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아이쿠.” – “좋은 날”, 아이유 (2010) MBC 뉴스데스크 캡쳐, 2011년 1월 15일 ⓒ 문화방송 아이돌은 흔히 ‘우상’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우상은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공물로서의 성격도 가진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요계의 스타들은 주로 “오빠”로 불렸고, 스타와 팬, 비평가와 ‘리스너’ 사이에는 어떤 수직적 관계가 존재했다. 그 속에서 아이돌의 등장은 자연스러웠다. ‘오빠’가 조금 더 숭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된 것이었다. 이런 형태가 뒤집어진 것은 2007년 무렵의 일이었다. 1. 삼촌은 왜 강은경의 석사 논문 [여성 아이돌 그룹의 30-40대 남성 팬덤에 관한 연구](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 2010년)에는 31세에서 48세까지의 소녀시대 팬들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삼촌팬’ 담론은 다양하게 거듭되어 왔기 때문에 모든 논의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증언은 어떠한가. “인터넷으로 그렇게 음원 내려 받는 것은 처음 해봤어요. 소녀시대 팬이 되기 전에는 mp3가 뭔지도 몰랐어요.” “남의 블로그를 가본 적도 없고 포털사이트에서 자기가 원하는 자료만 받고 내가 원하는 업무, 그러니까 업무에서 필요한 것만 받고, 내가 보고 싶은 뉴스만 봤지. 내가 취미상으로 인터넷으로 뭘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 고민고민하다가 소녀시대 공식 홈페이지를 먼저 갔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희를 볼 때 겉으로는 나이가 몇인데 그러냐 하지만 (…) 취중진담이라고 이렇게 술 한잔 하고 보면 부럽다고 하는 사람도 분명 있어요.” “내가 친구들과 다르게 소녀시대에 열광하고 좋아하면서 내가 친구들보다 젊게 사는 느낌, 문화적 우월감 같은 걸 느끼게 돼요. 친구들이 모르는 걸 내가 안다… 그래서 20대 애들이랑 내가 소통하고 있고 (…)” 요약하자면 생활에 지치면서 억눌린 문화생활의 욕구가 아이돌 팬 활동을 통해 해소되고 있으며, 그런 ‘삶’을 가진 이들을 주위의 또래들은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들과 부분적으로 겹쳐지는 세대에 관해, 영화감독 조원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여간 이 세대는 뒤쳐지는 걸 정말 싫어한다. 스스로 특별하고, 선배들처럼 촌스럽게 살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DSLR에 낚인 거다. 사진기자를 할 것도 아닌데 수백 만 원짜리 카메라 사서 집에서 강아지 찍고 있다.” (‘015B 세대’, 나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 한국일보 | 2012년 8월 3일) 197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2007년 당시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이었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다고 여겨지는 1990년대에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냈고, 386 세대나 정치 투쟁과도 거리를 두었다. 선배 세대들보다 세련되고 문화적으로 고양된 삶을 누렸으며 또한 그런 삶을 이어가고자 했던 세대였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활동에 매몰되어 각박하게 살아온 그들은, 어느 날 문득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선배 386 세대보다 그다지 우아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마치 ‘엄마처럼 살진 않겠다’는 다짐처럼 선배들과의 차별화에서 정체성을 찾던 그들이 느꼈을 상실감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런 ‘어른의 사춘기’에 그들 앞에 아이돌이 나타났다. 아이돌은 좌절되어온 문화적 욕구를 손쉽게 충족시켜 주는 수단, 즉 DSLR 카메라였다. 잃어버린 청춘을 되살려주는 화사한 기능까지 달린. 그렇게 성인 남성 팬의 급부상으로 여성 아이돌의 약진이 이뤄졌다. 10대 여성 팬들이 남성 아이돌을 지탱한 1차 아이돌 붐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이었다. 2. 이모는 어디에서 “아줌마팬”, “이모팬”, “삼촌팬”을 네이버 뉴스에서 각각 검색한 결과이다. 2000년부터 등장한 “아줌마팬”은 2009년, 2006년부터 등장한 “이모팬”은 2011년을 각각 정점으로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모습이다. 반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관련 기사로 2007년에 5건이 처음 등장한 “삼촌팬”은, 2008년 18건, 2009년 97건에 이어 2011년 907건으로 급증한 뒤 근래에는 매해 1,500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아줌마팬”은 해외 팬덤과도 많이 연관되는데, ‘삼촌’이나 ‘이모’가 환기하는 가족주의를 염두에 둘 때 “삼촌팬”의 성장은 더욱 괄목할 만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삼촌팬’이 연상 여성 팬층에 뒤이어 2007년에 발명된 어휘라는 점이다. ‘이모팬’들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 10대 시절 ‘빠순이’라는 폭격을 맞으며 1차 아이돌 붐을 격하게 경험하고 돌아온, 혹은 그곳을 떠나지 않은 그들이었다. 그들은 많은 것을 터득하고 있었다. 사생과 조공을 알고 있었고, 팬질을 위해 웹사이트 만들기를 배우거나, 고가의 카메라를 사들이거나, 사람들을 조직하고, 필요에 따라선 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거나 자동차를 때려 부술 줄도 알고 있었다. 느닷없이 찾아온 핑크빛 열정 앞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당황한 삼촌팬들은, 동세대의 베테랑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에는 아이돌을 깎아내리는 형태의 애정도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신화창조의 위엄”을 검색해보면, “어떠한 안티보다 신화를 잘 깔 수 있는” 신화 팬클럽 ‘신화창조’의 에피소드들을 발견할 수 있다. 1998년 신화의 데뷔 후 15년을 훌쩍 넘기면서 소녀 팬들도 성장했다. 소녀적 동경과 열정도, 20대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여가 생활로 바뀌었다. ‘오빠들’에게 가까이 가는 여성 연예인에게 포화를 쏟아 붓던 그들이, 젊은 여성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멤버에게 “딸이다, 딸!”이라고 외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이모팬’들의 부상과 함께 ‘조공’ 문화도 다소 달라졌다. 아이돌의 생일에 고가의 오토바이나 악기, 액세서리를 선물하던 과거와 달리, 현장의 스태프들에게 도시락을 돌리는 형태의 활동이 흔해진 것이다. 2008년 빅뱅의 탑과 함께 활동한 엄정화가 탑 팬들이 준비한 도시락을 먹은 일을 즐거운 기억으로 이야기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또한 팬덤에 의한 아이돌 숲 조성 및 기부 등이 흔해진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팬들이 아이돌에게 수직적인 애정을 바치기보다는 함께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고자 하고, 또한 아이돌의 커리어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심리를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아이돌 새내기였던 남성들에게도 힌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멤버의 외모에서 비롯된 장난스러운 별명, 낮은 인지도를 일컫는 ‘듣보’라는 별명, 오랜 활동 중단을 두고 “SNS에서 활동한다”고 하는 등의 행동이 그 예이다. 물론 이는 인터넷 문화의 발달과도 관련이 있고, 골수 팬덤과 관심층, 일반인의 경계가 모호한 남성 팬덤의 특징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돌을 떠받들기보다 짓궂게 놀리며 관심을 갖는 이런 방식은, 아이돌과의 거리감을 줄이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남성이 어린 여성 아이돌을 좋아할 때 겪어야 하는 젠더 가치관의 갈등을 완화해주기도 했다. 아이돌을 ‘돌보고’, ‘데리고 노는’ 형태의 팬 활동은 아이돌을 한없이 높은 곳에 두고 올려다보는 과거와 결별을 고했다. 팬과 거의 수평의 존재, 경우에 따라서는 팬보다도 낮은 존재로서의 아이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한 시대는 삼촌팬이 큰 심리적 불편 없이 아이돌 세계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또한 삼촌팬에게 맞춰가는 아이돌 산업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여성 팬덤의 진화가 있었다. 3. 조카는 어떻게 아이돌들은 다양한 전략으로 삼촌팬들의 마음에 들고자 노력했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티아라의 복고는 ‘삼촌들’이 직접 경험한 과거, 혹은 한국이 경험한 적 없는 ‘루츠(roots)’의 이미지를 무기로 하여 문화적 고양을 꿈꾸던 과거의 세대에게 어필하였다. 포미닛의 “Hot Issue”(2009년 6월), 레인보우의 “Gossip Girl”(2009년 11월) 등은 칙릿(chick-lit) 코드를 활용하여 일견 여성층에게 공감을 유도하는 듯 보이나, 이미 익숙해진 ‘신문화’였던 칙릿은 다소 허세스러운 싸이월드 사진첩 문화와 함께 성인 남성층의 납득 범위 내에서 ‘이런 걸 좋아하는 요즘 여자애’의 표상으로 여성 아이돌을 세일즈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무엇보다 뜨거운 이슈는 페도필(pedophile, 소아성애) 논쟁이었다. 2009년까지 노골적인 섹시 코드를 시도한 여성 아이돌의 곡은 사실 많지 않았다. 포미닛의 “Hot Issue”,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Abracadabra”(2009년 7월), 티아라의 “Bo Peep Bo Peep”(2009년 11월) 정도가 두드러질 뿐이었다. 그런데 2014년 현재의 기준으로 소녀적이라 해도 좋을 당시의 여성 아이돌들과 관련해 페도필 논쟁이 있었다는 것은, 7년 사이에 섹스어필의 수용 한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을 보여준다. 삼촌팬들이 페도필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 글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 논란은 명쾌한 해답이 내려지지 않고 마무리되었다. “Abracadabra” 당시 멤버 전원이 성인이었던 브라운 아이드 걸스, 최연소 멤버가 성인이 된 2013년에야 본격적인 섹시 콘셉트를 시작한 걸스데이 등은, 여전히 ‘어린’ 여성 아이돌의 섹스어필이 어느 정도의 윤리적 부담을 진다는 사실을 내비친다. 팬덤 내부에서도 성애적 이미지를 탈색하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아이돌 멤버에 대한 노골적인 성적 욕망의 표현은 점차 ‘일베’로 유폐되었다. 이 논란은 결과적으로 한 가지를 바꾸었다. 방어기제로 시작된 ‘삼촌’이란 명명이, 섹스어필의 공격성이 갖는 어떤 ‘위험’을 희석해낸 것이다. 미성년자도 포함된 여성 아이돌의 섹스어필에 대한 남성 팬덤의 모범 답안은 “섹시하지만 섹시하진 않다”에서 “섹시하지만 섹스할 상대가 아니다”로 옮겨갔다. 그 대답을 누가 하는지에 따라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 대답이 의미하는 것은 자연인으로서의 육체성을 벗어난, 오직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는 아이돌이었다. 일종의 가상 캐릭터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윤리적 부담은 실체에 대해서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섹스어필의 허용 범위를 대폭 올려놓는 결과를 낳았다. 4. 조카는 무엇을 여성 아이돌의 섹스어필에 질적인 변화가 생겨난 것은 2010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애프터스쿨의 “Bang!”(2010년 3월)이 군악대의 퍼포먼스라는 정당화를 제안한 것이다. 섹시한 매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성적인 흥분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닌 ‘쇼’라는 것이다. 섹스어필과 섹시 퍼포먼스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작은 균열이었다. 어떻게 보면 창녀와 스트리퍼, 쇼걸, 댄서는 모두 다른 직업이라는 식의 구분일 수도 있고, 여성적 매력을 선보이는 피겨스케이터가 여성이라기보다 스포츠 선수라는 식의 구분일 수도 있다. 여전히, 그런 구분을 납득할 것인지 ‘눈 가리고 아웅’으로 볼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또한 직접적인 섹스어필의 수용 한계를 시험하며 경계선을 밀어올린 나르샤와 가인 등이 있고, 핫팬츠와 섹시 안무를 소녀적 콘셉트로 포장해 가면놀이를 이어간 군소 아이돌들도 있다. 그러나 육체성과 성애의 굴레를 표면적으로 벗어난 여성 아이돌들은 성적 표현의 수위를 한참이나 올려놓았다. 과거의 여성 연예인들에게 섹스어필은 지금보다 혹독한 양날의 검이었다.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섹시 컨셉트는,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거의 독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군인 전용’이라는 비아냥이나 집창촌 지명에서 비롯된 별명이 따라붙기 십상이었고, ‘결혼 상대로 부적합한’ 그들은 지속적인 애정을 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결코 ‘1류’가 될 수 없었다. 그런 모욕적 시선과 처우를 피하는 방법은 ‘가요계 요정’이 되어 성을 박탈당한 인형이 되는 것뿐이었다. 요컨대 성녀 아니면 창녀였다. 1990년대 이후 그 틀을 벗어날 수 있었던 사례가 엄정화와 이효리 외에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씨스타와 포미닛의 행보는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거의 과할 정도로 섹시한 두 그룹은 모두 음악 활동만으로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이뤘고, 명백히 군부대 밖에서 유효한 톱스타의 대열에 올랐다. 특히 의도적 ‘싼티’ 속에 강렬한 섹스어필을 녹여낸 포미닛의 “이름이 뭐예요?”(2013년 4월)는 ‘싸구려’로 전락하지 않고 당당하게 메인스트림을 휘어잡는 저력을 보였다(이 곡은 11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방송국에서 허용하는 섹스어필이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하던 아이돌이, 이제는 ‘창녀’로 분류되지 않고 어디까지 섹시할 수 있는가, 혹은 어디까지 섹시하면 오히려 압도적일 수 있는가를 시험하고 있는 셈이다. 비범한 섹시함이 직접적 섹스어필을 압도할 때 성녀/창녀 이분법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일찍이 마돈나가 보여준 방법론이다. 2000년대까지 성녀/창녀 이분법으로 여성을 바라보던 우리 사회의 가치관에, 어쩌면 지금에야, 아이돌에 의해, 균열이 생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린 여자’의 섹스어필을 ‘소비’하는 ‘삼촌’들에 의해 이뤄졌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꽤나 흥미로운 아이러니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을까. | 미묘 tres.mim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