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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첫째 주 위클리 웨이브는 단편선과 선원들, 송나미 앤 리스폰스, 이씨이, 퓨어킴의 새 앨범에 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추석 연휴가 있는 다음 주는 건너뛰고, 다다음 주에 찾아오겠습니다. | [weiv]
 

 

 


단편선과 선원들 | 동물 | 2014.08.27
단편선과 선원들

김윤하: 처음엔 너무 잘 다듬어진 앨범에 놀라고, 곡들의 수려함에 한 번 더 놀란다. 동양의 것과 서양의 것, 사이키델릭과 포크, 추상과 실재, 분노와 위안, 절규와 합창 등 서로 상충하는 소리와 이미지들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레 녹아난다. 엄밀하게 따지면 신곡보다 구곡이 많은 앨범이지만 재탕 느낌이 나지 않는 것 역시 훌륭하다. 어둠 속에서 헐떡대던 짐승을 여기까지 길들여 이끌어온 선원들의 노고와 합에 아낌없는 박수와 지지를 보낸다. 물론 그 특출한 ‘짐승’에게도. 이 앨범에 대한 수많은 이들의 가슴 뭉클한 소개글들은 이곳(http://danpyunsun.tumblr.com/post/96347603829)에서 확인할 수 있다. 8/10
한명륜: 전작 EP [처녀]에서 들려주었던 거친 포효가 내면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그 에너지는 숨겨졌다기보다 강하게 압축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낮게 숨죽이되 멈추지 않고 걸어오는 “공”의 울림, 아름다운 아르페지오 사이에서 주문처럼 떨리는 “소독차” 등은 그야말로 동물적이다. 날카로운 직선과 곡선이 불편하게 어울리는 폰트들로 이뤄진 CD 내지 디자인에서 보이는 거친 에너지도 선원들이 부르는 노래의 이미지에 힘을 더한다. 주제를 향한 집중력이 뛰어난 수작. 9/10
정구원: 보통 솔로 뮤지션이 밴드를 결성해서 작업한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더 거대한 무언가를 예상하게 된다. 더 화려한 곡, 더 웅장한 사운드, 뭐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단편선과 선원들은 반대로 간다. 이제까지의 ‘회기동 단편선’이 들려준 음악을 생각했을 때, [동물]은 거기서 많은 것을 덜어내고, 정제하고, 집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사운드는 굉장히 깔끔하고(특히 “공”의 해상도는 올해 나온 어떤 트랙과도 비교를 불허한다) 악기 소리는 정확히 각 멤버들이 연주한 만큼만 들린다(“백년”, “동행”, “소독차”를 [백년] 버전과 비교해서 들어보자). 유일하게 거대한 부분이라면 단편선 특유의 싸이키델릭-프로그레시브-포스트-포크-록적인 송라이팅일 텐데, 이 폭주하는 악곡 구조와 잘 정돈된 사운드가 만나 기묘한 긴장감을 발생시킨다. 마치 사슬에 묶여 씩씩거리는 ‘동물’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긴장감.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가끔씩은 사운드의 사슬이 동물을 너무 꽉 옥죄기도 하며(“순”의 폭발력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닐 텐데), [백년]의 감초 같은 드론/앰비언트 사운드가 그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을 지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한 작품이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거기에 답은 없을지라도, ‘하나의 의미를 온몸을 다해서 새겨가는’(“우리는”) 행위는 이미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니까. 어쩌면 답보다도 더 큰 의미가. 8/10

 

 

이씨이 | 나를 번쩍 | 2014.08.23
이씨이

정구원: 좋은 무기를 들고서 투척용으로만 사용하는 전사를 보는 느낌. 캔(Can)이나 토킹 헤즈(Talking Heads)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이고 사이키델릭한 기타 사운드와 비틀린 곡 구조는 확실히 재미있지만, 그것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집중력 있게 전개된다기보다는 단순히 흥미로운 요소를 툭툭 던지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바꿔 말하면, 그것을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하니만큼, 다음 한 타는 제대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6/10
한명륜: 귀를 사로잡는 것은 실험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리듬이다. 지난 해 ‘헬로루키’ 결선 당시 불렀던 “붐비세”, “Jumping Salmon”은 오히려 기타와 베이스가 얌전한 편이었다. 인트로인 “매달아주오”, “Concorde de Congo” 등을 들으면 이들이 리듬에 관해 얼마나 재기 넘치는 새로운 제안을 선보이는지 알 수 있다. 다만 김동용의 보컬은 공연으로 볼 때와 달리 다소 그 특유의 야성이 음반에 다 실리지 않은 인상. 7/10

 

 

송나미 앤 리스폰스 | 끝이 보여요 | 선데이디스코! | 2014.08.19
송나미 앤 리스폰스

최성욱: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전개하면서, 중간중간 재즈, 보사노바, 블루스 풍의 구성을 덧붙여 곡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소박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롤러코스터가 이와 같을까? 비프음으로 처리된 지점들이 군데군데 있는데(아마도 심의 과정 때문), 이것이 곡의 흐름을 툭툭 끊어놓는다. 마감이 아쉬운 부분이다. 7/10

 

 

퓨어킴 | Purifier | 미스틱89 | 2014.09.02
퓨어킴

블럭: 퓨어킴은 이미 미스틱89에 들어가기 이전에 충분히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아스트랄한’ 아찔함을 선보였던 그녀의 예전 모습은 이제 기대할 수 없을 듯하다. 앨범은 음악적 색채의 폭을 넓히면서(혹은 완전히 바꾸면서) 가사를 통해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녀가 보여준 몇 가지의 모습 중 어느 것을 진짜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 없다. 하지만 기획과 제작을 거치며 새로 만들어진 이 옷은 퓨어킴에게 다소 거추장스럽다. 그래서 예전의 모습이 그립다고 말하는 것이다. 5/10
김윤하: 앨범의 크레딧을 보며 갸웃하다 앨범을 몇 번 돌려 듣고 나선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화가 났다’는 표현을 책임지기 위해 조만간 좀 더 긴 글을 쓰려 하지만, 우선은 이렇게 기록해두겠다. 이 앨범은 존재 자체로 두 가지 슬픈 사실을 동시에 통보하는데, 하나는 재주 많은 엔터테이너이자 성실한 창작자인 윤종신이 안타깝게도 ‘프로듀싱’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인물이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적잖은 이들이 눈여겨보고 있던 개성 넘치는 싱어송라이터 하나가 꽤 요란하게 소멸되었다는 점이다. 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