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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둘째 주 위클리 웨이브는 세이수미, 윤덕원, 로로스, 김동률의 새 앨범에 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 [weiv]
 

 

 


세이수미 | We’ve Sobered Up | 일렉트릭 뮤즈, 201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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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결국 중요한 건 ‘좋은 곡을 쓰느냐, 아니냐’다. 세이수미의 음악은, 비록 이름은 낯설지언정 당신이 한때 사랑했던 빛나는 생의 한 조각을 기필코 떠오르게 만들고야 말 회심의 일격을 품고 있다. 맑고 신선한 멜로디가 쉼 없이 흩어지는 인디/서프 록을 애써 외면할 필요가 있을까. 낯설어서 좋고, 익숙해서 더 좋다. 편견 없이 새롭고 즐거운 음악을 만나고 싶은 모두에게 두근두근 권하고 싶다. 7/10
한명륜: 첫 곡 “To Be Wise”, “One Week”,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등 짧은 반향으로 다급히 달리는 기타가 익살맞다. 벤처스 등의 밴드에서 들리던 경쾌함이 짙게 묻어 있는데, 이를 느긋이 바라보는 보컬은 달관한 듯한 표정과 대비를 이룬다. 지난 세기 중후반 서구의 히피적인 정서가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소비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어떤 필요에 의해 스타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멤버들이 동경해온 스타일에 대한 철저한 몰입이 돋보이기에 만들어지는 인상일 것이다. 다만 첫 앨범에서 좋아하는 방향에 대한 설정이 너무 확고해 앞으로 이들이 밴드의 음악적 색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변화시켜 나갈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7/10
정은정: 미국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서프록이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세이수미는 단순히 60년대 서프록을 재연하지 않고, 90년대 인디록의 전자 기타음과 드럼 비트 그리고 최수미의 힘 뺀 보컬로 사운드를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 녹음 환경 때문에 발생한 로파이한 질감마저 몽환적인 공간감과 청량감을 자아낸다. 모든 트랙이 통일성 있는 흐름으로 전개되며 밴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7/10
정구원: 종종 ‘외국 음악과 비슷한’ 음악이 아닌 그냥 외국 음악처럼 들리는 앨범이 나타날 때가 있다. [We’ve Sobered Up] 역시 그런 앨범이고, 이는 80~90년대 미국 칼리지록/인디록과 2000년대 캡처드 트랙(Captured Tracks)이나 우드시스트(Woodsist) 레이블을 떠올리게 만드는 탈-한국적인 레퍼런스 때문일 수도, 창고나 합주실이 아닌 진짜 ‘개러지’에서 녹음한 것처럼 들리는 사운드메이킹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의 ‘흥미로운’ 앨범이라면 이 지점에서 누구랑 비슷하니 누구랑 더 닮았니 하는 레퍼런스 비교지옥에 떨어졌겠지만, 세이수미는 수수하지만 귓가에 맴돌고, 감미롭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기타 멜로디를 선보이면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간다. 그 한 걸음이, 이 앨범을 ‘흥미롭고 듣기 좋은’ 앨범으로 끌어올린다. 이 전략이 다음 작업까지 유효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맥주 한 잔에 어울리는 광안리산 인디록 앨범 하나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기분이다. 7/10

 

 

윤덕원 | 흐린 길 | 스튜디오 브로콜리, 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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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 브로콜리 너마저와는 결이 묘하게 다른, 윤덕원이 가지고 있는 감성에 집중하는 앨범이다. 그 감성을 그대로 전달하는 간소한 악기 구성과 담담한 보컬, 곡마다 미묘하게 온도 차를 두는 편곡, 특히 신시사이저의 적절한 활용은 90년대 발라드를 연상시킨다. 각 곡의 길이가 조금 긴 감이 있지만, 그걸 느끼지 못할 만큼 무던한 듯 탄탄한 앨범이다. 8/10
김윤하: 덕원은 80년대가 낳고 90년대가 키운 아이다. 90년대 ‘고급가요’를 씨앗 삼아 세기를 넘어 같은 잎을 틔운 새싹. 그 모종이 자신의 뿌리(박용준)를 찾아 함께 완성한 첫 앨범은 과연 무서울 정도로 ‘그 시절’의 재현에 충실하다.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넘치는 기시감에 웃음마저 새어나오는 “신기루”는, 곡 자체의 매력을 넘어 ‘그런 의미’에서 앨범을 대표하는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조금 불편해 보이던 덕원의 노래들이 [흐린 길]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여 더 반갑기도 하다. 6/10
한명륜: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에서 다 구현할 수 없었던 멜로디의 100%를 쏟아부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절창과는 거리가 멀고 때로 음정이 불안하기도 하되 기교 없고 가냘픈 윤덕원의 목소리는, 오히려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신기루”는 인트로부터 사운드 소스의 표현까지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발라드 작법을 오마주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별이 빛나는 밤” 중간에 나오는 신서사이저의 소박하고도 다소 어색한 솔로잉 역시 90년대 초반 남자 발라드 가수들의 곡에서 종종 마주쳤던 장면이다. 어찌 보면 음악인 윤덕원의 개인적 카타르시스 같은 앨범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브로콜리 너마저를 이끌어가는 그의 음악세계를 다시 한 번 정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8/10

 

 

로로스 | W.A.N.D.Y | 201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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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 앨범은 분위기 중심으로 승부하는 듯한 인상에서 벗어나, 그들의 음악이 무엇인지 좀 더 꺼내 알려주는 듯하다. 수록된 곡들은 단순히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이상으로 때로는 집요하게, 때로는 거칠고 화려하게 전개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여전히 추상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각 트랙마다 구현하고자 하는 그림이 뚜렷하게 다가온다. 여기에 한 구절 시와 같은 가사는 곡이 가지는 분위기를 더욱 확실하게 만든다. 곡마다 가지고 있는 그림을 음악으로 옮기는 방법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식과 구성을 가지고 있어 흥미로운데, 앨범이라는 큰 그림도 별개의 곡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사운드 디자인 측면에서 감상하게 되는 밴드 음악. 7/10
최성욱: 익스플로전 인 더 스카이(Explosion In The Sky), 모노(Mono) 풍의 포스트록 문법을 충실히 구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장르의 자장 안에서 빠르기와 곡의 전개를 미묘하게 변화시킨다. 곡의 순서에 따라 여유 있게 강약을 조절해가며 ‘잿빛 로맨스’의 서사를 완성했다. 노이즈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면서 한결 여유 있으면서도 응집력 있는 사운드가 완성되었고, 처연한 서정성도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묘사되었다. 8/10
정구원: 6년 만의 정규앨범인 [W.A.N.D.Y]는 확실히, 야심작이다. 사운드는 전작보다 훨씬 커졌으며 연주력도 급상승했다. “Undercurrent”에서 “Senna”까지 이어지는 앨범 중반부의 대곡 퍼레이드는 밴드의 야심이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드라이브감 넘치는 기타 연주, 그 옆구리를 비장하게 받치는 현악기와 피아노 소리, 도재명과 하재인의 부유감 넘치는 보컬은 서로 다채롭게 엮이면서 그러한 야심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전작의 피아노와 첼로 대신 전면에 나선 기타는 역설적으로 밴드의 음악을 ‘관습적인’ 포스트록에 가깝게 만들어버리며, 외려 밴드의 개성을 저해하는 데 일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안타까운 부분은, [W.A.N.D.Y]가 정말로 대단한 것을 들려준다기보다는 ‘우리는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요, 대단하죠?’에 가깝게 들리는 앨범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소박한 야심도 야심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분명한 건 야심이 소박하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6/10
김윤하: ‘너와 나’가 ‘우리’가 되는 그 찬란한 성장의 순간.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로로스의 묵직한 두 번째 앨범은, 알 깨는 소리로 천지가 요란한 바로 그 성장의 산물이다. 어두운 방 안에서 비가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널 사랑한다 고백하던 유약한 ‘나’는 이제 없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모두가 만나는 곳에서 함께 춤을 추며 우린 아직 죽지 않았다 소리 높여 선언하는 ‘우리’다.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그간 참 오래도 이들을 괴롭혀온 시규어 로스의 치렁치렁한 명단 꼬리표마저 뚝 떨어졌다. 이들이, 아니 우리가 꿈꾸던 우주가 드디어 빅뱅을 맞이했다. 서로의 우주를 맞비비며 마음껏 위로해도 좋다. 9/10

 

 

김동률 | 동행 | 뮤직팜, 201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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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김동률의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보컬, 독백조의 가사, 어쿠스틱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조화, 쓸쓸함과 따스함을 오가는 정서는 여전하다. 그러나 [동행]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사는 ‘김동률답다’기보다 진부하고, 오케스트라 사운드에서도 극적인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음악 노선에 가볍게 연장선을 긋는 인상을 준다.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고수하는 것과 안주하는 것은 다르다. 오히려 그의 전작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다. 5/10
최성욱: 밋밋하다. 마치 박제되어버린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랫말은 구구절절하나 너무나 익숙한 문장처럼 느껴지고, 특유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성량도 물 빠진 청바지처럼 그저 평온하게만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흠잡을 만한 구석을 찾기는 힘들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매 앨범마다 반복되면서 귀가 물러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곡에서는 잊었던 김동률의 초창기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위안이 된다. 5/10
김윤하: “꿈속에서”를 대학가요제 무대에서 처음으로 부르던 순간 스크린 앞에 앉은 모두를 사로잡았던 목소리, 정말 그 목소리만큼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도 귓가에 남지 않는다. 아주 단순하게 전작 [Monologue](2008)와 비교해보자. ‘김동률식’으로 빈틈없이 대중화된 “다시 시작해보자”의 거부할 수 없는 멜로디, “Melody”에서 극한으로 끌어올리던 정서와 뮤지컬을 방불케 하던 화려한 스트링, 그 무엇 하나 남아 있지 않다. ‘지금 시대에 듣기 힘든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취지는 감동적이지만, 결과가 이래서야 편안함을 핑계로 한 안주라고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김동률’이라는 장르나 종교를 맹신하는 이가 아니라면 ‘실망’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망도 기대가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