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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안의 화제는 단연코 <쿵푸 팬더>다. 이 작품은 확실히 디즈니의 <뮬란>에 대해 아시아를 ‘착취’한다고 비판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 완전히 지나갔다는 걸 상징한다. 착취가 없어진 것인지, 착취당하는 것에 둔감해진 것인지, 혹은 ‘착취’라는 단어가 촌스러워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잭 블랙 때문에라도 <쿵푸 팬더>는 모든 아이들의, 그리고 어른들의 최신 트렌드이자 프렌드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 세트에 끼워주는 캐릭터 인형에 목을 매고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음악 칼럼을 쓰는 입장이니 공적으로는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과 곧 개봉할 <월-e>의 사운드트랙에도 관심이 기울여진다. 이 두 작품은 드림웍스와 픽사의 경쟁 관계 아래에서 <토이 스토리> 이후 미국 애니메이션의 사운드트랙이 지향하는 지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쿵푸 팬더>의 사운드트랙은 한스 짐머와 존 포웰이 맡았다. 지난 2000년에 <엘도라도>에서 함께 작업한 이후 8년 만에 드림웍스에서 조우한 이들의 경력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저 화려하다. 1988년 <레인맨>으로 데뷔한 한스 짐머는 말할 것도 없고, <제이슨 본> 시리즈와 <아이스 에이지>, <치킨런>, <아이 앰 샘>, <저스트 비지팅>을 비롯해 <점퍼>와 <핸콕>같은 최신작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든 존 포웰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화음악가라고 할 만하다. 특히 그는 해리 그렉슨 윌리엄즈와 작업한 <개미>와 <슈렉>을 비롯해 <로봇>, <해피피트> 같은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며 유명해졌는데, 한스 짐머가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스타일에 능숙하다면 존 포웰은 분주하게 수선을 떠는 아기자기함에 능란하다. 그래서 <쿵푸 팬더>에서 ‘Let The Tournament Begin’이나 ‘Tai Kung Escape’같은 전반부의 곡을 존 포웰이 맡고 ‘Dragon Warrior Rised’나 ‘Po vs Tai Lung’같은 후반부의 곡을 한스 짐머가 맡는 배치는 적절하다. 고전 쿵푸 영화들처럼 후반부로 갈수록 비장(?!)해지는 극의 분위기가 점점 웅장해지는 오리지널 스코어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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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월-e>의 사운드트랙은 <니모를 찾아서>로 유명한 토마스 뉴먼의 작품이다. 아무도 없는 지구를 지키는 청소로봇 월-e의 고독과 사랑을 대변하는 것은 1950년대를 풍미한 가수 마이클 크로포드와 재즈를 우주적인 사운드로 격상시킨 루이 암스트롱, 한없이 감미로운 피터 가브리엘이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미니멀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스코어들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월-e>의 사운드트랙은 픽사의 다른 작품들처럼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아메리칸 클래식 스타일을 계승하는데, 이런 스타일은 랜디 뉴먼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1943년, 대중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17살의 이른 나이에 직업 작곡가가 된 랜디 뉴먼은 미국의 대중문화가 가장 풍요롭던 시절, 그러니까 5~60년대의 미국적 사운드를 3D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재현한다. 첫 장편 <토이스토리>를 필두로 <벅스 라이프>, <토이스토리2>, <몬스터 주식회사>, 그리고 <카>와 같은 작품들의 화려하면서도 향수어린 스코어 뮤직은 중산층의 도덕성과 상업주의가 득세하기 전의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자극하는 픽사의 성향을 드러낸다. 이것은 랜디 뉴먼과 토마스 뉴먼에 이어 <인크레더블>과 <라따뚜이>의 마이클 지아치노(그는 최근 <스피드레이서>의 음악을 맡았다)까지 이어진다. 그러니까 픽사는 전반적으로 복고적인 사운드를 드러냄으로서 3D애니메이션의 깔끔하고 매끈한 질감을 아날로그적 감수성으로 복원해내는데 성공한다.

이것은 <샤크 테일>, <마다가스카> 1, 2편의 한스 짐머와 <슈렉> 시리즈의 해리 그렉슨 윌리엄즈 같은 작곡가들이 포진한 드림웍스의 음악 스타일과는 명백하게 차별화된 것이다. 픽사의 낙천적인 사운드가 MGM 시대의 뮤지컬을 연상시킬 정도로 과거지향적이라면, 드림웍스의 직설적인 사운드는 현란한 디지털 영상의 스펙터클을 위해 봉사할 정도로 현재적이기 때문이다. <쿵푸 팬더>의 화려한 스코어 음악이 딱 그렇다. 하지만 두 거대 제작사의 경쟁은 결과적으로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의 수요자를 성인층 이상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Hallelujah’ 때문에 <슈렉>의 OST를, 척 베리의 ‘Route 66’을 위해 <카>의 OST를 사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드림웍스와 픽사는 <인어공주> 이후 월트 디즈니가 재구축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었고, 이들의 경쟁은 미국 애니메이션 OST의 독립된 시장을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 차우진 nar75@naver.com | <씨네21> 2008.07월 호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