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내 퍼거슨 시라는 곳에서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이라는 소년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경찰의 총에 여러 발을 맞고 사망한 소년의 시신은 한동안 거리에 방치되어 있기도 했다. 마이클 브라운 사망 사건은 경위가 밝혀지기 이전부터 많은 사람이 반응을 보였다. 처음 경찰은 마이클 브라운을 강도 용의자로 지목하였으며, 정당방위라는 발표를 내놓았다. 하지만 몸싸움이 없었음은 물론 두 손을 들고 투항했음에도 총격을 가했다는 목격자의 증언, 부검 결과 정면에서 여섯 발을 맞은 점, 전과도 없었으며 단지 평범하게 어딜 가던 중이라는 점 등이 드러나며 사건의 여파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경찰은 총격을 가한 경찰의 모든 신원을 비공개로 하였지만, 결국 이름과 인종이 공개되었다. 공개된 직후, 백인 경찰관이 흑인 소년에게 총을 쐈다는 점에서 세상은 다시 크게 들끓었다. 투항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Hands Up, Don’t Shoot(손들어, 쏘지 마)”라는 문구로 많은 사람이 시위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과격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퍼거슨 시는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리며 비상사태 선포, 방위군 투입 등 강압적으로 진압하는 중이다. Bruce Springsteen – Amerian Skin(41 Shots) 공권력이 흑인에게 총을 겨눈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9년 벌어진 아마두 디알로(Amadou Diallo) 사건의 경우 1999년 2월 4일 뉴욕 경찰이 아마두 디알로가 지갑을 꺼내려던 것을 총을 꺼내는 것으로 오인하고 41발을 쏴 19발을 맞춘 사건이다. 그는 평범하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시민이었다. 경찰은 그를 성범죄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아마두 디알로가 호주머니를 뒤지자, 경찰 중 한 명이 “Gun!”이라고 소리쳤고, 그 즉시 사격이 발생한 것이다. 아마두 디알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곡으로는 2001년 발표된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Amerian Skin(41 Shots)”과 2002년 공개된 로린 힐(Lauryn Hill)의 “I Find It Hard To Say”가 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곡은 일부 단체에 항의까지 받았지만,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공연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선보였다. 또한, 이 곡은 올해 새로운 버전을 다시 공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로린 힐의 곡은 일다에 공개된 관련 기사(링크)를 통해 내용을 알 수 있다. 위 기사에서도 언급되었지만, 2008년에는 오스카 그랜트(Oscar Grant)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에도 오스카 그랜트는 연말을 맞이하여 새 출발을 결심하고 여자친구와 함께 놀러 나가는 길, 지하철에서 다툼이 있자 지하철 밖으로 격리되어 순순히 투항했음에도 총격을 입었다. 당시 지하철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이를 영상으로 남겼고, 미국 전역에 큰 충격을 주며 집회와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등장한 영화가 올해 초 국내에서 개봉했던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Fruitvale Station)]이다. 영화는 철저히 실화를 각색하며 드라마로 바꾸기보다는 사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맥락과 사실에 충실하였다. 영화는 구체적인 시각들을 알려주며 현실을 재현하면서도 그가 가진 맥락들을 구차하지 않게, 깔끔하게 설명한다. 핸드헬드로 찍은 부분이나 영화 내 자료화면은 극영화 내에 실사의 느낌을 심어준다. 동시에 그가 처해있는 상황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실제 삶이 지니고 있는 무게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Fruitvale Station) 예고편 이후 2012년 2월,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 사건이 발생한다. 자경단의 조지 짐머만(George Zimmerman)은 동네를 순찰하다 검은 후드티를 입은 흑인 청소년 트레이본 마틴을 발견하고 추적한다. 계속 트레이본 마틴을 쫓아간 조지 짐머만은 결국 격투를 벌였고, 짐머만은 권총으로 그를 쏴 죽였다. 경찰은 정당방위라고 했지만, 마틴은 ‘이상한 사람이 쫓고 있다’는 통화 내용을 남겼고, 그냥 편의점에서 먹을 걸 사가는 길이었다. 반면 짐머만은 ‘마약과 관련된 듯하다’며 911에 보고했지만 911이 추적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끝까지 쫓아간 셈이다. 이후 사회는 각종 여론으로 들끓었고, 추모 행렬 및 집회는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검은 후드티를 상징적으로 입기도 하였다. 사건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각종 조작 의혹과 논란이 일었고, 결과적으로 짐머만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문제는 이후 조지 짐머만이 셀레브리티 복싱 경기를 준비하고, 매스컴을 포함한 언론이 그를 유명인처럼 조명하며 왜곡된 시각을 가져 문제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다시 돌아와 이번 마이클 브라운 사망 사건을 보자. 이번 사건은 경찰의 총기 문제, 미디어의 문제 등 문제 자체가 굉장히 다각화되고 있다. 우선 경찰의 총기나 도구가 지나치게 군사화되어가는 점, 동시에 바디 카메라(신체에 착용하는 카메라)의 적극 도입 등 기술적인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트레이본 마틴 사건에서 자경단의 무기 소지 및 허가를 할 수 있는 무기의 종류까지 논란이 되었음에도 경찰은 꾸준히 자신들의 무기를 강화했고, 그 결과 공권력이 가진 힘은 더욱 위압감을 조성하게 되었다. 동시에 미디어의 경우 마이클 브라운을 ‘thug(폭력배)’로 묘사하며 부정적인 사진을 선택하여 올리면서 논란이 되었다. 언론은 마이클 브라운에게도 졸업사진과 같은 단정한 사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편견이 만든 프레임에 맞춰 마이클 브라운을 노출한 것이다. 그래서 “#IfTheyGunnedMeDown”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SNS에서는 자신의 자유분방한 사진과 단정한 사진을 동시에 올리는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비슷한 사건들이 쌓아왔던 문제점이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더욱 크게 드러난 셈인데, 이는 단순히 분노의 팽창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각화된 문제점을 하나씩 짚는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온 곡 중 하나는 제이콜(J. Cole)이라는 아티스트의 “Be Free”라는 곡이다. 가사 내용은 단순하다. “우리가 모두 원하는 건 매듭을 끊는 것”이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반복하여 강조한다. 더불어 곡에 목격자들의 증언을 싣기도 하였다. 제이콜은 이 곡을 올리며 “누군가에게 죽었든 간에 마이클 브라운을 포함하여 고인이 된 모든 어린 흑인 친구들의 명복을 빈다. 편견이 걷히고 평화로 가득하길 빈다”고 말했다. 제이콜은 데뷔 앨범부터 커뮤니티의 실상, 특히 커뮤니티 내에서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모습을 조명하는 것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각종 편견이 강하게 자리 잡은 현실에 대한 비판도 지속해서 해왔다. 그러면서 힙합의 멋을 유지하기 위해 고민했고, 지난 두 번째 앨범 [Born Sinner]에서는 개인이 가진 감정, 복잡한 심경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타인과 자신 간의 관계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고민과 현실을 결부시키는 방식, 거리의 여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은 여전히 유효했다. 이번 곡은 먹먹한 신시사이저 소리가 제이콜의 감성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점에서 제이콜이 첫 정규 앨범을 선보이기 전 무료로 공개했던 곡들의 결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가끔 노래를 해왔지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곡 전체를 통해 보컬이라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그래서 더욱 그의 감정이 잘 전달된다. 현재 제이콜 외에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도시를 직접 방문하는 등 적극적으로 추모 및 진실 규명에 동참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곡을 공개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스쿨보이 큐(Schoolboy Q), 앱소울(Ab-Soul), 제이 락(Jay Rock), 아이제이어 라샤드(Isaiah Rhshad), 스자(SZA)를 보유하고 있는 현재 제일 핫한 레이블 TDE의 공동대표 펀치(Punch)이다. 그는 최근 들어 무료로 곡을 간간이 공개하고 있다. 랩이라고 하기 이전에 일종의 ‘공적 발언’인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평범한 레이블 대표가 아니라는 점은 평소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는 말들, “음악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이전에 음악이다, 단순히 돈으로만 계산하지 않는다.” 같은 발언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한 “1965”와 “Prelude”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캘리포니아의 주지사였으며, 그것이 어떻게 흑인 사회에 영향을 줬는지를 특유의 묵직한 랩으로 이야기한다. 이번 곡 역시 역사를 요약하여 설명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격을 띤다. 펀치가 이야기하는 것은 인종 간의 빈부격차가 심각해지는 사회 현상과 마약 거래 등이 성행하던 시절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에 1965년 발생한 와츠 폭동 당시의 뉴스를 추가하는 것으로 지금의 사건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와츠 폭동은 1965년 당시 흑인 거주지 와츠에서 백인 경찰 2명이 음주운전을 혐의로 흑인 운전자와 그 형을 두들겨 팼던 것을 계기로 모여있던 군중들이 공권력에 대항한 사건이다. 미국의 흑인 탄압은 지난한 역사를 가졌고, 공권력을 적으로 상정하는 시각도 자연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탄압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그 때마다 탄압받는 주체들은 그 바깥의 다수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단단한 벽에 균열을 낸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의와 탄압에 대한 저항이 가능한 제도와 사회적 공기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아직까지 공권력을 적으로 대하는 것은 곧 범죄에 해당한다. 절대적인 권력 아래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가운데 그나마 가능했던 것은 예민함의 유지 정도였지만, 그렇게라도 끊임없이 균열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1965년 이후 미국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전히 같은 화두가 반복된다. 지젝은 ‘혁명적 테러’를 긍정했지만 한국의 현실은 능동적 움직임을 꺾어놓을만큼 견고해 보이기도 한다. 이때 SNS라는, 물리적 폐쇄성이 없는 공간의 일부는 서로의 감정적 연대를 실천적 행동으로 이어나가진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균열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감정을 공유하는 것으로만 가능하지 않다. 그보다 더 큰, 어쩌면 국가와 같은 거대한 세계를 상대할 때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무엇이다. 공감과 존중, 그리고 그 싸움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지구력. 앞서 언급한 미국의 상황들은 그 어떤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었고, 거기서 나온 음악이란 음악가 자신이 낼 수 있던 세계의 균열이었다. ‘혁명적 테러’를 현실화하기 어렵다면, 각자가 서 있는 곳에서 실체적인 균열을 만들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용기가 필요한 때다. | 블럭(박준우) blucsha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