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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록밴드들 한국/일본 공연 횟수” – 피키캐스트

 

며칠 전 피키캐스트의 “주요 록밴드들 한국/일본 공연 횟수”란 게시글이 SNS를 통해 널리 공유되었다. 여기에는 오아시스가 한국에 3번 오는 동안 일본에는 33번이나 갔다거나, 한국에 한 번 밖에 안 온 라디오헤드가 일본에는 33번,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퀸은 일본에만 52번을 갔다는 등의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여기에는 ‘음반 많이 사줍시다’란 짧은 코멘트가 붙어 있고,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음반 시장이 작아서 ‘몇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한국에는 오지 않는다는 불만을 성토했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비교가 잘못되었다. 음반 시장의 규모가 투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절대적인 것만은 아닐 뿐더러, 일본과 한국의 음악 시장 규모는 팬들의 예상보다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라는 곳에서는 매년 세계 음악시장의 경향을 정리하는 보고서를 발행하는데 그 중에는 각 국가의 시장 규모를 정리해 발표하는 ‘수치로 보는 음악 산업(Recording Industry In Numbers)’이란 제목의 리포트가 있다. 지난 4월 1일에 공개한 이 보고서에서 한국의 음악 시장 규모는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2년 전 만 해도 12위였는데 순식간에 10위를 찍은 것이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유일한 10위권 국가다. 일본은? 보통 음악 시장에서 일본은 아시아로 분류되지 않는다. 왜일까? 일단 10위권에 속한 국가들의 규모를 살펴보자.

1위는 미국이다. 44억 7천만 달러 규모다. 2위는 일본, 33억 1천만 달러 규모다. 둘의 시장 규모는 대략 10억 달러 정도의 차이가 난다. 하지만 3위부터 9위까지의 국가들, 그러니까 일본과 한국 사이에 있는 지역 규모를 보면 이 둘의 지위가 얼마나 압도적인지 알 수 있다. 3위가 독일이고 4위는 영국이다. 2년 전까지 영국이 3위였는데 2013년 기준으로 독일이 앞질렀다. 독일은 13억 7천만 달러, 영국은 13억 달러 규모다. 영국과 독일을 합쳐도 일본보다 규모가 적다. 그 아래에는 프랑스,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브라질, 그리고 한국이 있다. 프랑스는 9억 5천 6백만 달러, 호주는 4억 3천만 달러다. 캐나다는 4억 2천 4백만 달러, 이탈리아는 2억 3천만 8백만 달러, 그리고 브라질은 2억 2천 8백만 달러다. 네덜란드를 제친 한국은 2억 1천 1백 달러 규모다. 1위와 10위의 차이는 42억 달러 이상이고, 미국과 일본을 합한 규모는 다른 나라들 전체를 합한 것보다 훨씬 크다. 쉽게 말해 현재 세계 음악 시장은 미국과 일본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이때 음악 시장은 음반 시장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여기에는 음반 외에 공연, 머천다이징, 음원 수익을 비롯해 초상권이나 브랜드 같은 음악 외 라이센스 권리도 포함된다. 사실 세계의 음반 시장은 2002년 이후부터 계속 하락하고 있다. 2013년을 기준으로 세계 음반 시장의 수익은 150억 달러 규모다. 그 전 해에는 156억 달러였다. 그런데 음반 시장의 수익 하락은 전 세계 사람들이 음반을 사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본에서 음반을 구입하는 경우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음악 시장의 세계 2위 규모면서 동시에 세계 음반 판매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앞서 일본의 음악 시장 규모가 33억 1천만 달러라고 했는데, 이것은 전년 대비 16.7% 하락한 수치다. 이 하락세의 가장 큰 이유는 일본에서 음반이 전처럼 많이 팔리진 않기 때문이다. 일본을 제외하면 2013년의 음반 시장은 차라리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오히려 0.6% 성장하기까지 했다(2013년 기준). 규모는 54억 유로인데, 12년만의 첫 성장세다. 내수 시장 규모가 세계 시장의 동향을 좌우할 정도인 일본과 이제 막 세계 음악 산업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한국을 단지 ‘가깝다’는 이유로 비교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저 많은 밴드들이 일본을 집중적으로 찾은 데에는 음반이 많이 팔린 이유도 있지만 공연에서 판매하는 머천다이징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한정된 수익을 보장하는 티켓보다 경우에 따라 티켓보다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음반, 티셔츠, DVD 같은 부가 상품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머천다이징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그 정도로 공연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밴드 음악을 소비하는 경향(한국에서 록/팝의 ‘지위’)이나 음악 팬들의 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한 공연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이번에는 순위가 아니라 성장률을 살펴보자.

위에서 일본의 시장 규모는 16.7% 하락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은 9.7% 성장했다. 프랑스(1.3% 성장), 호주(8.4% 하락), 캐나다(2.5% 하락), 이탈리아(8.3% 성장), 브라질(1.7% 하락)과 비교해도 10위권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일본과 한국의 지리적 거리는 이때 작동한다. 꽤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 시장의 매력도는 상당히 상승하는데, 그렇다면 밴드의 입장에서 일본에 가는 김에 한국에 들리는 건 선택보다 투자의 개념에 가깝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늘고 있는 내한 공연 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이 공연 수익을 내기에 좋은 지역이냐는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곳이지만 공연 수익이 검증되지 않은 시장이기도 하다. 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개런티가 높아진다. 개런티 상승은 티켓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소할 방법은 일단, 기다리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머천다이징 시장이 대규모로 커지거나, 머천다이징이 아닌 다른 수익 모델을 발명해내거나.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세계 공연 시장이 2015년에는 약 10억4000만 달러를 기록할 거라 예상한다. 세계 음악 산업의 주체들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는 유럽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와 같은 지역을 신흥 시장으로 여기고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연재 중인 [해외 뉴스 브리핑]을 참고하자) 실제로 이들 지역의 음악 시장 규모는 매년 상승하고 있다. 물류 유통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음원이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가 새로운 시장을 계속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 중에 가장 선두에 있는 국가다.

결론은 이렇다. 일본 시장은 여전히 압도적인 규모지만, 성장률을 보자면 한국도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 되고 있다. 한편 공연 시장은 매년 성장하고 있는데, 2002년 이전까지 음반이 공연 시장을 열었다면 지금은 음원이 공연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굳이 음반을 사지 않아도 마돈나나 U2가 한국에 올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내한공연 유치를 위해 약간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면, 다시말해 정 뭔가를 사야겠다면, 차라리 티셔츠를 사라. 동시에 한국 인디 레이블들의 머천다이징도 사라. 공연도 아니고 음반도 아닌 물건에 왜 돈을 쓰느냐고? 무슨 소리. 시장을 키우려면 지갑을 열어야 한다. 내 취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갑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열려면 제대로 열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이다. 내한공연에만 돈을 쓴다면 한국의 음악 시장은 결코 성장할 수 없다. 내수 시장을 키우는 문제에 대해선, 걸핏하면 음악계에서 동네북이 되곤 하는 아이돌 팬들에게서 차라리 배울 게 많을 것이다. 알바해서 모은 돈을 오빠들한테 갖다 받친다고 비웃지 말 것. 9.7%라는 한국 음악 산업의 성장률은 사실상 그들의 덕이니까. | 차우진 nar7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