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 박준범 – 나는 그런 사람이에요 | 쓸모없는 입술 (2014)

 

큰아버지 박준범은 문학과죄송사의 시인이자 CEO다. 문학과 ‘지’성사가 아니다. 그는 문학과지성사를 패러디한(심지어 디자인까지 빼다 박았다) 독립출판사인 문학과죄송사에서 2개의 시집 [우주는 잔인하다]와 [시걸립]을 출간하였다. 올해 7월에는 이름 앞에 ‘큰아버지’를 붙이고는 데뷔 앨범 [쓸모없는 입술]을 발매했다.

발가벗은 남자의 엉덩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앨범커버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앨범에 실린 곡들은 ‘저 여자의 침대 위에 와이셔츠가 내 거였으면 좋겠어’(“좋겠어”) ‘사랑하는 사람의 똥은 달콤할 거야’(“나와 사귀어 만 준다면”), ‘오늘 내 생일인데 선물로 한 번 줄 수 있겠니’(“생일선물”)와 같이 꽤나 직설적인 가사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 가사들은 외설적 유머로 작용하기보단, 한 외로운 남자의 찌질함을 극대화하는 서글픈 장치로서 기능한다. 어떤 남자라도 마음 이곳저곳에 널려 있을 법한 찌질한 욕망을, 큰아버지 박준범은 갈퀴 같은 노랫말로 싹싹 긁어모아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 ‘노랫말’이 그의 음악 내에서 대부분의 비중을 점유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 앨범이 ‘음악 모음집’이라기보단 ‘시집’처럼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런 사람이에요”의 멜로디 감각은 특기할 만하다. 다른 어떤 노래에서보다 힘이 빠진 나른한 음색과 맑은 기타 소리가 어우러진 이 마지막 트랙에서, 박준범이 긁어모은 찌질함은 비로소 일종의 서정미를 띠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서정미가 그저 찌질할 뿐인 이 앨범에 약간의 빛을 더해 준다. ‘당신이 그만 하라 할 때까지 아주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빨아줄 수 있어요’ 같은 서글픈 가사도, 그 빛을 완전히 가리진 못한다. | 정구원 lacele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