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4.10.12. 장소: 롯데시티호텔 마포 질문, 정리: 블럭(박준우) 코린 메이(Corrinne May)는 1973년생의 싱가포르 포크송 싱어송라이터이며, 싱가포르를 포함해 미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고 또 활동하고 있다. 2001년 음악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총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고, 최근 잔다리 페스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남편이 프로듀서이며,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도움을 주기도 한다. 외에도 글을 쓰고,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싱가포르 최고의 기념일인 내셔널 데이의 오피셜 송을 부르기도 했다. 각종 콘서트 및 공연을 꾸준히 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와 공연도 했다. 아무튼, 한국에 온 김에 짧게 인터뷰를 했다. | 블럭 blucshak@gmail.com 블럭: 한국의 팬들에게 인사 부탁해요. 코린 메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코린 메이입니다. 한국에 오게 되어서 정말 행복해요. 블럭: 2012년에 앨범이 나오고, 이후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코린 메이: 다음 앨범을 위한 작업을 했어요. 다섯 살 된 아이를 돌보는 일도 했고요. (웃음) 제가 하는 일이죠. LA와 싱가포르를 왔다 갔다 하며 여행도 했어요. 딸이 어디로 학교를 가야 할 지 결정도 해야 했어요. 아이가 이제 7살이거든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싱가포르는 제 가족이 있는 곳이고요. LA는 남편과 저와 딸이 사는 곳이고요. 그래서 그 사이에서 노력했어요. 왜냐면 우리는 양쪽 모두 좋아해요. 하지만 그건 어느 하나를 결정하기 힘들었죠. 그 외에도 다른 것들이 분주하게 했어요. 그리고 공연을 했고요. 블럭: 이번에 잔다리 페스타 공연을 하게 되셨는데, 처음에 섭외가 왔을 때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그리고 잔다리 페스타에 대해 알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코린 메이: 사실,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구글에 가서 어떤 것인지 검색해봤어요. 그리고 그 행사가 홍대라는 대학가에서 열린다는 것을 읽었죠. 저는 대학가를 좋아해요. 대학가는 뭔가 가득 차 있잖아요. 제가 의미하는 건, 대학가는 다들 분주하고 저는 탐험하기 좋아하고. 그리고 예술을 찾고 나누기 좋아요. 그래서 저는 되게 신났어요. 그리고 잔다리 페스타가 매년 해마다 열리는 축제라는 걸 읽었어요. 대부분 뮤지션 스스로에 의해 주로 동기가 부여되어서 힘을 합쳐 열리고, 네트워크로 시작한다는 걸 본 것 같아요. 장소가 홍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음악이 이끌어가는 페스티벌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었고 공연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죠. 와서는 많은 걸 실감했어요. 그렇게 많지 않은 사람들이 영어로 노래했고, 영어를 쓰는 거에 대해 걱정했지만, 관객들은 이해해줬어요. 근데 지난밤에 공연을 했을 때, 통상적으로 관객들 대부분은 제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었고 좋은 귀를 가지신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첫 공연이었는데 되게 행복했어요. 블럭: 지금도 LA에 살고 있다고 하셨어요. 첫 앨범부터 여러 나라에서 발표되었는데, 과정이 궁금해요. 여러 나라에 발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코린 메이: 첫 번째 했던 녹음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어요. 저는 이미 그때 LA에 있었고, 99년 00년 즈음이었는데 당시 오픈 마이크를 돌아다녔어요. 오픈 마이크는 관객들 앞에서 그냥 공연하는 거죠. LA에 있는 어쿠스틱 클럽으로 갔어요. 그게 저에게 정기적인 공연을 할 길이 되었죠. 사람들은 CD 하나 살 수 있느냐고 물었고, 그게 처음 CD를 만든 이유에요. 그렇게 남편이랑 같이 제작해서 LA에서 사람들에게 CD를 발매했죠. 이왕 제작하는 김에 싱가포르로 돌아왔을 때 유통해줄 사람이 있나 싶어 회사에 연락했더니 연결되었고, 첫 컴퍼니 발매사가 타이완, 홍콩으로 발매를 도와줬어요. 이후에 일본에서의 관심 있는 회사가 생겨서 발매 계약으로 이어졌고요. 그리고 그 뒤에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하면서도 미국에서는 인디 레코드 회사에서 발표할 수 있었고 회사를 가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늘 그랬듯 두 번째 앨범 이후로도 집에서 모든 작업을 했고, 그러고 나서 컬리지 투어를 가졌고 친구들과 일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다른 도시에서도 공연했고. 그러나 그것은 성장이었죠. 하룻밤에 이뤄진 건 아니고, 처음에 했을 때 빵 터진 건 아니고 모든 나라에 퍼진 케이스는 아니에요. 몇 년의 과정을 거쳐 일어난 일이죠. 앨범을 내면서 점점 커진 거고. 음악에 관해 얘기하고 계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있었고요. 몇 나라에서는 디지털로 먼저 발표를 했고, 디지털이 피지컬로 이어지고, CD 판매가 되고. 디지털 판매는 여러 나라마다 페이스가 다르지만 좋았어요. 음악이 여러 곳에 나간다는 것 역시 일종의 여행이었죠. 저는 아직 제 걸 예전처럼 하는 방식으로 유지하면서 일을 하길 원해요. 블럭: 다양한 나라에서 공연하고 활동하시는데, 나라마다 관객 반응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체감하시는지. 코린 메이: 달라요. LA의 관객과 싱가포르의 관객이 다르고. 한국의 관객도 달라요. 한국 관객들이 좀 더 존경을 표해주고 잘 들어줘요. LA의 관객들도 좋지만, 한국의 관객들은 앵콜도 외쳐주고 (웃음) 되게 쿨했어요. 그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 반응은 비슷해요. 음악을 공유하는 그런 건 같지만, 언어나 문화와 같은 것들이 달라서 조금의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블럭: 영어로 가사가 되어있고 유행을 타지 않지만, 과거의 음악에 가깝다는 점이 많은 이들에게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린 메이: 감사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면이 있어요. 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부분이 1970, 80년대 음악이고 카펜터즈(The Carpenters)같은, 그런 음악들은 멜로디에 초점을 두고 있잖아요. 요즘은 프로덕션에서 캐치한 멜로디를 만드는 그런 부분이 있고, 저는 그런 것과는 달리 좀 더 흐름이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하고 또 좋아합니다. 캐롤 킹(Carole King) 같은 음악 말이죠. 멜로디가 전개되는 과정이 있는 음악 말이에요. 좀 더 클래시컬한 음악이고, 더 레트로하죠. 영어로 가사를 쓰는 건, 우선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이며 싱가포르에서 주로 쓰이는 언어고 저는 거기서 자랐기 때문이죠. 영어가 저에게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싱가포르에서 오히려 영어로 가사를 쓰는 건 경쟁력이 떨어지는, 어려운 일이에요. 왜냐면 미국을 포함한 모든 영어권 음악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싱가포르 뮤지션들에게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싱가포르의 음악을 밖으로 선보일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싱가포르 음악 시장은 (나라가 작은 만큼) 굉장히 작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자랑스럽기도 해요. 싱가포르에 제 음악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는 점은 좋은 점이죠. 하지만 가끔 다른 언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가끔 중국 시장은 넓은데요. ‘중국어로 노래 부를 생각은 없어요?’ 라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중국어도 조금 할 줄 알지만, 아무래도 좀 더 제가 편한 언어로 쓰게 되죠. 블럭: 싱가포르에서 밖으로 나가는 아티스트가 많은 경우인가요? 혹은 특수한 경우이신가요. 코린 메이: 제가 유일한 줄 알았는데, (웃음) 재즈 뮤지션이 있더라고요. 제레미 몬테이로(Jeremy Monteiro)라고. 그는 싱가포르에서 태어났고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뛰어난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하기도 했고요. 현재 다수의 뮤지션들이 해외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최근엔 인치(Inch Chua)라는 가수가 SXSW 무대에 서기도 했어요. 샘 윌로우스(The Sam Willows)라는 팀도 있고요. 저마다 노력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음악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LA에 살았던 게 조금은 다른 점인 것 같고, 중국 음악 시장으로 많은 싱가포르 음악가가 진출해요. 스테파니 선(Stephanie Sun)이라는 가수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싱가포르) 사람일 거에요. 중국으로 진출을 시도하는 사람은 많아요. 영어는 좀 더 어렵죠. 전 세계가 쓰다 보니 시장이 여러 곳인 점도 있고. 블럭: 첫 앨범에서 캐롤 킹과 작업했던 것도 LA에 살았기에 가능했던 것인지. 코린 메이: 캐롤 킹, 캐롤 베이어 세이거(Carole Bayer Sager)와 작업할 수 있었던 건 온라인 컴피티션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멜로디와 가사로 경쟁하는 것이었고 (그 당시에는) 저도 캐롤 킹을 만나지 못했어요. 열려있는 형태의 기회가 있었지만, LA에 있었기에 접했다고 봐요. 나중에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서 유명한 사람들도 보고, 신기했죠. 유명하고 돈 많은 그런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처음 봐서. (웃음) 스튜디오에 찾아가서도 그랬죠. 같이 일할 수 있었고, 셀린 디온(Celine Dion)과 함께한 곡도 들어볼 수 있었어요. 좋은 경험이었죠. 블럭: 가사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주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쓰시는지. 코린 메이: 제가 곡을 쓸 때는 여행 중에 생긴 아이디어를 통해 출발해요. 보통은 제가 무언가에 대해 쓸 때는 제가 여행 중에 느끼는 것을 쓰기 시작하고, 제 삶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해 써요. 거기서 의미를 찾거나, 영감을 얻죠. 예를 들면, “Crooked Lines”같은 경우에는 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제 삶이나 살아가는 방식 등을 담은 것이고, 그게 여행이라는 의미를 지니죠. 그냥 여기저기 다니는 것 같지만, 제 삶의 움직임이고 아름다운 메타포라 생각해요. [Crooked Lines]는 제 딸이 많은 영향을 줬어요. 그림을 그리고 ‘이건 나비야’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것들에서도 영향을 받았고요. 여러 곳에서 삶에 대한 의미를 찾고, 그걸 곡에 담아요. 그리고 그에 맞는 멜로디를 붙이죠. 행복한 가사, 슬픈 가사에 맞게 말하는 법이죠. 블럭: 싱가포르에서는 나름의 성공을 거두시고 내셔널 데이에도 노래를 부르셨는데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셨는지. 코린 메이: 내셔널 데이는 싱가포르의 기념일인데, 쉽게 말하면 독립기념일입니다.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고,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국가 전체가 즐기는 행사입니다. 싱가포르에는 네 개의 공식 언어가 있어요. 인구의 다양한 인종이나 민족을 대표할 수 있도록 한 것이고, 여러 나라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죠. 그리고 큰 축제가 있어요. 해마다 노래를 부르는데, 퍼레이드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죠. 내셔널 데이의 오피셜 송으로 지정되고, 그게 뮤직비디오로도 나가고 학교 수업에서도 쓰이고 방송으로도 나가요. 모든 사람이 듣고 퍼레이드 때 그걸 불러요. 굉장하죠. 내년엔 50주년이 되고 더 큰 행사가 될 것 같아요. 50주년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일본에서 성공을 거뒀어요. 저는 2010년에 노래를 불렀는데, 저도 행복했고 더없는 영광이었죠. 부모님께서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고. 좋았어요. 부모님께 자랑거리를 드렸으니까요. (웃음) 항상 사람들이 생각하길, 싱가포르 음악으로 싱가포르에서 음악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해요. 로컬 아티스트 이상으로 외국 음악을 많이 듣거든요. 저는 그런 음악들과 다른 사운드를 선보였고, 세일즈에 있어서 서포트를 받았죠. 힘이 많이 되었어요. 옳은 일을 했다 생각하고. 블럭: 한국에서도 팬이 있고, 두 장의 앨범이 정식으로 발매되었어요. 아무래도 그러한 멜로디나 이런 부분이 한국 사람들의 취향과도 맞는 것 같아요. 코린 메이: 아시안 문화에서 멜로디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전통 음악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포크 송이 사랑받는 이유도 그런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이유가 된 것 같아요. 저도 좋은 멜로디를 사랑하고요. 멜로디가 가사보다 먼저 다가오기도 하잖아요. 멜로디는 더 배워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가 라디오를 통해 노래를 들을 때도 먼저 다가오는 건 가사보다는 멜로디더라고요. 블럭: 음악을 선보이는 데도 음원이나 디지털 싱글 형태의 발매가 아닌, 예전의 방식을 더 선호하는지 궁금해요. 코린 메이: 앨범 단위로 선보이는 것을 더 좋아해요. 앨범이 곧 한 챕터고, 그게 제 인생의 일부를 보여주는 한 권의 책, 혹은 그 책의 한 섹션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싱글을 내고 짧은 기간에 음악을 선보인다면, 음악이 가지는 맥락이나 의미를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앨범 단위의 방식을 더 선호해요. 그게 더 편하고요. 블럭: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 같은 게 있으시다면. 코린 메이: 다음 앨범을 준비 중이고, 곡을 위한 아이디어를 찾고 있어요. 곡을 쓰는 건 쉽지 않아요. 다시 여행으로 돌아가야 하고, 곡을 쓰는 과정을 거쳐야겠죠. 어느 정도의 인내도 필요하고요. 일하고, 다듬고 그런 과정들이 있어야 하니까요. 도전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들처럼 항상 배우고 관찰하는 마인드가 필요하고요. 여행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 같고, 그래서 그런 마인드가 필요한 것 같아요. 한 앨범 안에 음악적으로 프로덕션을 만들고 그런 과정은 익숙하지 않아요. 오늘 경험한 것들로부터 아이디어들을 담고, 그렇게 만드는 게 좋아요. 계속 음악을 만들고, 공연할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