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x네이버연예의 인터뷰 기획 [스.압.주.의]

금요일 밤 KBS 2TV에서 방송되는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다가 문득 무척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유희열이 저기 앉아 있는 게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 유희열의 프로젝트 밴드인 토이의 첫 음반이 1994년에 발표되었으니, 대충 어림해도 그는 20년 이상 음악 활동을 해 온 셈이다. 토이의 일곱 번째 정규작인 [Da Capo]가 지난 해 발표되었고, 음반에는 요즘 잘 나가는 뮤지션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찼다. 즉 그는 ‘현역’ 뮤지션이고, 그 사실이 놀랍거나 이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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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그게 뭐가 잘못됐냐고 묻기 전에, 여러분이 1990년대에 살고 있고, 그 시점에서 1970년대 뮤지션들을 회고한다고 한 번 생각해보자. 예를 들면 ‘쎄시봉’의 포크 뮤지션들이나 캠퍼스 그룹사운드 밴드들. 모르긴 몰라도 제법 멀게 느껴질 것이다. 혹은 2000년대에 1980년대 뮤지션들을 추억한다고 생각해보자. 마찬가지로, 모르긴 몰라도 제법 멀게 느껴질 것이다. 심지어 그 뮤지션이 조용필이라 하더라도. 반면 2010년대에 1990년대의 뮤지션들을 돌이킬 때는 그런 느낌이 덜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활동하던 뮤지션들 중 상당수가 지금도 활동하고 있을뿐더러, 새 싱글이나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평균 이상의 관심을 끈다. 그 시절의 음악 또한 라디오에서 ‘최신 차트 히트곡’들과 함께 종종 흘러나오지만,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모양새가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 아니, 실은 ‘자연스럽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이는 1990년대의 뮤지션들이 예전 시대의 뮤지션들보다 음악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이라서 그럴까?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대중의 감각에 정확히 호소하는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그런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중음악에서 소수의 빼어난 재능이 나머지를 선도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빼어난 재능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무시하기는 어려우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중음악에 대한 서술은 영웅서사(‘아무 것도 없던 황량하고 척박한 시절에 진정한 천재가 나타나 가짜 음악을 몰아내고…….’)로 빠지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그 ‘환경’에 대한 ‘가설’을 한 번 이야기해 보려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가설’이니만큼 이 글을 읽을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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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Now]. 한국 싸이키델릭 록의 빼어난 순간 중 하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문제로 지적하곤 했던 것 중 하나는 ‘단절’이다. 이를 ‘유행은 있는데 흐름은 없다’는 말로 풀어도 괜찮을 것 같다. 또는 특정한 장르나 스타일이 형성되고 발전하여 이어지거나 특정 ‘씬’이 성장하는 일이 없었다는 얘기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신중현이 만들어낸 싸이키델릭 록은 신중현에서 사실상 끝났다. 사랑과 평화가 만든 훵크/디스코는 사랑과 평화에서 끝났다. 마그마가 연주한 헤비 메틀은 마그마에서 끝났다. 훗날 다른 사람들이 싸이키델릭, 훵크, 헤비 메틀을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본으로 삼은 것은 신중현과 사랑과 평화와 마그마가 아닌 외국(이라 쓰고 영미권이라 읽는다) 밴드였다. 그렇게 보자면 ‘선후배’는 있어도 ‘영향관계’는 희박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다. 1970년대 중반의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청년 문화’를 대표했던 수많은 뮤지션들이 활동을 중단해야 했던 점이 아무래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음반사전심의제, 즉 대중음악에 대한 검열이 지속적으로 시행되면서 뮤지션들의 창작활동 자체가 위축되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건전과 퇴폐라는 기준으로 음악을 평가하는 것이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 장려되고 강제되는 사회에서 특정한 씬이 형성되거나 지속적인 흐름이 생겨나고 이어지기는 어렵다. 음악의 제작과 유통, 공연 등이 ‘산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또한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음악가가 자기 음악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은 몇 년 전 새삼 화제가 된 조용필의 경우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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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아 대한민국]. 사전심의를 거부하고 발표한 최초의 음반. 이후 정태춘은 사전심의 철폐에 앞장섰다.

그렇다면 1990년대에는 이 모든 것이 변했을까? 단숨에 세상이 뒤집힌 것도 아니고 시간차도 제법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러 부분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이루어졌다. 1995년에는 음반사전심의제가 철폐되었다. 이로써 음악에 대한 사전검열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산업에도 ‘근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음반 산업의 규모 역시 눈에 띄게 성장하면서 ‘100만장 시대’가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시각도 우호적으로 바뀌어갔다. 물론 여전히 뮤지션은 ‘딴따라’였고 아이돌을 따라다니는 건 ‘정신 나간 짓’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더 이상 한국영화를 ‘방화’라 부르지 않게 되었고 ‘가요’와 ‘대중음악’의 차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직전과 2000년대 직전에 각각 이루어진 해외여행 자유화와 일본문화 개방 역시 이 변화의 배경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1990년대에 각광을 받은 대표적인 장르와 스타일들을 들여다본다면 어떨까. 힙합과 R&B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이 장르의 영향을 짙게 받은 댄스 음악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음악 스타일을 세련되게 다듬고 재즈와 클래식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발라드 양식이 뿌리를 내렸다. ‘록=젊음의 반항=진정성’으로 요약할 수 있을 록 이데올로기(내지는 ‘록 스피릿’) 하에서 록 음악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마지막으로, 방송(국) 중심의 주류 음악에 대한 ‘대안’으로 인디 씬과 인디 음악이 처음 등장했다.

다시 말해 힙합/R&B, 댄스/일렉트로닉, 발라드, 록, 인디라는 다섯 개의 장르 범주가(‘인디’를 장르로 볼 수 있는지는 잠시 제쳐두자) 이 시기를 거치며 한국 대중음악에 정착했고, 이 흐름이 이런저런 부침을 겪기는 했어도 지금껏 이어지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전통’ 혹은 흐름을 새롭게 구성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면, 그게 그 시절에 등장한 뮤지션들이 지금껏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면, 그래서 그 시절 음악이 우리에게 여전히 친근하게 들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지나친 비약인 걸까. 당연히 이는 ‘1990년대 음악이 최고’라는 소리도, 우리가 그 시절 뮤지션들이 이룬 업적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소리도 아니다. 1990년대 음악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 흐름이 나름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IMF를 지나고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음반’ 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고 음악 산업의 성격 또한 크게 바뀌었지만 그러한 변화가 위에 언급한 범주들의 ‘단절’이나 ‘종말’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여기에 더하여 21세기에 두드러지기 시작한 레트로 열풍은 한국 대중음악이 그간 축적해온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러면서 묻혀 있던 옛 고전들이 먼지를 털고 나타났으며, 새로운 시대의 음악가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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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이 시절 음악이 정말로 ‘그 때 그 음악’이 되는 건 언제쯤일까?

물론 이렇게 단순한 설명만으로 현 한국 대중음악의 복잡한 양상들을 정리할 수는 없다. 현재 ‘음악’이 처한 상황 역시 그렇게 낙관적인 것만도 아니다. 다만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비해 유난할 정도로 열광적으로 느껴지는 1990년대에 대한 회고의 이면에는 그 시절이 지금에 비추어 ‘좋았던 시절’로 느껴지는 것만큼이나 그 시절의 문화에 대한 친숙함(또는 ‘낯설지 않음’) 역시 자리 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들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한국 대중음악이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 역시 든다. 언젠가는 1990년대의 음악도, 또한 지금의 음악도 정말로 오래되고 낯설어 보이겠지만, 그 때의 낯설음은 뚝 하고 동떨어진 무언가를 볼 때 느끼는 낯설음과는 분명 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다.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One Response

  1. 헤이슈가

    최선생님 오랜만에 글 쓰셨네여 킇ㅎㅎ
    유행은 있지만 흐름은 없었다 이거 참 공감되는 말이군여 킇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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