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epta – That’s Not Me (feat. JME) | Konnichiwa (2014) 유난히 복잡한 런던 그라임 씬에는 우리 어머니의 핸드폰 부가서비스 가입내역처럼 두서넛 개 크루에서 중복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은데, 토트넘의 스켑타(Skepta)와 JME(‘제이미’) 형제는 와일리(Wiley)가 이끄는 롤 딥(Roll Deep) 크루의 멤버인 동시에 보이 베터 노우(Boy Better Know) 크루의 실질적 대장이기도 하다. 형제는 그라임 바닥에서는 손가락에 꼽을 만한 스킬과 네임밸류를 자랑하지만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편은 아닌데, 그라임의 일렉트로팝-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스켑타가 [Doin’ It Again](2011) 앨범으로 약간의 돈맛을 보았음에도 롤 딥/보이 베터 노우의 동료 와일리나 디지 라스칼(Dizzee Rascal), 틴치 스트라이더(Tinchy Stryder)같은 이들의 전향(?) 후 성적에는 비할 것이 되지 못했다. 한편 동생 JME는 두 장의 앨범을 낸 이후 보이 베터 노우 브랜드를 들고 의류사업은 물론이거니와 뜬금없이 SIM카드 모바일 사업에 뛰어드는 등 음악을 제외한 영역에서 기묘한 모험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서도 와일리나 리썰 비즐(Lethal Bizzle), 메리디언 댄(Meridian Dan)과의 협연을 포함한 몇 장의 싱글로 클라스만은 녹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싱글 “96 Fuckries”(2011)는 과히 명불허전이었으니 꼭 들어보시길. 참고로 보이 베터 노우 ‘모바일’의 홈페이지는 이제 접속조차 되지 않는다. JME를 대동한 스켑타의 새 싱글, “That’s Not Me”는 3월에 세상의 빛을 보았다. 상반기도 다 지난 지금에서야 굳이 넉넉치 않은 [weiv]의 트래픽을 빌어 소개하는 것은 이 곡이 2000년대 초 UK 개러지에서 갈라져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의 그라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트랙이기 때문이다. “That’s Not Me”는 변변한 장비조차 없어서 헤드셋으로 녹음을 하던 올드스쿨 그라임의 거칠고 차가운 (‘grimey’, 또는 ‘eski’) 비트와 특유의 분절감 있는 플로우를 되돌려낸다. 많이 봐 줘도 디지 라스칼의 [Maths + English](2007)를 마지막으로 싱글 차트의 가시거리 안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사운드다. 몇 장의 애매한 팝-랩 싱글을 뒤로 하고 내놓은 믹스테이프 [Blacklisted] (2012)가 호의적인 평가를 얻어낸 것이 커리어상에서 일종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신인들의 데뷔앨범이 우후죽순 솟아났던 브리티시 랩의 시장사정이 예전같지 않은 가운데, ‘연내 발매예정’이라지만 필시 내년 하반기에라도 발매되면 다행일 듯 보이는 스켑타의 새 앨범이 이 정도 퀄리티만 유지해준다면 그라임 팬으로서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내가 음악을 만들지 않는 날은 오지 않을거야, 나는 ‘silent’가 아니거든”이라는 JME의 마지막 라인은 유난히 기억에 남고, 어쨌든 나는 이 곡을 올해 상반기 최고의 트랙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밖에 없다. | 임승균 obstackle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