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지털 귀차니즘과 스크롤 압박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음악웹진 [weiv]의 고강도 칼럼 프로젝트 ‘스압! 주의!’ 말하자면, 길고 어렵습니다. 진짭니다. 두 번 경고했습니다. 그래도 스크롤을 쭉쭉 내리는 당신은…… 멋있는데?!  | [weiv] (네이버 연예 스페셜 제휴 기사)

 

스튜디오라는 악기가 만들어내는 ‘세상에 없는 자연’

얼마 전 발매된 페퍼톤스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음반 [HIGHFIVE] 를 듣다가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오프닝인 “굿모닝 샌드위치맨”에서부터 ‘쌩톤’의 기타와 특별한 ‘가공’을 가하지 않은 듯 한 보컬, 그리고 잘 구분되지 않은 채 뭉쳐 있는 악기들의 연주가 터져나왔고, 과연 페퍼톤스의 음악적 특성을 감안할 때 이 선택 이 최선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 담긴 음악이 다소 ‘부자연스럽게’ 들렸다. 그런 데 앞서 내가 곡에서 받은 인상에 따르자면 이 음반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녹음된 게 아닐까? 특별한 가공 없이?

페퍼톤즈 [HIGH-FIVE]. 레코딩에서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일까?

페퍼톤즈 [HIGH-FIVE]. 레코딩에서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일까?

이 ‘자연스러움’과 연결지어 ‘원 테이크(one take)’ 녹 음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원 테이크 녹음 방식을 선호하는 뮤지션이나 밴드는 여러 번의 ‘테이크’를 딴 다음 개중 좋은 부분들 을 편집하여 합치는 게 아니라 편집 없이 단숨에 녹음한 결과물을 음반으로 공개한다. 이 역시 자신들의 음악을 보다 솔직하고 자연스 럽게 표현하는 방법의 일환일 것이다(여담이지만 아예 이 ‘테이크’ 자체를 제목으로 단 경우도 있다. 서태지의 첫 번째 솔로 음반 의 트랙 제목은 모두 “Take 1″, “Take 5″ 등이다).

원 테 이크나 페퍼톤스의 이 음반과 같은 녹음방식은 ‘직접성’ 또는 ‘투명성’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아티스트와 청자 사이에 가능 한 한 ‘편집’이라는 벽을 두지 않겠다는 태도이고, 다른 말로 하자면 ‘조작’, 이 말이 지나치다면 ‘보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 의 표현이다. 당연하게도 이는 ‘조작’ 내지는 ‘보정’을 하는 음악을 맞은편에 전제한 것이다(뒤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그게 반드 시 비난을 뜻하지는 않는다). 흔히 말하는 ‘오토튠 음악’이 대표적인 경우겠지만 조금 더 범위를 확장하면 ‘실제 악기’를 쓰지 않 는 음악이라든가 더 나아가 ‘인공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 전반에도 해당되는 이야기겠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누군가 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해 토론할 때 (‘사회 저항적인 록’과 더불어) 영원히 고통 받는 개념 중 하나인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 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좋겠지만 여기서는 잠시 미뤄둘까 한다. 대중음악에서의 진정성이라는 문제는 앞 으로 언급할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대신 여기서는 대중음악에서 레코딩이 갖는 특별한 성격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고 싶다.

말러 교향곡 8번, 게오르그 솔티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클래식 음반의 표지에는 녹음 과정이나 연주, 혹은 지휘를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종종 쓰인다. 이는 들려주고자 하는 음악의 '투명성'과 '직접성'을 강조하는 방편일 수 있다.

말러 교향곡 8번, 게오르그 솔티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클래식 음반의 표지에는 녹음 과정이나 연주, 혹은 지휘를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종종 쓰인다. 이는 들려주고자 하는 음악의 ‘투명성’과 ‘직접성’을 강조하는 방편일 수 있다.

사실 대중음악의 레코딩은 본시 ‘투명성’ 내지는 ‘직접성’과 거리가 있다. 녹음 방식에서 투명성과 직접성의 이념에 충실한 건 아 마 클래식과 재즈일 것이다. 많은 클래식과 재즈 음반들이 ‘원음 그대로의 감동’을 재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 이 어쩌면 클래식과 재즈 음반이 대중음악에 비해 실황 음반, 달리 말하자면 ‘원 테이크’의 중요성이 높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대 중음악에서 ‘라이브 음반’은 보통 ‘팬 서비스’나 ‘머천다이즈’의 개념에 더 가깝다).

물론 클래식과 재즈 음반 역시 편집 과정을 거친다. 실황 음반이라고 해도 며칠 동안의 라이브 녹음 중 가장 잘 된 부분을 골라 연결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 며, 연주 과정에서 ‘삑사리’가 난 지점은 따로 후반 작업을 거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진짜 ‘원 테이크’는 아닌 셈이 다. 그러나 그러한 편집을 행하는 목적은 그렇게 들리도록 하는 것, 다시 말해 ‘원음 그대로의 감동’과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 을 위해서다.

대중음악에서 레코딩의 목적은 이와 조금 다르다. 조금 많이 과장해서 말하자면, 대중음악에서의 레코딩 은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때 스튜디오는 연주되는 음악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통로라기보다 는 그 자체가 소리의 실험실이자 또 다른 악기가 된다.

비틀스와 비치 보이스와 같은 뮤지션들이 후대에 남긴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이 위대했던 점은 스튜디오를 또 다른 악기로 사고하고 응용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나 [Pet Sounds]같 은 음반에는 라이브로 재현할 수 없는 소리가 자주 나온다(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의 여건에서 라이브로 재현하기 어려운 소리들이겠지만). 그건 이 음악들이 라이브라는 환경을 통해 전달될 수 있는 투명성과 직접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런 전 제 하에서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소리의 가능성을 마음껏 탐구했다는 뜻이다. 이런 음악들은 자기들이 편집되고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숨기 지 않는다. 그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스튜디오를 또 다른 악기로 활용한 대표적인 음반이다.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스튜디오를 또 다른 악기로 활용한 대표적인 음반이다.

그럼으로써 대중음악의 표현 영역은 악기 소리의 투명한 재현을 벗어나 온갖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당연히 비틀스와 비치 보이스가 혼자서 그런 아이디어를 창안한 것은 아니다. 구체 음악(musique concrete) 과 같은 현대 클래식 음악의 흐름이 거기에 맞물려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예술적’ 록 음악과 전자음악을 듣고 나 면 이 사람들이 정말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또는 하고 싶은 짓은 전부 다 해 봤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늘날 이런 음반 의 소리가 우리 귀에 심심하게 들린다면 그건 그들이 이루어낸 결과들이 이제는 음악 감상의 영역에서 ‘제 2의 자연’이 되었기 때문 일 것이다. 우리는 온갖 효과음과 기발한 소리에 충분히 익숙하다.

이때 투명성과 직접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선택은 ‘사 운드 영역의 확장’이라는 좀 더 커다란 목표의 일부가 된다. 다시 말해 직접성과 투명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의도 (이 의도가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다)에 부합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해 도 되는 것’이다. 이 차이는 크다.

'로파이 록'을 상징하는 밴드 페이브먼트의 [Slanted And Enchanted>]

‘로파이 록’을 상징하는 밴드 페이브먼트의 [Slanted And Enchanted]

자연스럽게 이는 ‘음악에 접근하는 태도’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영미권 인디 록계에서는 ‘로파이(lofi) 록’이라는 흐름이 유행을 탔는데, 이 음악은 메인스트림 록 밴드들의 정교하고 ‘하이파이(hifi)’한 소리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조악하게 튀어나온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와 덜 다듬어진 것처럼 들리는 프로듀싱 방법으로 제작된 이 음악들은 그 자체가 신선한 도전이자 새로운 미학이 되었다.

로 파이 사운드에는 예산의 제약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우리는 이 조건에서 음악을 하겠다’는 태도 또한 같이 작용했고, 이 에 따르자면 우리는 대중음악에서 뮤지션이 사운드를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음악에 접근하는 하나의 태도를 정하는 것이라고 간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하이파이한 소리를 만들 충분한 예산이 있음에도 로파이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애쓸 수 있는데, 이는 로파이 가 상징하는 어떤 ‘태도’ 내지는 ‘정신’을 모방하고자 하는 시도다.

따라서 ‘스튜디오에서 보정을 거친 음반’과 ‘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녹음된 음반’ 사이의 관계를 대립이나 전투로 여기는 일부의 생각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 이 둘 사 이에서 생겨나는 건 상업적 타락과 음악적 진정성 사이의 아마겟돈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한 시도를 통해 나 온 서로 다른 성격의 결과물인 것이다. 대중음악에서의 ‘자연스러움’은 스튜디오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솔직하게’ 녹음하는 데서도 나 올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티스트의 의도(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다)가 보다 명확하고 성공적으 로 구현되는 데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에 없는 자연’에서는 어떤 소리든 가능하다. 그 중 어떤 것이 ‘진정 ‘하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 가려낼 기준을 세우기는 무척 어려우리라 본다. 그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다’ 는 느낌이 드는 건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note. 최민우: 2002년부터 대중음악과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웹진 [weiv]와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다. 그 외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으며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