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코베인 | 스카이랜드 | 붕가붕가레코드, 2014 1. 눈뜨고 코베인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밴드의 프론트맨인 깜악귀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비록 여러 음악이 공존하고 있는 홍대 앞일지라도, 그곳에는 언제나 주류적인 흐름이 있었고, 그 흐름에 동조하지 않는 음악들이 도태되는 경우도 있었다. 날이 갈수록 씬은 커지고 있지만, 음악적 토양은 아직 척박한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 척박한 토양 위에 다양성의 씨앗을 심는 데 있어 깜악귀가 해온 일들은 결코 작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전국의 블루스 뮤지션들을 모아 국내 최초의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인 [블루스 더, Blues]를 기획했던 것이 그였다. 펑크나 메탈, 브릿팝 사운드의 재현에 몰두하고 있던 인디씬에서 산울림과 같은 70년대 한국 록 밴드에 레퍼런스를 두고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한 첫 세대의 대표적 인물 또한 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가장 크게 기여해온 부분은 작사법에 있다. 주류 음악시장에 비해 비주류 뮤지션들은 가사의 심상과 표현을 차별화시키려 노력해왔다. 필자는 깜악귀가 그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여러 주제로 우리 삶의 가장 칙칙한 일면을 비꼬아 왔다. 세상을 향해 큰 목소리로 불만을 외치지도 않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의 가사는 낯선 것이었다. 그것을 두고 누군가는 냉소적인 위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날카로운 블랙 코미디라고 말했다. 어떤 의견에 따르건, 깜악귀의 노랫말은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을 유니크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2. 지금껏 눈뜨고 코베인은 가족, 외계인, 연애, 살인, 동물, 영웅, 지구멸망 등 여러 가지 소재들의 노래를 만들어왔다. 이번 앨범에 이르러 그들은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소재에 다가간다. 바로 자살이다. 첫 트랙 ‘우리 집은 화목한데’부터가 가족 일원의 자살을 소재로 한 곡이다. 아주 화목한 가정이 식사를 하고 TV를 보는 평범한 일상 속에 별안간 비일상적인 풍경이 스치듯 지나간다. 옥상 위로 올라간 삼촌이 창문 밖으로 날아가는 것을, 아이가 목격하고야 만 것이다. 경쾌한 드럼 비트와 발랄한 건반 너머에서 불길하게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이야기한다. “삼촌은 젊을 때부터 잘못한 일이 너무나 많았어.” 눈뜨고 코베인의 노랫말은 전작들만큼이나 불친절할지언정, 그 어투는 확실히 상냥해지고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노래 속 주인공들은 그 어떤 때보다도 철저히 내몰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의 색깔을 지워버려야 했고(‘캐모플라주’), 끝내는 적응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야만 했다(‘스카이 워커’). 이토록 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도, 깜악귀는 결코 연민이나 동정 따위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냉정하다.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은 모순의 음악이다. ‘타이거 타운’은 사람들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먹잇감이 되어야 했던, 불쌍하기 짝이 없는 호랑이들에 관한 노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기들이 내는 소리에선 좌절이나 절망 따위를 느낄 수 없다. 오히려 따뜻한 봄 소풍의 배경음악으로나 어울릴 법 하다. 그에 더해, 순진무구한 선율과 다소 경박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깜악귀의 목소리는 어쩐지 우스운 기분을 자아낸다. 잔혹하고 냉정한 노랫말과, 모든 진지한 해석을 조롱하는 듯 의뭉스러운 사운드. 그 둘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모순의 지점에 눈뜨고 코베인의 음악이 있는 것이다. 3.이 음반의 사운드를 살펴보자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타이틀곡인 ‘퓨처럽’이다. 댄서블한 리듬 위로 진하고 강렬한 신스 소리가 춤을 춘다. 늘 레트로에 한쪽 발을 담가왔던 그들답게, 80년대의 화려한 신스팝을 맛깔나게 살려냈다. 두 번째 타이틀곡 ‘스카이워커’는 앨범의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주로 밝은 기운의 건반과 기타가 두드러지는 앨범의 다른 곡들과 달리, ‘스카이워커’는 비관적인 가사 만큼이나 우울하게 가라앉은 연주를 담고 있는데, 최영두의 신파적인 기타 솔로는 마치 사람의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이번 앨범에선 전작들보다 보컬 멜로디가 선명해지고 코러스가 풍부해졌다. 특히 싱글로 먼저 발매되었던 ‘캐모플라주’에서 슬프니와 연리목의 코러스는 빛을 발한다. 연리목의 목소리가 비중이 높아진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선데이 행성에서 온 먼데이걸’에선 연리목과 깜악귀가 번갈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미안해요 잊어줘요’같은 경우는 아예 연리목이 보컬을 전면담당하고 있다. ‘퓨처럽’이나 ‘마더쉽’같은 곡들에선 사운드가 빈틈없이 꽉 차있다는 느낌이 든다. 3집 [Murder’s High]의 곡들이 느슨하게 여백을 둔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7분여에 달하는 길이의 대곡 ‘마더쉽’은 사이키델릭한 분위기가 약세인 [스카이랜드]에서도 한껏 어지러운 연주가 특징적인 트랙이다. ’25시의 데이트 눈코방송’역시 특기할 만한 트랙이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우쿨렐레 연주와 함께 라디오 오프닝곡이 지나가고, 방송이 시작되며 깜악귀가 나지막이 사연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그가 지난해까지 드러머 김간지와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곡인 듯하다. 예상치 못한 순간 튀어나오는 눈뜨고 코베인의 라디오는 앨범 청취에 있어 재미를 더해준다. 4.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눈뜨고 코베인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곡은 ‘2011년 여름 장마’였다. 이전까지 눈뜨고 코베인의 곡들 중 남녀관계를 다뤘던 곡들은 대부분 남녀 둘이 얘기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관계가 정리된 것도 아니고 정리되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하고 불편한 상황들을 그리고 있었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미안해요 잊어줘요’만 해도 그렇다. 그에 반해, ‘2011년 여름 장마’에선 적어도 남자 여자 둘이서 하고 싶었던 얘기를 모두 나눈 듯 보인다. 눈뜨고 코베인이 첫 ep를 발매한 지도 벌써 12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눈뜨고 코베인은 인디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앨범을 낼 때마다 레이블이 바뀌었고, 연주자들도 몇 차례 바뀌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꾸준하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들의 음악을 좋은 음악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세상이 낙관주의적 허상들로 감추려 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순간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화목해 보이는 가정일지라도 그 내부는 손 쓸 도리 없이 일그러져 있을 수도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삶이 버거워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려 할 수도 있다. 바로 그 우리 삶의 비틀어진 모습들에 대해서 눈뜨고 코베인은 이야기한다. 설사 당신의 귀에 그들의 노래가 거슬린다 하더라도, 한 번 들어보길 바란다. 듣고, 음악이 하는 이야기에 관해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 조지환 qaya@naver.com Rating : 8/10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