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2년 3월 21일 밤 9시
장소: 서울 신촌 [소통 카페]
질문 및 정리: 최지선, 차우진
사진: 이승희 (스튜디오 103)

어떤 이들에게 윤영배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길게 설명을 할 필요는 없는 이름일 것이다. 2010년 11월 ‘이발사’라는 예명으로 자신을 소개한 EP [바람의 소리]가 자신의 첫 솔로 음반이기는 하지만, 이한철, 이규호, 조동익, 장필순 등 이미 여러 뮤지션의 음반에서 그의 곡들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제주 산골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 같던 그는, 이렇게 불쑥 나타나 음반을 냈으며 이런저런 무대를 통해 노래를 부르는 중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또 한 장의 EP [좀 웃긴]을 발표했다. 제주 구럼비바위가 또다시 발파되던 날, 강정 평화상단을 후원하기 위한 한 콘서트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예상한 대로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웃음의 소유자였지만, 구리빛 얼굴에는 단호하고 진지한 의지가 서려있었다.

이 인터뷰에서는 그가 대학 시절의 음악 활동 또는 유재하가요제에서 수상한 일, 하나음악을 통해 활동하던 시절이나 불현듯 네덜란드행 유학에 올랐던 과거 이야기들은 자세히 묻지 않고, 주로 [좀 웃긴]을 둘러싼 음악 작업과, 현재에 그가 가진 여러 생각들에 대해 나누었다.

웨이브: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여러 집회 무대에서 공연을 하신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윤영배: 최근에는 제주 강정 문제와 관련한 공연을 몇 번 했습니다. 작년에 섰던 처음 공연이 두리반이었을 것이고, 그다음에 사직동 그가게, 해방촌 빈집, 두물머리 등지에서 공연에 참가했어요.

웨이브: 음반 발매 후에도 몇 번 공연을 하셨는데요.
윤영배: 작년 [바람의 소리] 발매 뒤에, 먼저 (이)규호랑 둘이서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을 했어요. 산울림소극장은 오래된 극장인데다가 조동진 씨가 예전에 공연했었고 조동익 씨도 섰었던 곳이라 저도 서보고 싶었어요. 이후에 (고)찬용이랑 (김)정렬 등도 도와주어서 몇 번 공연을 했었습니다. 이번에 [좀 웃긴]을 발매하고 나서도 공연을 했어요. (주: 3월 17일 열린 [좀 웃긴] 음반 발매 공연 ‘좀 부끄러운’) (이)상순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건반 (이)규호, 베이스 저스틴(이바디), 드럼 이덕산(악퉁) 등이 함께 록적인 분위기로 편곡과 구성을 다시 해서 공연했어요.

웨이브: 3월 17일 공연을 앞두고 이효리 씨가 트위터에 올린 것이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공연장에도 오셨다는데 공연 좌석이 매진되는 건 아닌가 하고 살짝 우려(?)했어요. (웃음)
윤영배: (이)효리가 “영배 오빠가 공연한다”라고 트위터에 올렸는데 사람들 반응이 “윤영배가 누구냐?” 그랬다잖아요. (웃음) 주변 친구들이 저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제가 워낙 보잘 것 없어서 고맙고 미안했죠.

웨이브: 1년 만에 새 음반을 내셨어요. 하나음악 스타일이 과작인 것에 비하면 정말 빨리 내신 편인데, 이렇게 기민해진 이유가 무엇인가요?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인가요? (웃음)
윤영배: 그런 건 아니에요. 다른 것보다 저는 (음반을) 기록적인 의미로 생각했어요. 온전히 내가 책임지는 한도에서 아주 작은 범위로 하는 것이라서 많은 시간이 걸릴 일도 없었어요. 푸른곰팡이 친구들이 모였을 때 마침 제가 서울에 있었고, 그래서 우연히 제가 먼저 음반을 내게 된 것이죠. 게다가 해마다 음반을 내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다섯 곡이든 몇 곡이든 만들어지는 대로 해마다 (음반으로) 내는 거죠.

웨이브: 일종의 계약이 된 것이네요? (웃음) 기록의 차원이라는 의미는 개인의 음악을 기록해놓는다는 의도인가요?
윤영배: 그때 그때 제가 가진 생각이나 고민의 기록이죠. 곡이야 예전에 쓴 것도 있지만 소리나 악기들의 음색, 구성, 이런 것들이 시기를 많이 타기 때문에, 당시 내가 생각하는 음색이나 구성, 대역으로 조금씩 해나가려는 겁니다. 같이 할 동료들도 많지만 혼자 하겠다고 한 것도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범위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조)동익이 형 집에서 둘이 작업한 거예요.

웨이브: 2010년 첫 번째 EP [바람의 소리]에 실린 노래들은 거의 예전에 쓴 곡들인가요? 그러면 이번 음반 [좀 웃긴]은 새로 쓴 곡이 많은가요?
윤영배: 2010년에 낸 음반에는 새로 쓴 곡은 없어요. 예전에 쓴 오래된 노래인데, 대부분이 장필순 6집 [Soony 6] 전후의 곡들인 듯해요. 사실 그때까지 정리가 안 되었는데 녹음을 하면서 정리하고 구상했어요. 이번 앨범에도 (예전에 쓴 노래들이) 있는데, 새로 한 곡은 “아니오”, “좀 웃긴”이에요. “죽음”, “소나기”, “소나무숲” 등은 기존에 있던 곡이고요.

웨이브: 이번 음반은 악기가 더 편성되고 편곡도 다른데요. 이번 음반이 전보다 더 어둡게 느껴집니다. 첫 번째 음반도 그렇게 밝은 건 아닌데 이번 음반이 조금 더 어둡다는 인상이 들었어요.
윤영배: 악기 음색이나 대역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 거예요. 곡 자체는 일부러 어둡게 한 건 없어요. 제가 이번에 (조)동익이 형이랑 많이 상의한 건 대역이 문제였어요. 마이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대역을 믹싱으로 끌어올리거나 말거나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고 싶었어요. 물론 자연스러운 마이킹을 하기에는 저희 환경이 좋지는 않았어요. 집의 방에서 냉장고 꺼놓고 했으니까요.

웨이브: “죽음” 같은 곡은 본인의 경험이 바탕이 된 곡인가요? 장필순 님이 예전 인터뷰에서 윤영배 님이 곧잘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쓰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윤영배: 제가 상상해서 만들어낸 거지요. (웃음) 실제로 있던 일들은 아닙니다. 물론 죽음이란 게 일상적인 것이라서 그런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겠지만…

웨이브: 집회에서 노래도 많이 하시는데 노래는 약간은 냉소적이기도 하고 관조적이기도 합니다.
윤영배: 노랫말이 나약하죠. (웃음)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그랬다지만, 제가 지금 ‘키 큰 나무’나 ‘소나무’나 노래하고 있을 수 있나 싶기도 합니다. (주: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 (“나무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를 의미하는 듯)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는데, 아직까지는 이런 고민을 노랫말로 표현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노랫말이 아니라 악기 구성이나 연주를 통해서도 충분히 (저의 생각을) 들려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번 작업의 편곡 방향을 조정했어요.

웨이브: 그런 점에서 새로 쓰신 “아니오”는 메시지 면에서도 그런 생각을 반영한 노래가 아닐까 합니다. 리 호이나키가 쓴 글 “아니오의 아름다움”([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 수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는데, “아니오”는 다른 노래와 달리 화자가 숲에 누워있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아니라, 바로 ‘아니오’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윤영배: 제 의도는 근대에 대한 부정이에요. 물론 노랫말이 잘 만들어진 것 같진 않아요. 지금은 제가 부족해서 이 정도지만, 후에는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웨이브: 의도와 가사가 굳이 일치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가사와 사운드 사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차라리 좋았어요. 그러면 “좀 웃긴”의 경우에는 어떤 의도로 쓰신 건가요?
윤영배: 근대 또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개개인을 강제화시키고 개인의 자유의지가 애초부터 생길 수 없게 했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다른 생각들을 끊임없이 표출해왔는데, 그러면 현실과 괴리가 있고 개개인이 갈등하는, 그래서 어디로 가는지 방향도 제대로 못 잡고 있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노래해야할까, 그런 고민에서 쓴 노래예요. 한편으로 저는 너무 심각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 구성도 너무 질서정연하게 맞춰진 것이 아니기를 바랐죠.

웨이브: 그런데 재미있어요. 이 말이 수식어가 되면 ‘좀 웃긴 앨범’이 되니까요.
윤영배: 사실 ‘좀 웃긴’에 큰 뜻은 없어요. 비아냥은 아니고. 오히려 ‘좀 웃긴’ 자체가 갖고 있는 뜻에 가깝겠죠. 하지만 이 제목을 만들 때 제목이 반드시 내용을 대변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두리반이든, 4대강 반대를 하든 그 친구들에게 즐겁고 재미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당연히 의무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고 또 들어주고. 예전처럼 저항의식을 어떤 틀에 가두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다양하게, 그것이 멈추지 않고 나왔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 곡을 썼어요. 가사가 없을 때는 지나치게 환하게 들릴 소지가 있는 곡이어서 그렇게 가면 안 되겠다 싶었죠.

웨이브: 크레딧에는 일부러 지명을 노출한 것인가요? 이름이 주는 의미가 있을 듯한데요.
윤영배: 이번에 소리를 잡으면서, 우리가 어떤 녹음 상황에서, 어떤 장비를 썼는지 그런 걸 넣으려고 했어요.

웨이브: 음반 크레딧에 ‘소길리 외딴집’에서 녹음했다고 씌여있는데 그곳이 조동익 님 집이죠? 사진과 디자인은 ‘고산 방앗간’이라 되어 있던데요.
윤영배: 소길리는 제주도에 중산간 쪽, 애월 쪽에 있고, 고산 방앗간은 좀 더 끝쪽에 있어요. 고산 방앗간은 제가 사는 집이에요. 조동익 형 집에 가려면 한 시간은 가야 해요. 날씨가 좋으면 자전거 타고 가기도 하죠.

웨이브: 사진과 디자인은 직접 하신 건가요? 흐릿하게 찍힌 표지는 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미화되어 있는데요. (웃음)
윤영배: 그건 제가 아니에요. (웃음) 저를 제가 찍을 수 없으니 옆에 있는 아내를 찍었죠. 사진은 제가 찍고 디자인은 아내가 했어요. 사진 속 공간은 저희 집이에요. 특별히 따로 찍은 건 다 제 블로그에 있는 사진들이죠.

웨이브: 부인 분께서 윤영배 님을 찍어주실 수도 있었을텐데요. 🙂
윤영배: 마음에 안 들어서요. (모두 웃음)

웨이브: “소나기”에서 세 대의 기타 소리가 들리던데요. 각각 누가 연주한 것인지요?
윤영배: 제가 어쿠스틱 기타를, (이)상순이가 일렉트릭 기타를 쳤어요. 다른 일렉트릭 기타 소리는 더빙인데, 둘 다 상순이의 기타예요.

웨이브: 이상순 님의 기타 연주로부터 어떤 점을 기대하셨나요?
윤영배: 어떤 걸 기대한 건 아니에요. 두물머리에서 (이)규호, (이)상순이와 같이 공연했을 때, 음반에 수록될 곡을 연주했는데 (이)상순이의 기타 리프가 좋았어요. 그게 간단한 것이기는 했지만 본인의 생각이었으니 본인이 직접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상순이가 제주도에 놀러왔을 때 같이 참여하게 된 거예요. “좀 웃긴”과 “소나기”에 참여했죠.

웨이브: “좀 웃긴”에서 중반부에 베이스에 재지한 편곡이 들어갔는데요. 그 제안은 누가 하신 건가요?
윤영배: 제가 했어요. 박자나 리듬, 구성 등을 제가 하고, 어떤 식으로 해달라고 (조)동익이 형에게 제안한 거죠.

웨이브: 개인적으로 “소나무”는 장필순 님의 음반에 수록된 “헬리콥터” 같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이 노래에 소리를 역전시키는 기법을 넣은 건 누구의 생각이었나요?
윤영배: 리버스(reverse)는 (조)동익이 형이 넣은 건데 제가 얼마나 넣을지를 결정했어요.

웨이브: 전에도 그랬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중첩됩니다. 이번에는 백업 코러스도 들어가 있지만요. 곡 자체에서도 그런 느낌이 있지만 목소리 분위기도 엘리엇 스미스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윤영배: 더블링(doubling)은 엘리엇 스미스를 따라한 게 아니라 예전부터 저의 오래된 습관이에요. 제가 노래를 못해서… (웃음) 그런데 나중에 보니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도 그렇게 하더군요. 이번에 코러스는 (장)필순 누나가 몇 군데 해주셨어요.

웨이브: 녹음은 얼마 정도 걸렸는지요?
윤영배: 12월에 시작해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서울에 올려보내기까지 50일 정도 걸렸어요. 서울에서 마스터링은 일주일 정도 걸렸죠.

웨이브: 조동익 님은 어떻게 참여하시게 됐나요?
윤영배: 사실 (조)동익 형과만 작업을 해봐서… 늘 같이 지내고 따라다니면서 배웠죠. 이번에도 저 혼자 후딱 녹음하려고 했는데, (조)동익 형이 같이 하자고 했어요. 그대로 두었다면 동익 형은 아직도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웃음) 동익 형은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작업을 해요. 저는 물론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집중력이 높으니까요. 제가 어느 순간 “이제 그만하자”라고 해서, 음반이 나올 수 있었어요.

웨이브: 조동익 님과 의견 충돌은 없었나요?
윤영배: 많이 있죠. 그렇지만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분명하게 내 생각을 얘기하면, (조)동익이 형은 잘 받아들여주셨어요. 제가 어떤 음악적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걸 구체화시키는 건 정말 잘 하세요. 경험이 많으시니까 제가 뭘 원하는지 아시는 거죠.

웨이브: 리마스터링 버전의 프로듀싱은 허성혁(주: 시니즈 엔터테인먼트 대표. 들국화의 멤버였던 故 허성욱의 동생) 씨가 하신 거죠? 그렇다면 왜 리마스터링 이전과 이후의 두 버전을 실으셨는지요?
윤영배: 마스터링 과정은 대부분 녹음실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렇지만 집에서 (조)동익이 형과 둘이 작업을 했는데 그 작업 환경과 상황을 고스란히 녹음실로 옮기지 않는 한 똑같은 소리가 나올 수는 없잖아요. 소리라는 게 공간에 영향을 받고 기계를 탈 수밖에 없으니, 어떤 소리를 (다른 곳에서) 똑같이 재생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죠. 그래서 제가 가진 다른 생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두 버전을 같이 싣기로 한 것이죠.

웨이브: 집에서 하신 버전이 스튜디오 리마스터링 버전과 어떤 부분이 서로 달랐던 것인가요? 리마스터링 버전을 들어본 뒤에 두 가지 다 싣기로 결정한 것인가요?
윤영배: 예전부터 했던 생각이기도 하고, 나중에 결과물을 들어보고 나서도 그렇게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죠. 기왕에 소리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져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에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보여주지 않아도 될까, 전문가한테 맡기면 그만인가, 이렇게 하면 좀 무책임하지 않나 싶었어요. 이런 얘기는 그전부터 많이 해왔고 또 싸우기도 많이 했죠. 그렇지만 내 이름으로 하는 작업이니 만큼, 제가 관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거니까, 약간은 제가 좀 고집을 부린 부분도 있어요. 도와주신 분들도 다 그렇게 하자고 해주셨죠.

웨이브: 리마스터링 버전이 각 소리들이 더 선명해졌다거나, 베이스를 중심으로 음량이 약간 올라가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일부러 들으니까 그렇게 들리는 거지 일반적으로는 차이는 없게 들릴 텐데요.
윤영배: 그건 예상하고 있었어요. 소리라기보다는 행위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사실 저도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진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저한테 허용된 범위가 아니에요. 더 나은 기계, 더 나은 장소, 제가 좋아하는 방향 같은 게 있지만, 지금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안 되고 저의 의도와도 다르니 무리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마스터링이란 과정은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입니다. 전문가에게 맡겨버리게 되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고 소리가 어떻게 나올지 저는 개입하지 않잖아요. 무엇보다 마스터링 자체가 시장에 종속된 과정이고 강제된 상황이라, 레벨을 올리는 과정에서 소스를 증폭시키고 왜곡시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것까지만 내가 개입한 과정이고, 그 다음부터 전문가에 의해 산업적으로 행해진 관행적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둘 다 같은 음반에 수록한 것이죠. 그래서 왜 이렇게 되었나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설명해줄 수 있게 된 것이죠. 저는 이렇게밖에 못했지만, 좀더 상황이 허락되는 사람이라면 더 큰 차이를 낼 수 있을 거예요.

웨이브: 예전 인터뷰를 보면서 느낀 건데 근본적으로 접근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건 경험에서 오는 관점이고, 음악가로서 모든 걸 책임지시려는 것이고 소리에 대해 철학적인 접근을 하시려는 것이겠죠. 그러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실 게 많아지게 되니까요.
윤영배: 그런 점에서 아무래도 제가 친구들한테 근본주의자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겠죠?

웨이브: 하나음악/푸른곰팡이에 대해 조금 여쭈어보면,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음반이 자주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음반 발매 소식을 많이 기다리고 있으시더라고요.
윤영배: 하나음악과 정서적인 공감대는 크지만 서로 스타일은 많이 다르죠. 어찌되었든 제 친구들이 다 특에이급 세션맨들이잖아요. 그렇지만 그분들이 잘 한다고, 또는 친하다고 항상 같이 할 수만은 없죠. 그렇게 되면 연주자가 다 똑같아지잖아요. 조동익 형 혼자 모든 작업을 해야 되면 개인들도, 저희 모두 다 힘들어질 수 있죠. 그런 점에서 능력이 닿는 만큼 나혼자 해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웨이브: 시니즈엔터테인먼트와 푸른곰팡이의 관계는 현재 어떤가요? 홈페이지 도 하나로 되어 있던데요.
윤영배: 저희가 녹음실이 따로 없고 여력이 없어서 (허)성혁이 형이 전폭적으로 도와주는 형태예요. 둘이 동일한 몸체이기는 하지만, 시니즈에서는 별도로 스튜디오 렌탈 등을 또 하셔야하니까, 저희는 저희대로 활동할 수 있게 푸른곰팡이 레이블을 따로 마련한 것이죠. 홈페이지는 따로 준비 중일 거예요. 금방 만들기는 힘들겠지만…

웨이브: 푸른곰팡이의 거점지는 시니즈가 되는 건가요?
윤영배: 네. 지난 달 그곳 1층에 플레이가든이라는 사무실을 냈어요.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는데, (허)성혁이도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고, (송)남규도, (송)혁규도 자기 회사가 있는데, 세 명이 공동 사무실을 낸 것이죠. 푸른곰팡이도 그곳을 같이 쓰는 것이고요.

웨이브: [좀 웃긴]은 몇 장 찍었나요?
윤영배: 이번엔 1000장 찍었다고 들었어요. 지난 번 음반은 처음에 500장, 나중에 추가로 500장을 더 찍었어요.

웨이브: 그건 다 팔렸나요?
윤영배: 어휴, 그럴리가요. (웃음) 잘 모르겠어요. 얼마나 팔렸는지는…. 음악 외적인 비즈니스는 잘 모르니 (허)성혁 형이 주로 결정을 하셨고 푸른곰팡이 하면서 친구들과 몇 명이 더 도와주었죠.

웨이브: 푸른곰팡이에서 다음에 나올 앨범은 무엇인가요?
윤영배: (고)찬용이 음반이 곧 나올 거예요. 오늘인가 내일 믹싱이 끝날 예정이에요. (이)규호 음반도 나올 예정이고요. 사실 규호에게는 굉장히 미안해요. 제가 서울에 오면 규호 집에 머무르는데 연습도 해야 해서 규호를 방해하는 꼴이 되네요. 그래도 규호가 틈틈이 준비해서 여름쯤에 음반을 낼 예정이에요. 시기는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몇몇 친구들도 준비 중이라고 알고 있어요.

웨이브: 윤영배 님의 라이프 스타일과 음악 스타일 사이에 어떤 공유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산골의 일상이라는 게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술 한 잔 하시고 주무신다고 하셨는데, 그런 삶과 음악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윤영배: 가령 생태주의자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것은 이미 상정된 문제잖아요. 특정한 음악 범주는 없는 거죠. 나무를 때는 것과 조작된 음을 사용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그속에서 근원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통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특정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것은) 특정 시기에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방법일 뿐이에요. 사실 통념적 관점이라면 통기타를 치면서 마이크를 대는 것도 이상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 너머 뭔가가 있을 거란 생각이죠. 나까지 나무를 베어 책을 내야겠는가, 또는 플라스틱 판을 내야하는가 고민이기는 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지금 내려가서 사는 것들도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음표 속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예전부터 하고 있었어요.

웨이브: [바람의 소리] 음반의 발표가 우연적이었던 반면, 이번 음반은 작정하신 듯한 인상이 있습니다.
윤영배: 작년에 몇몇 공연에 참가하면서 서울에 열 달 정도 있었어요. 조금 더 서울에 있어야겠는데, 뭔가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될 만한 일을 찾고 있었죠. 마침 푸른곰팡이를 시작한다길래 제가 얼른 하겠다고 했어요. “영배 녹음한단다”라고 친구들이 나서서 (웃음) 다짜고짜 하게 된 것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음반은 매년 음반을 내겠다고 약속을 한 뒤에 낸 것이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죠.

웨이브: 정체성, 책임과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듯합니다.
윤영배: 늘 많이 해요. 자신이 처한 입장과 강제된 역할이 항상 있잖아요. 그것을 빼고 우리가 무슨 고민을 하겠어요? 근원적인 고민이 있어야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죠. 이걸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또 시작이라면서 도망가요. (웃음)

웨이브: 음악가로서 좋은 음악을 만들면 된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 사회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 있는데요.
윤영배: ‘좋은 음악’, ‘선한 행동’은 늘 상대적인 개념이죠. 그렇게 되면 ‘나쁜 음악’이 있다는 말이 되잖아요. 무엇보다 한 생명체로서 내가 어떠한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죠. 음악가든 누구든 이 땅에서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큰 것들에 대해 고민이 없으면 안 된다고 늘 생각했어요. 그런 게 없다면 위험할 수 있고 왜곡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고민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미 수백 년 전부터 해왔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어떤 ‘주장’을 고집하려는 건 아니에요. 주장이란 내 의견을 관철해야 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데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당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이 돋보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주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해야한다고 봐요. 그런 걸 드러내고 싶었던 거예요.

웨이브: 요즈음엔 어떤 음악을 들으시나요? 한때 브릿팝이나 모던록을 즐겨들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윤영배: 요즘에는 고전음악을 듣습니다. (웨이브: 왠지 구스타프 말러,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저는 말러리안이었어요. 동익이 형한테도 많이 추천해주고. (웃음) 요새는 바흐도 많이 듣고, 빈 학파 쪽도 많이 들어요.

웨이브: 제주에 내려가셨을 때 제주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과 교류가 있었는지요? 최근 들어 부스레코드가 생기면서 몇몇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윤영배: 그동안은 잘 몰랐어요. 참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제 편한 대로 서울과 제주를 다니고, 제주에 몸만 살면서 좋은 건 다 취하고. 그런데 이제는 현지에서 음악하는 친구들과 교류가 있어야하지 않는가 생각하고 있고, 가능한 범위에서 참여하려고 애쓰는 단계예요. 지난 번 <나의 강정을 지켜줘>를 한번 했었고, 이번에 4/3 전국 투어가 있어요. 제가 제주에 있다면 제주에서, 서울에 있으면 서울에서 참여할 겁니다.

웨이브: 두리반이나 용산 등지의 공연을 통해서 또는 다른 계기로 후배나 동료 중 생각이 비슷하다거나 감명을 받은 뮤지션이 있나요?
윤영배: 그 부분에 있어서도 제가 무심했어요. 다른 공연이나 음악을 잘 안 듣는 편이었어요. 하물며 같이 하는 식구들 음악도 잘 안 듣거든요. 참 무책임하고 무심하죠. 두리반 같은 곳에 가면 제가 아는 팀이 하나도 없었어요. 작년 <뉴타운컬쳐파티 51+> 할 때는 메인에 갔다가 깜짝 놀랐죠.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하시는데, 누군지 잘 몰랐어요. 그분들도 절 잘 모르겠지만…

웨이브: 이렇게 윤영배 님이 등장한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One Response

  1. Noulpop

    너무 팬입니다. 인터뷰도 하시고. 너무 반갑구요. 일년에 한번씩 꼭 앨범내주시고. 공연도. 꼭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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