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 델 레이, 새드 코어와 우울의 리더십

우울한 이의 냉소는 자기와의 대화에만 갇혀 있지 않다. 자신의 삶이 평범하기 그지없다고 여기는 또래 사이에서 우울은 나름의 카리스마를 확보하며 ‘멋’으로 자리 잡는다. 독특한 취향은 우울을 뒷받침하는 양분이 되고, 선망의 요인이 된다. 이는 나도 누군가를 어두침침한 분위기로 ‘쫄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마음에 가깝다. 우울도 자기계발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난 그렇다고 보는 입장이다. 우울의 자기계발에 성공한 이는 또래 사이에서 리더가 될 자격을 얻는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인 라나 델 레이는 이 지점을 잘 파고든 가수다. 라나 델 레이의 과한 침울함과 염세적 분위기는 ‘새드 코어(sad core)’라는 장르로 명명되면서 많은 관심을 낳았다. 팬들은 새드 코어의 지적 양분을 보충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녀의 우울한 서정성에는 나름의 지적 연원이 있음을 팬들이 입증하고 나선 것이다. 라나 델 레이의 ‘우울의 리더십’은 그렇게 다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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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나 델 레이 홈페이지 http://lanadelrey.com/

 

글룸 마케팅: 우울을 세공해드립니다

사실 대중음악계만큼 우울의 리더십을 잘 활용하는 곳도 없다. 1990년대를 지나온 세대에게 토리 에이모스, P.J 하비, 피오나 애플은 시대를 대변하는 ‘우울 공주(gloom princess)’로 추앙받았다. 이 우울 공주들은 오글거리는 일상이 싫은 문화소비자들의 위안거리였다. 육체적인 가냘픔은 가사에 스며든 공격성을 북돋웠다. 2013년 10월, 저널리스트 제니 반은 더 스타일콘(the stylecon)에 쓴 “우리는 왜 피오나 애플이 필요한가”란 칼럼에서 90년대 여성 뮤지션의 특징 중 하나로 ‘쇠약해 보이는 십대(strung-out-looking teen)’를 꼽았다. 실제로 피오나 애플은 어릴 때부터 거식증에 시달렸다. 그녀의 노래 “Criminal” 뮤직 비디오를 보면 앙상한 광대뼈와 다리, 피곤에 절은 눈가를 확인할 수 있다. 피오나 애플을 비롯해 우울 공주로 분류된 여러 여성 뮤지션의 과거가 공개되는 과정에는 ‘쇠약함’의 연원이 된 성적 학대, 알코올 중독 등의 경험이 포함되곤 했다. 이 서사야말로 창작의 주요 동력이었다.


Fiona Apple – Criminal | Tidal (1997)

지나치게 가냘프고 쓰러질 듯한 외양에서 분출되는 둔탁하고도 거침없는 공격성은 유년·청년기에 자극을 준 (부모의 영향이 큰) 기독교 문화와 대비되어 더욱 두드러졌다. 라나 델 레이 또한 기독교 환경의 자장 안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그녀는 성가대 선창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통제와 규율이 있는 기숙사 학교를 나왔다. 특히 그녀는 지독한 알코올중독에 시달렸고, 언론을 통해 자신이 겪은 알코올중독을 세세히 이야기했다. 이는 그녀가 우울 공주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단, 라나 델 레이가 90년대 선배들과 차이가 있다면, 우울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문화적 소양을 적극적으로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라나 델 레이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 시인, 영화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다. 이는 지적 흐름을 찾는 데 관심이 많은 저널리즘의 속성을 건드린 요인이었을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프랭크 시나트라, 건스 앤 로지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에이미 와인하우스, 앨런 긴즈버그, 월트 휘트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스콧 피츠제럴드, 셰익스피어, [대부], [아메리칸 뷰티] 등등. 이 같은 라나 델 레이의 문화적 섭식력은 그녀의 음악 세계를 비판하든 지지하든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점이었다.

특히 앞에서 언급했듯이 라나 델 레이의 팬들은 그녀의 지적 매력에 호감을 느꼈다. 이 팬덤에는 그녀의 그늘진 서정성이 두터운 문학적 소양에서 출발한다는 기록의 집적이 있다. 이는 팬들이 언론에 공개된 인터뷰를 바탕으로, 라나 델 레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세계가 무엇을 그려내는지를 찾아 그녀의 음악관에 덧대는 형태였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Born To Die”는 사랑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래서 더 목마른 여성의 자기 파괴적 소네트가 된다. “Video Game” 뮤직비디오에서처럼, 오토바이에 타고 신나게 질주하는 라나 델 레이와 헬스엔젤스(Hell’s Angels)가 연상되는 폭주족이 등장하는 장면은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비트족(beatnik)의 감각을 구현하는 것이 된다. 그녀의 이미지가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는 롤리타 같다는 세간의 평은 나보코프를 좋아했던 문학 소녀의 심드렁한 면을 매력적으로 강조하는 데 기여했다.


Lana Del Rey – Born To Die | Born To Die (2011)

무엇보다 라나 델 레이의 종잡을 수 없는 문화적 취향은 뉴욕의 포담 대학에서 형이상학을 공부한 한 음악가가 신과 과학, 우주의 문제를 걱정한다는 데서 오는 어떤 몽환성으로 수렴되었다. 언론은 계속 그녀를 현실 세계의 그물망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럴수록 라나 델 레이는 추상적인 세계로 도망갔다. 계속 들볶는다 싶으면, 사람들이 소문과 가십으로만 접했던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자신의 서사에 담아 적나라하게 폭로해 버렸다. 이는 갈등을 더 키우는 방법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허나 어떤 경우에 따라 명성 문화 내에서 이런 자기 폭로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관심을 일순간만 키우는 기능만 할 뿐, 외려 인기 확장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현실이 지향하는 목표(한 유명인의 추락)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다.

라나 델 레이는 올해 발표한 2집 [Ultraviolence]에 수록된 “Fucked My Way Up To The Top”에서 대중음악계를 조롱하는 듯한 가사를 선보였다. 저널리스트들은 앨범 발매 뒤 끈질기게 저의를 물었다. 그녀는 결국 ‘당신들이 생각하는’ 내용이 맞다고 시인했다. 대중 음악계에 몸담기 시작하면서 많은 남자와 잤지만, 그것이 음반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경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실상이야 어떻든 간에, 이런 전개는 그녀를 ‘멋진 쌍년’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멋진 쌍놈/쌍년이 되기. 이것을 ‘중2병’이라고 폄하하지 말자. 삶의 어떤 굴곡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멋진 쌍놈/쌍년은 여전히 인기 있는 욕망의 한 자리다. 대중음악계는 이 욕망의 냄새를 귀신같이 잘 맡아왔다. 우울 공주는 그래서 탄생한 것이고, 사람들은 멋진 쌍놈/쌍년들이 구축한 우울과 냉소의 지하실에 드나들었다. 이를 대중음악계의 ‘글룸 마케팅(gloom marketing)’이라 부를 수 있다면, 라나 델 레이는 매우 모범적으로 이 마케팅을 따르는 중이다.


Lana Del Rey – Fucked My Way Up To The Top | Ultraviolence (2014)

 

멋진 쌍놈/쌍년 되기: ‘탈(脫)’이라 말했지만, ‘반(反)’으로 알아듣는

1985년생인 라나 델 레이가 표방하는 우울의 리더십은 그녀의 잡다한 문화적 취향을 뒤져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 대중음악을 주름잡은 문화정신과도 결부되어 있다. 일례로 라나 델 레이가 커트 코베인의 열렬한 팬이었음은 스스로 밝혔던 바다. 라나 델 레이는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품어보았을 ‘뮤지션의 이른 죽음’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녀는 자기가 이미 죽은 사람이길 바란다고 말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에 커트 코베인의 딸 프랜시스 코베인는 젊은 뮤지션의 이른 죽음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고 응수했다. | 롤링스톤: Frances Bean Cobain to Lana Del Rey: Early Death Isn’t ‘Cool’).

실상 우울의 리더십에 커트 코베인이라는 교과서는 지나치게 모범적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다종다양한 문화 취향의 결정타인 건스 앤 로지스와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어떨까? 델 레이는 레이거니즘(Reaganism)의 피로감에 맞서 문화 해방구 역할을 한 두 선배에게 무엇을 배웠던 걸까? 그것은 일종의 제어되지 않은 열정이었으며, 어쩌면 마조히즘도 포함하는 육체적 사랑의 선호였을 것이다. 그녀는 어느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육체적 사랑을 예찬했고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과 그 세태가 싫다고 말한 적이 있다. 평소 탐하고 싶던 한 여성의 집. 여성의 아버지마저 외출한 상태에서 여성을 향해 자신의 욕정을 받아달라고 애걸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I ’m On Fire”(델 레이가 무척 좋아한다고 언급한 노래다)는 그녀에게 페미니스트란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했던 이들의 의아함을 자극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걸 파워’라는 칭호로 다가오려는 이들을 향해 페미니즘엔 그리 큰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이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걸 행하는 게 아닐까라는 모범 답안으로 슬그머니 논쟁점에서 빠져나왔다. 라나 델 레이는 이 인터뷰에서 페미니즘보단 항공우주기업인 ‘스페이스X’에 더 관심이 많다 밝혔는데, 이런 언행이야말로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그녀에게 마초이즘이나 페미니즘은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그녀는 단지 ‘탈脫’이라 말했지만, 그대들에겐 ‘반反’이었던 것.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해석에 복속되지 않은 그녀의 무심한 태도를 매력적인 반항심으로 해석했다. 델 레이는 졸지에 ‘반문화’를 연상시키는 모델로 해석되었다. 이는 사실 그녀의 선배들이 걸어갔던 길과 유사했다. 다만 그녀의 복고적인 음악만큼이나 그 음악을 둘러싼 지성의 오랜 역사를 그녀 스스로 구현하고 알렸다는 점은, 나도 그녀만큼 충분한 문화 소비의 길을 걸어왔다는 셀피 세대(이하 ‘셀피’)의 문화 엘리트들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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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라나 델 레이 홈페이지 http://lanadelrey.com/

 

셀피 세대의 남모를 스트레스: 나도 ‘우울 자본’을 가질 수 있을까

특히 자기 연출에 능한 셀피에게 라나 델 레이의 새드 코어에 깃든 우울의 리더십은 성공적인 ‘정서 상품’으로 소비되는 중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복종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힙스터들은 그녀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그늘진 서정성에 분개했다. 이유인즉슨 새드 코어라는 장르가 “잘 세워진 건물 같은 인디적 감성”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2012년 [SNL: 대니얼 래드클리프 편]에서 라나 델 레이가 보여준 불안한 퍼포먼스 이후, 우울의 리더십 한 켠에는 자의식 쩌는 한 젊은 여성 뮤지션의 지적 허세란 비판적 프레임이 실력 논란과 함께 덧씌워졌다. 허나 어찌되었든 그녀는 사이비 감수성과 성공한 ‘침울’이라는 양 시선 속에서 연일 뉴스에 오르고, 유명 패션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되며, 다른 ‘셀럽’과 염문을 뿌리는 유명인사의 표준 과정을 밟아나가고 있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새드 코어를 예술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이미지를 팬들과 공유한다. 업데이트된 이미지에 눌러진 ‘좋아요’에는 나도 그녀와 같은 우울을 갖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이 일부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와 같은 우울로 나도 주류에 들어가고 싶다는 선망이 포개어진 채로.

허나 라나 델 레이는 무작정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거나, 정치적 올바름으로만 세상을 보는 자들을 향해 냉소적인 140자를 쓴다고 해서 그 선망이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음을 보여준다. 라나 델 레이는 오늘날 성공에 목마른 셀피를 향해 당신이 ‘먹히는’ 우울과 냉소, ‘잘난’ 그것을 갖고 있는지, 기미가 보인다면 어떻게 스스로의 서사와 문화적 소양을 감각 있는 문화기획자에 눈에 들 정도로 연출할 수 있는지 그 능력에 대해 묻고 있다. 씁쓸하게도 당신은 그냥 우울하지만, 델 레이는 매력적인 ‘우울 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는 셀피에게 제법 무거운 스트레스인지 모른다. 물론 티를 내진 않겠지만. | 김신식 https://www.facebook.com/shinsik.kim

note: 김신식. 내성적인 사람들을 위한 사회학을 연구하는 감정사회학도. 대중음악계를 감정이란 키워드로 접근해보는 중이다. 인문사회비평지 《말과활》에서 잡지·강좌 기획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