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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를 건너뛰고 찾아온 10월 첫째 주 위클리 웨이브는 김사월 X 김해원, 고상지, 라이너스의 담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새 앨범에 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 [weiv]
 

 

 


김사월 X 김해원 | 비밀 | 2014.09.16
4

김윤하: 세르쥬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이소벨 캠벨과 마크 래니건 그리고 The XX. 이상 김사월과 김해원의 만남을 듣고 본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꺼낸 이들의 이름이다(개인적으로는 거기에 이승열과 시이나 링고의 이름을 추가하고 싶다). 마치 청자들의 음악 이력서를 들추어 보는 듯한 이 거창한 되새김은, [비밀] 안에서 놀랍게도 착각이나 허세가 아닌 실제 상황으로 드러난다. 담담하지만 야하고, 눅눅하지만 피부가 찢어질 듯 거친 사막의 바람 한가운데에 김사월과 김해원 두 사람이 서 있다. 무드와 공간감이 압도하는 새로운 포크의 입구, 당신은 아껴주거나 내버려두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할 것이다. 7/10
최성욱: 시크한 척하다가 어느 순간 서늘하게 돌변하기도 하고, 삭인 분노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기도 하며, 무모하면서도 당돌한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단출한 사운드지만 기타를 뼈대로 프렌치 팝에서부터 트립합까지 오르내리며 시종일관 건조하고 팽팽하게 진행된다. 서로 다른 음역대에서 차분하게 울리는 김사월과 김해원의 목소리도 분위기를 긴장감 있게 이끄는 데 한몫한다. 8/10

 

 

고상지 | Maycgre 1.0 | 프라이빗커브 | 2014.09.23
3

최성욱: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와 같이, 마치 재패니메이션 수록곡처럼 경쾌하고 장엄하다. 반도네온 연주자로서의 고상지보다는 작곡가 혹은 음악감독 역할로서의 고상지가 더욱 부각되는 이유다. 악기의 쓰임새, 악곡의 구성에 있어 어색한 부분 없이 부드럽게 흐른다. 그러나 뚜렷한 대표 싱글이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7/10
블럭: 탱고 음악은 그 자체로도 서사와 힘을 가지고 있다. 고상지의 음악 역시 탱고 음악이지만, 기존의 탱고 음악이 가지고 있는 서사나 분위기와는 다르다. 이미 본인이 맥락을 공개했고 뮤직비디오가 컨셉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듯 ‘애니’라는 키워드를 무시할 수 없는데, 첫 곡에서의 막연하고 힘찬 긍정에서 짙게 가라앉은 후반부까지, 고상지는 자신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해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일본 애니메이션에서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떠올리게 하며, 수많은 작품 안에서도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러한 맥락을 모르더라도 좋은 감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만큼 탱고 음악의 구성이 소리로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것에 있어서는 정말 좋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만큼 곡을 쓰고 연주를 하는 이의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8/10

 

 

라이너스의 담요 | Magic Moments | CJ E&M, 2014.09.17
2

한명륜: 연진의 새로운 발견. 언뜻 들으면 늘 들려주던 가녀린 허스키 보이스의 연장 같지만 첫 곡 “Summer Night Magic(feat. 빌리 어코스티)”부터 “Love Me(Feat. 김태춘)”에서 들리는 바, 묘하게 비음이 섞이며 낮은 쪽 배음이 넓어진 목소리는 이전에 없던 끈적함으로 듣는 이를 놀라게 한다. 전작까지 ‘담요’가 아이의 소품 정도였다면, 이번 결과물부터는 ‘성인용’이 됐다. 7/10
김윤하: 1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지만 이런 결과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감내할 만하지 않았나 싶다. 잦은 멤버 교체와 그에 따르는 공백을 딛고 결성 14년 만에 연진의 솔로 체제로 모습을 바꾼 라이너스의 담요는 첫 앨범 [Semester]와 [Labor in Vain] 이후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을 남긴다. 윤석철, DJ 소울스케이프, 조월, 김태춘, 김간지x하헌진, 주윤하 등 제 몫을 다하는 ‘연진의 남자들’과 힘이 붙으며 탄탄해진 연진 특유의 드리미한 보컬은, 그들이 그리고자 했던 ‘마법의 순간들’을 그럴싸하게 그려내며 팝의 정수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래도 10년은 너무 길지 않았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7/10

 

 

에피톤 프로젝트 | 각자의 밤 | 파스텔뮤직,2014.09.16
1

김윤하: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 특히 음반은 일반적인 솔로 뮤지션들과의 작업과 조금 다르다. 차세정은 자신의 앨범 안에서 배우가 되기보다는 감독의 역할이 되기를 자청한다. 한 발 뒤로 물러선 주연 대신 앨범의 표면에 서는 그의 페르소나는 매번 바뀌는 앨범의 테마이기도, 90년대 ‘고급가요’이기도, 손주희와 Azin, 선우정아 같은 객원 여성 보컬들이기도 하다. 단순한 2집, 3집이 아닌, 특별한 테마를 중심으로 그려내는 세계는 그런 그의 성향과 재능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안정적인 발판이다. 말수는 적지만 섬세한 감각을 가진 감독의 눈매가 여전히 예리하다. 7/10
한명륜: 앨범을 반복해 듣다 보면 쟁쟁한 참여 연주자들과 차세정이라는 인물의 음악적 향수가 갖는 정성적 공통분모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고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정 레이블의 이름으로 갈음되곤 하는 퓨전적 색채(“각자의 밤”), 스윙과 록커빌리의 분위기(“환상곡”(feat. 선우정아)), 보사노바(“친퀘테레”) 등 레퍼런스에 관한 담소를 듣는 듯하다. 다만 이런 방식이었다면,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어떤 악곡 스타일 면에서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그것을 향해 수렴시키는 ‘콘셉트’ 앨범이었다면 더 나은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