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귀차니즘과 스크롤 압박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음악웹진 [weiv]의 고강도 칼럼 프로젝트 ‘스압! 주의!’ 말하자면, 길고 어렵습니다. 진짭니다. 두 번 경고했습니다. 그래도 스크롤을 쭉쭉 내리는 당신은…… 멋있는데?! | [weiv] (네이버 연예 스페셜 제휴 기사) 지금 씨디 장에서 아무 앨범이나 꺼내보자. 그 중에… 아, 미안하다. 지금 컴퓨터에 앨범으로 정리된 폴더가, 있다면, 곡목 중 소위 ‘타이틀곡’의 제목이 몇 번째에 등장하는지 살펴보자. 최근의 아이돌팝이라면, 2번 트랙인 경우를 제법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트로 격의 오프닝 트랙을 따로 두고, 그 다음에 타이틀곡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정규 앨범이라면 특히 그렇고, 미니 앨범에서도 드물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싱글에서마저 이런 경우가 왕왕 발견된다. 싱글이란 매체 자체가 타이틀곡과 그에 따라 붙는 커플링 혹은 비사이드곡으로만 구성된 간소한 음반이란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음악에서 속도는 무척 중요하다. 미리듣기 30초 안에 귀를 잡아채야 한다는 속칭 ‘30초 룰’이란 것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타이틀곡은 듣는 이를 잡아 끌기에 매우 유리하다. 그런 곡을 타이틀로 고를 뿐 아니라, 선공개나 방송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해져서 더 주목하게 되는 점도 있다. 음반을 타이틀곡으로 시작하는 편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타이틀을 1번에 두지 않는 걸까. 단지 음원 시대가 돼서 트랙 순서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까. 1. 오프닝 트랙의 양상 아이돌 음반의 첫 곡, 즉 오프닝 트랙들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자.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 – 타이틀곡 (인트로 없음) – 1분 내외의 짧은 인트로 – 한 곡으로 구성된 오프닝 트랙 1-1. 타이틀곡 (인트로 없음) 그렇다. 그래도 타이틀곡이 1번에 위치하는 경우는 있다. 거의 전통적이라 해도 될 만한 방식이다. 대중음악의 역사가 그 효과를 입증하는 것처럼, 타이틀곡이 1번 트랙인 것은 분명 좋은 선택이다. 정규 앨범보다는 미니 앨범에서 자주 보이고, 리패키지도 대개는 이 방식이다. 소녀시대나 에프엑스 등, 거의 일관되게 이 형태를 취하는 팀들도 있다. 최근 음반 중에는 2PM의 [미친거 아니야?], 위너의 [2014 S/S]도 이에 해당한다. 잔소리 할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가장 매력적이고 익숙한 모습부터 보여준다. 그야말로 ‘팝’이다. 그러나 이런 음반들 중에는 타이틀곡의 도입부에 다소 이질적인 인트로를 두는 경우도 있다. 스피카 S의 “남주긴 아까워?”, 오렌지 캬라멜의 “까탈레나” 등이 간단한 효과음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시작하는가 하면, 엑소의 “중독”은 서너 가지의 소리를 조합해 약 9초간 긴장감을 유도한다. 다소 특이한 경우라면 인피니트의 “Back”이 있다. 리패키지 타이틀곡임에도 1번이 아닌 3번에 수록된 이 곡은, 정통파 발라드와 댄스를 결합한 곡의 특징을 살려 잔잔한 분위기로 문을 연다. 댄스 파트가 등장할 것임을 알기에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분 15초 가량의 긴 인트로를 둔 셈이다. 이질적인 인트로를 삽입하는 것은 90년대부터 정립돼온 한국 댄스가요의 클리셰 중 하나다. 그러나 음원 시대로 넘어오면서 곡은 본론으로 빨리 넘어가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인트로에게 남은 자리는 그리 많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많은 타이틀곡이 짤막하게나마 인트로를 삽입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었다. 그것은 과거 하나의 곡 속에 포함돼 있던 인트로를 별개의 트랙으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1-2. 짧은 인트로 트랙 음반의 문을 여는 1분 내외의 짧고 인상적인 트랙이다. 이 형태에 해당하는 음반은 이제 셀 수도 없다. 이 트랙들은 “Intro”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 가요계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각 앨범을 “Yo! Taiji”란 제목의 인트로 트랙으로 열었던 것이 하나의 모범으로 자리잡은 듯한 양상을 보인다. 하나의 음반이 구성하고 있는 세계로의 초대장 같은 격으로, 마치 여행을 떠나기 전 공항에서 듣는 안내방송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음반의 티저와도 같은 이 트랙들에 관해서는 잠시 뒤에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블락비 – 보기 드문 여자 1-3. 긴 인트로 트랙 하나의 ‘노래’로서 완결성을 갖는 곡을 타이틀곡보다 먼저 배치하는 방식이다. 타이틀곡과 유사한 스타일로 분위기를 이어가기도 하는가 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으로 오프닝을 삼기도 한다. 타이틀곡을 듣기까지 워밍업을 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타이틀보다는 가벼운 분위기의 곡이 되는 일이 많다. 워밍업 역할에 충실한 사례로 에이핑크의 [Pink Blossom] 미니 앨범 중 “Sunday Monday”가 있다. 이 곡은 상큼한 댄스곡인 타이틀곡 “Mr. Chu”에 앞서서 따뜻하고 포근하게 분위기를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블락비의 [Her] 미니 앨범 중 “보기 드문 여자”는 여유롭고 달콤하게 능청을 부리는 곡으로, 이 곡을 듣고 나면 타이틀곡 “Her”의 비뚤어진 매력에 더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 써니힐의 [Sunny Blues] 미니 앨범 또한, 다소 깍쟁이 같은 느낌의 타이틀곡 “Monday Blues”의 앞에 어쿠스틱 사운드가 강조된 상큼한 “선수입장”을 배치해 부담을 줄였다. 이 방식으로 인해 아이러니한 경우도 생긴다. 카라를 전국민의 아이돌로 만들어준 [Revolution] (2009)이 그렇다. 오프닝 트랙인 “미스터”는 화려하고 강렬하게 음반의 서막을 이루고, 이후 사랑스러운 터치를 더한 타이틀곡 “Wanna”에서 카라의 진가를 보여주려는 설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중은 뮤직비디오도 없는 오프닝 트랙 “미스터”의 매력에 빠져버렸고, 급기야 활동곡이 교체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타이틀곡이 나오기까지 두세 곡, 혹은 그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아이유의 음반들이 그런데, “미아”와 “Boo”가 2번이었던 반면, “마쉬멜로우”와 “좋은 날”은 3번, “너랑 나”와 “분홍신”은 4번이었다. 타이틀곡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은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에 이러서야 “나의 옛날이야기”가 1번에 등장한다. ‘아티스트 노선’에 가까울 수록, 혹은 타이틀곡이 과감하거나 스케일이 커서 듣는 이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수록 타이틀곡이 뒤쪽으로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는 짐작도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2. 오프닝 트랙의 역할 위에서도 조금씩 언급되었지만, 오프닝 트랙은 음반 속에서 자신만의 기능이 있다. 간략하게 넘어갔던, 1분 내외의 짧은 인트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그 기능을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본다. 2-1. 캐치프레이즈형 인트로 그 첫 번째는 비교적 단순한 선언적 메시지를 던지며 기대감을 높이려는 트랙이다. 어쩌다 보니 아이돌팝의 대부분이 댄스 음악에 집중하고 있어, 이 유형의 트랙들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도록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가사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우리가 돌아왔다”, “우리가 제대로 보여주겠어”, “우리가 최고” 같은 내용이 흔히 발견된다. 포미닛의 경우 인트로 트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가사에서도 “기대하라”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노출해 좋은 예가 된다. [Hit Your Heart] (2010) 중 “Who’s Next?”가 거친 분위기를 연출하며 타이틀곡 “Huh”로 이어진 것이나, [4Minutes Left] (2011) 중 “4Minutes Left”가 팽팽한 긴장감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선보인 뒤 “거울아 거울아”로 넘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인트로는 데뷔할 때나 팀 컬러를 바꿀 때 새로운 모습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역시 포미닛의 경우인데, [Name Is 4Minute] (2013) 중 “What’s My Name?”은 전기기타의 무겁고 강렬한 사운드를 통해 기존의 이미지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곤 놀랍도록 변신한 “이름이 뭐예요?”가 튀어나온다. 사운드의 질감부터 모든 게 너무나 달라져서 “이름이 뭐예요?”의 생경함이 더욱 강조되는데, 그러면서도 “What’s my name?” 같은 인상적인 가사의 테마가 일관되게 반복되면서 각인효과와 통일성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걸스데이도 [Something] 미니 앨범에서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다. 오프닝 트랙 “G.D.P intro”은 이들이 기존에 유지하던 유쾌하고 까불까불한 느낌을 살린 뒤, 파격적으로 섹시하고 흐느적거리는 타이틀곡 “Something”으로 넘어간다. “G.D.P intro”는 후반부에서 멤버들을 한 명씩 소개하기까지 하는데, 팀 이미지 변신을 선보이는 시점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포미닛 – Who’s Next + Huh 2-2. 콘셉트 전달형 인트로 다음으로는 음반의 콘셉트를 압축적으로 표현해주는 곡이다. 콘셉트를 떼어 놓고 아이돌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컴백할 때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콘셉트는 가사의 내용, 음반의 제목, 뮤직비디오, 아트웍, 의상과 안무, 때로는 팀의 캐릭터까지 동원하여 구사하는 총력전의 현장이다. 아이돌의 음악은 타이틀곡 위주로 소비되는 경우가 압도적이지만, 거기서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앨범을 통해 콘셉트를 심화하려는 시도가 적잖이 발견된다. 그리고 당연히 인트로 트랙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100%의 [Bang The Bush] (2014) 미니 앨범은 심장소리를 삽입한 감상적인 인트로 “Heart”를 통해 타이틀곡인 “심장이 뛴다”와 직접적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포미닛의 “What’s My Name?” 또한 미니 앨범의 주제를 전달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좀 길지만 방탄소년단의 [Skool Luv Affair] 앨범 역시 랩과 스킷을 마구 이어 붙인 인트로 트랙을 통해, 학교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방탄소년단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압축적으로 제시했다. 이 곡에서는 수시로 “방탄 스타일”이란 말이 등장하기도 해, 앨범을 통해 보여주려는 방탄소년단의 팀 이미지를 명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2-3. 반전형 인트로 그런가 하면 은은한 사운드의 인트로 트랙들도 있다. 종종 타이틀곡과는 정반대되는 정취를 선보이는 결과가 된다. 이런 배치가 주는 가장 큰 효과는 인트로와의 대조를 통해 타이틀곡의 강렬한 힘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 댄스가요의 전통적인 인트로 작법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는 경우라 하겠다. 최근의 사례로는 씨스타의 [Touch &Move] 미니 앨범 중 “Wow”가 좋은 예이다. 느긋하고 감미로운 R&B 풍의 이 곡을 통해 1분 20초 동안 씨스타의 부드러운 매력을 선보인 뒤 타이틀곡으로 넘어간다. 건강하고 시원한 댄스곡인 “Touch My Body”가 주는 흥겨움은 이전 트랙과의 대비를 통해 더욱 커지는 것이다. (“Touch My Body”는 앞의 1-1에서 언급한 것처럼, 타이틀곡 내부에도 5초 가량의 감상적인 인트로를 삽입해두기도 했다.) AOA의 [단발머리] 미니 앨범도 섹시한 그루브가 돋보이는 “단발머리”의 앞에 짤막한 오프닝 트랙 “Fantasy”를 두어, 섹시 콘셉트에서 자칫 희생되기 쉬운 소녀적인 이미지를 보강한다. 2-4. 복선형 인트로 지금까지 살펴본 인트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장식적인 효과를 노린 일종의 ‘부가물’들이었다. 그러나 여기, 보다 적극적으로 음반의 내용에 개입하는 오프닝 트랙들이 있다. 샤이니의 [The Misconception Of You] (2013) 앨범 중 “Spoiler”가 그렇다. 앨범 전체에서도 매우 과감한 편에 속하는 사운드로 이 앨범이 갖는 음악적 완성도와 진보성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트랙이다. 동시에, 전작 “Sherlock”의 인트로를 그대로 가져와 변형함으로써 이 앨범과 샤이니의 커리어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고, 이어지는 차기작 [The Misconception Of Me]까지 포함하는 두 장의 앨범, 17곡의 가사를 조금씩 따와 새로운 맥락의 가사를 구성한 것이다. 또한 매우 인상적인 예는 빅스의 [Voodoo] (2013) 앨범이다. 괴기한 콘셉트를 선보이는 빅스의 컬러에 맞게 우울하면서도 으스스한 연주곡 “Voodoo”를 먼저 배치하고, 이어지는 신곡 “저주인형”까지를 사실상 하나의 오프닝 덩어리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저주인형”은 13번 트랙으로 수록된 “다칠 준비가 돼 있어”의 가사를 직접 인용함으로써, 하나의 곡 단위를 넘어서는 테마를 구축한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같은 테마를 반복함으로써 내러티브를 강화하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v) 기법에 가까운 방식이다. 또한 이 곡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째깍째깍 다 이뤄지리라”란 가사는 차기작 “기적”의 시계 콘셉트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분류의 인트로들은 사례가 그리 많지는 않으나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돌의 콘셉트가 점점 강한 서사성을 갖춤에 따라, 긴 시간의 흐름 속에 내재적인 맥락을 심으려는 시도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샤이니나 빅스의 예처럼 팀의 커리어라는 하나의 서사를 중심으로 하기도 하고, 아이유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가인의이 “진실 혹은 대담”처럼 아티스트 자신의 실화나 루머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서사는 아이돌과 아이돌팝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해줄뿐더러, 팬들에게는 퍼즐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은밀한 동질감을 부여해 더욱 깊이 몰입하도록 한다. 완결된 곡에 비해 흥행의 부담이 적은 인트로 트랙은 보다 많은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앞으로도 흥미로운 사례가 많이 발견될 것으로 전망한다. 빅스 – Voodoo + 저주인형 3. 오프닝 트랙이란 포장지 살펴본 바와 같이 오프닝 트랙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의 음악 팬들이 투덜대며 빈정거렸듯 ‘시간 때우기’로 넣는 트랙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타이틀곡이 그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도록 보조하고, 음반과 팀의 콘셉트와 서사를 강화한다. 때로는 그 자체로 매우 매력적인 음악을 선보이기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재미있는 것은, 국내에서 이런 오프닝 트랙의 활용이 두드러진 시기가 이미 오래 전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해철은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려는 2집 [Myself] (1991)를 제목도 거창한 “The Greatest Beginning”으로 열었고, 다소 유난스러운 행보를 곧잘 보인 공일오비는 2집 [Second Episode] (1991)의 경우 타이틀을 B면 첫 곡(6번)으로 넣기도 했다. 앞서도 언급한 서태지와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지금의 아이돌들은 90년대를 계승하려 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역사가 그저 반복될 뿐일까. 분명한 것은 90년대의 ‘신세대 뮤지션’들과 지금의 아이돌들이 음반을 대하는 태도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음반이 여러 곡의 집합체에 국한되지 않고, 완결성을 갖는 ‘작품’, 혹은 ‘제품’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사실 90년대까지 우리 주류 가요계는 무척 정형적이었다. 미니 앨범이나 싱글은 존재하지 않았고, 타이틀곡은 당연히 1번 트랙이었다. 음반에는 제목도 딱히 없는 경우가 많아, “1집”, “2집”이란 형태로 불리는 게 고작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혹은 타이틀곡의 제목이 앨범의 제목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그것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 90년대였고, 그런 움직임에 앞장선 사람들은 앨범을 하나의 완결성 있는 작품으로서 대해주길 기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음반 시장은 몰락했다. CD는 점차 기념품 같은 의미의 패키지가 되어갔다. 그렇기에 오히려, 앨범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제목을 붙이는 일이 이제는 당연해졌다. 나아가, 싱글에도 별개의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싱글은 전통적으로 타이틀곡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는 매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한 장의 싱글이 단순히 타이틀곡을 담는 매개체 이상의 의의를 갖는다는 뜻이다. 아이폰이 박스와 케이블까지 포함해 완결된 상품이듯, 명품 가방을 사면 보관용 파우치와 쇼핑백까지 보관하듯 말이다. 음반 시장의 몰락으로 인해 음반은 다시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돌의 오프닝 트랙은 이런 시각의 변화를 증언하는 존재로, 온갖 음반마다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더구나 음원 시장도 스트리밍 위주로 급속히 재편되어, 음반 한 장, 음원 한 곡을 더 듣기 위한 경제적 부담도 거의 사라졌다. 짧은 트랙이 수록됐다고 해서 과거의 음악 팬들처럼 손해 본 기분을 느낄 일도 줄었다. 이런 저런 효용이 있다고는 하나,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돌은 자본의 예술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것, 스트리밍이라도 좋으니 아이돌의 오프닝 트랙들을 좀 더 귀 기울여 들어보는 건 어떨까. 예상치 못한 재미를 찾아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 미묘 tres.mimyo@gmail.com note. 미묘: f(x)의 시대정신을 믿는, 웹진 [웨이브] 필자이자 [아이돌로지] 편집장. 글도 쓰고 음악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