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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mavera Sound Festival 2014

45년의 역사를 가진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Festival)도, 화려한 라인업과 실시간 유튜브 생중계로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코첼라(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도 아니다. 이름하야 프리마베라 사운드(Primavera Sound). 매해 5월 말에서 6월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힙내 풀풀 풍기는 록페스티벌이다. 2001년부터 시작해 내년이면 15회를 맞이하며 매해 10만 명 이상의 세계인이 모이는 유럽 최대 규모의 록페스티벌 중 하나지만, 한국에서의 인지도란 서울 어드메 위치한 웨딩홀 이름보다도 떨어진다는 슬픈 현실. 그래서 준비했다. 굿도 보고 떡도 먹고, 큰마음 먹고 다녀온 김에 이 미지의 세계에 한 번쯤 도전을 노리고 있는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간단한 팁들을 준비했다. 덤으로 개인적인 2014년 버전의 프리마베라 베스트 & 워스트도 덧붙인다.

1. 팔찌는 전날 미리 바꿔놓는 것이 좋다: 프리마베라는 3일간 열리는 페스티벌이지만 늘 전야제가 있으므로 전날부터 팔찌 교환이 가능하다. 전날은 대부분 사람이 몰리지 않으므로 큰 기다림 없이 신속한 교환이 가능하다. 공연 당일 메인 시간대에 딱 맞춰 룰루랄라 갔다가는 입이 쩍 벌어지는 팔찌 교환 행렬을 만나게 될 테니 요주의. 실제로 한 지인은 올해 첫날 팔찌 교환 줄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다가 보고 싶었던 한 팀을 그대로 날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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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Ban Stage | 와인들고 계단에 앉아 우아 떨며 봤던 까에따노 벨로주(Caetano Veloso) 무대

2. 마지막 날은 셔틀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 프리마베라는 페스티벌 기간 동안 자정에서 새벽 6시까지 1유로에 시내 중심가인 카탈루냐 광장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피크 시간대엔 줄을 좀 서야 하지만 순환이 꽤 빠른 편이기 때문에 무척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문제는 마지막 날은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 목/금/토 3일에 걸쳐 열리는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인 토요일은, 바르셀로나의 지하철이 심야에도 운행하는 주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아무런 정보 없이 신나게 나왔다가 밤바다 바람 휘몰아치는 새벽 4시 대로변에서 언제 올지 모를 나이트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 미련한 한국인의 전설을 전해 들은, 게 아니라 그게 바로 나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나이트버스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는 편이니 시간만 잘 맞추면 이것도 꽤 편리한 이동수단이다. 운임은 셔틀보다 조금 비싼 2.1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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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바로 직전까지도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다는 사실

3. 선글라스만큼 우산이나 우비도 필수다: 태양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4, 5월은 볕 반 비 반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고 한다. (이걸 모르고 갔다가 잡상인에게 7유로에 우산 강매 당할 뻔한 걸 일행이 다른 상인에게 3유로로 구해다 주었다. 유럽도 예외 없다. 잡상인에겐 무조건 딜이다.) 실제로 올해에는 페스티벌 동안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심지어 전야제 날에는 마치 99년의 인천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을 연상시키는 폭풍우가 한 시간 이상 몰아치는 바람에 공연 중단은 물론, 부지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중앙 식당가에 마련되어 있는 천막 아래로 피신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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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 맑은 하늘에 바르셀로나 햇살만 있으면 포토샵도, 인스타그램도 필요 없다.

4. 밤이 춥다: 정말 춥다. 진심 춥다. 미리 다녀온 이들에게 조언을 얻어 담요까지 부지런 떨며 싸갔건만, 그래도 추웠다. 특히 비가 많이 온 날 밤이나 새벽 2~3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온몸을 담요로 칭칭 감고 있어도 뼛속까지 밀려오는 한기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 정도였다. 조금 귀찮아도 보조 가방에 히트택이나 여분의 옷, 담요를 챙겨가는 것이 가녀린 도시 남녀의 육신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다. 게다가 이 페스티벌의 스케줄은 일반적인 페스티벌과는 달리 대부분 새벽 6시경에 마무리된다. 시작은 팔자 좋은 시에스타가 마무리된 오후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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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천다이즈 부스 | 밴드 관련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중고 LP나 자체 제작 티셔츠 등을 팔기도 한다

5. 관객들이 시끄럽다: 저어어어어어어엉말 시끄럽다. 당신이 생각하는 상식선의 관객 따위 저 멀리 던져버려라. 특히 사람이 많이 몰리는 큰 무대일수록 더더욱 강도가 세진다. 가운데로 좀 파고들면 음악에 집중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다닥다닥 붙은 채로 자기들끼리 둘러서서 얘기한다. 음악 소리가 커지면 목소리도 같이 키워 얘기한다. 슬로우다이브(Slowdive)고 모과이(Mogwai)고 소용없다. 정말 왜들 그러는 거니…. 첫날은 이 관객 지방방송 스트레스에 두통이 맥스를 찍었지만 이튿날부터는 어느새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긴 아니면 어쩔 건가. 나중에 주위의 의견을 종합해보니 이 소란스런 공연관람 매너는 비단 바르셀로나만의 문제는 아니고 유럽 전반의 공연 관람 문화 특징인 것으로 사료된다. 또 다른 머나먼 대륙 북미의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코첼라만 해도 공연이 시작되면 그래도 나름 공연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던 탓에 전혀 아무런 대비 없이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첫날이었다. 보살과 같은 너른 마음의 준비 없이 갔다가는 이 소음 스트레스 때문에 무대에 산더미처럼 차려진 산해진미고 뭐고 상을 뒤엎고 싶은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마음을 미리 단단히 먹고 가는 것이 좋다. | 글/사진 김윤하 soup_mori@naver.com / @romanflare

 


재미로 보는 분야별 [프리마베라 사운드 2014]의 베스트 & 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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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égine Chassagne, Arcade Fire | Jordi Vidal/Redferns (Getty Images)

베스트 라이브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명불허전. 정말 그냥 이 네 글자로 게임 끝. 주문부터 돈 셈까지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바 종업원 때문에 첫 곡 “Reflektor” 앞부분을 놓쳐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상태에서 객석으로 들어갔는데, 무대를 보는 순간 그 모든 분노가 단번에 풀렸다. 두 시간 동안 정말 한숨도 안 쉬고 달리는데, 곡이면 곡, 연주면 연주, 강약 중강약 확실한 전개까지 정말 오랜만에 요령 아닌 정석으로 잘하는 대형 록 밴드 공연을 봤다는 만족감이 대단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체 뭘 먹고 자랐는지 굳이 물어보고 싶은 전봇대 유러피언들의 거대 장벽과 현기증 날 것 같은 수다와 취객들의 진상과 거침없는 추위도 휘몰아치는 흥과 감동을 막을 수가 없었다. 진짜 한국 오라고 하고 싶다. 잘해주고 싶다. 세상의 중심에서 연아킴을 외치고 싶다. 캐나다라 혹시나.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바로 옆 무대인 바이스(Vice)에서 진행되고 있던 클라우드 나띵스(Cloud Nothings)의 열기와 인기에 흠뻑 취해 앞부분을 조금 놓친 게 정말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2013년에 열 손가락 안에 꼽았던 앨범 중 [Cupid Deluxe]가 있는데, 앨범으로만 들었을 땐 수줍고 섬세하게 들렸던 부분들이 라이브에서는 무척 과감하고 섹시한 터치로 그려져서 곱절은 매력적이었다. 이런 게 바로 귀찮고 힘들어도 굳이 라이브를 찾아보는 재미랄까. 데브 헤인스(Dev Hynes)의 그루비한 보컬은 물론 코러스 언니들, 각 악기를 연주하는 멤버들까지(특히 베이스!) 어떻게 해야 관객을 미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속을 다 들킨 것처럼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섹시하고 몽환적인 무드로 수천 명의 사람을 춤추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정말 너무 멋지지 않나.

다크사이드(Darkside)
공연 시간이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무대와 상당 부분 겹쳐서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하다가 “Bloodbuzz Ohio”가 너무 듣고 싶어서 결국 듣고 넘어갔는데 정말 엄청나게 후회했다. 도착했을 땐 이미 공연 종반부에 다다른 즈음이었는데 레이밴(Ray-Ban) 스테이지의 수변 무대가 주는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두 멤버의 실루엣만 남겨놓은 짙은 스모그와 조명, 이미 반쯤 취해 너울대는 관객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이 정말 압권이었다. 어디에서 멀어지고 어디에서 갑자기 가까워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라이브 전개가 어떻게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할 수 있는지, 정말 오랜만에 몸소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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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Ferreira | Dani Canto

워스트 라이브

스카이 페레이라(Sky Ferreira)
못할 줄은 알았지만 정말 이렇게 못할 줄이야. 나름 라이브 평가에 관대한 편이고 앨범도 꽤 잘 들었던 터라 그래, 그래도 이렇게 큰 무대에 서는데 못해도 정도가 있겠지 했던 내가 실수였다. 도중에 연주를 세 번이나 중단했고(그중 한 번은 합이 전혀 안 맞아서 자기들끼리 민망해하다 중단) 아니, 사실 무엇보다도 스카이 페레이라 자신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전주가 흐르며 음악에 몸을 맡겨 중2중2 흐느적거릴 때만 해도 예쁘고 느낌 있고 분위기 좋던 무대는 그녀가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급다운된다. 착각이겠지, 이게 제일 어려운 노래였겠지, 그러나 다시 한 번 믿음의 손길을 내밀어 봐도 그녀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찬물 뿌리기의 정도만을 걸었다. 더 비극적인 건 이 찬물 세례가 가창력의 부재 때문이라기보다는 페레이라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의 부족에서 온다는 점이었다. 그냥 멋모르는 인디 밴드맨들 사이의 전설로 남을 팜므파탈 역할에 충실해도 꽤 멋진 인생이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까지 온 이상 그녀가 그런 자리에 만족할 것 같진 않다.

워 온 드럭스(War on drugs)
지금까지 발매한 앨범들 모두 꾸준히 좋아하고 지지하는 밴드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정말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무대였다. 우선 냉정하게 말해 연주만 두고 보자면 결코 쉽지 않는 곡들임에도 무난히 잘 소화하는 편. 그런데 이게 이 밴드의 라이브가 가진 처음이자 마지막 장점이다. ‘음반처럼 잘 연주함’. 덤으로 관객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시크하다기보단 뭔가 기분 나빠지는 무대 매너. 끝. 심지어 페스티벌 내내 깜짝 놀랄 정도로 정시에 딱 맞춰 시작되던 타임테이블에서 유일하게 준비에만 30분을 잡아먹으며 결국 피치포크(Pitchfork) 무대 전체에 딜레이를 끼얹었다. 괘씸죄 추가. 무대 중 작성한 내 아이폰 메모장엔 이런 메모들이 남아 있었다. 아아 못해… 슬퍼… 추워….

 

베스트 스테이지

레이밴 스테이지(Ray-Ban Stage)
페스티벌 부지 정 가운데에 위치한 지중해를 등지고 있는 수변 무대. 관객 수용이 대여섯 배 정도 커진 올림픽공원 수변 무대를 떠올리면 얼추 맞다. 무대가 서향인 탓에 이른 타임에 공연하는 밴드들은 눈이 좀 부실 것 같지만, 스테이지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는 따스하게 내리쬐는 볕과 아름다운 바다의 조화로 무대에 선 밴드의 라이브가 실제보다 1.5배 정도 멋져 보이는 착각을 선사한다. 정말 일당백. 더불어 유일하게 계단식의 좌식 관람이 가능하게 되어 있어 끼니 때우는 시간에 놓치는 공연이 아쉬운 이들이나 늙고 병든 육신이 힘겨운 이들을 위해서도 매우 유용하다. 혼잣말 아니다.

워스트 스테이지

소니/하이네켄 스테이지(Sony/Heineken Stage)
서로 마주보고 있는 스테이지들로, 부지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큰 규모의 관객 수용이 가능한 무대들이기도하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무대 자체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기보다 그렇게 늘어난 수용 인원만큼 상식을 벗어난 민폐 관객들이 많아진다는 게 워스트로 뽑힌 가장 큰 이유다. 주로 한국 페스티벌을 즐기고, 해외로 나가도 일본 정도가 맥시멈이었던 관객이라면 거의 퓨즈가 나갈 지경에 이를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자세한 유의사항은 앞서 설명했으니 더 이상의 이야기는 생략한다. 상상만 해도 다시 멀미가 올라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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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칸 푸드 | 공연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부리또

베스트 푸드: 멕시칸 요리

역시 배신이 없는 멕시칸! 모든 종류의 랩, 살사, 칠리 모두 양, 맛 모두에서 합격점이었다. 가격은 7~9유로 정도. (멕시칸은 아니지만 바르셀로나의 명물이(자 최근 어쩐 일인지 이태원 경리단의 명물이)라고 하는 츄로스 점포도 매해 들어오는 것 같으니 꼭 체크해보자.)

워스트 푸드: 팟타이

진짜 한 입 씹고 너희가 태국을 아냐고 삿대질하면서 소리 지르고 싶었다. 땅콩소스가 뿌려진 노끈 같은 그 물체를 배를 채우기 위해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 없었던 버려진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건배. 부실한 솥 탓인지 저질 면 탓인지 종이그릇에 담아 받아들자마자 급격히 식어버린 점도 마이너스 포인트. 가격은 7유로였다. 차라리 우산 파는 잡상인에게 양손으로 공손히 갖다 바치고 싶은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