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 Hangover (feat. Snoop Dogg) | 2014

 

싸이(Psy)의 성공이 음악 때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싸이와 YG일 것이다(싸이의 음악을 폄하하거나 논의할 가치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강남스타일”은 뮤직비디오에서 드러난 한국적인 유머 코드와 말춤이 우연하게 거대한 밈(MEME)이 되어 거대하게 성공했다. 이미 한국에서 검증된 밈을 재활용한 “젠틀맨”은 의도할수록 끼기 어려운 ‘know your meme’의 세계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1년 2개월이 지났다. 절치부심을 기대하며 “Hangover”를 들을 차례다.

요즘 대부분의 케이팝처럼 “Hangover” 역시 콘셉트가 먼저 나온 것처럼 보인다. 아마 전략회의에서 스눕 독(Snoop Dogg)에게 한국의 음주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먼저 나온 후 섭외하고 곡을 만들지 않았을까? 이 곡의 뮤직비디오 스틸컷이 처음 유출된 건 곡이 공개되기 다섯 달 전인 1월의 일이다. 의심을 품고 찬찬히 곡을 듣다 보면 본 가설에 확신이 생긴다. “강남스타일”은 EDM의 요소를 갖춘 내수용 댄스 가요였다. “젠틀맨”은 전형적인 EDM 클론에 싸이를 씌운 트랙이었다. “Hangover”는 힙합에서의 트랩과 EDM에서의 트랩이 화학보다 물리적으로 합쳐진 모양새다. 스눕 독의 벌스가 진행되는 부분은 힙합 트랩 비트에 가깝고 나머지 파트는 EDM의 장치를 빌려왔다. 분위기를 전환하는 브릿지, 꽹가리가 들어가는 훅, 그리고 “Hangover”가 반복되며 적당히 고조되는 빌드업까지. 여기서 가장 재미없는 부분은 스눕 독의 랩 벌스다. 스눕 독의 랩은 이 노래가 ‘숙취’에 관한 노래라는 걸 설명하는 나레이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되려 곡의 고양감을 주는 요소로 싸이의 랩이 더 흥미롭게 들릴 정도다. 특히 세 번째 벌스가 시작되는 부분은 곡이 쌓아 놓은 긴장을 어이없게 무너뜨린 후 온갖 파트가 등장한 후 산만하게 끝을 맺는다. 온전히 힙합 트랩 트랙이었다면 랩과 무드로 곡의 중심을 이끌고 나갈 수 있었을 테지만 그 전에 EDM 장치가 만든 롤러코스터식 긴장이 곡을 꼭대기에 올리자마자 하강 없이 착륙시킨다.

싸이의 음악을 함께 만드는 유건형의 프로듀싱이 전환기를 맞은 건 YG와 계약서를 쓴 후다. 기존 싸이의 음악에 글로벌 트렌드라는 날개가 달리고 퀄리티 있는 사운드라는 다리가 생겼다. 하지만 다른 YG 프로듀서만큼 장르에 깊게 천착하진 않았는데 이는 싸이라는 가수에게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힙합 기반의 프로듀서가 아닌 샘플링 CD의 룹으로 가요를 작곡했던 프로듀서의 근본적인 한계일 수도 있겠다. 해외 강제 진출 후 정면 돌파를 택한 본 트랙에서 가장 아쉬운 건 그 점이다. 몇 가지 재기 발랄한 부분은 있으나 기존에 발표된 트랩에 비해 인상 깊은 부분도 기억에 남는 부분도 없다. 트랩의 필수합성요소인 모래로 채워진 농구공 같은 808 킥 소리도 없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이번에도 뮤직비디오다. 아이디어는 흥미롭다. 이제 억지로 밈을 만들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싸이는 새로운 춤을 개발하는 대신 SNS와 쇼프로그램을 통해 흘린 자신의 세계를 선보이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집중한다. 분량으로 스눕 독의 곡에 싸이가 피쳐링했다고 폄하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폭탄주가 도미노를 타고 컨디션과 컵라면으로 해장을 하는 이 세계는 싸이라는 캐릭터가 만든 세계다. (스눕 독의 세계였다면 술 대신 마리화나가 등장하지 않았을까?) 이 세계에 스눕 독이 놓여졌고 이 조합만으로도 그럴듯한 유머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갱스터랩의 대부에서부터 “Sensual Seduction” 뮤직비디오에서 망가지던 모습, 스눕 라이온(Snoop Lion)과 스눕질라(Snoopzilla)까지. 스눕 독이라는 캐릭터를 알고 있는 이에게는 흥미로운 콘텍스트가 펼쳐질 것이다.

이제 “강남스타일”과의 비교는 그만두는 게 옳다.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뛰어 넘는 건 불가능하다.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 아이튠스 뮤직 차트와 유튜브 전체 조회수 1위를 차지한, 21세기 이후 가장 히트한 곡이다. (빌보드 차트? 요새 누가 그런 걸 보지?) 곡만의 힘이었다면 원 히트 원더로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이 메인스트림 팝 시장에서 소비하는 건 캐릭터다. 유머러스하고 희소성 있는 캐릭터를 구축한 싸이가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걱정스러운 건 음악이다. 정신 나간 파티 애니멀 캐릭터로 성공한 LMFAO도 탄탄한 파티튠이라는 팬티를 입고 있었다. 아직 파트너쉽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싸이와 유건형은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을까? | 하박국 havaqquq@younggiftedwa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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