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ade Fire – Abraham’s Daughter | Songs From District 12 and Beyond (2012)

 

* [헝거 게임(The Hunger Games)]은 리얼리티 쇼를 비판하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정글의 생존방식’이란 엔터테인먼트의 비유를 액면 그대로 불러와 긴장의 토대로 삼고 최초의 리얼리티 쇼였던 [빅 브라더]를 비롯해 [프로젝트 런웨이], [아메리칸 아이돌], [도전 슈퍼모델] 같은 성공한 리얼리티 쇼의 중요한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하지만, 그걸 통해 리얼리티 쇼를 반영하는 것 이상의 성찰에는 도달하진 못한다. 실패한 반전영화처럼 [헝거 게임]은 스펙터클을 비판하는 동안 스스로 스펙터클이 되고 마는데 이 영화에 애초부터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면 사실 이 얘기는 변죽 이상도 아닐 것 같다.

차라리 [헝거 게임]은 이제까지 호러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장르적 특징과 금기들: 위험한 10대, 로우틴 소녀의 죽음, 비겁한 성인들, 사회적 광기 같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써먹으며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만드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영화의 대중성에 대해선 따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데, 한편 텍스트 바깥에서는 산업, 특히 사운드트랙 제작방식에서 관심을 끌기도 한다.

사운드트랙은 두 개의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티 본 버넷(T-Bone Burnett)이 모두 디렉터로 참여한 이 앨범들은 제임스 뉴튼 하워드(James Newton Howard)의 스코어와 [Songs From District 12 and Beyond]란 제목의 사운드트랙으로 발매되었다. 요즘엔 스코어와 사운드트랙을 분리시켜 발표하는 게 자연스럽다. 스코어 앨범의 시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후자인 [Songs From District 12 and Beyond]의 제작 방식이다. 이 앨범에는 모두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신곡들이 실렸는데, 아케이드 파이어의 “Abraham’s Daughter”, 테일러 스위프트의 “Safe & Sound”를 비롯해 로우 앤썸(The Low Anthem), 글렌 한사드(Glen Hansard), 마룬 파이브(Maroon 5), 니코 케이스(Neko Case), 디셈버리스츠(The Decemberists) 등이 참여했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Abraham’s Daughter”는 특히 인상적이다. 수록된 다른 곡들이 포크에 치우친 인상을 주는 것에 비해 이 곡은 훨씬 미래적이고 우울한 사운드를 제시한다. ‘아브라함의 딸’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캣니스 에버딘(배우 제니퍼 로렌스 Jennifer Lawrence)을 빗댄 것으로, 실제 구약에서 ‘아브라함의 딸’은 모든 유대 여성들을 가리키는 표현 정도로 쓰인다(사실 구약은 유대 남성들의 역사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윈 버틀러(Win Butler)는 이 외에도 제임스 뉴튼 하워드와 함께 스코어 작곡(“Horn of Plenty”)에도 참여했는데 영화에서 수차례 변주되는 이 곡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Abraham’s Daughter”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한다.

한편 미발표 싱글을 사운드트랙을 통해 발표하는 방식은 최근의 사운드트랙 제작에서 보편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영화의 내러티브, 분위기, 정체성과 맥락을 교차시키며 기존 곡이 아닌 신곡을 작업하게 만드는 방식은 2010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사운드트랙이었던  [Almost Alice]의 제작 방식과도 유사하다. 이 앨범은 영화 제작과 함께 기획되었고 아이튠즈 같은 모바일 플랫폼에서 영화를 홍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에이브릴 라빈(Avril Lavigne)의 신곡이자 복귀작이었던 “Alice”가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는데, 그를 통해 이 앨범은 OST 마케팅에서 주목할만한 기점을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Almost Alice]의 수록곡들 대부분이 정작 영화에는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일종의 컨셉트 앨범이었음에도 ‘영화 음악’처럼 이해되었고 또 그렇게 소비되었다. 마케팅에 있어서는 플랫폼에 따라 차별화된 트랙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아이튠즈 다운로드 버전과 잡지 부록 버전, CD 버전을 각각 다르게 제공하면서 구매자를 차별화시켰다. 이게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일한 컨텐츠를 복수의 플랫폼에 맞춰 차별화시킨다는 전략은 흥미로워 보인다.

[Songs From District 12 and Beyond]도 같은 맥락에서 흥미롭다. 이 앨범 역시 플랫폼에 따라 다른 리스트를 제공하는데, 스팅(Sting)의 “Deep in the Meadow (Lullaby)”는 아예 음반 구매자에 한해서만 다운로드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한다. 이것은 다른 국가나 다른 산업 분야에서 비교적 일반화된 구매 정책(번들 하나 끼워주지 않는 애플이나 소니의 하드웨어 구매 정책이나 한국의 아이돌 음반 ‘리패키지’ 같은)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영화 음악의 영역에서는 일반화되지 않은 방식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여기엔 어떻게든 영화 음악의 한계를 극복하고 마케팅 효과를 확대하려는 블록버스터와 음악 산업의 교차점이 존재한다.

[Songs From District 12 and Beyond]는  ‘발매 즉시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했는데, [This Is It] 이후에 사운드트랙이 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물론 그 다음 날 바로 차트에서 밀려났지만, 어쨌든 마케팅 효과는 증명한 셈이다. 과연 이게 사운드트랙의 대안적 미래일까 아닐까. 이제까지 미국의 팝이 할리우드 영화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점에서 일단은 흥미롭게 살펴볼 만한 사례로는 보인다. | 차우진 nar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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