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li Puna – Miconomic | Faking The Books (2004) 10년 전 나온 뮤직 비디오 “Micronomic“에 대한 해석으로 시작하자. 그 시작은 유럽의 한 공항이다. 사람들은 이리저리로 분주하게 이동한다. 한 아시아계 여성이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 워크, 버스 등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한다. 그녀가 걷거나 뛰면서 몸을 움직이는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현대적인 교통 혹은 수송 수단이 그녀의 몸을 이동시킨다. 표정 없는 그녀는 캠코더를 들고 무언가를 찍는다. 집에 돌아와서 그녀는 오래된 영사기를 꺼내서 여기저기 청소를 한 뒤 필름을 걸어 놓는다. 필름을 거의 다 볼 즈음 그녀의 분신이 나타나 그녀를 때려서 기절시킨다. 그녀는 기억을 잊어버린 듯 누워 있다. 이런 나의 해석에 랄리 푸나의 프론트우먼 발레리 트레벨야르(Valerie Trebeljahr)가 한국에서 독일로 국제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작용했을까. 하나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나 역시 한국의 국제 입양의 역사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베를린의 한 공연장의 대기실에서 그녀를 딱 한번 만났던 2008년 여름의 어떤 순간에 나는 뮤직 비디오에 대한 나의 해석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지 않았던 것을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랄리는 발레리의 애칭이고, 푸나는 부산의 오독(誤讀)이란다. 하지만 ‘랄리 부산’이라고 이름짓지 않은 건 얼마나 다행인가. 그녀의 뿌리와 기원은 선명하게 기억되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망각되지도 않은 채 슬쩍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흔적이 아니라 그 기억과 망각 사이의 틈새의 공간이다. ‘어디에서 왔는가’만큼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는가’다. 그래서일까, “Micronomic”의 후렴구에서 그녀는 “넌 어디로 가고 싶니?(Where do you want to go?)”라고 계속 묻는다. 근원과 뿌리만 따진다면, 세상이 바뀌었다는 시대의 기호를 마지막으로 알아차리는 사람일 것이다. 레이든(네덜란드)에 머물던 내가 장시간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랄리 푸나를 찾아간 것도 그 미래를 보고 싶어서였다. 중독적 비트, 멜로디의 훅, 차가운 음색, 정밀한 텍스처 등의 상투적인 인상 비평 용어가 나의 이동의 충동을 차라리 더 잘 정의해 준다. 2015년 2월에는 그녀가 나를 찾아 이동해 온다. 여기서 ‘나’라는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그녀의 방한이 몇 차례 무산된 사정을 아는 ‘그녀의 음악 팬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한국’은 그녀가 이제까지 투어를 하면서 방문한 여러 곳 가운데 하나일까, 아니면 조금은 더 특별한 감흥을 갖는 특별한 곳일까. 나는 전자이기를 바라고, 당연히 그럴 것이다. 우리가 만나 볼 랄리 푸나는 뿌리와 나라를 찾아 돌아온 주체가 아니라 어디론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주체다. 몇 년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비행기 2시간만 타면 한국도 올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던 시크(chic)한 그녀라면 말이다. “Micronomic”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다시 공항에 도착하여 무빙 워크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한다. 2015년 2월 초 그녀가 다시 그 무빙 워크를 탈 때 그건 한국으로 향하는 이동의 경로일 것이다. 한국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이동하고 이동하면서 새로운 감정과 의미를 만들어 낼 것이다. Move On! | 신현준 hyunjoon.shin@gmail.com Lali Puna vs Trampauline – Machines Are Human | Machines Are Human (2014) 랄리 푸나(Lali Puna)는 2월 13일과 14일, 이틀 간 부산과 서울에서 트램폴린(Trampauline)과 조인트 공연을 연다. 지난 1월 7일(수) 발매한 콜라보레이션 디지털 싱글 “Machines Are Human”에 이은 공연이다. “Machines Are Human”은 이들이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공동 작업의 결과이자 제목 그대로, 기계 문명에서 인간들이 기계에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는 점을 주목했다. 발매 전 유투브를 통해 공개된 영상은 트램폴린과 랄리 푸나가 각자 자국의 길거리를 거닐며 원테이크 라이브로 곡을 담아내는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트램폴린과 랄리 푸나의 공동 작업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2014 젊은 뮤지션 글로벌 교류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고, 앨범 발표 및 공연 역시 그 일환의 행사다. 두 팀은 이 신곡을 독일과 일본, 한국에서 개최되는 공연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국내 공연은 2월 13일(금) 부산 인터플레이와 2월 14일(토) 서울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