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2014년 9월 3일 장소: 카페 비하인드 진행, 정리: 정은정 cosmicfingers99@gmail.com 킴 케이트는 한국과 영국,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멤버를 두고 있는 탈국적 콜렉티브 ‘메르시 지터(Merci Jitter)’의 공동 파운더이자, 한국의 ‘허니 배저 레코즈(Honey Badger Records)’에 소속된 프로듀서/DJ이다. 지난 해 EP [Melt With You + Remixes]를 시작으로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킴 케이트의 첫 EP [Melt With You + Remixes]정은정: 처음 당신의 음악을 접했을 때, 활동명과 앨범 재킷 사진 때문에 킴 케이트는 여자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20대 청년이 내 앞에 앉아 있다. 네이밍은 일부러 성별을 혼동하게끔 의도한 것인가? 킴 케이트: 가장 흔한 이름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킴(Kim)을 골랐다. 킴은 김씨를 의미하는 영어 표기이고 외국에서는 이름으로도 쓰인다. 그리고 내 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찾다 보니 여성스러운 느낌이 좋을 것 같았다. 몇몇 후보가 있었지만 케이트가 가장 적합했다. 이게 입에 제일 잘 붙었다. 사실 약간 노린 것도 있고(웃음). 정은정: 과거에는 피규어 에이트(Figure Eight)라는 밴드로 활동했더라. 킴 케이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활동하면서 2장의 EP를 발매했다. 좋은 경험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게 많다. 정은정: 어떤 점이 아쉬운가? 킴 케이트: 그때는 머릿속에 있는 걸 백 퍼센트 표현하려고 했다.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결국 혼자 다 했다. 내가 그린 그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신시사이저, 보컬은 물론 앨범 아트워크 제작과 공연 기획까지 총괄했다. 디자인과 기획 일을 할 때는 키치 비욘드 클리셰(Kitsch beyond cliché)라는 이름을 내걸고 나름 열심히 했다. 모든 과정이 재밌었지만 솔직히 힘도 들고 지치기도 했다. 이제는 그렇게 안 한다. 동료들과 함께하는 게 더 좋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다(웃음). 발전(#VALZUN) 파티에서 베이스 뮤직을 들려준 킴 케이트 정은정: “Melt With You”의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킴 케이트: 예전부터 곡을 만들어 프로젝트 폴더에 정리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다. 무심코 폴더를 정리하다가 발견했는데, 퍽 괜찮아서 다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운드를 정돈하고 나니 보컬이 필요했다. 킴 케이트라는 이름으로 보나 음악의 분위기로 보나 무조건 여성 보컬을 써야겠다고 판단했다. 그 와중에 학교 친구들이 하는 파티에서 파라 그레이(Farrah Gray)를 만났다. 그녀는 밴드 보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섭외했는데 흔쾌히 응해줬다. 녹음 결과도 원하던 대로 나와서 매우 만족스럽다. 정은정: 멜로디도 그렇지만 곡명과 가사가 관능적이면서 의미심장하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킴 케이트: 유학생인 내게 런던은 모든 게 낯설었고 그래서 관찰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수십 년간 보존되고 있는 부르탈리즘 양식의 잿빛 건물들, 희뿌연 안개, 자주 내리는 비, 녹슨 지하철은 나에게 런던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풍경에서 느낀 ‘흘러내리는’ 심상을 멜로디와 비트로 표현한 곡이 바로 “Melt With You”다. 이건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던 건데, 가사는 2013년에 있었던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를 모티프로 삼았다. 한국과 영국을 자주 오가던 나에게 비행기 사고는 큰 충격이었다. “Don’t touch the ground. I’ll melt with you.”라는 가사는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한 기체를 본 절망감과 두려움을 담은 것이다. 정은정: 작곡부터 작사, 프로듀싱, 마스터링까지 모두 혼자 해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킴 케이트: 송 라이팅과 프로듀싱을 도맡아 하는 것은 밴드를 했을 때부터 계속 해온 일이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굳이 꼽자면 어디까지 내가 제어할 수 있고 없는지에 대한 지점을 알아내고 인정하며 넘어가는 점이 어려웠다. 특히 믹싱.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100% 자기 자신이 책임지려 할 경우, 객관성을 상실하기 쉽다. 습관처럼 같은 프로세스를 거쳐 재미없는 결과물이 나온 경우도 많이 경험했다. “Melt With You”의 경우도 수차례 직접 믹싱했는데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다. 더군다나 어떤 게 맞는 선택인지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마무리는 서울의 머쉬룸 레코딩(Mushroom Recording)의 천학주 사운드 엔지니어와 함께했다. 엔지니어 입장에서도, 음악가 입장에서도 인정할 만한 결과물이 나왔다. 정은정: 그렇다면 그중 가장 흥미로운 일은 무엇인가? 킴 케이트: 프로듀싱이다. 개인적으로 프로덕션 내에서 곡 쓰기와 사운드 디자인을 분리하지 않고 원하는 소리를 바로 만들려고 하면서 믹싱과 곡 쓰기를 동시에 처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튀어나올 때가 제일 흥미롭다. 예전에는 프리셋들이나 악기 셋업 같은 걸 미리 저장해뒀다 사용했다. 요즘은 따로 저장하기가 귀찮아서 머릿속에 기억해 둔 세팅이나 로직, 콘셉트 등을 끄집어내는 식으로 작업한다. 정은정: 지난 해 초부터 앨범 발매와 각종 파티 및 공연을 했다. 중요한 계기가 있는가? 킴 케이트: 그동안 서울의 언더그라운드 신을 지켜보고 있었고 서울에 돌아가면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컸다. 와트엠(WATMM), 스탑 룩 리슨(Stop Look Listen)의 경우는 참여 의사를 밝히고 섭외를 받은 게 4월이었다. 킴 케이트로 활동을 시작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계기라고 하면 아마도 이태원의 케이크샵? 자주 만나던 서브비트(SUBBEAT), 영기획(YOUNG,GIFTED&WACK), 프라퍼 글로우(Proper Glow)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가장 크다. 특히 발전(#VALZUN) 파티의 경우는 처음에 친구들끼리 난지 캠핑장에서 고기 구워 먹자고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파티로 발전했다. 운을 띄운 건 나였지만 구체적인 방향이 잡히며 3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역시 함께 일한 사람들과 관객으로서 지지해준 분들 덕이 컸다. 와트엠 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틀려고 만든 풋워크 트랙의 가사처럼 우리는 우리의 관계자이고 연인이며 친구이자 신 그 자체였다(We are each of your acquaintance, lovers, friends and scene of its own). 정은정: 허니 배저 레코즈(Honey Badger Records)와는 어떻게 결합하게 되었는가? 킴 케이트: “Melt with You” 발매를 준비할 즈음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JNS의 “Gonna Be Late” 뮤직비디오를 봤다. 무척 마음에 드는 음악이었고 그가 허니 배저 레코즈의 파운더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킴 케이트와 나름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작정 연락했다. 이메일을 몇 번 주고받은 후, 허니 배저 레코즈에 합류하기로 했다. 정은정: 본인이 결성한 콜렉티브 ‘메르시 지터(Merci Jitter)’의 의미는 무엇인가? 멤버의 영입 기준은? 킴 케이트: 메르시 지터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네스(Ness)와 라일(Lyle), 그리고 스위스 로잔에 있는 쿨 타이거즈(Cool Tigers)와 함께 만들었다. 이름은 사실 별 의미 없다. 네스가 나의 학기말 발표 작업이었던 오디오비주얼 “Jitter Glitter”를 몹시 맘에 들어 하며 그룹의 아이덴티티로 쓰고 싶다고 제안했다. 거기서 Jitter만 따서 이름을 지었다. 새 멤버 영입은 대체로 네스가 제안하고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이 동의하면 가입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나도 그가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데려오는지 신기할 때가 많다(웃음).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잘 하는 음악가를 발견하면 우선 접촉해본다더라. 구성원들의 평균 나이가 20세인 만큼 젊고 재밌는 크루이니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정은정: 서울에서 음악 활동을 하는 것엔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 런던과 비교하자면? 킴 케이트: 당연히 서울의 뮤지션들이 겪는 지역적인 문제나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건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재미있는 일을 ‘저지르기’엔 서울이 런던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프라퍼 글로우와 함께 진행했던 발전(#VALZUN) 파티만 봐도 그렇다. 한강에서 음악 틀고 노는 파티였는데, 런던이라면 아마 바로 경찰이 와서 해산시켰을 거다. 런던 레이브 신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상업화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울에서 재밌는 일을 벌일 수 있는 공간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발적으로 끝나버리는 이벤트가 많아 안타깝다. 와트엠(WATMM), 암페어(AMFAIR)처럼 장기적인 이벤트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정은정: 블로그를 살펴보니 VJing 영상도 제작하더라. 킴 케이트: 프로시저 드로잉(Procedural Drawing)이라고 하는 건데, 단순히 음악에 어울리는 영상을 재생하는 게 아니라 멜로디와 비트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인터랙티브 오디오비주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화가이자 디자이너셨는데, 그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디자인 서적을 자연스럽게 접했으니까. 언젠가 음악뿐만 아니라 VJing도 직접 준비해서 공연하고 싶다. 정은정: 악기와 장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고 들었다. 소장하고 있는 종류가 궁금하다. 실제 음악 활동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킴 케이트: 주로 빈티지 신시사이저를 모은다. 글렌 핸사드(Glen Hansard)가 영화 “원스(Once)”에서 사용한 기타와 같은 모델도 있다. 그중 가장 아끼는 물건은 보이스 칩이 모두 살아 있고 완전 새것 같은 Roland Juno 106이다. 그 외에도 Korg MS2000b, MS20, Yamaha AN1x 등을 가지고 있고 작업할 때는 주로 Elektron의 Analog4, MachineDrum을 쓴다. 희소성이나 성능보다 과거의 시점에서 상상한 미래적인 소리를 구현하려 애쓴 흔적이 보이는 물건을 좋아한다. 그리고 버튼이나 노브가 많이 달려 있어야 한다(웃음). 원래 기타를 전공했기 때문인지 직접 손으로 만져서 만들어내는 소리와 감성을 좋아하는 편이다. 작업할 때 쓰는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작업 중에 무언가 막힐 때 새 영감을 주는 건 언제나 직접 만질 수 있는 악기들이었다. 정은정: 요즘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가. 전자 음악 리스너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음악가가 있다면? 킴 케이트: 에어헤드(Airhead), 클락(Clark), 리 배넌(Lee Bannon), 마이 드라이 웨트 메스(MYDWEM), 팁스(Teebs), 모노폴리(Mono/Poly)를 추천한다. 정은정: 자신만의 징크스가 있는가? 킴 케이트: 열심히 하면 안 된다. 공부도 그렇고 어떤 일을 할 때 열심히 하자는 마음을 먹고 잘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벼락치기나 밤샘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최대한 마음 편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공연에 임하려고 노력한다. 정은정: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음악가는 누구인가? 킴 케이트: 해외에서는 로렐 할로(Laurel Halo), 포 텟(Four Tet), 그리고 색소폰 연주자인 조슈아 레드맨(Joshua Redman). 국내에는 하임(Haihm), 다미라트(Damirat)와 함께 해보고 싶다. 정은정: 앞으로의 계획은? 킴 케이트: 작년에 네스의 곡을 마스터링했는데, 마스터링은 요청이 들어오는 한 앞으로 계속 할 생각이다. 메르시 지터의 첫 컴필레이션 앨범 “Movement Vol. 1”이 1월 28일에 공개되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30일에 런던에서 파티를 한다. 킴 케이트의 활동을 말하자면, 1월 18일에 서브비트에서 주최한 스트리밍 이벤트인 ‘서브스트림(Substream)’에 참여한다. 2월에 EP도 발매할 예정이다. 벌써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사실 가장 중요한 계획이자 바람은 학교를 잘 졸업하는 것이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