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왜 보나요 우리 만남부터 쭉 멈춰있는데” – “Roly-Poly”, 티아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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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롤리폴리

2009년 데뷔한 티아라는 복고풍으로 한동안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처음부터 복고풍으로 일관하진 않았다. 같은 소속사인 다비치가 뽕끼 섞인 R&B로 흥행한 발판 위에서, 티아라는 마찬가지의 R&B와 뽕끼 섞인 일렉트로닉 댄스를 병행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9년 투애니원의 “Fire”(5월), 포미닛의 “Hot Issue”(6월),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6월) 등에서 힌트를 얻은 것일까. 티아라는 강렬하고 ‘급진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전격 수용했다.

같은 해 11월의 “Bo Peep Bo Peep”은 모 제지회사의 홍보에 도움이 되었다며 발음이 비슷한 화장지를 대량으로 선물 받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이 시기 티아라는 “처음처럼”, “너 때문에 미쳐”, “왜 이러니”, “Yayaya” 등을 발표해, 조영수, 김도훈이 뽕끼를 뿌려놓으면 신사동 호랭이, 최규성과 이트라이브(E-Tribe)가 난폭한 일렉트로닉을 쏟아내는 구도를 보였다. (걸스데이를 견인한 남기상, 시크릿과 B.A.P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낸 김기범을 비롯해 방시혁, 한상원 등도 이 시기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티아라를 진정 정상에 올려놓은 것은 명실공히 “Roly-Poly”(2011년 6월)였다. 동요적인 모티프와 묵직한 일렉트로닉 사운드, 화려하고 명랑한 디스코, 적당한 함량의 뽕끼 멜로디를 갖춘 곡이었다. 곡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40여개국의 팬들이 안무 영상을 업로드해준 데에 감사한다는 감격의 메시지를 실은 비디오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2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는, 선거운동원이라면 정파를 막론하고 각자의 캠프 점퍼를 입고 이 곡에 맞춰 춤을 추는 장관이 연출될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에서도 사이 좋은 아버지와 딸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이 곡에 맞춰 함께 춤추는 장면이 등장해 상상계의 세대공감을 전시하기도 했다.


박문칠 감독의 다큐멘터리 [민주주의의 꽃 The flower of Democracy](2012, short) 중에서

 

2. 뭐라도 상관 없음

그런데 이 곡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른 재밌는 점들도 눈에 띈다. 해태제과의 과자 포장지를 보고 지었다는(*2012년 11월 20일 SBS [강심장] 중) 제목 “Roly-Poly”는 빅뱅과 투애니원의 “Lollipop”(2009년 3월)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며, 미국 유소년 문화의 언어세계를 열심히 가져오던 당시의 제목 짓기 경향에도 부합한다. 미니앨범의 제목인 ‘존 트라볼타 워너비’는 또 어떤가. 같은 소속사의 선배인 SG 워너비가 ‘적당히 레전드’인 사이먼 앤 가펑클을 맥락 없이 가져와 ‘적당히 알려진’ ‘적당히 요즘 말’인 “워너비”와 결합했던 것과 유사한 결을 보인다. 또한 여성그룹이 존 트래볼타의 워너비가 된다는 것도 용어의 개념에 근본적으로 위배된다. 뿐만 아니라 7곡 중 후반 5곡인 리믹스들은, 대부분 인트로를 다르게 했을 뿐 원곡 트랙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이어붙이고 있어, 리믹스라 부르기도 낯뜨거운 트랙으로 분량만 채우고 있다.

임예진까지 캐스팅하며 1970년대 중반을 소환하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아우트로에 1982년작인 전영록의 “종이학”을 배경으로 삽입한다. 미니앨범 제목이 환기하는 존 트래볼타는 1970년대 후반의 모습이다. 곡이 큰 흥행을 하자 재편곡하여 출시한 “Roly-Poly in 코파카바나”(동년 8월)는 80년대의 이탈로 디스코를 차용하기도 한다. 요컨대, ‘옛날이기만 하면 뭐라도 상관 없음’이 이 ‘복고풍’의 정체이다. 그리고 이런 ‘뭐라도 상관 없음’은, 이제는 거의 미학화에 가까워진 (불쾌한 어감을 용서하시길) ‘근본없음’의 정수이며, 소속사 코어 콘텐츠미디어의 장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사 작곡 신사동 호랭이, 최규성 / 편곡 신사동 호랭이 / 2011년 6월

도입부의 동요적 멜로디는 이 곡이 유년기의 추억을 환기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추억인가를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당장 “롤리폴리 뜻”을 검색해 보면, 단종됐다가 2004년 재출시된 과자 롤리폴리라는 답변보다는, “영어로 오뚜기란 뜻”이라는 답이 더 많다. ‘추억의 과자’를 인용했다는 주장과 달리, 이 곡에 주로 관심을 갖던 연령층에게 “롤리폴리”는 그저 뜻 모를 단어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뮤직비디오가 그리는 1970년대 중반은 86년~93년에 태어난 멤버들이 꿈에도 경험해본 적 없는 과거이다. 뮤직비디오를 여는 옛 영화 포스터 풍의 스틸은, 조선일보도 아닌데 “우리들의 高校時節”이란 글씨로 장식돼 있다. 이렇듯 세대공감의 이상을 도출해낸 이 곡은 사실, 젊은 세대를 철저히 소외시키며 만들어졌다.

그 와중에, 비디오의 아우트로는 1분여에 걸친 자막을 선보인다. 어느 도지사 같은 감성이 뚝뚝 묻어나는 이 텍스트는 비디오 속에 묘사된 과거, “간직하고 싶은 추억”에 대한 향수를 한껏 품어낸다. 중반부에 갑작스럽게 “임예진 선생님, 전영록 아빠~”를 부르는 것이 충격적인 것은, 텍스트 전체의 목소리가 전적으로 ‘어른’의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티아라 ‘소녀들’의 것이었다는 양 능청을 부리는 이 목소리는, 그러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배후를 노출한다. 말하자면 티아라의 목소리로 ‘조작’된 ‘어른’이 자신의 추억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친구들은 여전히 그때 그 모습 롤리폴리의 모습”이라 말하지만, ‘아이들’은 앞서 말했듯 “롤리폴리”가 뭔지도 알기 어렵지 않았나. 그렇게 보면 비디오 전반부 드라마타이즈 부분에 등장하는 “오늘 광수 오는 날!”, “야, 광수 내꺼야!”이란 대사가 범상치 않게 들린다. 티아라 멤버들이 타인의 과거(의 엉성한 혼합체) 속에 들어가 봉사하는 대상은, 코어 콘텐츠미디어 김광수 대표의 추억 ‘트립’인 것이다.

 

3. “나는 참 맘에 드네요”

이 곡은 그러나 음악적으로도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다. 3분 34초의 플레잉타임 중 29초간의 인트로, 16초간의 간주, 38초간의 브리지는 모두 하나의 코드(Am)로 이뤄져 있다. 적어도, 멜로딕하게 감기도록 만들어진 보컬 파트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화성진행이 없이도 상당히 긴 시간을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들에는 브리지 후반의 랩을 제외하면 보컬도 거의 제거돼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채워넣어야 속이 풀리는 통속 가요의 어법과는 다소 거리를 보이는 것이다. 또한 요즘의 호흡으로는 4마디로도 충분했을 비-보컬 테마 부분도 꼬박꼬박 8마디 이상으로 채워져 있다. 이는 포인트 안무에 의한 군무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전략이 곡에 안배돼 있음을 엿보게 한다. (프로듀서 신사동 호랭이는 곡의 콘셉트와 안무까지 함께 제안하는 특징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 곡의 B 파트(“몰라, 어떡해 난, 몰라, 미치겠어”…)는, 보컬 라인이 여러 파트로 분산돼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미 A 파트에서도 “그대 눈빛이”가 음정을 유지하는 동안 뒤에서 “나는 참 맘에 드네요”가 겹쳐 등장하지만, 후자는 필터 처리되어 효과음과 백업 보컬 사이에 위치한다. 즉 “나는 참 맘에 드네요”는 ‘메인 멜로디’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며, 음악방송의 가사 자막에도 괄호 처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B 파트는 다르다. “몰라”는 백업 보컬을 덧씌워 놓긴 했으나, “어떡해 난”과 하나의 멜로디로 느껴진다. 이 멜로디 라인의 “몰라”와 “어떡”이 한 옥타브 차이로 뛰어다니며 리듬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결과 청자가 인지하는 이 곡의 멜로디 라인은 4번째 단에 표기된 것과 같으며, 이를 한 명의 보컬리스트가 이어서 부르기엔 호흡을 끊을 공간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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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양상은 후렴에서 더욱 가중되는데, 청자가 하나의 멜로디로 인지하는 “롤리폴리 롤리롤리폴리”와 “날 밀어내도 난”은 서로를 밟으며 시작하고 있다. 마지막 “폴리”가 끝나기 전에 “날”이 시작되는데, 이를 한 사람이 소화하기 위해서는 130 BPM에서 8분 음표의 길이에 해당하는 0.231초 이내에 “리”를 발음하고 호흡까지 마쳐야 한다. 더구나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다가가서”의 “서”가 발음됨과 동시에 “롤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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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가요의 전통적인 ‘노래책’ 채보에 의해서 한 단에 이 두 파트를 동시에 기록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 곡이 솔로 가수용으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처음부터 여러 명이 나눠서 부르도록 쓰여진 곡인 것이다. 이 경우 곡은 노래방에서 한 사람이 독창하기 어려워진다. 아이돌 그룹을 위한 작곡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등장하게 된 패턴이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추후에 더 자세히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작곡가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결국 노래방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회자된다. 작곡가에게는 노래방의 저작권 수입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뜻도 있지만 , 노래방에서 사랑 받는 곡이 팔리게 돼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아울러 이는, 아무리 깊이 있는 작편곡과 섬세한 믹스를 해도 노래방으로 수렴되어야 장사가 된다는 맥락에서 자조적인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들은 이 곡이 그렇게까지 흥행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 그래서인지 후속곡 “Lovey Dovey”에서는 한 사람이 불러도 크게 무리가 되지 않도록 안배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보컬이 서로 겹치는 부분도 확연히 줄어들었고, 나름 호흡을 배려해 후렴구를 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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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추억은 미화되지만

결국 “Roly-Poly”에 의한 세대공감의 이상은 이뤄졌을까. ‘삼촌들을 위한’ 젊은 여성들의 전성기. 어떤 ‘삼촌’은 그녀들을 위해 인상적이고 매혹적인 곡을 만들어냈고, 어떤 ‘삼촌’은 그녀들을 통해 자아실현을 했으며, 어떤 ‘삼촌’은 그녀들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 그들이 모두 하나의 장에서 만난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케이팝의 (불쾌한 어감을 용서하시길) ‘근본없음’의 미학과, 아이돌 시대의 작법이 어우러졌다.

그런데 “누구나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담은 이 곡은 훗날 우리에게, 수많은 10대와 20대가 ‘어른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한, “뜨거웠고 순수했고 수줍던 시간”의 추억으로 남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추억이란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애매한 시간이 흐른 지금이라면, ‘섹시 코드’나 ‘양산형 아이돌’, ‘음악성’ 등의 동어반복 너머에서 다른 지점들을 짚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옷을 벗지 않아도 부당할 수 있는 세대 착취로서의 복고라든지, 아이돌 음악의 진정한 변천이라든지 하는 부분들을 말이다. | 미묘 tres.mim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