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인 [최유준의 무지카시네마] 3회에서 다뤄진 다큐멘터리 [나인 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과 관련해 2012년에 개봉한 SM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다큐멘터리 [I Am](이하 [아이 엠])에 대한 글을 이어 싣는다. 개봉 당시에 [한겨레21]에 기고된 글로 여기-[한겨레21][(2012.07.09 제918호]-에서 볼 수 있다. 참고로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은 2012년에 제작된 영화로 한국에서는 2014년에 개봉했다. 개봉 시기만 다를 뿐, 묘하게도 두 영화는 같은 때에 제작되었다. |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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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꼭 유명한 가수가 되서 여기서 공연을 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합니다.” 2001년, 15살의 보아는 뉴욕의 메디슨스퀘어가든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리고 2012년, 바로 그곳에서 보아의 공연이 시작된다. [아이 엠]의 이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뮤지컬 시퀀스에 감각을 보여 온 최진성 감독(흐른의 “멜빌 스트리트” 뮤직비디오, 이아립의 음악을 활용한 영화 [북극의 연인들] 예고편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잼 다큐 강정]에 참여했다)의 연출은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드라마를 강조하고, 대형 무대의 공연 연출과 음악적 순간을 스펙터클하게 잡아낸다. 그러니까 이 다큐멘터리는 아이돌 팬이 아니어도 충분히 즐길만한 엔터테인먼트일 뿐 아니라, 성장 영화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도 제공한다. 이때 의미심장한 것은 바로 이 쾌감이 만들어지는 구조다. [아이 엠]이 아무리 보아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f(x) 멤버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한다고 해도 결국은 매 순간 SM 엔터테인먼트의 ‘초대형 프로젝트’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환기하기 때문이다.

음악과 뮤직비디오, 아트 디렉팅과 안무, 마케팅을 포괄하는 모든 방식이 결국 회사의 브랜드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SM 엔터테인먼트는 성공적인 기업이다. 그럼에도 이 조직은 ‘SM 타운’이라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 이 모순된 정체성은 현재 전 지구적인 수준에서 수행되는 ‘콘텐츠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여기엔 프레데릭 마르텔의 책 [메인스트림]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차이는 존재한다. 단적으로 ‘SM 타운’이라는 공동체 주의는 ‘YG 패밀리’와는 다른 뉘앙스를 주는데, 와이지의 ‘패밀리’가 힙합 장르에 밀착되어 ‘거리의 진정성’을 드러낸다면 SM의 ‘타운’은 (도시개발 이미지와 겹쳐) 자기계발을 통한 개인의 성장을 상징한다. 이때 주요 구성원들이 십대 초반부터 후반이고, 데뷔와 함께 합숙에 돌입한다는 점에서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기숙학원 같은 사교육 기관이자 유사가족 공동체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관점으로 [아이 엠]을 돌아보면 몇 가지 요소가 눈에 띤다. 먼저 연습생 시절부터 날짜별로 찍어놓은 영상들이 있다. 지난 16년간 SM이 기록한 4828개의 테이프와 엠넷(M.net)이 보유한 4415개의 테이프를 다섯 달 동안 추려낸 이 영상은, ‘데뷔 OOO일 전’이라는 자막과 함께 2012년 현재 메디슨스퀘어가든에 있는 멤버들과 교차된다. 유추하건데, 이런 아카이빙은 보아가 일본에서 데뷔한 2000년 이후부터 수집된 것이다. 왜냐하면 H.O.T.나 S.E.S.의 성공이 1990년대 중반이라는 시기적인 호재와 연관된 반면, 보아는 그 성공을 토대로 SM 엔터테인먼트가 총력을 기울인 실험(이자 모험)이었고, 이런 시스템이 작동된 근거에는 ‘디즈니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글로벌 기업을 모델로 삼은 SM 엔터테인먼트의 비전이 존재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무적인 필요(연습량과 기량의 체크 등)에 의한 촬영이었겠지만, 회사의 비전 없이 이런 영상이 데이터베이스로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없었으리란 것도 분명하다.

또 하나 눈에 띠는 건 과거 영상을 찍는 사람(아마도 기록담당이나 선생님)들이 연습생들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 있는 슈퍼주니어의 성민이나 f(x)의 설리, 소녀시대의 서현을 격려하거나 다독이거나 자극한다.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관계의 단면은 지극히 파편적이지만, 적어도 이런 관계의 방식이 이제까지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소속 아이돌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초과 노동, 불공정 계약, 상품으로서의 아이돌 등)를 환기하는 건 분명하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연습생으로 ‘계약’한 아이들에게 기능적 훈련 외에도 인성상담과 같은 교육적 기능까지 제공한다고 본다면, 최시원의 “졸업할 수 없는 학교”라는 말도 시사적이다. 이런 메커니즘에서 부모들이 미성년 자녀를 회사에 ‘믿고 맡기는’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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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연예기획사는 성공적인 기업이자 ‘유사가족 공동체’라는 모순된 정체성을 함께 가진다 | [아이 엠] 스틸

한편 외국과 달리 이런 ‘사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희박한 이유는,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사교육이 지나치게 보편화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가수가 되기 위해 SM 엔터테인먼트를 ‘지망’하는 아이와 부모는 입시제도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과외와 학원을 자연스레 여기는 세계관을 공유한다. 2001년 이후 사회적으로 형성된 ‘내가/우리 딸이 보아처럼 되면 좋겠다.’는 기대심리는 ‘내가/우리 애가 서울대에 가면 좋겠다.’라는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돌에 대한 선망은 자기계발의 일환이고, 아이돌 연습생은 거기서 ‘다른 종류의 입시’를 경험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바야흐로 현상으로서 한국의 아이돌은 ‘10대 노동’이 아닌 ‘입시제도’와 연관해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연습생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소녀소년들이 겪는 사회화 과정이었다. f(x)의 설리는 자료 화면에서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지 못했던 때에 대해 ‘멤버들에게 폐가 되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데뷔 2개월 전에 합류한 슈퍼주니어의 려욱은 ‘수 년 동안 노력한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다’고 말한다. 이런 이타성은 마이클 잭슨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어린 나이에 성공한 해외 엔터테이너들이 겪는 것과는 다른 맥락을 시사한다. 이를테면 여기엔 한국 사회의 정서적 특징이 존재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K-Pop의 지구적 성과를 이해하는데 있어 구성원들을 ‘기업과 상품’,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로 치환한 뒤에 ‘기업의 수익과 전략’을 논했다. 하지만 [아이 엠]이 환기하는 건, 그 내부에 특유의 메커니즘으로 순환되는 공동체, 즉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도표와 수치로 측량될 수 없는 인간의 관계를 은근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이 엠]은 SM 뿐 아니라 다수의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조직되고 운영되는 맥락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인 것이다. | 차우진 nar75@naver.com

 

note. 이 글과 함께 [한겨레21]에 실린 글은 최민우 필자가 쓴 “[레드 기획] 잘 훈련된 목소리 지우고 ‘완제품’ 만드는 SM / f(x) 루나의 목소리를 구분하겠는가 [2012.07.09 제918호]”이다. 함께 읽으면 좋다.

note. 이 글은 “[최유준의 무지카시네마] 그녀들 혹은 우리의 현실 | 나인 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 의 관련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