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K의 새 앨범, [고결한 충돌] 흑인음악 온라인 매거진 힙합엘이에서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음감회를 열고 있다. 음감회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힙합엘이의 음감회는 음악가의 음반을 발매 전 미리 들으며,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음감회에서 하는 이야기는 블루레이(Blu-ray)에 수록되는 감독의 코멘터리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1월에는 JJK라는 래퍼의 앨범, [고결한 충돌]에 관한 음감회가 있었다. 현장에서 JJK는 주로 앨범에 담긴 내용과 전후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이 앨범은 ‘개인의 이야기’에 충실한 동시에 공감대에 관한 고민을 던지기도 했다. 앨범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반응을 봐서는 어린 팬들은 그들 나름대로, 나이가 JJK와 비슷한 팬들은 또 공감을 어느 정도 하며 듣고 있는 듯하다. [고결한 충돌]은 음감회를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훨씬 먼저 접했다. 마스터링이 끝난 직후 접했으니까 정말 일찍 접한 것이다. 그래서 앨범에 대한 비평을 쓰는 것은 조금 힘든 일이다. 왜냐면, 음감회 준비를 위해 일주일 내내 이 앨범을 들었기 때문이다. 몇 곡의 훅을 외울 만큼 열심히 들었다. 무작정 듣기만 한다고 해서 트랙과 트랙 사이에 놓여있는 행간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의 경우 앨범을 들었을 때 음악적 부분, 기술적 부분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가사와 전달하는 감정은 그다음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 앨범은 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조금 더 집중하고 접했을 때 앨범 속 화자가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힙합 앨범, 혹은 랩 앨범을 접할 때 대개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보다는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에 더 집중하지만, JJK의 앨범은 ‘무엇을’에도 기대하고는 했다.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야기하기에 앞서 간단하게 앨범을 설명하면, 이 앨범은 JJK라는 래퍼의 정규 앨범이다. JJK는 늘 앨범을 만들 당시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결혼 이후 출산의 과정을 담아낸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컨셉 앨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앨범에는 일련의 사건에 집중하며 여러 사람의 처지를 반영하는 한 명의 화자가 있다. 그리고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생각해보면 이 앨범은 뚜렷한 컨셉과 사실을 기반으로 한 서사가 공존하는, 참 아이러니한 앨범이다. 여기에 JJK라는 래퍼는 단순히 이야기를 담는 데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랩 방법론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꾀하며 발전된 면모를 선보인다. 어느 한 가지 방식에, 혹은 그냥 내뱉는 데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그는 꾸준히 진화를 꿈꾼다. 서사를 챙기면 그 위에 듣는 재미를 얹고, 듣는 재미에서도 박자를 어떻게 가져갈지 그리고 이걸 어떻게 비틀지 고민한다. 그 고민은 앨범 속 랩에 고스란히 담겨서 전달된다. JJK는 나에게 있어 보컬에 디테일이 있듯이 랩에도 디테일이 있다는 걸 가장 잘 알려주는, 교본 같은 사람이다. “고결한 충돌”이라는 통과의례, 그 기록 돌아와서, [고결한 충돌] 앨범에 담긴 서사는 ‘통과의례’다. 보통 한국에서는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며, 주로 한 개인이 살면서 인생 고비마다, 즉 나이를 먹으면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겪는 의식과 그에 수반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는 민속학자 반 겐넵이 “통과의례”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정리하였으며 그는 대부분 통과의례가 분리, 전이, 통합의 과정을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즉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을 때 일상과 분리되었다가(분리) 통과의례를 거치는 과정에서 기존의 질서로부터 새로운 질서로 이동하는 과정을 거치며(전이), 새로운 상태로 세계에 복귀하는 과정(통합)을 거치는 것이다. 반 겐넵 역시 JJK처럼 임신과 출산은 하나로 결합한 형태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분리는 임신을 의미하게 되며 사회로부터, 혹은 가족으로부터, 혹은 자신의 성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전이는 임신 후 출산까지의 기간을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전이 기간 임신과 관련된 의례가 행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출산 이후 ‘어머니’라는 새로운 지위를 규정 받고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 통합의 단계이다.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에서 저자는 임신과 출산 시 분리 의례 과정에서 여성을 특수한 공간으로 분리하는 관습에 관심을 가졌다. 과거 특정한 몇 사회에서는 임신과 출산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니라 성과의 단절을 의미하며 임신을 부정하고 위험스러운 것, 생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몇 사회는 임산부를 환자나 이방인과 같이 대하고 격리하는 부정적 풍습을 가졌다. 그와 정반대로 임산부를 주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단계적으로 사회에 통합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도 존재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든 임신 기간은 통과의례 중 전이에 해당한다. 앨범은 이 ‘전이’에 해당하는 소용돌이의 과정을 정말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밀하게 가사를 나누자면 지금 결혼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구간도 있고, 결혼 이후의 남성이 가지는 태도를 지적하는 부분도 있다. 민속학의 시각에서 이 앨범이 흥미로운 건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기간을 거치는 동안 옆에 있는 남성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앨범은 단순히 몇 가지의 감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고찰(“고결한 충돌”), 옆에서 아내를 관찰한 경과(“거울 안의 그녀”), 탄생하는 자녀에 대한 기대감(“결”), 전이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느끼는 불안함(“알고 싶지 않아”)이 담겨 있다. 여기에 “충돌완화”라는 곡은 제목부터 통합 단계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연령에 따라 감상의 지점이나 결과가 다르다는 점 역시 이 앨범이 생애주기를 바탕으로 한 통과의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화자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서도 감상의 층위는 달라진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고정현(JJK의 본명)이라는 사람에게 듣는 일종의 구술 생애사이기도 하다. 구술 생애사라는 것은 인류학에서 주로 연구할 때 쓰는 자료 중 하나로, 말 그대로 한 사람의 생애를 기록한 것이다. 내 인터뷰 스타일이기도 하다. 래퍼의 서사가 모이면 구술 생애사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당시 상황이나 문화 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 자료로써의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구술 생애사, 관습과된 플롯을 벗어났을 때의 가치 하지만 랩 가사에는 일종의 ‘관습화된 플롯’이 존재한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랩 가사 내에서 관습화된 플롯은 실재하거나 실재하지 않는다. 아니, 관습화된 플롯을 벗어나는 가사가 적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랩 가사는 과거 자신의 이야기를 타자화했던, 혹은 영웅 서사로 끌어올렸던 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던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돈, 차, 여자, 성공과 같은 자기 과시의 키워드나 배틀 랩이 상대적으로 영웅 서사에 가깝다면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나 라직(Logic), 믹 젠킨스(Mick Jenkins) 같은 새로운 음악가들이 하는 이야기는 구술 생애사에 가깝다. JJK의 앨범 역시 후자에 해당한다. 영웅 서사와 구술 생애사가 간극이 있듯이 여러 작품 사이에는 배경이나 상황, 정신 등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만 영웅 서사의 경우 당장 내가 사는 현실과는 다르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나는 어떤 가사, 어떤 주제를 좋은 것, 혹은 옳은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경계해야 할 점이며, 취향의 기준일 수는 있어도 음악 자체를 판단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만큼 랩 음악이라는 건 가사만 잘 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랩도 잘해야 하고, 곡도 좋아야 한다. 똑같이 성공의 이야기를 담아도 자신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어낼 수 있다면 그만큼 설득력도, 가치도 올라가는 식이다. 누군가는 [고결한 충돌]을 듣는 내내 공감하며 감정의 기복을 겪을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통과의례에 대한 기억이나 기대를 꺼내게 된다. 그만큼 추상적이거나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각각의 개인에게 집중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앨범을 접하며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혹은 임신과 출산에 관련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진다. JJK뿐만 아니라 많은 래퍼가 자신의 일생 중 단편을 모아 앨범으로 담아낸다. 한국은 그러한 경우가 많지 않지만, 미국의 래퍼들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극적으로 꾸미거나 때에 따라서는 담담하게 토로한다. 하지만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경험, 멋지게 보일 수 없는 암담한 경험까지 드러내기 시작한 가사는 최근 몇 년 사이에서야 부쩍 많아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가사는 당연히 그전부터 꾸준히 있었지만, 래퍼에게 남성성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던 만큼 성공한 현재로 끝나거나 대의적인 논의로 표현하는 등의 방식이 더 많았다. 그래서 표본을 많이 모으기 힘들었다. 물론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도 생활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JJK의 경우 오히려 그러한 지점에 충실하여서 자신이 만드는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는 사소한 이야기라는 파편들을 모았을 때 그것이 사회의 모습을 반영할 수 있는 일차적인 자료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성공과 배틀, 사랑 혹은 돈, 차, 여자를 논하는 반복되는 서사 더미들 속에서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리고 [고결한 충돌]은 나의 호기심에 회의를 느낄 때쯤 가능성을 보여줬다. | 박준우 blucsha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