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4년 9월 25일
장소: 클럽 vurt
질문: C(전자음악 공동체 ‘이스케이프’의 관리자 chaosknight3130@hotmail.com), 정은정(cosmicfingers99@gmail.com)
정리: 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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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만든 클럽이 있다. 합정동에 있는 클럽 벌트(club vurt)다. 이곳은 테크노를 좋아하는 다섯 명의 DJ와 한 명의 VJ가 의기투합하여 만든 공간이다. 음악에서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하우스 뮤직은 시카고의 클럽 웨어하우스(Warehouse)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고, 한국에서 힙합 음악은 클럽 마스터플랜(Masterplan)이 문화를 전파하고 주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음악은 제 가치를 다하며 발전하고 유지된다. 한국에서 유일한 테크노 클럽인 벌트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벌트의 멤버들은 이러한 평에 손사래를 쳤다. 신(Scene)에 대한 거창한 포부보다 테크노를 향한 애정으로 만든 장소라는 것. 더 많은 사람들과 테크노를 즐기고 싶어 만든 클럽 벌트의 수리(Soolee), DJI, VJ 신(VJ Sinn), 운진(UNJIN)을 만났다.

# ‘테크노’ 클럽 벌트

정은정: 테크노를 특화한 클럽이라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클럽을 운영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 궁금해요.
DJI: 각자 레이블도 운영하고 뮤지션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요. 일단 테크노라는 게 댄스 뮤직이잖아요. 음악의 특성상 저희는 클럽이라는 무대가 항상 필요하거든요. 여러 베뉴(장소)에서 활동했지만, 테크노를 중점에 둔 이벤트 기획과 운영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어요. ‘투자자나 사장의 간섭이 없는 우리만의 클럽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 거죠. 2013년부터 수리와 고민했어요.
VJ 신: 저는 기다리는 입장이었어요. 언젠가 테크노를 위한 좋은 공간이 생길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거든요.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제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생겼어요.
수리: 클럽이 사라질 때 그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제이들은 아무런 힘이 없어요. 경영자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죠. 이유가 경제적인 문제든 생명이 다해서든 사라지는 것이든. 그런 경험을 하면서 회의감도 들었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클럽에 대한 욕구도 생겼어요.

정은정: 테크노 음악가들의 활동을 보장해주고 싶었다는 건가요?
수리: 그런 것도 있고요. 현장에서 플레이할 때 좀 더 테크노로 가도 될 것 같다는 조언이 있어도 사장이 거절하면 어쩔 수 없거든요. 그런 것들의 대안으로 DJI와 함께 논의하다가 클럽을 만들기로 한 거죠.

정은정: ‘벌트’라는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DJI: 별다른 뜻은 없는 단어예요. 일부러 아무 의미 없는 단어를 찾았어요. 그리고 글자의 모양과 어감이 공간에 잘 어울리는 걸로 선택했고요. 저희는 벌트라는 빈 이름에 아이덴티티를 불어넣고 싶어요. ‘이런 의미가 담긴 단어가 될 수 있겠다’라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든 거죠.

정은정: 홍대가 아니라 합정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요? 클럽이 밀집된 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인데요.
DJI: 왜냐하면 홍대는 너무 비싸요(웃음). 홍대의 지역적인 특성 자체가 많이 바뀌었죠. 상업적인 동네로 변했고 모이는 사람들도 예전과는 다른 친구들이잖아요. 그리고 옛날의 소규모 클럽들이 많이 없어졌죠. 저희와 더 어울릴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수리: 뉴욕의 임대료가 비싸져서 예술가들이 브루클린으로 넘어간 경우와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음악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는 게 되게 애매해요. 저희가 원하는 분위기를 가진 곳이 드물거든요. 여기도 백퍼센트 마음에 드는 건 아니고요. 다만 새로운 시도를 해서 돌파구를 찾고 싶었어요.

# 테크노라는 이름의 즐거움

정은정: 오랫동안 테크노라는 한 장르로 디제이 활동을 했고, 클럽까지 설립했는데요. 궁극적으로 테크노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빠진 건가요?
수리: 저에게는 되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음악을 계속 공부하다가 종착점이 테크노가 된 거죠. 물론 이후에 어떤 음악을 만들지는 모르겠지만요. 취향은 또 자라니까(웃음). 많은 사람들의 음악 듣는 기준은 대중성이에요. 그런데 그 틀을 조금만 깨면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어요. 저는 테크노는 음악으로 하는 ‘체험’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음계만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모든 범위 내의 소리를 다루기 때문에 음향적인 즐거움이 커요. 간혹 밴드 하는 사람 중에 테크노 팬도 꽤 있어요. “음악 하다 보면 당연히 이렇게 가는 거 아냐?”하면서요. 또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DJI: 저는 테크노는 가장 근본적인 댄스 뮤직이라고 생각해요. 디제이로 활동하면서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지, 왜 사람들은 춤추고 싶어 하는지, 왜 춤을 추는 공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거든요. 인간이 춤추기 시작한 건 문명보다도 더 오래된 일이잖아요. 원초적인 비트에 몸을 맡기면서 행복을 느꼈던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춤을 추는 행위. 그것의 연장선에 있는 음악이 바로 테크노라고 생각해요.
운진: 다른 댄스 뮤직이 비트나 흥겨움에 비중을 둔다면, 테크노는 좀 더 예술적인 요소를 중시해요. 실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운드와 사상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죠. 저에게는 그 점이 차별화된 매력으로 다가와요. 다른 장르의 클럽은 사교 활동을 위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테크노 클럽에 올 때는 좀 더 음악 감상에 무게를 두죠. 디제이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관객들도 그걸 느끼기 위해서 오는 게 이 장르의 매력이에요.
VJ 신: 저는 여럿이 함께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분위기가 잘 잡혀 있는 테크노 클럽은 각자 음악에 심취해서 놀거든요. 그러다가 눈 뜨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하고 있는 거예요. 같이 뛰어노는 것도 아닌데 클럽에 있는 사람들과 하나 된 느낌이 들었어요. 다른 형태의 ‘함께 노는’ 분위기도 있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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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벌트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테크노를 즐기는 관객들

정은정: 요즘 댄스 뮤직 중에서 EDM이 대세잖아요. 테크노는 각자 춤추는 음악이라면, EDM은 함께 춤추는 음악인데요. 일각에서는 EDM은 장르가 아니라 복제에 가깝다는 견해부터, 음악이 아니라 DJ들의 기행에 가까운 쇼맨십으로 돈을 번다는 비판도 있어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VJ 신: 저는 그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테크노와 다를 뿐이지, 나쁜 건 아니죠. 강남의 클럽에서 즐기다가 좀 더 다른 걸 찾게 되고, 그러면서 다른 장르에도 관심 가질 수도 있어요.
수리: 제가 지금 18살이면 EDM에 미쳤을 수도 있어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디제이와 엔터테이너의 경계가 흐릿해졌잖아요. EDM 신이 지금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데드마우스는 그만의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어요. 현재 대부분의 리스너들이 이 지점에 있어요. 처음에는 대중적인 음악을 즐기다가 점차 전자 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테크노 팬으로 유입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테크노를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장르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이런 주제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는 문제라서 조심스러워요.

# 관객이 주체가 되는 곳

정은정: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인테리어를 설계했나요?
DJI: 누군가 테크노라는 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 뭐냐고 물어보면 저희는 회색이라고 답해요. 그래서 회색빛의 시멘트에 착안했어요. 인테리어에 레퍼런스는 없어요. 음악과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이미지를 상상했어요. 그래서 옛날 벙커나 지하실 느낌이 좋겠다고 판단했고요. 나머지는 모두 음향에 맞췄어요. 플로어 사이즈와 디제이 부스를 비롯한 전체적인 구조는 오랫동안 클럽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준비했어요. 부스와 플로어가 한 뼘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요. 디제이가 플로어를 지배하기보다 사람들이 테크노라는 음악을 즐기면서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를 바랐거든요.

C: 벽면 하나를 프레임으로 봤을 때 스피커는 양쪽에 있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춤추고, 그 광경을 조명이 비추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DJI: 스피커도 한쪽 벽에 몰아서 사운드가 나오게 했어요. 사람들이 디제이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바라볼 수도 있도록 디자인한 거죠. 조명도 일부러 뒤에서 비치게 했어요.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중심이 되는 클럽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사람들이 플로어에 섰을 때 콘크리트 벽에 그림자가 생겨요. 춤을 출 때 자신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벽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거죠. 조명은 어떤 것을 사용해야 사람의 상이 시멘트 벽에 잘 맺힐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다양한 제품으로 테스트했어요.

C: 디제잉을 하면서 재밌었던 경험이 있나요?
수리: 엄청 많은데(웃음). 성공적인 이벤트가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분명 관객이 없을 법한 타이밍이 있잖아요. 1분 있으면 불 끄고 마감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안 나가는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껴요.
DJI: 음악 틀면서 어두우니까 무대가 잘 안 보이거든요. 그런데 조명이 한 번씩 탁 터질 때는 관객들의 표정이 다 보이거든요. 그때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그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VJ 신: 디제이는 무대 앞에 서지만 저는 페스티벌이든 클럽이든 뒤편의 콘솔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플로어와 사람들의 뒷모습을 집중해서 보는데, 그러면 흐름이 보여요. 분위기가 갑자기 고조될 때가 있어요. 그런 광경을 볼 때마다 소름이 쫙 돋아요. 어떻게 보면 청각보다 시각이 더 자극적이고 직접적이잖아요. 저는 조명과 영상으로 관객들이 춤추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하는 거죠. 낯선 음악이 나와서 어쩔 줄 모를 때도 시각 효과를 잘 이용하면 쉽게 놀 수 있거든요. 반응이 굉장히 즉각적이에요. 그런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흐뭇하고 재밌어요.

C: 멤버 모두 미디어 아트와 관련된 경험이 있어요. 수리는 오디오비주얼 작업을 했고, DJI는 예전에 유준(Ujn)으로 활동하면서 미디어 파샤드를 이용한 작업을 했고, VJ 신은 영상 작업을 하고 있고요. 음악과 미디어를 결합한 공연을 계획하고 있나요?
운진: 테크노라는 장르 자체가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접근이 아주 많아요. 음악 외적으로도 뉴미디어 장비에 대한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저희의 관심사는 클럽적인 사운드와 문화예요. 이를 중점으로 기반이 잡히면 준비할 수도 있겠죠. (편집자주: 이후 이들은 익스팬션(Expansion) 시리즈를 통해 3D 프로젝션 매핑을 선보이고, 위사(WeSA) 컴필레이션에 참여한 제호(JEHO), 맥스퀸과 함께 오디오비주얼 공연을 했다.)
VJ 신: VJ 입장에서 미디어는 음악의 조력자예요. 플로어에 있는 사람들이 음악을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요. 첫째는 청각의 시각화. 리치 호틴(Richie Hawtin)이 과거에 했던 작업인데, 소리의 각 요소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비주얼로 표현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평소에 인지하지 않고 있던 소리를 시각화해서 전달하는 거죠. 둘째는 영상을 통해 음악에 대한 감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정은정: 관객들이 벌트에서 어떻게 즐기기를 바라나요?
VJ 신: 테크노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려면 분위기가 제대로 잡혀 있는 곳에서 체험해야 해요. 저는 평소에 VJ 동료들에게 음악을 많이 알려주는데 다들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함께 일본의 움(WOMB)이라는 클럽에 일하러 간 적이 있어요. 분위기가 제대로인 베뉴였어요. 클럽도 안 좋아하던 친구들이 정말 심취해서 즐기는데 왠지 뿌듯하더라고요. 백문이 불여일견이었습니다. 클럽을 운영하는 일도 이것의 연장선이에요. 테크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경험과 음악을 제공하고 싶어요.
수리: < High Tech Soul: The Creation of Techno Music>이라고 테크노의 탄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어요. 디트로이트가 원래 공업 도시잖아요. 문화적으로는 척박한 곳이죠. 그 지역의 음악가들은 훗날에 테크노의 대부가 되었지만,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기계처럼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그러다가 ‘벨빌 쓰리(Belleville Three)’로 불리는 세 명이 지하철에서 전자 악기로 연주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대요. 한 음악가가 인터뷰에서 “그때 필요했던 건 깨끗한 물과 소금, 그리고 테크노밖에 없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사회적인 욕구가 음악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것이 클럽의 역할 중 하나인데, 그런 장소가 없다는 건 굉장히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벌트가 이 도시에 사는 동시대의 사람들이 테크노를 통해 만나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 유명세와 디제잉 실력은 별개

C: 벌트는 하루에 평균 4명의 디제이를 라인업으로 올리더라고요. 정해진 공식인가요?
DJI: 일단 하룻밤을 10시 오픈, 6시 마감으로 잡고 있으니까 8시간이잖아요. 한국에서 활동하면 한 시간 반 셋이 익숙해요. 그런데 음악의 특성상 각자 두 시간 정도 플레이해야 재미있는 부분이 더 많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해서 두 시간씩 하고 있어요. 모두 같은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지만, 스타일이 굉장히 달라요. 저 같은 경우는 앞 디제이와 제 스타일이 다르니까 저를 위해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생기는 셈이죠.

C: 다른 파티를 보고 연계하려는 시도는 없었나요? ‘다크 매터(Dark Matter)’나 ‘LFO’처럼 다른 테크노 크루/파티도 있잖아요.
DJI: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서울에서 테크노 하는 음악가들은 저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다크 매터나 LFO로 활동하는 사람 중에서 레스 앤 레스 소속인 친구들도 있거든요. 모두 친해서 서로 파티에 가서 보기도 해요. 테크노 DJ가 워낙 적어서 모르기 어렵죠. 예전에 저와 운진, 그리고 서나는 뮤트라는 클럽에 있었고 수리와 레스 앤 레스 크루는 콰드로에 있었어요. 콰드로가 먼저 문을 닫게 되면서 저희가 함께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레스 앤 레스 이벤트를 뮤트에서 했죠. 그런 연계가 있긴 있었네요.
수리: 대부분 함께 하는 사람 중에 기획자가 되거나 플레이어가 되거나, 아니면 몇 명이 더 붙어 무리가 되는 경우예요. 그래서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죠.
VJ 신: 다른 얘기를 하자면 그건 이벤트나 파티일 때고요, 여기는 클럽이고 저희는 운영하는 입장이잖아요. 그래서 음악가 간의 관계가 아니라 클럽의 입장과 특성을 고려해야 해요. 사실 아직 개업한 지 얼마 안 돼서 다른 공간이나 크루와 연계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벌트만의 특색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집중하려고 해요.

정은정: 해외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기준이 궁금한데요.
DJI: 클럽의 섭외는 레이블을 운영하는 것과 다른 기준을 적용해요. 사실 해외 아티스트가 한국까지 알려지는 건 음반이 유명해지면서 인지도가 상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음악을 잘 만드는 것과 잘 트는 것은 별개예요. 디제잉은 진짜 잘하는데 프로듀싱은 아예 안 하는 사람도 있고요. 좋은 음악을 발표한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에게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데려오는 거니까 디제잉을 잘하는 디제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인랜드(INLAND)는 제가 외국에서 클럽에 갔을 때 정말 재밌게 놀아서 벌트에 섭외했어요.
운진: 디제잉을 연주에 빗대어 생각하면 쉬워요. 작곡을 잘해서 유명할 수도 있지만 훌륭한 연주자는 아닐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공연할 때는 연주를 잘 하는 사람을 섭외해요.

# 운진이 운영하는 이씨아이 코리아(ECI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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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아이 코리아는 올해를 기점으로 또다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C: 이씨아이 코리아는 어떤 레이블인가요? 2013년에도 컴필레이션 앨범 [ECI ALLSTARS 2013]을 발매했는데요.
운진: 이씨아이 코리아를 2008년에 시작했어요. 그때는 서울에서 디제이나 프로듀서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해외에 음반을 발매할 창구가 없었어요. 연줄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이튠즈(Itunes)나 비트포트(Beatport)에 음반을 보낼 길이 전혀 없던 상황이었어요. 저는 예전부터 인디 레이블을 직접 운영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레이블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국에 클럽 신들이 성장하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레스 앤 레스와 모어 댄 레스가 음악가를 발굴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씨아이 코리아는 레이블로서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과는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해요. 새로운 시각으로 음악에 접근할 거예요.

정은정: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요?
운진: “이씨아이 랩(ECI Lab)”이라는 서브 레이블을 구상하고 있어요. 전자 음악가들이 댄스 음악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실험적으로 연구하고 만들 수 있기를 바라거든요. 앰비언트나 사운드 스케이프, 노이즈 같은 장르를 다루려고 해요. 재즈 등 다른 장르와 결합된 하이브리드 뮤직도 좋고요. 실험적인 정신에 중점을 둘 거예요.

C: 이씨아이 코리아는 과거에 비트포트에 음원을 낸 적이 있어요. 국내의 테크노 음악이 해외에는 어떻게 비치고 있나요?
운진: 테크노와 관련된 문화가 생겨나고 있던 시기였던지라 아무래도 주목을 받았죠. 그리고 현재 세계의 경제적인 흐름이 아시아권으로 넘어오고 있어서 한국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유럽이나 북미의 국가들이 경제난을 겪으면서 그곳의 뮤지션들이 아시아에 진출하길 원해요. 이 시점에 한국에 클럽도 많이 생기고 언더그라운드 문화도 커지면서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죠.

C: 이씨아이 코리아 소속 음악가 중에 믹스 아키텍트가 있더라고요. 어떻게 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외국 아티스트와 교류하는 것은 좀 어렵잖아요.
운진: 믹스 아키텍트가 예전에 믹서 회사인 알렌 앤 히스(Allen & Heath)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알렌 앤 히스의 XONE 3D 믹서를 사용한 첫 번째 아티스트여서 제품을 어떻게 알고 쓰게 됐는지 궁금해 하더라고요. 그렇게 연락이 와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 나중에는 회사에서 믹서를 지원해 줬어요. 신제품이 발매되면 테스트하기도 했고요. 믹스 아키텍트가 알랜 앤 히스의 디자이너들과 내한하면, 함께 디제잉도 하고 제품에 대해 대화도 나누면서 계속 교류를 이어왔어요.
DJI: 그러면서 저희는 엔지니어가 아닌 DJ로서 믹스 아키텍트의 음악성을 확인하게 된 거죠. 그의 앨범을 듣고 이씨아이 코리아에서 앨범을 발매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친구가 음향 전문가니까 함께 일할 수 있는 부분도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클럽의 사운드 디자인도 믹스 아키텍트에게 맡긴 거예요.

# 수리의 레스 앤 레스(Less and Less), 모어 댄 레스(More Than 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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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다양한 테크노를 들려줄 레이블 모어 댄 레스

정은정: 수리는 레스 앤 레스에 이어서 모어 댄 레스라는 레이블을 발족하고 조금씩 발매할 트랙을 완성하고 있어요. 둘의 차이점이 궁금한데요.
수리: 저는 원래 레이블을 운영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만든 테크노 음악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게 목표였고요. 해외의 테크노 신이 확실히 규모가 커서 팬층도 두텁고 자본도 많아요. 모어 댄 레스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사실 레스 앤 레스는 테크노를 접하는 관문 역할이에요. 예를 들면 EDM을 듣던 친구가 전자음악에 조금 더 관심이 생겨서 찾아보다가 레스 앤 레스 팟캐스트를 듣게 되는 경우를 노린 거죠. 처음에 구상했던 형태에 가까운 건 완전한 레이블 형태를 띤 모어 댄 레스예요. 트랜지스터헤드(Transistorhead) 같은 경우는 해외에서 아예 생소한 이름이거든요. 그런데 음악이 좋으면 되더라고요. 현재는 트랜지스터헤드의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C: 아티스트를 섭외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한 적이 있나요? 반대로 이씨아이 코리아와 모어 댄 레스에서 세계 신에 주목하고 있는 게 있나요?
DJI: 저희 쪽에서 가능성을 보고 접근해서 트랙을 릴리즈 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이씨아이에서 트랙을 발표한 아티스트들 중에 스웨덴의 노이(Noi)나 미국의 믹스 아키텍트가 그런 경우죠. 노이는 이씨아이에서 처음 발매했는데, 비트포트 테크노 차트에서 50위까지 차지했어요. 느낌이 맞는 아티스트들과는 지속해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어요. 섭외뿐만 아니라 앨범 작업, 리믹스, 팟캐스트 등을 통해서 다양하게 교류하고 있어요.

# 사명감보다 즐거움으로

C: 국내에서 테크노 음악의 명맥을 잇고 있어요. 한국에서 테크노를 한다는 것의 의미는 뭘까요?
수리: 명맥을 잇는다는 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명맥을 잇기 위해 지금 이런 걸 하는 건 아니거든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거죠. 아무튼 이런 공간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고 신에 발전되거나 정말 괜찮은 아티스트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히 있어요. 다르게 말하자면 벌트가 모두를 위한 클럽은 아니에요. 소수, 그러니까 테크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만든 클럽이에요.
DJI: 제게 벌트는 예전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할 기회라고 여겨요. 이곳에서 정말 ‘신(scene)’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라요. 저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VJ 신: 저는 테크노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팬이 되고 직접 신에 몸을 담게 됐어요. 저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 충분히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또 그것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운진: ‘테크노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 투철한 사명감으로 하는 건 전혀 아니고요(웃음). 다른 아시아권 국가만 보더라도 일본이나 대만은 20년 이상 운영하는 테크노 음악 전문 클럽이 수두룩해요. 70년대 말부터 클럽 문화가 있었고요. 반면에 한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20년도 채 안 된 시점이에요.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음악이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타이밍이라고 봐요. 이전보다 좀 더 진지하게 테크노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설렘을 갖고 있어요. 이 공간을 잘 운영해서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 가자는 설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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