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x네이버연예 칼럼 프로젝트 [스.압.주.의]

아이돌은 청춘이다. 그러나 현실의 청춘을 내어주고 이상세계의 청춘을 ‘연성’하는 아이돌도 나이를 먹는다. 변한 얼굴로 새로운 세계를 노래해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자연인으로서의 나이와 아이돌이란 ‘콘텐츠’의 괴리를 해결하려 할 때, 우린 흔히 ‘성장’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일단은 생존이 중요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아이돌 세계지만, 살아남아 성장해야 하는 아이돌도 있다. 다양한 변신의 시도가 있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커리어적 성장이고, 또 하나는 이미지적 성장이다.

커리어적 성장

아이돌도 사람이라는 건,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의 인생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 무대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자연인인 아이돌에게는 삶이 지속된다. 아이돌이 직업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영화배우부터 휴대폰 대리점 사장까지 다양하겠으나, 여기서는 음악가로서의 성장만을 고려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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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누나를 찾고 있지만, 이를테면 지드래곤.

작사, 작곡 및 프로듀스를 행하며 ‘진정성’ 있는 음악가로 나아가는 길은 가장 큰 주목과 인정을 받는 편이다. 팬들 또한 많은 경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타 팬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가치가 되기도 한다. ‘아이돌 이후’를 대비하는 효과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형태의 성장과 관련해서는 [스.압.주.의] 시리즈의 지난 기사 “’자작곡’에서 프로듀서 아이돌까지”에서도 다룬 바 있다.

지난 해 샤이니의 태민이 솔로 미니앨범 [ACE]를 발매하면서, 커리어적 성장에도 다른 형태가 가능하다는 공감대도 생겨나고 있다. 작사, 작곡을 해내는 싱어 송라이터가 아니어도 ‘퍼포머’로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다른 아이돌의 무대를 놓고도 우리는 훌륭한 퍼포먼스와 무대 장악력, 때론 ‘신인이 소화하기에 버거운 무대’ 같은 표현을 쓴다. 이는 ‘가창력’과 같은 전통적 음악 실력의 지표 이외에도, 댄스 실력, 존재감, 표현력 등의 다양한 요소가 가수에 대한 평가의 기준 영역으로 포함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만 보도자료에 “작사 작곡 참여!”와 같은 문구로 포함시키는 명쾌함이 없고 객관화가 어렵기에 두드러지지 못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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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차시진 않을지, 하지만 멋지게 해내시겠죠.

데뷔 17주년을 맞이하는 신화는 그래서 인상적이다. 매우 특수한 성공사례라고밖에 할 수 없을 이들은, 두 차례의 소속사 변경과 군 복무마저 극복하고 하나의 팀을 유지해냈다. 멤버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대 기준으론 매우 활발한 편이었던 개인 활동을 통해 ‘연예인’으로서의 가치를 각자가 키워나가는 동시에, 음악과 커리어 양면의 프로듀스를 팀 내에서 소화하게 된 것도 그 비결의 하나였다고 하겠다.

이미지적 성장 | 성적 매력

아이돌에게 섹스 어필이 전부라고 한다면 아마도 틀린 말이다. 그러나 아이돌에게서 섹스 어필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섹시 콘셉트’라 부르는 것들을 제외하고도, 아이돌은 많은 경우 이성애적 관점에서 출발한 매력을 전제로 한다. 최근 한국 갤럽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10대 남성은 소녀시대, 아이유보다 엑소를 좋아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더 많은데, 이들이 전부 동성애자라고 할 수는 없다. 10대 여성의 30%가 엑소를 좋아하기에, 이성에게 사랑 받는 동성으로서의 엑소에 호감을 갖는 것으로 보는 편이 현실적일 것이다. 이런 역학은 걸그룹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의 상당수에게서도 자주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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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갤럽,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 2004-2014”

신화의 예를 들었지만, 이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이례적이었다. 당대로서는 비교적 드물게도, 커리어 초반부터 남성적 면모를 어필한 그룹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꾸준히 이어졌기에 성인 남성의 매력을 발산하는 지금의 신화가 있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렇듯 이미지로서의 성적 매력은 ‘어른의 것’이다. 걸스데이가 비교적 ‘마이너’였던 시절을 거친 뒤 “기대해”와 “Something”을 내놓은 것, 원더걸스에서 마냥 귀여운 이미지였던 선미가 “24시간이 모자라”와 “보름달”로 컴백한 것도 성숙의 선언이다. 이런 전환은 기획사 차원에서 이뤄지기도 하는데, DSP 미디어가 카라에 이어 레인보우를 내놓고, 크롬 엔터테인먼트가 크레용팝에 이어 단발머리를 기획한 것도, 성적으로 성숙한 매력을 선보이기에 적합한 방향으로 팀을 ‘개량’한 것이라 하겠다.

박지윤의 가사였던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는 거대한 클리셰가 되었고, 수많은 여성 아이돌이 섹시 콘셉트를 통한 ‘성장’을 선보였다. 메이크업과 스킨십 진도에는 후진이 없다고 하던가? 마침 섹시 콘셉트에도 후진이란 좀처럼 없고, 이는 나이를 되돌릴 수 없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흥미로운 것은 남성 아이돌의 경우 여성처럼 노골적인 섹스 어필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의 ‘틴 아이돌’에서도 팬들에게 (남성으로서) ‘위협적이지 않도록’ 가슴 제모를 해야 했다는 증언이 남아있다. 가슴 털을 섹시하게 느끼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지나친 남성성’이 아이돌에게서 금기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신화 또한 누드집을 발간한 적 있었으나, 후대에 비슷한 시도를 하는 아이돌이 없다는 것은 남성의 노골적인 섹스 어필을 우리 사회와 여성 팬들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미지적 성장 | 동화와 현실

한편, 콘셉트의 내용과 어조를 살피면 어떨까? 아이돌은 어떤 이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역사적으로도 신파적인 리얼리즘의 대립항으로 부상했다. 아이돌의 ‘밝음’이 마냥 설레고 희망적인 첫사랑의 이미지라면 아이돌의 ‘어둠’은 전쟁과 마법으로 가득하다. 가장 현실적이라 해도 미국 드라마, 셀러브리티, 클럽, 나쁜 남자 정도로, 결국 판타지와 비일상의 세계다. 아이돌에게 스캔들이 터지면 팬들이 “연애는 하더라도 들키지 마라”고 하는 것 또한 아이돌이 제공하는 ‘경험’의 본질이 환상에 한 발을 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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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즈의 “안녕”과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

러블리즈의 “안녕”은 시종일관 꿈결 같은 화면을 보여준다. 은유와 상징으로 뒤덮인 이 뮤직비디오는 머리에 풍선을 매달아 몸이 떠오르거나 교실에 꽃잎이 날리는 등,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 또한 빛나는 거대 비치볼이나 거대한 고양이 등이 황량한 풍경과 어울려 비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지금 가장 ‘소녀적’인 아이돌들은 이처럼 환상의 세계에 들어서 있다.

현실에 가까이 올수록 ‘아이돌성’은 옅어진다. 현실은 구질구질하고 지루하며 아름답지 않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사람들은 서로를 속인다. 우리가 흔히 ‘어른의 사정’, ‘어른의 계단’이란 말을 쓸 때, 환상은 어린이에, 부정한 현실은 어른에 각각 해당한다. 그렇게, 현실성은 아이돌에게 성장의 의미가 된다. 한강의 괴수와 싸우던 가물치는 ‘어장관리’하는 여성에게 볼멘 소리를 하고, 틴탑과 니엘은 ‘못된 여자’와의 사랑이 ‘쉽지 않다’고 노래한다. B1A4는 솔로로 지내는 삶의 구질구질함을 애써 태연한 척 표현함으로써 구질구질함을 강화한다.

남성 아이돌들이 대체로 점진적인 성장을 보여준다면, 여성 아이돌들은 보다 가파르게 계단을 오르듯이 현실성을 도입한다. 카라는 “숙녀가 못 돼”에서 “비나 확 쏟아져라”, “언젠가 니들도 겪게 될 거다”, “어차피 찰 거면 분위기나 맞추지” 등 극언에 가까운 가사를 쏟아내며, 영원한 사랑의 환상이 깨지고 난 뒤 시큰둥해진 인물을 표현했다. 이후 “맘마미아”로 돌아선 카라와 달리 솔로로 독립한 니콜은 “MAMA”에서 “엄마는 말했지 남자를 조심해라”, “나는 나쁜 아이예요” 등의 가사로 현실에 다가섰다. 시공을 넘나드는 동화 속 소녀였던 아이유가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 “사람들에게는 진실이란 중요하지 않아”라고 노래하며 한껏 냉소를 부린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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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 Hawwah (2015)

특이한 것은 가인의 미니앨범 [Hawwah]가 보이는 현실성이다. 성경에서 빌어온 테마로 가득한 이 음반은 대부분의 수록곡에서 가사와 음악 모두 매우 세속적이다. 그렇기에 “Paradise Lost”가 갖는 신성의 테마가 더욱 부각되는데, 정작 이 곡의 내용은 성적 환희와 죄의식, 거짓말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곤 절정부에서 “그들은 환상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또 다른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린다. 음반 전체에 걸쳐 현실과 환상의 대비를 자꾸만 보여주는 가인은 아이돌적인 환상의 세계를 신화에, 가요적인 현실의 세계를 세속에 각각 대입한다. 그리곤 세속의 끈을 잡은 채 신성의 반대편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반(反)-신성의 테마를 통해 가인은 일종의 반(反)-아이돌이 된다. 그는 ‘아이돌이 아닌 사람’이 아니라, ‘아이돌이지만 아이돌의 반대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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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적 성장을 다음의 표처럼 그려볼 수 있겠다. 이 좌표 위에 아이돌의 여러 곡들을 위치시켜보거나, 특정 아이돌이 발표한 곡들의 흐름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인과 같은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대체적으로 오른쪽 위로 갈수록 이미지적으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여성 아이돌의 변신은 무죄?

이상의 이야기에서 꾸준히 남녀의 차이가 드러났다. 커리어적 성장은 여성 아이돌보다는 남성 아이돌에게 집중된다. 팀 내에서 작사 작곡과 프로듀스를 소화해내는 남성 아이돌의 예는 이미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많다. 반면 싱어 송라이터나 제작자, 혹은 퍼포밍 아티스트로서의 자기 결정권을 선명하게 키워나가는 여성 아이돌은 여전히 손에 꼽는다. 여성보다는 남성의 직업 인생 중요도를 높게 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닮은 것일까?

반면, 여성 아이돌은 보다 이미지적 성장에 집중하고, 그 변화의 폭도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커리어적 성장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성 아이돌의 남성 팬들이 보다 쉽게 ‘갈아타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만 그것이 섹시 콘셉트일 때는 자칫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위험이 있는 여성 아이돌. 낡아빠진 클리셰로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어쩌면 여성 아이돌에게 있어 변신은, 무죄보다는 무거운 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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