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 로퍼. 잰시 던 저 | 김재성 역 | 뮤진트리 (2014) 구입 정보: http://www.mujintree.com/01_book/view.asp?SNO=112 강한 여자들에게 끌린다. 혹자는 그저 이상한(?) 취향이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닌 것 같다. 오랜 세월 고민한 끝에(나는 왜 핑클보다 베이비복스를 더 좋아하는가, 어째서 내 연애는 이 따위란 말인가 등등) 내린 결론은, 아마도 그녀들이 누구도 아닌 바로 그녀 자신이기 때문에 내가 반했으리라는 것이다. 누구든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보이지만 정작 주체적인 삶의 기본 전제기도 하다. 신디 로퍼는, 내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지금도 내게 그런 여자 중 하나다. 앨범 [She’s So Unusual]의 커버를 본다. 강렬한 원색의 푸른 벽 앞에서 누더기처럼 온갖 장신구가 박힌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다. 댄스의 한 순간을 포착한 이 사진에 찍힌 그녀는 맨발이다. 펑크 스타일의 빨간 머리와 붉은 원피스, 파란 벽, 한쪽으로 던져진 우산의 스트라이프가 경쾌하면서도 해방적인 인상을 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족 발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졌다. 덕분에 전체의 이미지는 자유를 즐기는 여자가 아니라 ‘자유롭고 싶은’ 여자가 된다. 마침 신나게 춤추는 순간의 표정이 굳어있는 것이 새삼 눈에 밟힌다. 이 커버 사진이야말로 신디 로퍼의 기반과 정체성을 직설적으로 묘사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이 앨범의 최대 히트곡인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은 밤을 새워 노는 여자들의 쾌락을 묘사하는 노래라기보다는 구조적인 억압에 놓인 여자들을 위한 송가였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좋아. 송가를 하나 만들어보자.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고 잠에서 깨워줄 송가를.” 신디 로퍼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대로 되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만큼 책의 곳곳에는 그녀가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담긴다. 지구적으로 성공한 슈퍼 스타의 옵션인 불행한 과거로 들릴 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더 본질적인 이야기 같다. 그녀는 살기 위해 집을 떠났고, 도시를 헤맸고,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에도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She’s So Unusual]을 발표했을 때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부른 노래가 누군가를 살린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책 [신디 로퍼: 세상을 노래하는 팝의 여왕]이 불우한 과거를 극복한 성공담이 아니라 생존기처럼 읽히는 이유다. She’s So Unusual (1984) 신디 로퍼는 거침없이 솔직한 예술가이자 페미니스트다.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들에게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인용해 “여성의 최대 업악자들은 교회와 가정과 정부”라고 말할 줄 아는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가 여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쓰이기를 원했다. 또한 그 노래가 할머니와 엄마와 딸을 이어주길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신디 로퍼는 어린 시절부터 흠모하던 밥 딜런이나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포크/록 스타들이 사실은 그들의 노래처럼 의식 있고 사회참여적인 게 아니라 성차별적이고 권위적인 ‘남자’일 뿐이란 사실을 경험한 뒤에는 깨끗이 그들에 대한 애정을 접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반면 미디어에서 그토록 라이벌로 부추기던 마돈나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인연으로 연결된 동료’라는 표현으로 애정을 담아낸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오는 신디 로퍼는 어쩌면 미디어나 평론가들이 묘사하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책에 담긴 것이 거의 그녀 자신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여기서 ‘제대로’란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것이리라. 꿈을 가진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살고, 욕망을 가진 사람들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산다. 어느 쪽이든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모두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 강해진다는 것은 어떤 각오를 세운다는 뜻이다. 어떤 각오인가. 자신을 다른 것으로 만드려는 온갖 시도와 협잡에 맞서 싸울 각오다. 신디 로퍼는 그 각오를 세웠다. 1960년대라는 변혁기의 그림자, 가족과 친구와 연인으로부터 얻은 공포와 실패와 좌절의 경험들이 그녀를 도왔다. 그러니까 어떤 각오를 세우기 전에 미리 겁부터 나고 자신감을 잃은 사람에게 이 책은 꽤 큰 용기를 줄 것 같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KINKY BOOTS (Broadway) – “Everybody Say Yeah” [LIVE @ The 2013 Tony Awards] 이 책에는 2011년까지의 일만 담겼다. 하지만 2014년은 신디 로퍼가 데뷔작 [She’s So Unusual]을 발표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2013년에는 뮤지컬 [킹키부츠]의 음악 감독으로 그해 토니상을, 여성 작곡가로선 최초로 받았다. 현재 그녀의 나이는 환갑이 넘었다. 30년 전의 그녀는 이 모든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이룬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온, 고민하고 선택하고 결정한 일들의 결과란 건 분명하다. 운이 좋을 때도 있었겠지만 그것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나쁜 것들 속에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던 소녀는 인생의 황혼기에 와서 마침내 가장 좋은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자서전은 성공한 음악가가 겸손으로 치장한 자화자찬과는 다른, 바닥을 치고 부상해 여기까지 온 생존자의 회고록 같다. 거침없다.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것에 대해 쓴다. 그래서 좋다. 작은 더플 백 하나를 메고 무작정 집을 떠났던 1970년의 열일곱 살 소녀와 함께,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 차우진 nar7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