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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주 위클리 웨이브는 시와, CR 태규, 에픽하이, 망각화의 새 앨범에 대한 필자별 코멘트입니다. | [weiv]
 

 

 


시와 | 머무름 없이 이어지다 | 201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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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욱: 기타 위주의 악기 구성에서 벗어나 미니멀한 클래식 사운드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편곡자인 박용준, 정현서의 매무새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차가운 공기를 내뿜는 곡에서부터 미풍이 불어오는 왈츠풍의 곡까지 감정의 끊김 없이 부드럽게 흐름이 이어지며, 시와의 목소리는 곡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정렬하며 앨범의 정서를 단단하게 이어 맨다. 특히 “어젯밤에서야”의 인트로 부분처럼 조용한 울림 속에서 읊조리는 노랫말이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8/10
정은정: 기타 연주에 맞춰 단출하게 노래를 부르던 그녀가 피아노와 현악기를 대동하여 트랙을 유려하게 꾸몄다. 사운드가 묵직하면서도 풍부하게 변모했으나 과하지 않다. [머무름 없이 이어지다]는 클래시컬하면서 현대적이다. 더 클래식의 박용준, 투명의 정현서, 이규호 등 클래식에 능한 음악가들이 곡 작업에 임한 결과다. 특히 “겨울을 건너”는 하프의 영롱한 울림과 시와의 공기를 머금은 듯한 보컬이 어우러져 고전미와 세련미가 공존한다. 트랙 곳곳에 어린 왈츠의 향취 또한 매혹적이다. 6/10
한명륜: 어쿠스틱기타 아닌 다른 악기의 리드를 따라가는 시와 목소리의 매력이 새롭다. 피아노의 울림에 가만가만 묻어나오는 “나의 전부”와 “나무의 말”, 첼로와 바이올린 선율을 파트너로 리듬감 있는 호흡을 선보이는 “서두르지 않을래” 등은 그야말로 머무름 없이 움직이고 있다. 리버브를 가능한 한 배제한 전작의 정적인 느낌이 오히려 긴장감을 자아냈던 것과는 달리, 청자의 귀로부터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울림을 최대한 활용하는 여유가 느껴진다. 보컬 디렉터로 참여한 이규호의 영향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8/10

 

 

CR 태규 | 상실 | 20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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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욱: 낡고 거친 슬라이드기타 소리가 앨범 전체의 분위기를 휘감는다. 초기 블루스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기타 사운드가 배경에 깔리고, 삶의 단면들을 직관적으로 묘사하는 노랫말이 기타 톤과 비슷한 느낌으로 자리 잡는다. 유행과는 무관하게 묵직이 자신의 소리를 밀고나가는 힘이 느껴진다. 8/10

 

 

에픽하이 | 신발장 | YG 엔터테인먼트, 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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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사람이 아름다워 보일 때 중 하나는 그가 그다운 모습일 때다. [신발장]은 ‘에픽하이다운’ 음악이다. 그들의 특징이자 매력을 한 톨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쓸어 담았다. 우울하고 냉소적이며 감상적인 정서, 그리고 스모키하고 둔탁한 질감의 비트 메이킹까지. 동료 래퍼는 물론이고 윤하, 김종완, 조원선, 박재범의 보컬도 무리 없이 곡과 조화되었다. 마냥 감수성으로 일관하지 않고 “부르즈 할리파”, “BORN HATER”에서 배짱 두둑한 면모를 보이며 숨겨 두었던 발톱을 세우기도 한다. 다양한 피처링 참여진으로 산만할 수도 있었을 구성을 에픽하이만의 스타일로 통일성 있게 묶었다. 7/10
블럭: 에픽하이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힙합 아티스트 중 한 팀이지만 1DJ 2MC라는 고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고, 이번 앨범은 최근의 음악 중에서는 꽤 과거에 해당하는 축의 질감을 뽐내고 있다. 전무후무한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꽤 오래 음악을 해온 에픽하이가 가진 맥락은 많지만, 주어진 무기를 무작정 전부 꺼내 들기보다는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걸 입증한다. 동시에 온전히 힘을 빼기보다는 적재적소에 냉소를 던지고, 프로덕션과 가사는 각 곡이 가진 맥락에 충실하면서도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유지해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첫 트랙에서 재기를 다진 뒤에는 우울한 이야기를 하지만, 앨범의 끝자락에서는 막연한 긍정이 아닌 현실적인 위로를 시도한다. 이처럼 개인의 맥락을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아이러니의 연속에 있음에도 에픽하이는 오히려 그걸 이용해 완성도 높은 단일 작품을 만들어냈다. 다만 미쓰라의 비중이 조금 작게 느껴져서 아쉬울 뿐. 8/10

 

 

망각화 | The Rumor | 루비레코드, 201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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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륜: 이미 어느 정도 자신들의 방향성이 나온 밴드가 갑자기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에 3집이라는 디스코그래피는 음악적으로 그리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수록곡들 중 “Mojo Girl”, “넌 나의 우주” 두 곡이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드럼과 기타, 보컬이 모두 선명한 어택을 갖고 있지만 서로 충돌 없이 조화를 이루면서 록적인 에너지를 빚어내고 있다. 물론 이 곡이 밴드의 새로운 방향이 될 것이라 예단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이 한 앨범의 강한 시그니처 역할은 해주고 있다 여겨진다. 호흡이 짧지 않지만 부드럽게 넘어가는 가사도 좋다.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