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9살이 된 리케 리 Lykke Li 리케 리(Lykke Li), ‘속사정 게임’을 시도하다 사연은 단지 사사로운 말의 발설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말을 듣는 사람이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나름의 의미를 챙기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사연에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까닭이 중요하다. 까닭이 분명하면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으로 성립되고 전파될 가능성을 확보한다. 이것이 곧 온전한 속사정으로서의 사연이다. 한데, 리케 리는 이런 원칙을 되도록 지키지 않으려 한다. 비유를 들자면 리케 리는 증거를 실컷 챙겨서 본격적인 추리에 나서보려는 탐정의 희망에 초를 친다. 대중을 대신해 베일에 가려진 뮤지션의 음악세계를 탐문해보려는 저널리스트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2014년 5월, 『타임아웃』의 아멜리아 에이브러험은 리케 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소개글로 인터뷰 진행이 녹록치 않았음을 밝혔다. “악명 높을 정도로 내향적이며 생각이 많은” 뮤지션. 아멜리아의 푸념은 다른 음악 저널리스트의 그것이기도 했다. 왜 리케 리와 인터뷰를 한 저널리스트들은 긴장한 채 그녀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를 예민하게 챙겨야 하는 걸까. 여기에 현재 인디 음악씬을 주름잡고 있는 한 명인 리케 리의 매력이 있다. 올해로 29살을 맞은 이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속사정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법을 실천 중이다. 이는 곧 그녀의 음악 세계를 이루는 중심축이기도 하다. 곡에 얽힌 속사정을 보호하기: 그냥 들었으면 된 거 아닌가요? 신령스런 기운을 잘 믿진 않지만, 그녀가 태어난 해인 1986년은 범상치 않았다. 그해 ‘잭슨 패밀리’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던 자넷 잭슨은 “Control”로 아버지를 비롯한 남성들에게 내 삶을 통제할 주인은 바로 나라고 외쳤다. 숀 펜과 사랑에 빠진 마돈나는 “Papa Don’t Preach”를 통해,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 아버지가 장황한 설교를 그만두길 바랐다. 리케 리는 어린 시절 레게 밴드를 했던 아버지, 펑크 밴드 활동을 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 또한 부모를 향해 정서적 대결을 벌이고 싶었던 걸까. 음악으로? 이 정도 재료가 모였으면, 리케 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꺼낼 만하다. “당신 음악엔 부모님 음악의 흔적이 있나요?” 2집 [Wounded Rhymes]가 나왔을 때, 음악잡지 『클래시』의 조 다데는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리케 리는 부모가 어떤 음악을 해왔으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구구절절하게 밝히지 않았다.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싸늘했다. “저는 남에게 제 부모 이야기를 늘어놓는 게 우스워요. 어른인데… 당신이 심리치료를 받을 때, 누군가 말하죠. ‘그렇다면…당신의 유년기는 어땠나요’라고. 저는 [그와 같은 상황에] 이렇게 말해요. ‘네? 누구나 유년기는 있죠!’ 저널리즘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그 음울하고 비통한 음악적 기운의 출처는 무엇인가. 질문이 이어졌다. 저널리스트들은 그녀의 음악에 담긴 ‘정처 없음’에 관심을 보였다. 리케 리를 아예 ‘유목민적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여성으로 명명해버렸다. 그녀는 스웨덴에서 태어났지만, ‘스웨덴식’을 고수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학창 시절 11곳이나 학교를 옮겨 다녔다. 스웨덴은 출생지였을 뿐, 포르투갈, 모로코, 네팔, 인도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또래처럼 텔레비전을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없었다. 인터넷도 하지 못했다. 그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카트만두 어딘가에 위치한 집에서 자는 게 낙이었다. 혹은 돌고래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며 해양생물학자가 되는 꿈을 키우거나, 피터 팬이 되는 공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게 이 내향적 여성의 놀이였다. 재료가 또 모아졌다. 2012년, 『라이프라운지』가 선공에 나섰다. “당신의 생애는 흡사 여행일기를 읽는 기분이에요(…) 당신이 정착하고픈 다음 행선지는 어딘가요?” 2년 뒤 웹진 『스테레오검』의 T.콜 레이첼은 당시 LA에서 음악활동을 하던 리케 리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제 LA가 당신 집인가요?” 리케 리는 예상했다는 듯 직설을 날렸다. “저는 그런 식으로 제 삶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라이프라운지』) “저는 제가 살 곳을 찾는 시도를 그만뒀어요. ‘내 집은 어디일까?’ 묻는 거요. 그런 물음 때문에 죽을 것 같아요.”(『스테레오검』) “I follow rivers”는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테마로 쓰여 인기를 얻었다. 『라이프라운지』는 그녀의 히트 싱글 “I Follow Rivers”를 언급하며, 곡과 관련된 비화를 물었지만, 그녀는 아예 못을 박아버렸다. “오 제발, 전 당신에게 말할 수 없어요. 지극히 사적인 거라서요. 당신은 노래를 들었잖아요…그걸로 된 거 아닌가요?” 그녀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보호해나갔다. 곡에 얽힌 속사정은 리케 리 본인의 것이어야만 했다. 분류하기에 대한 경계: 곡 작업은 치유의 과정이 아니다 이러한 리케 리의 속사정 게임은 일반화의 시도, 즉 분류하기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녀는 “일반화는 흥미롭지 않다”고 밝혔다(2014년 패션지『데이즈드』인터뷰). 스웨덴 출신의 팝스타라는 범주에 대해, 그녀는 “게이에게 조지 마이클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과 같다며, 이런 분류하기에 진절머리가 나 있음을 고백했다. 저널리즘은 1집 [Youth Novel](2008), 2집 [Wounded Rhymes](2011), 3집 [I Never Learn](2014)까지, 7년의 여정 끝에 ‘비극 3부작’이란 테마를 완성한 그녀에게 20대 여성의 우울이란 문제의식을 끄집어냈지만, 그녀에겐 딱 그뿐이었다. 리케 리는 본인이 몹시 예민하며, 고독과 친하고 우울한 사람임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그런 특성을 연결 지어 자신의 곡 작업이 일종의 치유 과정으로 해석되는 걸 경계했다. 2014년 5월, 이번엔 저널리스트 엘로이즈 에딩턴이 총대를 멨다(『헝거TV』인터뷰). “곡 쓰는 일은 치유의 과정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누구나 그렇게 말하지 않나요? 저는 그런 말이 매우 섹시하지 않게 들리는군요.” 그녀의 직설은 꾸준했다. 화법과 음악적 색감이 비슷한 라나 델 레이가 저널리즘을 대하듯, 리케 리 또한 저널리즘이 구체적인 것을 원할 때, 관념적이면서 몽상적인 언어로 응수했다. 이 과정에서 리케 리는 저널리즘을 향해 분류하기를 시도한다. 그녀는 ‘질문감별사’가 되어 예상되는 질문의 진부한 기운을 추려냈다. 인터뷰이가 예민하게 질문을 가려내면, 인터뷰어는 한 단계 더 높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아예 질문에 대한 질문을 해버리는 것이다. “당신은 무슨 종류의 질문에 피곤해합니까?”『컨트리뷰터』의 안토니아 넷센이 물었다(2014년 9월의 인터뷰 내용). 이제는 숨을 한번 쉬고 그녀의 대답을 들어보자).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질문이요. 저는 제 자신에 대해 말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피곤해요.” 우울의 어떤 딜레마 이쯤 되면 해봄직한 질문이 있다. 우린 그렇다면 무슨 재미로 그녀의 난해하고 그늘진 음악을 들어야 하는 걸까?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리케 리의 인터뷰는 재미를 보장한다. 그녀의 ‘예술가적 무심함’이라는 제스처가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소위 ‘우울의 서재’를 공개해주기 때문이다. 평단과 문화계 인사들은 리케 리의 지적인 관심사에 집중하면서 그녀의 우울을 세련되게 보이는 작업에 동참했다. 그녀는 우울에 대한 속사정을 직접 언급하길 꺼렸다. 다만 비극 3부작의 소재였던 21살~27살까지의 여성을 관통하는 우울에 가미된 지적인 소스는 무엇이었는지 적극적으로 노출시켰다. 1집 활동 이후 외상성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렸던 그녀는 자신의 성격이 매우 내향적이라는 것을 검사를 통해 알았고, 하이킹과 독서, 영화감상에 열중하며 혼자 회복을 꾀했다. 옛 시풍을 좋아하던 그녀는 루미와 하페즈의 시를 즐겨 읽었으며, 아나이스 닌과 조앤 디디온의 작품에 빠져 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를 읽고 감명을 받았던 그녀는, [Wounded Rhymes]를 만들게 된 계기가 이 소설에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홀로 하이킹을 할 땐 동양철학자 앨런 와츠의 명상집을 듣곤 했다(참고로 리키 리는 주역도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팔목에 새긴 세 줄의 문신이 주역의 순리에 따라 나온 세 장의 앨범인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또한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나 LGBT의 세계를 다룬 제니 리빙스턴의 다큐 [파리는 불타고 있다] 같은 영화를 찾아 보면서 자신의 정서적 결을 다듬어나갔다. 그리고 우연히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와 친해지면서, 그에게 평소 겪고 있던 우울의 속사정들을 털어놓게 된다(물론 리케 리는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서재 공개가 그녀의 음악 세계에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낼 수단으로만 쓰일진 의문이다. 리케 리가 공개한 우울의 서재가 그녀의 ‘고급스런 음악적 우울’을 담보하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음악웹진 <드라운드 인 사운드>의 칼럼니스트 탐 펜윅이 “I Never Learn”을 향해 “겉만 번지르르하고 편협한 자기 방종에 갇혀 있다”고 말한 대목은 곱씹어볼만하다. 물론 평단은 대부분 “내향적”이고 “속내를 잘 꺼내지 않는” 사운드를 지닌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명민한 데뷔를 축하해주고, 줄곧 지지를 보내왔다. 허나 그녀의 굉장한 문화자본이 리케 리라는 음악세계를 과장되게 그리곤 있지 않는지 의심의 눈초리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한 리케 리는 춤추는 걸 즐겼다. 이는 단순히 흥을 느끼는 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향성을 유지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퍼포먼스를 뮤직비디오에 공개했는데 “Sadness Is Blessing”은 대표적이다. 리케 리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는 곧 우울의 사회적 작동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남의 이야기엔 도통 관심 없는 척하는 뮤지션의 우울은 오로지 자기 내부와의 전쟁을 향해 있으면서도, 누군가는 그 전쟁의 내용을 큰따옴표로 처리해주길 바란다. 자신의 우울이 인용구가 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리케 리가 우울의 서재를 공개했듯). 허나 리케 리처럼 속사정을 꺼내지 않음으로써 우울한 정서를 테마로 삼은 뮤지션은 본인의 우울이 고유하고 독창적이길 여전히 소망한다. 한때 우리는 평범해서 우울했지만, 이젠 우울의 기술이 늘어난 가운데 그 어떤 우울을 봐도 그다지 별스럽지 않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우울을 내세운 뮤지션의 소비는 경주의 원리가 작동한다. 고로 뮤지션은 대중에게 따라 잡히지 않고자 더 독특한 우울을 계발하러 도망쳐야 한다. 이처럼 우울의 리더십은 한 단계 발전한다. 우울의 리더는 스스로 부재한 채 우울의 권위를 부정함으로써 더 쾌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리케 리는 비극 3부작을 집필한 뒤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이 몹시 지쳐 있다고 말한 채, 공식 활동을 잠정적으로 종료했다. 그녀가 피로를 풀러 들어간 내향성의 지하실이 우울의 새 형태 계발과 자신의 동반 성장을 보여주는 공간일지, 아니면 지난날의 기록이 말만 앞세운 음악적 기교였음을 시인하는 공간이 될지는 그다음 챕터인 4집에 달려 있는 듯하다. 어쩌면 리케 리의 비극 3부작은 4집을 위한 서문일지 모른다. 언제나 그렇듯 평가는 듣는 이의 몫이다. 물론 리케 리는 당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진 않을 것이다. | 김신식 https://www.facebook.com/shinsik.kim note. 내성적인 사람들을 위한 사회학을 연구하는 감정사회학도. 대중음악계를 감정이란 키워드로 접근해보는 중이다. 인문사회비평지《말과활》의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