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이자 칼럼니스트, 웹진 [아이돌로지]의 편집장이자 [weiv] 필자 등으로 활약하고 있는 미묘가 진행하는 연간기획. 한국 아이돌의 활동 양태와 아이돌 팝의 특성이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특수성과 여건, 아이돌의 근본적인 조건 하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변천해왔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기획이 될 것이다. | [weiv]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누가 제일 예쁘니?” – “거울아 거울아”, 포미닛 (2011) 베리굿(Berry Good) – “러브레터” 뮤직비디오 ⓒ 아시아 브릿지 두 말 할 나위도 없이, 한국의 아이돌은 일본의 큰 영향을 받았다. 영미권의 틴아이돌(teen idol)이 발아한 지 오래지 않아 일본은 1970년대부터 독자적인 아이돌 문화를 구축했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1960년대의 그룹사운드 붐을 아이돌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특히 1990년대를 한국 아이돌의 시작으로 본다면 제이팝의 그림자는 짙게도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틴아이돌과 ‘아이도루(アイドル)’가 다르다고 한다면, ‘아이도루’와 ‘아이돌’도 또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특히 두드러지는 것 중 한 가지는 가사의 정서라 할 수 있다. 애틋한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가 일본 아이돌의 정서를 확립했다고 본다면 몇 가지 정조가 눈에 띈다. 대체로 달콤한 애정 표현, 극도로 소녀적인 캐릭터의 표출, 그리고 닿을 수 없는 애틋함 등이 그것이다. 이 중 특히 흥미로운 것은 애틋함의 정서이다. [아이돌 공학(アイドル工学)]의 저자 이나마스 타쓰오(稲増龍夫)에 의하면 마츠다 세이코는 ‘겉과 속이 다른’ 80년대 아이돌을 대변하며, 이 시기의 팬들은 허구를 전제로 아이돌을 소비했다고 한다. 이미 가상세계의 존재인 ‘캐릭터’로서의 아이돌은 팬인 ‘나’와 결코 닿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돌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할 때, 팬은 아이돌에게 직접 가서 닿지 못하는 자신의 애정을 가사에 이입한다. 천국, 천사, 바다, 여행 등의 비일상을 소재로 한없이 애틋한 소녀성을 노래하던 마츠다 세이코는 그래서 더욱 ‘아이돌적’이다. 이를 그대로 물려받은 사례로 국내에서는 아이돌 시대보다 조금 앞선 강수지를 생각할 수 있다. “어두운 / 마음에 불을 켠 듯한 이름 하나 / 이젠 무너져버린 거야”란 가사를 남긴 “흩어진 나날들”,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모든 것이 과거의 꿈이었다는 듯한 “시간 속의 향기”(두 곡 모두 강수지 2집 ‘흩어진 나날들’ 수록, 1991년, 작사 강수지, 작곡 윤상) 등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정작 1997년의 1차 아이돌 붐은 이런 정서를 물려받지 않은 듯 보인다. 이는 아이돌을 ‘덧없는 꿈’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일본 특유의 정서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 대중의 정서가 그런 ‘답답함’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또는, 이미 한국의 대중가요에서 애틋함의 정서가 (어쩌면 더욱 진득한 형태로) 발현되고 있었고, 새로운 감성을 요구받은 아이돌은 이를 등짐으로써 차별화를 보일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당시 가장 ‘핫’한 ‘젊은 음악’이었던 힙합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사이버 세계의 이미지를 이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구도는 2차 아이돌 붐에서도 이뤄진다. 이 연재의 첫 회에서 살펴본 것처럼, 눈물과 슬픔을 쏟아내는 신파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화사한 아이돌이 재등장한 것이다. 애정 표현과 캐릭터 표출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1세대 아이돌은 애틋함보다는 다른 두 가지 정조, 즉 달콤한 애정 표현과 극도로 소년/소녀적인 캐릭터 표출을 그 무기로 가져왔다. 핑클은 “내 남자친구에게”(1998년 5월, 작사 김영아)에서 “너를 반하게 할 생각에 난생처음 치마도 입었”다며 소녀의 이미지를 제시한 뒤 “내 모든 걸 원한다면 너에게 줄게”, “나의 사랑은 너를 위한 거야”라고 직접적인 애정을 고백한다. “영원한 사랑”(1999년 5월, 작사 김영아)은 “네게 주고픈 소망들을 조금은 알 수 있겠니”, “내 작은 가슴 가득 너만을 사랑해”라며 두 가지 요소를 조합한다. S.E.S.는 데뷔곡 제목부터 “I’m Your Girl”(1997년 11월)이다. 한편 남성 아이돌인 H.O.T.와 젝스키스는 반항아, 장난꾸러기 등의 이미지를 통해 캐릭터를 표출하다가, 간간이 후속곡에서 직접적인 애정 표현을 쏟아내 팬들을 ‘조련’하곤 했다. 물론 이들이 표현하는 캐릭터는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소년의 이미지로, 일종의 이상적인 이성상을 제시함으로써 이성애적 어필을 동시에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가지의 축으로 한국 아이돌팝의 정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를 전제로 현재의 아이돌팝이 담고 있는 가사들을 살펴보면,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기준으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청자가 이성, 연인 2) 청자가 자기 자신 3) 청자가 동성, 동료 가사의 보다 구체적인 주제는 이 분류 속에 나뉘어 들어간다. 즉, 1) 청자가 이성, 연인인 경우 직접적인 애정고백, 유혹, 애정표출, 고별, 이별 거부, 복수 등이 해당한다. 2) 청자가 자기 자신인 경우 캐릭터를 주로 표현하는 자기 선언적 내용이 되며, 특히 외모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이성애적 어필이 이뤄진다. 3) 청자가 동성, 동료인 경우 대화형의 곡이 되거나, 파티(“다 같이 놀자” 류), 혹은 사회적인 내용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 분류들이 적당히 배합된 곡도 많고, 이 중에는 아이돌이 아니어도 노래할 수 있는 주제들이 많다. 그러나 이처럼 주제와 정서를 분류한 뒤 ‘가요적’인 성향이 강한 부분들을 추려낸다면, 아직 다소 불분명한 아이돌팝의 범주를 좁혀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의 도표를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주된 정서 중 1)은 직접적인 애정표현에, 2)와 3)은 캐릭터 표출에 각각 집중하는 듯한 양상을 볼 수 있다. 청자의 삭제와 자기묘사 그런데 실제 가사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주로 2008년경부터의 일인데, 가사 속에서 청자나 대상이 삭제되는 현상이다. 일반적인 노래 가사는 노래하는 ‘화자’가 있고, 노래되는 ‘대상'(소재)이 있으며, 노래 안에서 종종 2인칭으로 지칭되는 ‘청자’가 있다. 그리고 특히 사랑 노래에서 대상과 청자는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즉 “너를 사랑해” 같은 형태다.) 그러나 이들 중 하나, 혹은 둘 모두에 대한 묘사가 줄어들면서, 그 정체를 불분명하게 얼버무리거나 삭제 혹은 대체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원더걸스의 “So Hot”(2008년 5월, 작사 박진영)의 경우 “왜 자꾸 쳐다보니 왜 / 내가 그렇게 예쁘니”라는 첫 두 줄을 제외하면, 화자가 말을 건네는 청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상대방의 존재를 전제한 이 구절에서조차 청자는 익명으로 남는다. 특정한 연애 대상도 아니고, “남자들”도 아닌 것이다. 아예 2인칭 대명사가 등장하지 않는 이 곡은, 그저 “난 너무 예뻐요”, “난 너무 매력 있어”를 외칠 뿐, 그것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전혀 명시되지 않는다. “So Hot”이 너무 극단적인 사례라면, 같은 달에 발매된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 (Replay)” (작사 김영후)를 보자. 2인칭으로 들리는 “누나”를 3인칭으로 활용하여 청자의 삭제를 교묘하게 위장한 경우다. 제목이자 후크인 “누난 너무 예뻐”만으로는 “누나”가 호칭인 듯해 마치 “누나”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곡은 가사에 “누나”가 등장할 때마다 곧이어 “그녀”를 덧붙임으로써 화자가 “누나”에게 말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별개로 존재하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누나”에게 상담을 구하면서 조공 삼아 “누난 너무 예뻐”라고 아부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 곡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누나”의 예쁨에 관한 노래임에도 그 대상에 대한 묘사가 지극히 제한적이란 것이다. “누난 너무 예뻐”와 “아름다운 그녀”뿐이다. 대상이 어떤 매력을 지녔는지 구체적인 묘사가 전혀 없다. 그에 비해 오히려 화자 자신에 대해서는 “어린”, “그녀와 함께 있는”, “So Cool”, “착한” 등으로 수식하고 있다. “So Hot”의 가사를 다시 살펴보면, 청자는 불분명하고 대상은 자기 자신임을 알 수 있다. 가사의 대상이 이성이 아니라고 해서 놀라울 것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청자의 존재가 지워진 자리에 자기 자신이 들어선다는 점이다. 2차 아이돌붐 이후의 가사들은 유독 자기묘사가 두드러진다. 아래의 사례들을 보자. – “달콤한 초콜릿처럼 / 녹아든 내게 빠져봐”, “섹시한 눈빛과 뜨거운 몸짓에 / 좀 더 다가와” 쥬얼리 – One More Time | 2008년 2월 | 작사 이민우, M. Soncini, C. Sannie – “아무렇게나 살짝살짝 바른 Rouge”, “너보다 잘록한 허리, 쫙 빠져 미끈한 다리” 포미닛 – Hot Issue | 2009년 6월 | 작사 신사동 호랭이, HUU –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눈물은 나오는데 활짝 웃어 / 네 앞을 막고서 막 크게 웃어” 아이유 – 좋은 날 | 2010년 12월 | 작사 김이나 – “확 바뀐 Fantastic Magical /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다른 나는 Fly Girl” 달샤벳 – Supa Dupa Diva | 2011년 1월 | 작사 E-Tribe – “너무 이뻐 보여 내가 뭐를 입든지 / 너무 섹시해 보여 굳이 노출 안 해도 / 아찔한 나의 하이힐, 새까만 스타킹” AOA – 짧은 치마 | 2014년 1월 | 작사 용감한 형제, 차쿤 주로 여성 아이돌에게서 두드러지는 현상이지만, 사랑 노래로서 청자를 이성으로 두고 있음에도 유난히 자기묘사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대상의 행동이나 애정 때문에 화자가 취하게 되는 행동의 서술(“자꾸 떨려요, 매일 그대 생각해요”, “몰라요”, 에이핑크, 2011년 4월, 작사 슈퍼창따이)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이다. 이는 유혹을 주제로 하는 곡에서 유혹의 전제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좋은 날”의 경우처럼 노골적으로 자신을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시선도 발견된다. 마치 화자가 분열하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다. 걸스데이 – 한번만 안아줘 아이유 – 하루 끝 (*본 뮤비가 시작되는 17분 15초에 시작점을 맞췄다) 관람을 위한 초대장 가사 속 대상과 청자의 삭제는 듣는 이의 몰입을 돕는다. 애정을 표현하는 가사 속 대상의 모습이 불분명해짐으로 인해 듣는 이는 자신의 실제 모습과의 차이에 방해받지 않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걸스데이의 “한번만 안아줘” (2011년 7월) 뮤직비디오는 애정의 대상인 남성이 팔, 다리밖에 드러나지 않는다. 넘어질 때조차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그는, 눈 깜빡임마저 CG로 구현하며 철저히 1인칭인 시선으로서만 존재한다. 시작과 마지막의 초대장 장면에서 노골화되듯, 비디오는 걸스데이 멤버들과 손을 잡고 데이트하는 가상세계의 경험을 제공한다. 아이유의 “하루 끝”(2012년 5월) 또한 그림자와 손만으로 존재하는 지워진 남성이 아이유와 가상 데이트를 즐기며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제작되었다. 정 원한다면 관음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이돌팝 가사 속에서 대상과 청자가 삭제되고 화자를 관찰, 묘사하는 시선 또한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2009년경 여성 아이돌의 곡들은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과시하는 내용이 큰 유행이었다. 닭과 달걀 같은 문제지만, 이는 청자의 삭제 및 자기묘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화자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고, “나는 매력적”이고, “(당신이) 욕망할 만한 대상”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힙합의 스왝(swag)을 아이돌이 변용했다고 보아도 좋을까. 청자가 곧 자기 자신인 매력 선언을 통해 아이돌은 (보고) 듣는 이의 이성애적 욕망에 직접적으로 호소한다. 마치, 웃고, 감동하고, 즐거워할 시점을 표시해주는 예능방송의 자막처럼 말이다. 그리고, 가사에서 지워진 청자는 그 거울의 방 바깥에 서서, 노래하는 화자를 바라보는 관람자가 되었다. 가사는 화자와 청자의 대화보다는 화자를 전시하는 자리로 변했다. 그리고 이는 마침 아이돌의 특성과도 맞아떨어졌다. 쇼윈도 너머의 상품처럼 전시되는 아이돌은 듣는 이와의 교감 없이도 완결성을 갖는 인공물이기 때문이다. 한편 소녀시대의 “I Got A Boy”(2013년 1월, 작사 유영진)는 이에 또 다른 변주를 제안했다. 멤버들끼리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하는, 동성/동료를 청자로 취하는 형태다. 뿐만 아니라 이 곡의 화자는 수시로 얼굴을 돌려 다른 대상에게 말을 건다. 멤버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너무 예뻐지고 섹시해졌어, 그 남자 때문이지?”) 다른 멤버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물어볼 뻔했다니까 (너) 바꾼 화장품이 뭔지”) 다수의 화자가 동시에 개입하기도 하고 (“오, 절대로 안 되지!”, “그치, 그치”) 이성인 대상을 향해 방백하기도 한다. (“언제 이 몸을 구하러 오실 텐가요”) 이런 양상은 보다 최근 곡인 동방신기의 “Something”(2014년 1월, 작사 유영진)에서도 이어진다. 위의 대표적 사례들과 달리 화자가 남성이라 독특한 이 곡은, 청자와 대상 모두가 불분명한 가운데 대상이 “She”, 불분명한 대상(군중), “너”로 계속 바뀐다. 이런 표현법은 뮤지컬적인 무대를 연출하는 데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정해진 이야기를 음악극의 형태로 객석에 전달하는 뮤지컬의 방식이, 보는 이를 보다 확고한 관람자의 입장으로 못 박는 것은 물론이다. 아이돌팝의 가사가 보이는 화자-청자의 관계와 주제, 청자 및 대상의 삭제와 자기묘사를 통계 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돌의 성별에 따른 차이, 2차 아이돌붐 전-중-후의 추이 등을 수치로 확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이돌의 명확한 범주를 먼저 따져야 통계의 대상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며, 음원차트 기록만으로는 충분한 통계가 이뤄지기 힘들다. 그러나 정교한 통계의 틀을 설정하고 아이돌팝 가사의 경향을 살핀다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일본의 아이돌을 참고하며 시작한 한국의 아이돌이 독자적인 정서를 발전시키며 스스로를 개량해온 과정을 증언하지 않을까. | 미묘 tres.mim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