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Rainbows]는 얼마나 팔렸을까? 라디오헤드의 신보 발매는 2007년 대중음악계 최대의 이벤트였다. 메이저 레이블 EMI와 결별한 밴드는 2007년 10월 10일에 공개한 자신들의 일곱 번째 정규음반의 모든 음원을 160kbps로 인코딩한 MP3 포맷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했고, 이것을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에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공짜로 다운로드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시도가 불러일으킨 문화적 충격은 대단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할 것은 디지털 음악 시장의 전설이 될 이 이벤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문화적 차원의 찬반양론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다. 얼마나 팔렸는가? 사람들은 과연 돈을 냈는가? 밴드가 과연 이런 식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인가? 라디오헤드의 경우, 결과는 긍정적이다. [In Rainbows]는 발매 첫 한달 동안 백만 건의 다운로드 건수를 기록했고, 그 중 약 40%가 돈을 냈으며, 평균 지불 액수는 약 6달러였다. 그렇게 해서 밴드가 얻은 수입은 3백만 달러. 여기서 중요한 것은 ‘라디오헤드마저도’ 구매자의 60%가 음원에 대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얻은 수입 전부가 뮤지션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액수에는 특별 제작된 호화 패키지와 CD 판매에서 얻을 수입은 계산되지 않았다. 신인 아티스트들, 그리고 초특급 스타들에게 데이빗 번이 제안하는 생존 전략 톰 요크, 데이빗 번 2007년 12월 18일, 미국의 IT 잡지 [와이어드] (Wired) 홈페이지에 이에 관련한 기사 두 편이 실렸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데이빗 번(David Byrne). 그는 전설적인 뉴웨이브 록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리더이자 자체 레이블 경영과 솔로 활동을 두루 거친 베테랑 뮤지션이기도 하다. 번은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Thom Yorke)와 인터뷰를 했고, 그와 관련된 기사 한 편을 썼다. 기사의 제목은 “신인 아티스트들, 그리고 초특급 스타들에게 데이빗 번이 제안하는 생존 전략” (David Byrne’s Survival Strategies for Emerging Artists – and Megastars). 그는 이 기사에서 오늘날 뮤지션이 생존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선택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 번이 오늘날의 대중음악 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라디오헤드의 음반 발매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마돈나(Madonna)가 맺은 새 계약이다. 그녀는 얼마 전 메이저 레이블인 워너 브라더스(Warner Bors.)와 결별한 뒤 콘서트 프로모터인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과 계약을 맺고 음반과 공연 수익을 배분하기로 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사건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 사업이 끝났다는 신호’이며 ‘뮤지션이 어떤 방법으로 레이블과의 전통적인 관계 바깥에서 점점 더 크게 일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예’다. 라디오헤드나 마돈나가 이런 모험을 감행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의 제조와 유통을 둘러싼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번에 따르면 이 변화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인디 정론 웹진’ [weiv]의 독자에게는 이미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첫째, 녹음 비용이 점차 줄어들어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는 음반사에게 빚을 지는 식으로 떠안게 되는 거액의 제작비가 필요 없게 된다는 뜻이다. 둘째, 배급 비용 역시 제로에 접근하고 있다. 예를 들어 라디오헤드가 음반을 유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버 구입 비용뿐이다. 마지막으로, 공연 자체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공연이 신작 홍보와 재고 CD를 처분하는 행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로운 수익 창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프린스(Prince)의 신보 [Planet Earth](2007) 발매 당시 일어났다. 공연 수익이 음반 수익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깨달은 프린스가 자신의 신보를 주간지 부록으로 끼워 배포해버린 것이다. 요약하면 현재의 음악 씬은 우리가 알던 그 방식으로 굴러가지 않고 있으며,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번에 따르면 이는 아티스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인데(“청중에게 다가가려는 방법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오늘날처럼 아티스트에게 기회가 많았던 적은 없다”), 이때 아티스트가 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섯 가지다. 이제 그것들을 간단히 살피도록 하자. 여섯 가지 가능성들: 권리와 책임 [표 1] 여섯 개의 배급 모델들 번이 이 가능성을 나눈 기준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아티스트의 통제(control)의 정도다. 즉 자기가 만든/부른 노래에 대한 권리와 그에 따른 이익을 얼마나 크게 소유할 수 있느냐이다. 표의 왼쪽, 즉 가장 낮은 통제 정도를 보이는 것이 전방위적인 계약(360 deal), 혹은 지분 계약(equity deal)이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모든 권리(이를테면 자기 이름이 들어간 티셔츠나 바베큐 소스를 제작할 권리까지)를 제작사 쪽에 판다. 푸시캣 돌스(Pussycat Dolls), 콘(Korn),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 등이 그 예다. 그 옆에 있는 것은 표준적인 배급 계약(standard distribution deal)이다. 이 경우 아티스트는 제작과 유통, 홍보 일체를 지원받고, 이와 관련된 제반 비용을 제작자가 모두 회수한 뒤부터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받는다. 그러나 아티스트는 음원 자체에 대한 저작권을 영원히 갖지 못한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MC 해머(MC Hammer), TLC 등이 이런 식의 계약을 맺었거나 맺고 있다. 이런 계약의 문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벌어진다. 음반 판매가 신통치 않을 경우, 아티스트는 실질적으로 회사에 빚을 진 채 살아가게 된다. [표 2] CD 형태의 음원 판매 사업에서의 수익 분배 구조 다음은 라이선스 계약(license deal)이다. 이는 표준 계약과 비슷하지만 아티스트가 음원의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다만 이 경우도 일정 기간 동안(미국의 경우 7년) 제작사가 음원의 소유권을 갖고 있다가 아티스트에게 넘겨주는 방식을 취한다. 이 단계부터는 아티스트의 권리가 눈에 띄게 상승한다. 좋은 레이블을 만날 경우는 일이 더 잘 풀린다. 예를 들어 아케이드 파이어(The Arcade Fire)와 머지 레코드사(Merge Records)의 관계 같은 경우가 그렇다. 이익 분배형 계약(profit-sharing deal)에 이르면 아티스트는 상당 수준의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이 경우는 아티스트가 제작비용을 충당하고 레이블은 홍보와 배급 등에서 최소한의 재정적 지원을 한다. 그리고 음반이 배급되는 바로 그날부터 계약 내용에 따라 이익을 분배한다. 따라서 수익 비율 역시 커진다. 데이빗 번 본인이 이런 계약을 맺었는데, 그는 이 방식이 무척 만족스러웠다고 밝히고 있다. 제조와 배급 계약(manufacturing and distribution deal)은 일종의 위탁 판매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아티스트는 음반 인쇄와 배급을 제외한 모든 것을 처리한다. 회사는 약간의 마케팅 비용을 대고 배급도 해 주지만 앞의 계약들에 비해 열심히 하려는 의욕은 낮다.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창작 과정에서 전권을 갖는다는 이점이 있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비빌 데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익이 덜한 대신 손해도 적다. 이때 손해란 반드시 재정적 손해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만약 특정 레이블의 이름으로 배급된 음반이 비평적으로 혹평을 얻을 경우, 회사는 이 아티스트의 음악적 실패와 자기 레이블의 안목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있다(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을 본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이 라디오헤드가 채택한 자가 배급 모델(self-distribution model)이다. 즉 순도 100% DIY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는 제작과 유통, 홍보에 따르는 모든 과정을 아티스트가 담당한다. CD는 공연 중에도 팔리고 뮤지션 웹사이트에서도 팔린다. 홍보는 마이스페이스(MySpace)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루어진다. 라디오헤드의 경우, 이들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신들의 음원에 ‘당신이-직접-가격을-정하는(pay-what-you-will)’ 방식을 도입했다. 이에 대해 밴드의 매니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음반업계는 종말이 가까이 온 것처럼 반응했습니다. ‘그들이 음악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음악을 공짜로 뿌리고 있다’면서요. 그건 사실이 아니었죠. 우리는 사람들에게 음악에 가치를 매겨달라고 한 겁니다. 그건 의미론적으로 아주 다른 거에요.” 이 모델의 이점은 일이 잘 되었을 때 발생하는 수익이 순수하게 아티스트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새로운 두근거림을 향하여 [표 3] 디지털 음원 판매시의 수익 배분 구조 번은 뮤지션들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생존을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확장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현재 활동하고 있거나 막 활동을 시작한, 차츰 고갈되고 있는 음악 사업의 상황을 읽어내고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이는 정말로 좋은 기회다. 선택사항들과 가능성들로 가득한 시간인 것이다. 직업적 경력으로서 음악의 미래는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그건 정신을 똑바로 차렸을 경우의 일이다. 그는 아티스트들에게 반드시 저작권을 확보하라는 충고를 한다. “이것[저작권]은 특히 직접 곡을 쓰는 사람에게는 연금 계획이나 다름없다.” 더불어 그는 중간 유통 비용을 혁신적으로 줄인 현재의 디지털 음원 시장이 사실상 아티스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 [표 2]와 [표 3]에서 볼 수 있듯 CD 판매시 아티스트는 평균 10%의 로얄티를 받는데, 이 액수는 약 1.6달러 정도다. 그렇다면 아이튠스(iTunes)로 음원을 판매했을 때는? 이 경우 아티스트는 14%의 로열티를 받지만 실제 액수는 CD 판매시보다 더 낮은 금액인 1.4달러다. 로열티 비중은 커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예전보다 덜 버는 셈이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유통사도 유통사지만 제작자와 아티스트 사이의 관계다. ‘음악 선진국’ 미국에서도 중요한 것은 역시 아티스트의 권리가 아니라 제작자의 이익인 것이다. 다만 제작자 쪽이 좀 더 영리하게 굴었다는 것이 한국과의 차이점이랄까. 어쨌든 자신에게 알맞은 적절한 생존 방식을 계획하지 못한다면 아티스트의 권리를 더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도 아티스트는 여전히 착취받는 존재로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 또한 번이 이 글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언급한 라디오헤드의 경우에도 밴드가 마지막 단계에서 망설임을 보였다는 점을 부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 CD로 유통되고 있는 [In Rainbows]의 음질은 밴드가 처음 인터넷에 공개했던 MP3 파일의 음질보다 낫다. 톰 요크 역시 [르 몽드(Le Monde)]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인정하며 “사람들은 형태나 디자인, 생태학 등이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공예품 같은 것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물론 현재는 ‘retail version’이 돌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상황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뮤지션들에게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명백하다. 이는 단지 수입이 많은지 적은지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제작사가 뮤지션이 되는 유일한 창구였던 시절에는 퇴근 후 옆집 눈치를 보며 기타를 뚱땅거리는 것이 자아실현의 전부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때로 그 꿈은 정말로 조잡하게, 때로는 한심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훈련된 귀를 가진 음반사 간부들이 있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마추어의 난립’으로 인한 ‘하향평준화’를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좀 더 따져봐야 한다. 예전의 음악 시장에서 들을 만한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100명 중 한 명이었다면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1000명 중 여덟 명이 나온다고 해 보자. 아니, 이왕 하는 거 세 명이라고 하자. 비율을 계산하면 더 들을 음악이 없는 것은 오늘날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수로는? 새로 등장한 두 명, 혹은 세 명 전부가 100명만 있던 시절에는 나올 수 없었던 형태의 음악을 만들고 유통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음악들은 듣는 이들의 가슴을 충분히 두근거리게 할 수 있다. [In Rainbows]의 ‘발매’날, 전 세계의 음악 팬들은 뮤지션의 신보를 사기 위해 레코드샾 앞에 새벽부터 줄을 서던 옛 풍경의 기억과 그 때의 두근거림을 발매 당일 구글에서 홈페이지를 검색할 때 다시 맛봤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의 누군가도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딘가에서 이런 웹진에 들락거리는 대신 큐베이스 사용법을 익히고 있는 당신, 어느 회사 공CD가 좋은지 고민하고 있는 당신, 평론가를 멍청하다고 욕하고 있는 당신 말이다. 당신의 주머니를 알아서 채워줄 시스템 따위는 주류에도 인디에도 없다는 것만 분명히 알고 시작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정말 그런 시스템이 어딘가에는 있다고 믿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순진한 소리나 한다며 받을 냉소보다는 2008년 연말 결산 때 고를 음반이 없어 쩔쩔매는 상황이 더 견디기 어려운 나로서는 여기서 이 말을 거둘 생각은 없다.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다면, 왜 음악을 듣고 있는가?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관련 글[와이어드]에 실린 데이빗 번의 기사 전문. 톰 요크와의 인터뷰도 링크되어 있다. http://www.wired.com/entertainment/music/magazine/16-01/ff_byrne?currentPage=all[한겨레 21]에 실린 음악평론가 김작가의 칼럼: 한국 음악시장을 죽이는 자들 / 저작권협회의 20년 노래 독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