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카시네마’는 단순히 영화적 소재로서 음악을 선택했거나 뮤지컬 영화처럼 그저 음악의 비중이 큰 영화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무지카시네마’는 음악에 대한 영화이며, 나아가 음악 그 자체인 영화다. 요컨대 다층적 ‘음악 텍스트’로서의 영화. | 최유준

 

2006년에 개봉한 영화 [원스(Once)]의 감독 존 카니(John Carney)는 원 테이크 라이브 녹음과 두 대의 핸드 헬드 카메라로 찍은 소박한 화면으로 음악영화 역사상 손꼽을 만한 아름다운 음악 장면을 연출했다. 악기 가게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Falling Slowly”를 부를 때와 같은 대중음악의 ‘진정성’이 실현되는 소박하면서도 극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담아 낸 것이다.

진정성이란 모호한 개념이지만, 한때 대중음악이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미학적 가치로 간주되기도 했다. 진정성이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진정한 소통을 의미하는 한, 그것은 또한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 주류에 낄 수 없는 타자(他者)들을 위한 전유물처럼 여겨진 것이다. 영화 [원스]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남자는 가전제품 수리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우며 길거리 공연을 하는 가난한 가수 지망생이고, 여자는 어린 딸과 영어 소통 능력이 없는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체코 출신의 이주민이다. 배경도 아일랜드의 더블린. 이를테면 그동안 대중음악이 풍겨왔던, 하지만 지금은 순화되고 잊힌 타자성의 이미지가 총동원된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영화는 성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어느 가수 지망생의 구체적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정성을 추구하던 대중음악의 한 시기를 회고하는’ 전설이나 동화처럼 읽힌다. 남녀 주인공의 이름조차 영화의 마지막까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우리는 영화 속 남자와 여자를 고유명사로서 이름을 가진 개별적 존재가 아닌, 20세기의 진정성 있는 뮤지션들을 대표하는 보통명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이 영화는 편집증적일 만큼 20세기 음악 생산의 조건(버스킹-리허설-은행대출-데모음반 녹음-중앙무대 진출로 이어지는)을 세세하게 펼쳐 보인다.

20세기 말 포스트모던적 가치관이 자리 잡으면서 진정성에 대한 지향이나 추구는 소멸한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성’이라는 비평 용어가 자취를 감췄을 뿐 대중들의 진정성 추구는 오히려 강화된 측면도 있다. 사실상 21세기는 ‘진정성 과잉 추구의 시대’이기도 하다. 음악에서는 [슈퍼 스타 K]나 [TOP 밴드], [K팝 스타]와 같은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의 광범위한 유행이 그에 대한 명백한 징후다. 21세기의 청중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가짜가 아닌 진짜, 아직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진정성 있는 뮤지션의 음악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더 다듬어지고 완성된 프로의 무대가 아닌 아마추어에 그토록 탐닉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21세기의 청중들은 20세기 청중들처럼 뮤지션의 음악만으로 진정성을 가늠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만큼 과격해졌다. 그들은 뮤지션의 삶의 태도, 가치관, 동료들과 관계 맺는 방식, 음악을 만드는 전 과정까지 투명하게 지켜보면서 진정성을 평가하려 드는 것이다. 실제 뮤지션의 생생한 라이브 연주와 그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이 담긴 영화 [원스]는 그렇게 21세기의 청중과 행복하게 조우했다. 그것은 영화로 연출된, 상상 가능한 가장 훈훈한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면이기도 하다.

 

[원스 어게인]의 포스터

‘원스 어게인’

15만 달러의 제작비로 17일간 촬영한 아일랜드의 독립영화가 미국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받았으니 음악 영화로서 그 이상의 성공은 거두기 힘들 것이다. 영화 [원스]의 큰 성공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감동적인 음악과 그 세세한 결을 살려낸 연출에서 비롯되었지만, 앞서 말한 ‘진정성 과잉 추구의 시대’와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음악 영화로서 [원스]의 독특한 건 이 영화가 사실상 음악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 때문이다. 가령, 기존의 OST 음반은 (아무리 음악영화의 사운드트랙이라 해도) 대부분 영화 속 뮤지션의 정식 음반은 아니었다. 그러나 [원스]의 OST는 그렇게 되었다. 이런 밀착은 [원스]의 성공 요인이기도 했지만, 다음과 같은 물음을 남기기도 했다. [원스]의 OST 음반은 누구의 음반일까? 영화 속 ‘남자’와 ‘여자’의 음반일까? 아니면 그들을 연기한 실제 뮤지션 글렌 핸사드(Glen Hansard)와 마르케타 이글로바(Marketa Irglova)의 음반, 다시 말해 그 둘이 결성한 듀오인 ‘스웰 시즌(The Swell Season)’의 음반일까?

영화 [원스]의 성공 직후, 실제 연인이기도 했던 글렌 한사드와 마르케타 잉글로바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The Swell Season](2011)이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되면서 ‘원스 어게인’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는데, 수입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적절한 번안 제목이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영화 [원스]의 영광과 음악적 감흥이 과연 현실에서 재연될 수 있을지를 관객들에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글렌과 마르케타는 [원스]로 갑자기 치솟은 인기 덕분에 빡빡하게 짜인 투어 일정을 힘겹게 소화하면서 나날이 지쳐간다. 특히 나이가 어리고 뮤지션으로서의 경험도 적은 마르케타는 심신의 피로감을 느끼면서, 자신을 마치 유명 배우처럼 대하는 팬들의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결국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애초 의도와는 달리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잉글로바의 연인 관계가 갈등 끝에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원스]의 남자와 여자가 아닌, 글렌과 마르케타라는 현실 속의 ‘스웰 시즌’은 대중의 선망 어린 시선, 특히 [원스]의 두 주인공이 무대 위에 재림할 것이라는 식의 감당할 수 없는 기대에 큰 부담을 느낀다. ‘스웰 시즌’은 수록곡의 상당수가 [원스]의 OST(2007)와 겹치는 데뷔 음반 [스웰 시즌](2006)과 [원스] 촬영 후 발표한 [스트릭트 조이](2009)만을 발표한 채 해체했다. 이때 [원스] OST는 ‘스웰 시즌’의 음반이었는지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스웰 시즌’의 음반이었지만 자기 부정적 음반이기도 했다.

 

once 02

[원스]의 한 장면

진정성 소비의 일회성

대중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것은 대중 음악가들의 영예이자 불가피하게 풀어야 할 숙제다. 20세기의 음악가들도 첫 번째 음반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 대중의 높아진 기대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며 두 번째 음반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세기의 대중 음악가들은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파트너와 콜레보레이션을 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대중으로부터 음악성과 진정성까지 평가받지는 않았다. 현재의 대중 음악가들은 소박한 성공의 순간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큰 성공을 향해 한 걸음 더 딛었을 때 남은 이에게 어떤 아량을 베푸는지를 가지고 그 진정성을 시험받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음반으로 재도전할 수 있었던 지난 시대의 음악가들과 달리, 이 시대의 음악가들은 한 번 그 냉혹한 진정성의 시험대를 통과하고 나면 다시 동일한 진정성의 시험대에 올라갈 수 없다. 예컨대 누가 다시 글렌과 마르케타를 주인공으로 [원스]와 같은 영화를 만들겠는가. 그것은 ‘슈스케’의 우승자가 또 다른 ‘슈스케’에 재도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진정성 과잉 추구 시대란 결국 진정성을 일회적으로 소비하고, 뮤지션들의 진정성을 일회적으로 착취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물질적 배경에는 ‘음반 산업의 몰락’이라는 대세적 흐름이 있다. 그러고 보니 ‘원스’라는 영화의 제목도 진정성 소비의 일회적 성격을 암시하는 듯해서 섬뜩해진다. 이 따뜻하고 로맨틱한 영화에 대고 할 소린가 싶지만 말이다. | 최유준 http://musicology.co.kr

note: 최유준.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음악이론을 전공하고 동아대학교 음악문화학과에서 ‘음악학-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학교 감성인문학연구단 HK교수로 재직하며 여러 매체와 학술지에 기고 중이다. 홈페이지는 [최유준의 웹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