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차 아이돌 그룹 신화의 10번째 앨범 [The Return]

지금(2012. 3. 27 현재)도 방송되는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음악관계자가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비주얼 가수와 오디오 가수의 인기주기는 10년에 한번씩 번갈아 돌아온다”. TV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음악은 정확히 ‘보며 듣게’되었고 이런 가운데서 출처 불분명한 ‘Visual’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 같다. 일본에서는 비주얼 록(Visual Rock)이란 구분을 쓰고 있고, 그들의 화려한 복장은 60년대에서 70년대 중반까지 루 리드와 데이빗 보위를 위시한 글램(Glam) 혹은 글리터(Glitter)록으로 불리는 퍼포먼스, 미국 헤비메탈 씬의 과장된 표현 등에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이런 비주얼에 얽힌 맥락이 아니라면 ‘비주얼 가수’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아무런 이론적 근거도 없는 저 비주얼 가수라는 단어를 여전히 평론계에서 쓴다는 것도 의아한 부분이다. 10년주기에 대한 근거는 어떻게 산정되는지 묻고싶을 정도다.

이왕 비주얼 가수로 시작했으니 누가 비주얼 가수에 해당되는지 짚어내야 할 것 같다. 예상대로 ‘아이돌’이다. 오디오 가수라는 구분을 상대적으로 높이기 위해서 비주얼 가수의 범주가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서 적용된다. 그렇다면 비주얼 가수가 오디오 가수보다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단연코 춤이다. ‘칼 같은 군무’, ‘섹시한 몸짓’과 같은 표현에 적당히 ‘초콜릿 복근’, ‘하의실종’과 같은 단어만 나열해주면 된다. 매일 포털에 오르내리는 이런 단어를 보며 혀를 끌끌차더라도 막상 이들의 안무에는 눈이 현혹되는 모순들. 하지만 춤으로써 낙인은 이미 불가능하다. 1950~60년대 로큰롤이 미군부대에서 퍼지던 시기에도 댄스가 있었다. 1930~40년대의 서울의 젊은 남녀들도 유행가에 맞춰 찰스턴 스텝을 밟았다. 70년대 전자음악의 유행으로 탄생한 디스코(Disco)음악은 기계적 춤의 신호탄이 되었으며 80년대 마이클 잭슨의 급부상으로 춤은 더욱 발전했고, 한국도 열광했다. 기성세대들은 청년세대보다 오히려 춤의 오르가즘을 더욱 잘 알지도 모를일이다. 한편, 아이돌 가수 중 노래를 잘하는 몇몇을 일반 가수들과 경쟁해 최고를 가리는 [불후의 명곡]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아이돌은 더 이상 비주얼 가수와 오디오 가수의 이분법을 지배받지 않아도 된다. 엔터테이너가 된다. 여기서 또 재밌는 구분을 적용해보자. ‘가수’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춤을 추거나 예능에 나오면 가수로서의 권위가 실추되는가. 싱어송라이터로 칭송받는 정재형의 예능변신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목도하게 된다. 정재형은 엔터테이너로서 비주얼 가수인가. 앙드레 김 의상을 입고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자칭 비주얼 가수라고 칭한 김범수는 또 어떨는지.

음악 요정

다른 점은 있다. 비주얼로서의 아이돌 가수는 철저히 기획사에 의해서 교육을 받는다. 노래와 춤, 외모까지 모두 제작단계에서 결정되는 것들이다. 아이돌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학제 시스템에 버금가는 교육만 받지 않을 뿐, 일반 가수들도 기획된다. 아이돌보다는 나은 자율성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기획의 코스는 아이돌이나 일반 가수들이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멘토 시스템은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 혹은 고착화시키는 수단이다. 그럼에도 차이가 있다면 ‘음악’. 음악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아이돌 음악은 지금껏 세계적인 트렌드를 반영해왔다. 앨범단위로 본다면 1996년 나온 H.O.T의 1집만 하더라도 갱스터 힙합, 레이브 댄스 등 변화된 감각의 최전선에 있었다. 또한 놓치지 않고 발라드 감성에 맞는 곡들을 심어놓는다. 다수의 음악적 기호를 맞추는 것에 이보다 치밀한 기획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디지털로 변화하는 제작 환경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음악이 디지털화 된다는 의미는 음악이 악기에 의존하지 않고 컴퓨터 상에서 구현될 수 있음을 내포한다. 간단히 드럼이 드럼머신을 통해서 기계화되고, 이 기계화된 드럼이 다시 컴퓨터 속으로 내장되는 것이다. 드럼 연주법을 몰라도 드럼의 사운드를 마우스 클릭으로 ‘찍어내는’ 시대다. 전자렌지가 가스렌지의 일부 기능을 대체하듯 감각은 그렇게 이동할 수 있으며, 음악을 접하는 이들도 새로운 감각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반드시 10대들에게만 혐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1940~50년대의 재즈음악에 열광한 것은 리듬과 연주법이 민요를 비롯한 전통음악과 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들이 로큰롤, 록 음악에 열광한 것도 본래기기가 가지고 있는 음색을 확장시키거나 왜곡시키는 앰프(amp)를 비롯해 각종 이펙터기기들의 현란한 음들에 감응을 한 것이다.

디지털 음악에 대한 이해 없이 디지털로 만든 음이 저질스럽다는 것은 결국 자기부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결과다. 음악 ‘꼰대’의 탄생. 어린세대들일수록 최신의 감각을 잘 흡수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이돌 음악은 그런 세대들에게 충실한 음악적 보급로가 되는 것이다. 한때 아이돌 음악이 ‘후크송’이라고 비판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다. 그들도 알 것이다. 대중음악의 ‘후렴’이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후크송’의 맥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대중음악예술의 효시로 불리는 비틀스(Beatles), 기성세대 청춘의 대명사인 아바(ABBA) 마저도 훅(hook)이 없는 곡을 찾기 어렵다. 아이돌의 노래의 창법을 지적하는 의견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성악과는 달리 대중음악에서는 노래를 어떻게 하라는 가이드 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SM가수들은 유영진 창법으로, JYP 소속 가수들은 박진영 창법으로 부른다는 2000년대 초반의 유머는 가수의 교육이라는 것이 시대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방증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훅(hook)이 없는 대중음악이라니?

그럼에도 아이돌 그룹에 대한 불편함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다양성의 결여에 있다. 비슷한 음악적 스타일에 역시 별반 다를 것 없는 외모의 그룹들이 무한 제공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원인은 매스미디어의 생태계와도 관련이 있다. 음악인이 방송에 나가 엔터테이너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음악을 알리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기광고’를 위함이다. TV에 자주 얼굴이 노출된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증거. 각종 행사에서 높은 개런티를 부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런데 음악환경은 디지털로 가고 있고, 음악에는 많은 세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싱글 단위로 활동하면서 전체 앨범에 투자되는 비용도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비용들은 어디에 투자될까. 외모, 의상, 뮤직비디오 그 밖에 프로모션 비용으로 소진된다. 큰 프로모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력 있는 기획사들이 방송에 입김을 키워나가게 되는 것은 디지털 음악환경에 견주어 당연한 결과다. 제이지나 카니예 웨스트 같은 해외의 유명 힙합 프로듀서들이 패션을 비롯한 부대산업을 키우는게 먹히는 이유는 음악산업의 속성이 아직도 건재하고, 새로운 디지털 감각을 이들이 누구보다도 잘 간파하기 때문이다. 음악트렌드의 결정권은 대형 기획사들에서. 이들 대형기획사들이 의존하고 있는 트렌드의 루트는 팝 음악이라는 불편한 진실. 빌보드를 예를 들면, 팝 음악의 수위를 차지하는 음악은 디지털 환경을 이용해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 자! 그럼 정리. 음악의 디지털화는 자연스러운 감각적 흐름이다. 그리고 아이돌 노래의 거의 대부분 디지털 환경을 통해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하지만 음악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은 결국 음악과는 상관없는 자본의 흐름이며, 이들 자본에 의해 트렌드가 결정된다. 트렌드에 맞지 않는 음악은 매스미디어에서 멀어지게 된다.

[나는 가수다], [탑 밴드]를 비롯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아이돌 일색의 음악 판형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희망어린 보도들도 있다. 분명 새벽시간대에 방송되는 라이브 음악프로그램들과 더불어 조금은 다른 음악을 듣는 시간은 늘었다. 이는 기성가수들과 아이돌의 간극을 만들어 마치 ‘진정한 가수’를 돋보이려는 방송국의 양심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왜 기성 가수들의 공연을 서바이벌의 형태로 봐야하는 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그리고 신인가수들은 기성가수를 멘토를 삼고 배워야만 진정한 ‘가수’로 거듭나게 되는가. 기성가수들이 그 보다 더 앞선 세대들의 트레이닝을 받아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 반열에 올랐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선명해지는 사실은 음악이 교육체계로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의 음악가들을 낳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즐기기 보다는 이기기 위한 음악을 하는 것. 말 잘듣는 로커들이 주류에 입성하는 현실. 역설적으로 정규 음악 공부를 하지 않고, 기본적인 화성학을 익히지 않았으면서도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프로듀서 중 한명인 용감한 형제, 또 대학교육을 포기하고 스스로 음악적 재능을 키워가려는 아이유의 사례가 타산지석이 될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 음악은 무엇인가를 논하기 보다는 ‘스타’만 낳으면 된다는 식의 마케팅. 결국 ‘노래를 잘 하는 가수’를 뽑는 오디션이든 ‘아이돌 가수’를 장려하는 매스미디어의 전략이든 새로운 음악자본의 유입을 꺼리고 기성 뮤지션과 작곡가, 아이돌 기획사들만을 위한 파티가 갈수록 블링블링 해진다.

비주얼 가수와 오디오 가수의 구분은 그럴싸한 대결구도처럼 보이지만 기성 가수들의 생존모색과 아이돌 열풍이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자본의 고착이다. 그러니 애초에 비주얼 가수와 오디오 가수의 구분은 있지도 않았고 성립될 수도 없다. 아이돌은 더 이상 음악과 춤 때문에 기성 가수와 비교되며 낙인찍힐 이유는 없다. 팬들도 마찬가지. 오히려 이들이 가진 디지털 음악에 대한 이해가 기성세대의 음악가들보다도 앞서 있을 수 있다. 다만 매스미디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에서 이들은 변화의 주체로 거듭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독립된 음악 자본의 유입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면 매스미디어를 통한 다양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홍보 문화에 표류하며 의존하기에는 응집력이 떨어진다. 현재의 ‘음악문화’는 여전히 매스미디어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희망적인 것은 디지털 시대로 갈수록 음악 만드는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프로에 버금가는 음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통해 아마츄어와 기성 프로들간의 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극화된 자본과 음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간극. 모두가 아이돌이고픈 절절함과 절실함. 이 사회는 어떻게 감내해낼까. | 류석현_contributor

관련 글.  ’30초 짜리’를 옹호함 | 이정엽 (2009)

info. 매체의 관점으로 음악을 연구하는 류석현은 아카펠라, 사운드 아트에도 관심이 많다. 5년 전 음악웹진 [이즘(IZM)]의 필자로 활동했고 다양한 관점의 음악 칼럼을 써왔다. | http://www.facebook.com/soulryu

2 Responses

  1. 임국태

    전체적으로 현재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케케묵은 논제에 대해 상당히 좋은 맥을 짚어주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돌이 교육 훈련 단계에서만 ‘기획’의 산물은 아닙니다. 기성 가수들은 굳이 싱어 송라이터가 아니더라도 자기 음악의 작곡이나 프로듀싱, 또는 이미지메이킹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지만, 적어도 음악적인 면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돌은 기획사에서 ‘던져주는 대로’ 받아먹는 구조라고 봅니다. 이미지 메이킹이나 활동 양상의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그 차이는 더더욱 벌어집니다. 

    아이유를 ‘아이돌의 외모를 지닌 실력파’ 가수로 성공적으로 기획해 낸(사기를 친?^^) 기획사의 마케팅 전략이 먹힌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상 아이유를 아이돌 가수와 똑같은 방식으로 소비하면서도 자신은 실력파 가수를 좋아한다고 믿게 만든 그 부분이 최근 ‘대놓고 아이돌 음악 듣는다고 나서기 뭐한’ 음악 소비자들의 조금은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자기 이미지 형성 욕구랄까요? 아무튼 그걸 파고 든 것이더군요. (난 아이유를 좋아하니 소시, 카라 좋아하는 너네랑은 좀 다르지… 라는?) 

    ‘비쥬얼’ 가수로 분류되는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해부함에 있어 그 비디오형-오디오형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의 작동 구조를 잡아내신 부분은 훌륭하나, 위와 같이 몇몇 논거 부분에서 ‘과연 그런가?’ 하는 느낌을 좀 받게 됩니다. 

    물론 이 또한 제 주관적인 생각이고 검증된 바 없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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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yu Seok Hyun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 아이유를 디테일하게 말씀해주신 것 역시 제가 챙겨가야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우선 저는 음악 산업의 스펙트럼에서 아이돌 기획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나름의 의미가 있고요. 그 중 예를 든 것이 프로듀서인 용감한 형제와 아이유였습니다. 아이유는 기획단계에서 아이돌로 볼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상품은 분명 여타 그룹형 아이돌과는 다릅니다. 아이유를 차별화해서 선택하는 것도 저는 자유라고 보고요. 다만 아이유 같은 다양성을 꾀하기 어려운 것은 산업적인 문제로 보고 이는 개선되어야 할 문제로 두는 겁니다. ^^ “그렇기에 아이유는 아이돌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요. 

      언급을 안해주셨지만 용감한 형제를 좋은 예로 든 것은 싱어 송 라이터들을 아이돌과 차별화시키는 시각에 대한 반발입니다. 싱어 송 라이터들은 학벌도 좋고, 정규 음악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많고, 교양수준도 높다는(?) 신화를 만들어낸 것은 평론가들입니다. 특히 화성학에 기초로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주는 것도 이러한 신화에 근거하죠. 그래서 대중음악의 실기이론교육도 클래식의 이론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용감한 형제는 화성학에 기초로하지 않은 음악 출발로 싱어 송 라이터들에게 산업적인 긴장을 줄 만큼 성장했다고 봅니다. 정확히 사람들의 감성은 절대 화성, 멜로디, 리듬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다시피 한거죠. ‘사운드’로서의 음악을 일반화 시킨 거죠. 산업적인 부의 증대를 예외로 둔다면 이러한 음악적 시도를 저는 상당히 좋게 평가하는 편입니다. 

      글의 편의상 논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게 된 점 이해해 주세요 ^^;;  비평의 한계겠죠. 아니면 저의 부족함일 수도 있고요. ㅎㅎㅎ 더 이야기 나누시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더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댓글 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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