립음악회나 두리반에서 진행되는 활동들을 엄청나게 열심히 보러 다닌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두리반에 괜찮아 보이는 공연이 있으면 설렁설렁 보러 다니면서 두리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회가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는 정도였던, 그냥 한 사람의 평범한 리스너였다. 그렇지만 작년 5월 1일 뉴타운 컬쳐 파티 51+ 때 두리반을 처음 찾은 뒤로 나는 지극히 단순한, 그러나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계속 두리반에 관심을 가져 왔다. 두리반에서는 거의 언제나 죽여주는 밴드와 뮤지션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유였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인디’ 뮤지션이 아닌, 정말로 ‘존나 인디한’, 하지만 정말 멋진 뮤지션들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곳.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나에게 두리반을 계속해서 찾게 만들었다. 두리반이 건설사의 부당한 개발과 철거 압력에 맞서 투쟁하는 공간이라는 대의를 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두리반에 있는 순간 두리반은 그런 ‘대의’가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좋은 음악, 좋은 관객들, 그리고 투쟁의 대의가 함께 섞여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두리반을 승리로 이끈 진정한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이 글은 두리반에 대한 거창한 글이 아닌, 6월 25일에 열린 두리반에서의 마지막 공연에 대한 리뷰다. 하지만 동시에 두리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어설프게나마 정리해 보기 위한 글이기도 하다. 겨우 공연 리뷰 하나로 이 길고 의미 깊은 투쟁을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두리반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탠다는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6월 25일의 날씨는 흐렸고, 두리반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홍대입구역 4번 출구 옆에 서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수많은 사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51+ 때의 사진, 두리반의 일상을 담은 사진, 합의서 조인 이후 마포구청 앞에서 찍은 사진 등. 사진에 찍혀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밝은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두리반에서의 531일 간의 투쟁 동안 이들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런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승리를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에 젖은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실제로 이겼으니까. 3층 공연장에 들어서니 하헌진이 막 공연을 시작한 참이었다. 하헌진의 공연을 보고 있으면 그의 별명, ‘서울의 블루스맨’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블루스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컬, 그리고 때로는 맛깔나게, 때로는 화려한 슬라이드 주법을 뽐내는 기타가 어우러져 관객들을 블루스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특히 오늘 공연에서는 “술과 돈”이 돋보였는데, 후반부에 [개 EP]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기타 솔로를 선보였다. 좋은 공연을 볼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하헌진의 경우에도 라이브에서 레코딩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좋은 부분들이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블루스 뮤지션들이 그랬듯이. 다음으로 나온 밴드는 아홉번째. 펑크를 기본으로 깔고 5, 60년대 로큰롤부터 90년대 초기 이모(Emo)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3인조 팀이었다. 그러나 이런 ‘평론가적’인 설명은 이들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작 2번째 순서인데도 이들은 마치 마지막 순서라도 되는 양 관객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미친 듯이 뛰놀았다. 아홉번째의 보컬/기타 김한석은 공연 중간에 두리반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지난 51+ 때 지하실에 들이치는 물을 열심히 퍼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때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리고 그들 덕분에 지하실에서 정말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김한석은 그 외에도 공연 중간중간 두리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가 두리반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열심히 싸워 왔는지가 솔직하게 전해져 왔다. 그런 솔직함은 비단 말뿐만이 아니라 아홉번째라는 밴드의 음악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음악. 좋은 밴드를 또 하나 발견했구나 싶었다. 악어들의 라이브는 6월 17일 서울대에서 있었던 본부스탁 이후 두 번째로 보는 라이브였는데, 야외 무대였던 본부스탁에서보다 훨씬 빽빽하고 후덥지근한 싸이키델릭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밴드 이름에서도 연상되듯이 정글 속을 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다만 그것이 때로 밴드의 통제를 벗어나서 그냥 시끄럽게만 들릴 때도 있다는 것은 약간 아쉬운 점이었다. 혹자는 그것을 매력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이것이 단순한 취향 문제라기보다는 아직 밴드가 방향을 확실하게 잡지 못한 것으로 느껴졌다. 물론 이것은 이 날 두리반의 사운드 시스템이 그다지 완벽하지 못한 탓도 없진 않겠지만 말이다. 멍구밴드의 라이브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보컬 젤리였다. 특별하게 잘 부른다거나,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보컬이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까지 이 정도로 변화무쌍한 여성 보컬을 (최소한 한국 인디씬에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소녀처럼 활기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도 문자 그대로 비명을 꺄악 지르고, 그런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씩 웃으면서 다시 귀여운 목소리로 돌아간다. 그런 목소리로 ‘우리 모두, 잘 살자!’라는 가사를 노래한다. 이것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만큼 젤리의 보컬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사운드 상의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디스토션을 너무 먹인 탓인지 두리반 스피커의 문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기타 소리가 제대로 뻗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구밴드 역시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두리반 상근자들에게 둘러싸여 다 함께 불러제낀 두리반 테마곡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은 그 절정이었다. ‘당신을 유혹하는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사랑과 연대 저질러놓고, 저질러놓고, 저질러놓고…’ 밤섬해적단의 드러머 권용만은 이 날 무대에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무대 반대편 출입구 쪽에 드럼세트를 갖다 놓았다. 베이스/보컬 장성건도 3층 한복판에 내려와 공연을 준비했다. 오늘은 키 작은 사람들을 위해서 뒤에서 공연한다고 하면서. 왠지 두 멤버를 둘러싸고 있던 관객들은 키가 좀 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건 별로 상관없었다. 밤섬이니까. 밤섬해적단을 처음 봤을 때 이들이 이 정도로 인기를 얻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존나’ 웃기고 음악도 좋지만 인기를 끄는 건 그거하고는 다른 문제니까. 하지만 지금의 밤섬은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슈퍼스타다(혹은 아이돌이다). 그리고 밤섬의 그러한 인기에 두리반에서의 공연이 한 몫을 한 것은 분명하다. 두리반에서 밤섬이 공연을 할 때면 그 공연은 항상 전설적인 공연이 되었으니. 내가 본 공연만 해도 2010년 51+, 가난뱅이 다모여, 클럽 대공분실 기금 마련 공연, 2011년 51+. 전부 전설이 아니면 레전드였던 라이브였다. 그리고 이 날의 공연도 전설이 되기에 충분한 공연이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는 씨발 존나 젊은 20대 청춘’을 떼창하고 ‘탐관오리야 솜방망이를 받아라’라고 소리쳤다. 비록 더 이상 밤섬이 두리반에서 공연하는 모습은 볼 수 없겠지만, 밤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또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나 꾸준한 밴드가 그렇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조한석의 라이브는 맥북으로부터 흘러나온 반주로 시작되었다. 두리반 안으로 퍼져나가는 기타와 드럼 미디음, 그리고 그 위로 겹쳐지는 조한석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가 방금 전까지 밤섬에 의해 뜨거워져 있었던 공연장을 차분하게 식혀나갔다. 흡사 푸른새벽을 연상케도 했지만 그보다 조금 더 차가우면서도 가라앉은 분위기의 음악. 공기의 질감이 변해가는 느낌이란 게 어떤 것인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한 초반부가 지나가고 나서 그녀는 젬베와 아코디언 세션에 맞춰 산뜻한 어쿠스틱 팝을 선보였다. 아무래도 원래 했던 음악은 이쪽 스타일이고, 맥북을 이용한 음악은 처음 하는 시도인 것 같았다. 공연 후반부의 음악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초반부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흥미롭게 들린 것은 사실이었다. 어찌되었든, 조한석이라는 이름은 확실하게 내 기억에 남았다. 앞으로의 음악이 더 기대되는 이름 중 하나로. 쏭의 빅밴드는 내가 지금까지 두리반에서 본 밴드 중 가장 다양한 악기 구성을 자랑하는 밴드였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구성에 젬베, 탬버린, 클라리넷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어느 한 악기가 묻히거나 하는 일 없이 조화롭게 섞인다는 것은 (오늘 두리반의 사운드를 감안했을 때 특히) 장점이었다. 특히 클라리넷이 멜로디 라인을 잘 주도해 나간다는 느낌이었다. 흔하게 들을 수 없는 소리라 더 그렇게 들린 탓도 있겠지만. 음악 자체는 착한 음악,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하는 밴드라는 인상이었다. 때로는 그것이 심심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오늘 두리반에서는 그런 음악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승리의 현장에서 그런 음악은 정말로 힘이 될 수 있으니까. 쏭의 빅밴드가 물러난 다음 치마를 입고 기타를 맨 이쁜 여자분이 등장했다, 싶었는데 그건 사실 여장한 스팀보이즈의 기타 박플라넷이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나의 기대치는 급작스럽게 높아졌다. 그리고 공연을 다 보고 난 후의 만족도는 그 기대치를 엄청나게 뛰어넘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오늘 두리반 공연 중 가장 펑크했던 순서가 바로 스팀보이즈였다. 3인조 펑크 밴드가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의 극한까지 뿜어낸 공연이었다고 할까. 스팀보이즈의 음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격렬하게 울부짖으면서도 굉장히 ‘빽빽하게’ 들리는 기타였다. 이러한 기타 덕분에 사운드가 꽉꽉 차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것이 답답하게 들리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들리는 게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번이 멤버를 바꾸고 나서 첫 공연이었다는데,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자신들만의 강점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가 기대되는 밴드다. 적적해서 그런지의 EP를 들었을 때 공연에서 들었던 곡이 한 곡도 없어서 조금 놀랐었다. 나중에 공연이 끝나고 드러머 백수정과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이 EP는 그 동안 만들었던 곡들을 정리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것 같았다. EP는 꽤 잘 만들어진 노이즈/싸이키델릭 록이었지만, 지금의 적적은 EP에 실린 곡들보다 훨씬 더 먼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이 날 적적의 공연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이제 자신들의 음악을 확실하게 자신의 통제 하에 두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불을 끼얹는 듯한 기타와 신스의 노이즈가 쏟아지다가도 어느 순간 베이스가 비수처럼 치고 들어오면서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드럼이 그 모든 것들을 든든하게 받쳐 준다. 그 모든 것들이 이전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본 적적해서 그런지의 라이브 중에서도 가장 손발이 저릿저릿한 라이브였고, 동시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언젠가는 지금 적적이 연주하는 곡들도 레코딩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앵클어택의 라이브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공연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감히 이 주장에 딴죽을 걸 수 없을 거라고 믿는다. 정말로 대단하다. 오늘도 그랬다. 약간 합이 삐끗한 모습도 보여주긴 했지만, 그것조차 그냥 웃어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공연이었다. 앵클어택을 볼 때마다 왜 이들이 이렇게 죽여주는 라이브를 매번 선보이는지 생각한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답을 찾아내는 데는 항상 실패한다, 그냥 곡이 좋아서, 연주를 잘 해서, 그런 대충대충인 이유만 겨우 내놓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든다.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팔을 치켜든다. 검지손가락을 Im 이렇게 들어올린다. 환호성을 지른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렇다. 어쩌면 이게 앵클어택의 라이브가 왜 좋은지에 대한 유일한 설명인 것도 같다. 생각을 그만두게 만드는, 그런 라이브. 모든 공연이 끝나고 나서 나는 두리반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밖으로 나섰다. 이미 집에 돌아가기에는 늦은 시간이었고, 나는 PC방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오늘 보았던 멋진 순간들, 그 동안 두리반에서 보았던 아티스트들, 새로운 두리반에서 먹어보게 될 칼국수, 그리고 이것이 두리반에서 보는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 그다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언젠가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끝이 날 거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리고 결국 좋은 방향으로 끝나게 되서 다행이지만, 막상 두리반이 정말로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현재 두리반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마치 그래야 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펜스가 세워지고, 인부들이 들어서고, 건물이 부숴졌다. 합의사항대로 두리반은 다른 곳에서 다시 문을 열 것이고, 시행사 남전디앤씨 측에서는 이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철거투쟁의 새로운 장을 연 장소이자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공연장이 되어 왔던 이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은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쉬운 일이다. 승리했다는 사실은 전혀 아쉬울 게 없다. 하지만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공간이 지닌 역사와 기억들이 일정 부분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더 쌓아나갈 수 있었던 것들을 더 이상 쌓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낡은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다이나믹 코리아’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그런 사실이 아쉬움을 줄여주지는 못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아쉬움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두리반이 남긴 의미는 그런 아쉬움 못지 않게 큰 것이니까. 철거투쟁 등의 굵직한 사회적 의미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두리반이 한국의 인디, 혹은 ‘자립’ 음악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섬해적단, 404, 하헌진 등 정말 좋은 아티스트들이 두리반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고, 자립음악생산가조합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도 두리반의 투쟁과 맞닿아 있다. 현재 홍대의 어떤 공연장보다 ‘공연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확실한 공연장도 두리반이었고, 음악인의 사회적 참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가능을 보여준 곳도 두리반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아직 확실한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두리반이라는 이름이 한국 음악사에서 어떤 형태로든 중요한 지점에 위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6월 25일의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여러 일들이 있었다. 명동 3구역에서는 용역들이 강제 철거를 시작했으며, 불에 탄 포이동에서는 여전히 주민들이 살 곳이 마련되지 않았고, 제주도에서는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나의 강정을 지켜줘’ 공연도 제주도청 앞에서 진행되었다). 개발논리에 밀려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은 지금까지 계속 있어왔으며, 아마 앞으로도 긴 시간 동안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두리반을 알기 전과 안 후의 내가 다른 점이라면 그런 ‘공간의 침탈’에 맞서 연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한 것이다. 두리반을 경험한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그것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두리반을!’이라는 슬로건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승리가 필요하다. 20110712 | 정구원 lacelet@gmail.com p.s 본문의 사진들은 모두 두리반 카페에서 가져왔다. 관련 사이트 ‘작은용산 두리반’ Daum 카페 http://cafe.daum.net/duri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